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인간☆ MYPI

☆잉여인간☆
접속 : 3613   Lv. 40

Category

Profile

Counter

  • 오늘 : 731 명
  • 전체 : 2430801 명
  • Mypi Ver. 0.3.1 β
[번역] [요청 번역]『일본의 신 해석 사전』#053 (0) 2016/12/05 PM 01:14

第二編 -키키신화(記紀神話)의 신들

 

 

 

 

◎ 오우진 텐노(応神天皇)/오오토모와케노미코토(大鞆和気命)/호무다와케노미코토(品陀和気命)

800px-Emperor_Ōjin.jpg

 

<키키 계보상의 제 15대 텐노(天皇)>

- 5세기 전후 무렵의 제 15대 텐노(天皇). 제 14대 츄아이 텐노(仲哀天皇)의 넷째 황자(皇子)로, 모친은 진구우 황후(神功皇后). 오오토모와케노미코토(大鞆和気命), 호무타와케노미코토(誉田別尊), 호무타노스메라미코토(品太天皇)라고도 한다.

 츄아이 텐노는, 오키나가타라시히메노미코토(息長帯比売命: 진구우 황후)와 결혼하여 황후로 세웠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서는 호무야와케노미코토(品夜和気命), 이어서 오오토모와케노미코토... 다른 이름을 호무다와케노미코토(品陀和気命)... 즉, 제 15대 오우진 텐노(応神天皇)를 얻었다고 하는데, 이 어자(御子)는 황후가 신라(新羅) 정벌에서 돌아온 직후에 츠쿠시(筑紫)에서 낳게 되었다.

 『日本書紀(니혼쇼키)』에서는 혼다와케노미코토(誉田別尊)라 표기되어 있으며, 혼다노스메라미코토(誉田天皇)라고도 부르고 있다.

 황후는 츠쿠시에서 중앙으로 돌아와, 텐노의 이복형인 카고사카노미코(麛坂皇子)와 오시쿠마노미코(忍熊皇子)를 죽음으로 내몬 뒤, 이 어자는 황태자가 되었고, 모친이 죽은 뒤에 즉위하여 카루시마노토요아키라노미야(軽島豊明宮)에 수도를 두었다.

 오우진(応神)이라는 오쿠리나(諡名: 시호)의 출전은 알 수 없지만, 진무(神武)와 스진(崇神) 항목에서도 말한대로, 124대에 걸친 텐노들 중에서 神이라는 글자가 시호에 붙은 텐노는, 초대 진무, 제 10대 스진, 그리고 이 15대 오우진 이외에는 없다. 또, 진무와 스진은 「하츠쿠니시라스스메라미코토(ハツクニシラススメラミコト: 처음으로 나라를 다스린 텐노라는 의미: 역자주)」라 기록되어 있어, 처음으로 나라를 세운 텐노라 말하고 있다. 

 神이라는 글자가 붙은 신은, 이 이외에 진구우 황후(神功皇后)가 있다. 진구우와 오우진 모자는, 모자 신앙(母子信仰)의 흔적이라 보이는데, 대부분의 사가(史家)들이 오우진 텐노 시기를 두고 역사시대의 시작이라 보고 있어, 진구우와 오우진 시기를 두고 일본의 국가 확립기라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시대는, 국내와 대외 관계와 관련된 사적(事績)이 많이 전해진다. 국내에서는, 야마모리베(山守部), 아마(海人), 요시노쿠즈비토(吉野国栖人)를 거느렸고, 동쪽의 에미시(蝦夷)들로부터 조공을 받았다. 또, 츠쿠시로 타케노우치노스쿠네(武内宿禰)를 파견해 농민을 통괄시켰고, 키비노쿠니(吉備国)에는 스스로 행차하는 등... 지배권의 확대와 강화가 강조되고 있다. 

 또, 이 시대에는 삼한(三韓)으로부터 다양한 문화가 착실히 전래되었다. 키누누이베(衣縫部)의 선조라 여겨지는 유츠키노키미(弓月君)가 백제(百済) 120개 현(県)에 사는 사람들을 이끌고 귀화한 것도 오우진 텐노 14년 때의 일이었다.

