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二編 -키키신화(記紀神話)의 신들
◎ 이자노마와카노미코토(伊邪能真若命)
<키키신화에 등장하는 남신>
- 제 10대 스진 텐노(崇神天皇)의 제 2 황자(皇子).
스진 텐노는 제 9대 카이카 텐노(開化天皇)의 큰형인 오오비코노미코토(大毘古命)의 딸인 미마츠히메노미코토(御真津比売命)와 결혼하여 여섯명의 황자(皇子)와 황녀를 얻었다.
이쿠메이리히코이사치노미코토(伊玖米入日子伊沙知命: 스이닌 텐노), 이자노마와카노미코토(伊邪能真若命), 쿠니카타히메노미코토(国片比売命), 치지츠쿠야마토히메노미코토(千千都久和比売命), 이가히메노미코토(伊賀比売命), 야마토히코노미코토(倭日子命)이다.
하지만, 『古事記(코지키)』의 오오비코노미코토 조(条)에는, 미마츠히메노미코토에 대한 기록이 없으며, 카이카 텐노의 어자(御子) 중에 같은 이름의 황녀(巫女)가 있다. 하지만 이 황녀는, 스진 텐노와 동복 누이에 해당하며, 당시에도 남매간의 결혼이라는 풍습이 없었기 때문에, 동명이인이라 여겨진다. 『日本書紀(니혼쇼키)』에는 미마키히메(御間城姫)라 나온다.
장자인 이쿠메이리히코이사치노미코토(伊玖米入日子伊沙知命 = 伊久米伊理毘古伊佐知命)는 11대 스이닌 텐노(垂仁天皇)가 된 인물이다.
『니혼쇼키』 스이닌 텐노(垂仁天皇) 조에는, 신라(新羅)의 왕자인 아메노히보코(天日槍)의 도래 등... 임나(任那)나 신라 등의 지명이 자주 등장한다. 한반도와의 교류가 왕성했던걸까?
또, 이 시대에 타기마노케하야(当摩蹴速)와 노미노스쿠네(野見宿禰)가 힘대결을 펼치는데, 이는 일본 스모(相撲)에 대한 첫 기록이라 일컬어지며, 또, 이 노미노스쿠네의 건의로 분묘(墳墓)의 부장(副葬)을 하니와(埴輪)로 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스이닌 텐노가 붕어(崩御)했을 때의 나이는 백쉰세살. 『니혼쇼키』에는 백사십살이라 나와있다.
차남은 이자노마와카노미코토(伊邪能真若命), 장녀는 쿠니카타히메노미코토(国片比売命), 차녀는 치지츠쿠야마토히메노미코토(千千都久和比売命), 그리고 삼녀가 이가히메노미코토(伊賀比売命)이다. 막내 아들은 셋째인 야마토히코노미코토(倭日子命)인제, 『古事記(코지키)』에서는 이 야마토히코노미코토 시절에 능(陵)에 하니와를 히토가키(人垣)처럼 세워 당시까지의 순장풍습을 악습이라 여겨 폐지하게 된다.
◎ 이시코리도메노미코토(伊斯許理度売命 = 石凝姥命)
<키키신화에 등장하는 여신>
- 아메노이와야도(天岩屋戸) 앞에 모였던 신들 중 한 주(柱).
이름의 유래는, 돌(石)을 잘라 주형(鋳型)을 만들어 녹인 철(鉄)을 부어넣어 굳혀서 거울을 주조(鋳造)하는 나이든 여자라는 의미이다. 때문에 카가미츠쿠리노무라지(鏡作連)의 먼 선조라 여겨진다.
아메노이와야도에 숨어버린 아마테라스오오미카미(天照大神)를 끌어내는 제의(祭儀)에 필요한 야타노카가미(八咫鏡)를 만들었다... 고 나와있다.
천손강림(天孫降臨) 때 동반하여 아마테라스오오미카미의 미타마시로(御魂代)가 되었으며, 이스즈노미야(伊須受宮)에서 모셔지며, 천손(天孫)과 오모이카네노카미(思兼神)에 의해 숭배되게 되었다.
『古事記(코지키)』의 아메노이와야도 신화에서, 「카누치아마츠마라(鍛人天津麻羅)를 찾아서 이시코리도메노미코토(伊斯許理度売命)에게 맡겨 거울을 만들게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石凝姥命라고도 쓴다(『니혼쇼키』).
