第二編 -키키신화(記紀神話)의 신들
◎ 아메노히바라오오시나도미노카미(天日腹大科度美神)
<키키신화에 등장하는 남신>
- 오오쿠니누시노카미(大国主神)의 후손신. 누노시토미토리나루미노카미(布忍富鳥鳴海神)의 어자(御子)로, 모친은 와카히루메노카미(芸昼女神)이다.
『古事記(코지키)』에 따르면, 와카히루메노카미는 누노시토미토리나루미노카미와 결혼하여 아메노히바라오오시나도미노카미(天日腹大科度美神)를 낳아서 모셨다고 나와있다. 이 가계(家系)의 세 신의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자세한 사항은 불명확하다. 하지만, 이즈모 신화(出雲神話) 속에서 「아메노(天)」라는 글자를 가진 신이 있다는 것은 이례적인 경우이다.
◎ 아메노히보코(天之日矛 = 天日槍命)
<키키신화에 등장하는 남신>
- 아카루히메(阿加流比売)를 연모해 일본으로 찾아왔다고 전해지고 있는 신라(新羅)의 왕자. 天日桙, 天之日矛, 海檜槍 라고도 표기한다.
『日本書紀(니혼쇼키)』에서는, 그의 내일(来日)을 제 11대 스이닌 텐노(垂仁天皇) 3년이라 말하고 있지만, 『古事記(코지키)』에서는 제 15대 오우진 텐노(応神天皇) 치세 때라 한다. 『播磨国風土記(하리마노쿠니후도키)』는 아메노히보코에게서 기인한 지명 설화를 소개하고 있으며, 또 『新撰姓氏録(신센쇼지로쿠)』는 미야케노무라지(三宅連), 이토이노미얏코(糸井造)의 선조라 전한다.
신라에 있는 아구누마(阿具沼)에서 한 여성이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음부에 햇빛이 닿게되고 여자는 붉은 구슬을 낳게된다. 이것을 보고있던 남자가 그 구슬을 얻어 항상 허리춤에 차고 다녔다.
어느날, 남자는 백성들에게 나눠준 음식을 손에 가득 담고 산으로 들어갔다. 이때, 신라왕의 아들인 아메노히보코가 이를 보고는, 이 남자는 소를 죽이고서는 그것을 먹기 위해 산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즉시 사로잡아 투옥시키려하자, 남자는 허리춤에 있는 구슬을 바치며 용서를 바랐다. 아메노히보코가 붉은 구슬을 가지고 돌아와 바닥에 두자, 이 붉은 구슬은 즉시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했다. 아메노히보코는 그 미녀를 아내로 삼았고, 아내가 된 여자는 진수성찬을 만들어주며 아메노히보코를 보필했다.
어느날, 아메노히보코는 기분이 상해 격노하며 여자를 욕했다. 여자는 「저는 당신의 아내가 될만한 여자가 아닙니다. 조국으로 돌아가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작은 배를 타고 일본으로 돌아가 나니와(難波)에서 살게 되었다.
이 아씨(比売)의 이름을 아카루히메(阿加流比売)라 한다. 『古事記(코지키)』에는 「나니와의 히메고소노야시로(比売碁曾社)에 머무르시다」라고 나와있다.
아메노히보코는 아카루히메를 쫓아 일본으로 왔지만, 해상의 수호신에게 방해를 받아 결국 나니와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타지마노쿠니(但馬国: 효고 현)로 들어간 아메노히보코는 이곳에서 타지마노마타오(多遅摩俣尾)의 딸인 사키츠미(前津見)와 결혼하여 자손을 남겼다고 한다.