 이어서 15년째에는, 백재왕의 태자인 아지키(阿直伎: 『코지키』에는 아지키시라 나온다)의 내방도 있었고, 또 그 다음해에는 역시나 백제로부터 와니키시(和邇吉師: 왕인)가 논어(論語)와 천자문(千字文)을 가지고 방문해 우지노와키이라츠코(菟道稚郎子)의 스승이 되었다. 덧붙여 왕인王仁은 후미노오비토(文首)의 선조이며, 카와치노쿠니(河内国)에 살면서 문필(文筆)을 전문으로 한 카와치노후미노우지(西文氏)였다고도 전해진다.

 오우진 텐노는 나중에 하치만 신앙(八幡信仰)과 연결되어 갔다. 하치만 진쟈(八幡神社)는 일본에서 가장 많은 맛샤(末社)를 가진 복잡한 신앙의 진쟈인데, 그 본원(本源)은 큐슈(九州)의 우사 하치만구우(宇佐八幡宮)이다. 『延喜式(엔기시키)』에 따르면, 제신(祭神)은 하치만 대보살(八幡大菩薩), 히메노카미(比売神), 오오타라시히메(大帯比売: 진구우 황후), 이 세명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하치만 대보살을 오우진 텐노로 비정하고 있다. 현재에도, 전국의 하치만 진쟈에서는 오우진 텐노와 히메노카미, 진구우 황후, 이 세 신을 모시고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오우진 텐노의 황자(皇子)는 모두 열한명. 황녀(皇女)는 열다섯명으로, 모두 합쳐 스물여섯명이라 전해지고 있으며, 텐노는 갑오년(甲午年) 9월 9일에 백서른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古事記(코지키)』에 기록되어 있다. 『니혼쇼키』에서는, 어자가 남녀 합쳐 스무명이라 하고 있으며, 즉위 41년째 봄 2월 15일에 백열살 나이에 죽었다고 되어 있다. 


[오우진 텐노를 모시는 진쟈(神社)]

오오이타 현(大分県) 우사 시(宇佐市) 미나미우사(南宇佐)에 있는 우사 진구우(宇佐神宮): 칸다이(官大)

800px-Usa_Shrine_Nanchu_Romon.JPG

 

쿄토 부(京都府) 야와타 시(八幡市) 야와타 쵸(八幡町) 니시타카보(西高坊)에 있는 이와시미즈 하치만구우(石清水八幡宮): 칸다이

후쿠이 현(福井県) 츠루가 시(敦賀市) 아케보노 쵸(曙町)에 있는 케히 진구우(気比神宮): 칸다이

후쿠오카 시(福岡市) 히가시 구(東区) 하코자키(箱崎)에 있는 하코자키구우(筥崎宮): 칸다이

카마쿠라 시(鎌倉市) 유키노시타(雪ノ下)에 있는 츠루가오카 하치만구우(鶴岡八幡宮): 코쿠츄(国中)

하코다테 시(函館市) 야치가시라 쵸(谷地頭町)에 있는 하코다테 하치만구우(函館八幡宮): 코쿠츄

쿠마모토 시(熊本市) 이가와부치 마치(井川淵町)에 있는 후지사키 하치만구우(藤崎八幡宮): 코쿠쇼(国小)

시모노세키 시(下関市) 쵸후미야노우치 쵸(長府宮の内町)에 있는 이미노미야 진쟈(忌宮神社): 코쿠쇼

오오이타 시(大分市) 하치만(八幡)에 있는 유스하라 하치만구우(柞原八幡宮): 코쿠쇼

사가 현(佐賀県) 미야기 군(三養基郡) 키타시게야스 쵸(北茂安町) 치쿠리(千栗)에 있는 치쿠리 하치만구우(千栗八幡宮): 코쿠쇼

그외에 전국 각지에 있는 하치만 진쟈(八幡神社)   

 

 

 

◎ 오우스노미코토(小碓命)/야마토오구나노미코토(倭男具那命)/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倭建命 = 日本武尊)

25086005957.jpg

 

<키키신화에 등장하는 남신>

- 제 12대 케이코 텐노(景行天皇)의 황자(皇子).

 키비노오미(吉備臣)의 선조 중에 와카타케키비츠히코(若建吉備津日子)라는 인물이 있었다. 또, 제 7대 코레이 텐노(孝霊天皇)의 황자 중에도 와카히코타케키비츠히코노미코토(若日子建吉備津日子命)라는 인물이 있다. 하지만, 연대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에, 동명이인(同名異人)일 것이다. 

