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릿말
~ 일본사(日本史)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시대라 하면 센고쿠(戦国)나 막말(幕末)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센고쿠 무장이나 유신 지사(혹은 신센구미)가 활약한... 이른바 「영웅(英雄)」의 시대이다. 하지만 「센고쿠 무장의 이름을 한번 거론해 보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받게 되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인물은 의외로 적다.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토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 같은 세 사람의 천하인(天下人)과, 타케다 신겐(武田信玄),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 모리 모토나리(毛利元就),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 같은 센고쿠 다이묘(戦国大名) 정도가 아닐까? 그것도 다분히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郎)로 대표되는 역사 소설이나, NHK의 대하 드라마의 영향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전자는 원래 역사 애호가들만이 읽었기 때문에, 후자로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지도 모르겠다.
다이묘가 할거한 센고쿠시대는 지방마다 역사의 흐름이 다르다. 때문에, 외길 스타트로 전체를 설명하기가 어렵다. 당연히, 일본사 수업에서도 대강으로 센고쿠 다이묘의 특징을 다룰 뿐으로, 그 뒤는 오다 노부나가로 시작되는 천하통일의 흐름을 배우게 된다.
이러한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천하인이나 센고쿠 다이묘가 아님에도 지명도가 높은 센고쿠 무장이란 존재는 정말 적다. 혼노지의 변(本能寺の変)으로 노부나가를 살해한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 세키가하라 전투(関ヶ原の合戦)에서 토쿠가와 이에야스에게 패배한 이시다 미츠나리(石田三成), 이에야스를 두번이나 괴롭힌 사나다 유키무라(真田幸村) 정도만이 필자는 떠오른다. 무엇보다, 유키무라나 미츠나리가 활약한 연대는 엄밀히 말해 센고쿠시대보다 조금 뒤이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비운의 무장」이라는 점은 공통되고 있다. 어쩌면 일본인 특유의 호간비이키(判官贔屓: 패자에 대한 측은지심)에서 온 결과일지도 모르겠으며, 천하인과 중요한 국면에서 상대했기 때문에 유명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중에서, 사나다 유키무라는 특별한 존재이다. 애당초 에도시대(江戸時代) 내내 인기가 높았던 데다, 타이쇼시대(大正時代)에 타츠카와 문고(立川文庫) 중 한 권으로서 『真田十勇士(사나다 십용사)』가 간행되는 것으로 인해 서민들의 인기를 얻었다. 때문에 사나다 씨라 하면 유키무라, 유키무라 하면 십용사라고 할 정도의 지명도를, 전전(戦前)부터 자랑하고 있었다. 사나다 십용사라는 말을 들어도 딱히 와닿지 않는 분들이라 해도 사루토비 사스케(猿飛佐助) 정도는 들어본 적이 있지 않을까? 가문(家紋)을 일반적으로 「사나다 로쿠몬센(真田六文銭)」이라 부르며 지명도가 높은 가문(家紋) 중 하나이다.
그리고 전후가 되어서도 유키무라를 필두로 하는 사나다 일족은 자주 소설의 소재로서 다뤄졌다. 특히 이케나미 쇼타로(池波正太郎)의 『真田太平記(사나다 타이헤이키)』는 NHK가 신대형 시대극으로서 대하드라마와 거의 같은 대우를 받으며 영상화되었기에, 일정 연령층보다 윗세대 분들은 보신 분도 많을 것이다. 또, TV 게임에 있어서도 유키무라의 능력은 매우 높게 설정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작금은 센고쿠를 소재로 한 TV 게임이 인기를 얻게 되는 경우도 있어서 젊은 세대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을까?
이 유키무라라는 인물은, 정확하게는 실명이 「노부시게(信繁)」라 하며, 타케다 신겐과 카츠요리(勝頼) 부자의 가신인 사나다 마사유키(真田昌幸)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때문에 본서에서는 사실(史実)에 입각해 노부시게라 부르기로 한다. 2016년도 NHK 대하 드라마 『真田丸(사나다마루)』에서는, 실명을 노부시게로 쓴다고 들었다. 현재의 보도를 보는 한, 「유키무라」 「유키무라(노부시게)」 등으로 옮겨 놓은 듯 하지만, 대하 드라마 방영에 의해 정확한 실명이 정착하게 되지 않을까?
사나다 씨는 타케다 가문의 가신이었기 때문에, 센고쿠 무장이긴 했어도 센고쿠 다이묘는 아니다. 이러한 점의 구별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고 있다. 딱 잘라 말하자면, 「센고쿠 무장」을 가신으로서 결속하고 있는 가조직(家組織)과, 그 가문의 당주를 가르켜 센고쿠 다이묘라 부르고 있다. 센고쿠 다이묘를 회사로 비유하자면 회사 그 자체와 사장 개인이 센고쿠 다이묘, 사장을 포함해 사원 전원이 센고쿠 무장이 된다.
다만, 사나다 씨를 타케다 가신이라 설명한 것은, 엄밀히 말하자면 정확한 게 아니다. 사나다 씨는 타케다 가문이라는 센고쿠 다이묘를 따르고 있긴 했지만, 영지 내의 지치권을 유지하고 있던 자치 영주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존재를 근년에 들어서는 「쿠니슈(国衆)」라 부르고 있다. 회사의 서열을 통해 비유해 보자면, 자회사와 그 사장 개인이 될 것이다.