아메노히보코가 신라에서 가져온 타마츠타카라(玉津宝: 보물)는 타마후타츠라(珠二貫: 2개), 나미후루히레(浪振比礼), 나미키루히레(浪切比礼), 카제후루히레(風振比礼), 카제기루히레(風切比礼), 오키츠카가미(奥津鏡), 헤츠카가미(辺津鏡), 이 여덟종류였다. 이러한 신보(神宝)를 신체(御神体)로 삼은 것이, 이즈시(出石)의 야마에노오오카미(八前大神)라 한다. 즉, 현재의 이즈시 진쟈(出石神社: 옛 국폐 츄샤)이다.
『니혼쇼키』에서는, 아메노히보코의 도래를 간단하게 서술하고 있으며, 그가 가져온 신보도 하후토노타마(羽太玉) 하나, 아시타카노타마(足高玉) 하나, 우카카노아카이시(鵜鹿鹿赤石) 하나, 이즈시노오타나(出石小刀) 한 자루, 이즈시노호코(出石桙) 하나, 히노카가미(日鏡) 한 장, 쿠마노히모로기(熊神籬) 하나... 이 일곱 종류라 쓰고 있다. 그리고 하리마(播磨), 아와지(淡路), 오우미(近江), 와카사(若狭) 등을 전전하였으며, 마지막에 타지마(但馬)에 정착했다고 나와있다. 또, 이즈시 사람인 후토미미(太耳)의 딸인 마타오(麻多烏)와 결혼했다고 나와있다.
『하리마노쿠니후도키』에는, 天日槍命(아메노히보코노미코토)라 나와있으며, 카미요(神代) 때의 전승으로 다뤄지면서 오오나무치노미코토(大汝命: 오오쿠니누시노미코토의 다른 이름)와 서로 경쟁하는... 강력한 신으로서 묘사되어 있다. 예를 들자면, 하리마의 우즈카와(宇頭河)까지 왔을 때, 오오나무치노미코토에게 잠자리를 청했다. 그래서 오오나무치노미코토가
「바다 속이라면 좋을대로 하시게」
라고 답하자, 아메노히보코는 검으로 바닷물을 말려버리고는 거기서 숙박했다. 오오나무치노미코토는 "이 놈은 대단한 놈이다!"라고 생각해서 나라를 선취하고자 하리마를 돌아다녔으며, 어느 언덕까지 와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이때 입에서 밥풀(飯粒)이 튀어나왔기 때문에 이이보노오카(粒丘)라는 지명이 생겨났다던가, 오오나무치노미코토와 아메노히보고 두 사람이 계곡(谷)을 서로 차지하려했기 때문에, 우바이다니(奪谷)라는 지명이 생겼다던가, 또, 이 두 신이 쿠로츠즈라(黒葛) 세 줄기를 다리에 감고던졌더니, 오오나무치노미코토가 던진 한 줄기는 타지마의 케타 군(気多郡), 또 한 줄기는 미카타 마을(御方)에 떨어졌고, 아메노히보코가 던진 세 줄기는 모두 타지마로 떨어졌기 때문에 각각 자신의 쿠로츠즈라가 떨어진 곳을 자신들의 영지로 삼았다고 한다.
이 『하리마노쿠니후도키』의 신화는, 이즈모족(出雲族)과 이즈시족(出石族)의 세력 다툼을 이야기해주는 것이라 해도 좋다. 그리고 이 두 씨족 모두, 카라쿠니계(韓人系) 도래민족이라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또, 아메노히보코라는 것은 태양 신앙을 중시했던 이즈시족의 히오기 의궤(日招ぎ儀軌)라는 이름이 있으며, 이것이 인격화한 것이라고도 여겨진다.