 그런데, 제 12대 케이코 텐노는 이 인물의 딸인 하리마노이나비노오오이라츠메(針間之伊那毘能大郎女)와 결혼했다.

 『日本書紀(니혼쇼키)』에는 하리마(播磨) 출신인 이나히노오오이라츠메(稲日大郎女), 혹은 이나히노와카이라츠메(稲日稚郎女)라 나와있으며 황후가 되었다고 나와있다. 

 그리고 『古事記(코지키)』에는 쿠시츠누와케노미코(櫛角別王), 오오우스노미코토(大碓命), 오우스노미코토(小碓命), 야마토네코노미코토(倭根命), 카미쿠시노미코(神櫛王), 다섯명의 어자(御子)가 태어났다고 나와있다. 

 『니혼쇼키』에서는 「황후는 두 어자를 낳았는데, 첫째를 오오우스노미코(大碓皇子)라 하며, 둘째를 오우스노미코토(小碓尊)라 한다. 일서(一書)에 이르길, 황후는 세번째 황자를 낳았으며 그 이름을 와카야마토네코노미코(稚倭根子)라 했다 한다」고 나와있으며, 이어서 「오오우스노미코와 오우스노미코토는 한날 같은 태내에서 쌍둥이로 태어났다」고 나와있다.

 쿠시츠누와케노미코는 키키 모두에 상세한 기록이 없는데, 마무타노시모무라지(茨田下連)의 선조가 된 인물이다.

 카미쿠시노미코는 키노쿠니노사카베노아히코(木国之酒部阿比古), 우다노사카베(宇陀酒部)의 선조가 된 인물인데, 『니혼쇼키』에서는 이카와히메(五十河媛)가 낳은 어자로 되어 있다.

 야마토네코노미코토에 대해서는 『니혼쇼키』에 야사카노이리히메(八坂入媛)에게서 태어난 와카야마토네코노미코(稚倭根子皇子)라 소개하고 있으며, 다른 일서에는 이나히오오이라츠메(稲日大郎女) 소생으로 되어 있어 이설(異説)이 많으며, 그의 이름의 경우도 코레이, 코겐(孝元), 카이카(開化)... 이 세 명의 텐노의 이름과 공통되는 부분이 있어, 의문이 많은 황자이다.

 오우스노미코토는 야마토오구나노미코토(倭男具那命)라고도 하는데, 『니혼쇼키』에는 倭建命라고도 日本武尊라고도 하며(둘 다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라 읽는다: 역자주), 또 야마토오구나(日本童男)라고도 불리우고 있다. 

 부친인 케이코 텐노가 미노노쿠니노미얏코(美濃国造)의 두 딸을 초빙했을 때, 이를 형인 오오우스노미코토가 가로챈 데다, 텐노와의 아침 저녁 식사에도 얼굴을 내비치지 않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텐노는 쌍둥이 중 동생인 오우스노미코토를 사자로 보내어 힐문시키려했다. 그런데, 동생은 형을 포박하여 집어 던져 죽여버렸다.

 텐노는 오우스노미코토의 난폭함을 두려워했고, 또 그 힘을 살려보기 위해 쿠마소(熊曾) 정벌을 명령했다. 출발할 때, 오우스노미코토는 숙모인 야마토히메노미코토(倭比売命)로부터 여성용 옷을 받았는데, 오우스노미코토는 그것으로 여장을 하여 쿠마소의 연회에 뒤섞여 숨어들었고, 일을 하는 여성들 틈에 섞여 쿠마소 형제를 찔러죽였다. 이때, 빈사 직전인 오토타케루(弟建)는 오우스노미코토에게 경복(敬服)하여 「야마토타케루(倭建)」라는 이름을 바쳤다고 한다.

 오우스노미코토는 거기다 「야마노카미(山神: 산신), 카와노카미(河神: 하천의 신), 아나도노카미(穴戸神: 항만의 신)를 대화로 평정하였으며」, 또, 이즈모타케루(出雲建)를 타도하여 수도로 개선했다.