『日本書紀(니혼쇼키)』 일서(一書)에는 「옛날, 이시코리도메를 카누치(冶工)로 삼아 아메노카구야마(天香具山)의 금(쇠)을 캐내어 히보코(日矛: 멋진 창이라는 의미일 것이며, 태양 창, 끈을 휘감은 창, 또는 야타노카가미라는 설 등이 있다)를 만들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다른 일서에는 「카가미츠쿠리베(鏡作部)의 먼 선조로 아마노누카도(天糠戸)에게 거울을 만들어주었다(그녀의 부친인 누카도에게 거울을 만들어주었다는 의미)」, 또 다른 일서에는 「카가미즈쿠리의 먼 선조로 아메노누카도의 자식인 이시코리토베(石凝戸辺: 이시코리도메)가 만든 야타노카가미를 걸고...」라고 나와있다.
『니혼쇼키』에서 石凝라 쓰고있다는 것에서 감안하면, 앞에서 말한대로 거울을 주조하는 형틀을 가르켜 붙여진 이름이지 않을까?
[이시코리도메노미코토를 모시는 진쟈(神社)]
오카야마 현(岡山県) 츠야마 시(津山市) 이치노미야(一宮)에 있는 나카야마 진쟈(中山神社): 코쿠츄(国中)
나라 현(奈良県) 시키 군(磯城郡) 타하라혼 쵸(田原本町)에 있는 카가미즈쿠리 진쟈(鏡作神社): 켄샤(県社)
◎ 이즈모타케루(出雲建)
<키키신화에 등장하는 남신>
- 오우스노미코토(小碓命: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가 서정(西征)을 했을 때에 등장하는 신들 중 한 주(柱).
고대 이즈모(出雲)에 있었다는 설화 속에 등장하는 수장(首長). 이름의 유래는, 이즈모라는 지명에 무용(武勇)에 뛰어난 사람이라는 의미의 타케루(建、武)라는 말을 붙인 것이다.
『古事記(코지키)』에서는, 제 12대 케이코 텐노(景行天皇) 시대, 쿠마소(熊襲) 정벌을 한 뒤, 야마토(大和)로 귀환하는 도중인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倭建命 = 日本武尊)에게 속아서 검을 붉은 나무로 만든 목검과 바꿔치기 당해 죽었다고 전한다 『日本書紀(니혼쇼키)』에는, 이 설화가 발견되지 않는다.
오우스노미코토(小碓命: 야마토타케루)는 부친인 케이코 텐노(景行天皇)의 명령을 받아 홀로 쿠마소(熊襲) 정벌에 나섰다. 그리고, 숙모인 야마토히메노미코토(倭比売命)로부터 받은 여성용 옷을 입고서 쿠마소타케루(熊襲建) 형제에게 접근해 형을 죽이고 결국에 달아나는 동생을 추격해 죽였는데, 죽기 직전에 동생은
「서쪽 나라에는 우리들 형제에게 이길 강자는 없었소. 하지만, 그런 우리들을 이긴 용맹한 남자는 당신이오. 이후 당신은 야마토타케루라 이름을 대도 좋소」
라고 말한 뒤에 숨을 거두었다. 오우스노미코토는 그 이후,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倭建命 = 日本武尊)라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어서 산신(山神)과 하천의 신, 해협의 신(아나토노카미) 등 난폭한 신을 말로서 타일러 굴복시켰으며, 귀환 도중에 이즈모노쿠니로 들어가 이곳의 호족인 이즈모타케루와 상대했다. 오우스노미코토는 계책을 써서 목검을 만들었고, 싸우기 전에 몰래 이즈모타케루의 검과 바꿔치기해버렸다. 당연히 목검과 진검으로는 제대로 된 승부가 될 수 없었다.
이것으로 서정을 끝내고 텐노에게 개선 보고를 주상했다고 한다.
◎ 이즈모노후루네(出雲振根)
<키키신화에 등장하는 남신>
- 고대 이즈모(出雲) 설화에 등장하는 인물로, 이즈모노오미(出雲臣)의 선조신. 『日本書紀(니혼쇼키)』에서 발견되는 인물이다.
스진 텐노(崇神天皇) 60년, 이즈모노후루네(出雲振根)가 츠쿠시(筑紫)로 출타해 자리를 비웠을 때, 동생인 이즈모노이이이리네(出雲飯入根)가 무단으로 이즈모의 신보(神宝)를 텐노에게 헌상한 일을 알고서 분노해, 야무야노후치(止屋淵)에서 동생인 이이이리네를 속여 죽였지만, 조정으로부터 파견된 키비츠히코(吉備津彦)와 타케누나카와와케(武渟川別)에게 살해당했다고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