아카루히메의 출생신화(붉은 구슬에서 탄생)말인데, 이것과 유사한 이야기가 한반도에는 많다. 예를 들자면, 고구려(高句麗)의 「동명왕 주몽(東明王朱蒙)」이나, 신라의 「혁거세왕(赫居世王)」 등의 출생 설화가 한반도에 뿌리 깊게 남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카루히메는 원래 태양신의 아내라 믿어져 온 미코(巫女)로, 성구(聖具)인 히보코(日矛: 태양창)를 받들어 모셨던 사람이었으리라 여겨진다. 또, 이 아카루히메는 자주 오오쿠니누시노카미(大国主神)와 타기리비메노미코토(多紀理毘売命)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시타테루히메노미코토(下光比売命)와 혼동된다거나, 또는 오오쿠니누시노카미의 데릴사위이자, 하늘의 사자인 아메노와카히코(天若日子)의 종자인 아메노사구메(天佐具売 = 天探目)와 혼동되는 경우가 많다.
아메노히보코는 사키츠미(前津見: 『니혼쇼키』에서 말하는 마타오)와 결혼하여 타지마모로스쿠(多遅摩母呂須玖: 『니혼쇼키』에서는 但馬諸助)를 얻었는데, 그의 자손은 타지마히네(多遅摩斐泥) - 타지마히나라키(多遅摩比那良岐)로 이어지며, 이 히나라키의 어자(御子)가 타지마모리(多遅麻毛理), 타지마히타카(多遅摩比多訶), 키요히코(清彦), 이 세 사람이다.
타지마히네는 『니혼쇼키』에서 타지마히나라키(但馬日楢杵)로 나오며, 그 뒤에 「히나라키가 키요히코를 얻었고, 키요히코가 타지마모리(田道間守)을 자식으로 얻었다 한다」라 나와있어, 『코지키』와 『니혼쇼키』에서는 다소 계보상의 차이가 발견된다.
타지마모리는, 제 11대 스이닌 텐노의 명령에 의해 토키지쿠노카구오코노미(非時香菓: 『니혼쇼키』는 로 표기)를 찾아서 바다 건너에 있다는 토코요노쿠니(常世国)로 갔다. 그리고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에야 잎이 붙어있는 가지와, 열매가 맺혀있는 가지를 가지고 돌아왔지만, 텐노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타지마모리는 가지고 온 것 중 절반을 황후에게 바치고, 남은 절반을 죽은 텐노의 능(陵)에 바치고는 슬피 울다가 죽었다... 라며 『코지키』와 『니혼쇼키』에 나와있다.
토키지쿠노카구노코노미는 현재의 귤(橘)이라고도 일컬어지고 있는데, 『니혼쇼키』에는 향과(香菓)라 나온다. 과(菓)는 쿠사쿠다모노(クサクダモ野: 과일)을 의미하는데, 현재의 과자와는 다른 것이다. 또, 능 앞에 향과를 바치며 슬피 운다는 이야기는, 이즈시족이 치렀던 타마시즈메(鎮魂)라는 제식(祭式)의 하나라고도 여겨진다.
또, 『니혼쇼키』에 「万里浪を踏みて遙に弱水を渡る。この常世の国は神仙の秘区にして俗の棲らむ所にあらず」라고 나와있는 점을 보면, 이러한 설화는, 중국(中国)의 신선담(神仙譚)의 영향을 상당히 받았으리라 여겨지며, 신선에게 찾아가 과일이나 약초를 얻는다는 이야기도 세계적으로 공통되고 있다. 특히, 진(秦)의 여복(徐福)이 동쪽 바다의 선약(仙薬)을 구하러 간 이야기는 아주 유명하다.
덧붙이자면, 타지마모리는 미야케노무라지의 선조가 되었으며, 과자의 신으로서도 옛부터 사람들의 신앙의 대상이 되어 있다.
[아메노히보코가 가져온 8종 신보를 모시는 진쟈(神社)]
효고 현(兵庫県) 이즈시 군(出石郡) 이즈시 쵸(出石町) 미야우치(宮内)에 있는 이즈시 진쟈(出石神社): 코쿠츄(国中)
[타지마모리를 모시는 진쟈]
효고 현 토요오카 시(豊岡市) 미야케(三宅)에 있는 나카지마 진쟈(中嶋神社): 켄샤(県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