 그런데 텐노는, 또 다시 오우스노미코토에게 토고쿠(東国) 정벌을 명령했다. 그런 부황의 너무하다 싶은 엄격함에 오우스노미코토는 텐노를 원망하다가 이세(伊勢)에 계시는 숙모 야마토히메노미코토를 다시 찾아가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숙모는 그를 달래주며 아메노무라쿠모노츠루기(天叢雲剣)... 훗날 쿠사나기노츠루기(草薙剣)라 불리우게 되는 검과 뭔가를 담아 둔 주머니를 주었다. 정신을 가다듬은 오우스노미코토는 길을 떠나 우선 오와리(尾張)에 이르렀고, 이곳에서 미야즈히메(美夜受比売)와 결혼을 하였고, 거기서 또 다시 행군을 이어갔다. 그런 도중에도 난폭한 신들을 평정해 가면서 사가미노쿠니(相模国)에 도착한다. 이곳에서는 쿠니노미얏코(国造)에게 속아 오누(小野)라는 들판 한가운데에서 불길에 휩싸이고만다. 이때 오우스노미코토는 숙모로부터 받은 쿠사나기노츠루기와 주머니 속에 있던 부싯돌을 사용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또, 물살이 강하고 빠른(원문은 走水) 바다에서는 폭풍우에 휘말리고마는데, 비(妃)인 오토타치바나히메(弟橘比売)가 


「さねさし相武の小野の燃ゆる火の火中に立ちて問ひし君はも」


 라는 사세(辞世)를 남기고 몸을 던져 입수, 폭풍의 신을 진정시켜 위기를 모면했다. 오우스노미코토는 이리하여 결국 아와지방(安房地方) 일대의 난폭한 신들도 평정할 수 있었으며, 아시가라 고개(足柄峠)를 넘는 곳까지 왔다. 

 오우스노미코토는 곰곰히 수차례 겪은 위기들을 떠올리다 자신을 대신해 바다에 뛰어든 오토히메를 떠올리며,


「아아... 내 아내여(원문은 吾妻はや)」

 

 라며 길게 탄식했다고 한다. 여기서 아즈마노쿠니(東国)라는 지명이 나왔다고 일컬어진다. 

 이어서 카이(甲斐), 시나노(信濃)를 거쳐 오와리에 이르렀고, 미야즈히메 곁에 검을 두고서 이부키야마(伊吹山)의 신을 평정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 하지만 산신의 독기(毒気)를 맞고서 빈사상태가 되었고, 노보노(能煩野: 미에 현 스즈카 시 노보노 쵸에 능이 있다)라는 곳까지 겨우 도달했다가 이곳에서 텐노가 계시는 수도를 그리며 영원한 여로(旅路)로 들어갔다 한다. 

 오우스노미코토의 혼은 오오시라토리(大白鳥)가 되어 하늘로 날아올랐고, 오우스노미코토의 비나 어자들은 그 백조를 쫓아가며 네 수(首)의 노래를 읊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이 노래는, 이후 텐노의 장례식 때에 부르게 된다... 라고 『코지키』에는 기록되어 있다. 

 『니혼쇼키』의 기록은 약간 다르게 되어있다. 텐노의 무정을 숙모에게 호소한 것이 『코지키』 쪽의 기술인데, 『니혼쇼키』는 칙명을 받들어 도끼를 하사받아 용감무쌍하게 출정하는 쇼군(将軍)으로서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오우스노미코토의 죽음을 알게된 케이코 텐노는 침식을 끊고 슬퍼했으며, 군신들에게 조칙을 내려 장례를 치르게 했다... 고 나와있는데, 홀로 황야에서 객사한 『코지키』와는 완전 반대되는 묘사이다. 


[오우스노미코토(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를 모시는 진쟈(神社)]

후쿠이 현(福井県) 츠루가 시(敦賀市) 아케보노 쵸(曙町)에 있는 케히 진구우(気比神宮): 칸다이(官大)

시가 현(滋賀県) 오오츠 시(大津市) 세타진료 쵸(瀬田神領町)에 있는 타케베 타이샤(建部大社): 칸다이


[쿠사나기노츠루기를 모시는 진쟈]

나고야 시(名古屋市) 아츠타 구(熱田区) 진구우(神宮)에 있는 아츠타 진구우(熱田神宮): 칸다이 

Atsuta-jinguu_shaden.JPG

 

신고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