쿠니슈가 순수한 가신들과는 달리, 센고쿠시대를 생각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열쇠가 된다는 것이 1990년대 이후의 연구를 통해 밝혀지게 되었다. 쿠니슈는 타국의 침략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인근의 센고쿠 다이묘를 따랐다. 센고쿠 다이묘는 쿠니슈에게 전쟁을 할 때 참진을 요구했는데, 반대로 쿠니슈를 지킬 의무도 맡았다. 그리고 흥미로운 것은, 내정에는 기본적으로 간섭하지 않았다. 요컨데 센고쿠 다이묘 영지에는, 쿠니슈의 자치령이 여기저기에 존재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개념은 새로운 것이었던지라,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호칭이 일정치 않았다.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와 마찬가지로 「코쿠진 영주(国人領主)」라 부르는 사람도 있고, 1970년대의 선구적인 연구자가 명명한 「센고쿠 영주(戦国領主)」 등을 계속해서 채용하는 논자도 있다. 다만, 토쿄 근교의 토고쿠(東国) 다이묘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쿠니슈」라 부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필자도 이 말을 쓰고있기 때문에 본서에서는 이것을 사용하기로 한다.
사나다 가문은 노부시게의 조부인 유키츠나(幸綱) 대에 타케다 가문에 종속된 쿠니슈였다. 그런데, 타케다 가문이 오다 노부나가에게 멸망당하고 말았기 때문에, 노부시게의 부친인 마사유키는 사나다 가문을 보호해줄 센고쿠 다이묘를 찾아 여러 다이묘 곁을 오가다 최종적으로는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따랐다.
천하인이 된 히데요시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쿠니슈라는 자치 영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방침을 취했다. 때문에 종래의 쿠니슈는 ① 독립 다이묘로 격상될지, ② 자치권을 빼앗은 다이묘의 가신이 될지, ③ 개역당할지로 나뉘었다. 사나다 가문은 다행스럽게도 히데요시로부터 독립 다이묘로서 인정을 받았으며, 에도시대를 거치며 다이묘로서 존속해 가게 된다. 즉, 쿠니슈라는 것은 센고쿠시대의 독자적인 존재였다.
때문에 사나다 씨의 역사를 쫒는다는 것은, 센고쿠시대 그 자체를 생각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것을 위해서는, 쿠니슈로서의 사나다 가문을 확립시킨 유키츠나, 노부츠나(信綱) 시대부터 붓을 들어, 마사유키와 노부유키(信之 = 信幸)가 근세 다이묘의 기반을 쌓아올릴 때까지를 볼 필요가 있다. 시대적으로는 최초에 사나다 씨의 발상을 확인하는 것 이외에는 유키츠나의 활약을 알 수 있게 되는 1540년 무렵부터, 마츠시로한(松代藩)의 한조(藩祖)가 된 노부유키가 세상을 떠나는 1658년까지의 약 100년동안이 대상이 된다.
덧붙여, 자주 「사나다 삼대」로서 유키츠나 - 마사유키 - 노부시게가 열기되지만, 사나다 가문의 가독(家督)은 유키츠나 - 노부츠나 - 마사유키 - 노부유키로 이동되기에 이 네 사람을 「사나다 사대」라 부르는 게 옳다.
이러한 사나다 사대의 역사를 살펴보던 중에 오오사카 전투(大坂の陣)에서 활약한 노부시게에 대해 검토해보면, 그를 단순한 「비극의 영웅」 「희대의 명장」으로 볼 게 아니라, 센고쿠 ~ 에도시대 초기라는 역사 속의 인물로서 바르게 위치시킬 수 있을 것이다.
사나다 씨의 연구사는 매우 두텁긴 하지만, 실은 타케다 시절 이외에는 잘 알 수 없다. 근년의 연구로, 겨우 토요토미 히데요를 따르기까지의 동향이 밝혀지게 되었다. 하지만, 토요토미 다이묘가 된 이후, 에도시대 초기의 사나다 가문에 대해서는, 셀 수 있을 정도 밖에 연구가 없다.
따라서 본서에서는 타케다 시절의 사나다 가문의 입장을 파헤쳐보는 것은 물론이고, 히데요시에게 종속한 뒤의 사나다 가문을 어떻게 생각해야할지를 하나의 과제로 삼았다. 하지만 실은, 토요토미 정권에서 에도시대 초기에 대해서는, 정치사 그 자체도 다시 생각해보지 않으면 안 되는 게 많다. 재검토가 현재진행형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겨우 입구에 다달았다는 것이 실상이다. 그래서, 이 시기의 정책이나 역사의 흐름에 대해서도 조금은 지면을 할애해 사견을 말해보려 한다. 읽다보면, 이야기가 조금 벗어나는 듯한 기분이 드는 부분이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최소한의 설명이 필요하다 생각한 결과이기에 화를 내지 않길 바란다.
어쩌면 사나다 가문은, 그 세력이 작았던 것과 반비례하여 무엇보다 매력넘치는 일족 중 하나이다. 그 역사를 살펴 보는 것에 의해, 센고쿠시대... 나아가서는 역사학 그 자체에 흥미나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본서가 거기에 도움이 된다면 다행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