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인닌(隠忍)의 일족 -야규 세키슈사이(柳生石舟斎)와 센고쿠(戦国)
◎ 마츠나가 히사히데(松永久秀) 휘하로서의 활약
[마츠나가 히사히데]
~ 야규 가도(柳生街道)로 이야기를 돌려보자.
에이로쿠(永禄) 11년(1568)의 일인데, 이 길의 입구인 타카바타케(高畠)라는 곳에서 당시 마흔살이던 야규 세키슈사이(柳生石舟斎)가 낙마하여 중상을 입는 사건이 있었다. 나라(奈良)에서 귀향하던 도중의 일로, 늦가을인 10월 말에 일어난 일이다.
병법자이면서 어이 없는 불찰이구만... 하고 말하겠지만, 그 당시 세키슈사이의 초췌함을 상징해주는 사건이다.
한 달 전인 9월 26일,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義昭)를 모시고 입경(入京)했다는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사건이 있었다. 상경을 완수한 노부나가는, 마츠나가 히사히데(松永久秀)와 대립한... 이른바「미요시 삼인방(三好三人衆)」... 즉, 당시까지 키나이(畿内) 최대의 실력자였던 故미요시 나가요시(三好長慶)의 세 명의 가로(家老)인 미요시 마사야스(三好政康), 미요시 나가야스(三好長逸), 이와나리 토모미치(岩成友通)를 쫓아내고 미요시 측의 여러 성을 함락하여, 키나이의 중앙부를 대부분 장악한다. 그리고, 노부나가는 마츠나가 히사히데를 후원하여 야마토(大和) 평정에 착수하게 되는데, 그것은 코후쿠지(興福寺)의 지배하에 있으면서 오랫동안 평화롭게 지내왔던 이 지역의 여러 씨족의 기반을 뒤흔드는 일대사건이었다.
앞에서도 야규 씨가 마츠나가 히사히데 아래에 속해있었음을 말했는데, 그런 히사히데는 오다 씨의 중신들 중 밑바닥에서 안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른바 바이신(陪臣) 밖에 될 수 없었다. 야규 씨는 오다의 바이신인 마츠나가 히사히데의 휘하라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요시아키를 꼭두각시 부리듯 하며 키나이의 정국(政局)을 좌우하는 권력자가 된 노부나가의 털 끝에도 미치지 못 하는 존재다.
당주인 세키슈사이로서는, 여기서는 노부나가에게 꼬리를 쳐 직접 그의 막하(幕下)로 뛰어들고 싶었겠지만, 둘 사이에는 오랫동안 그가 충성을 다해 모셔왔던 마츠나가 히사히데라는... 재력과 교양을 겸비한 데다, 재능이 뛰어난 자가 개재(介在)해 있었다. 세키슈사이의 초췌함의 원인은 어쩌면 거기에 있었으며, 그것이 낙마 사고로 이어진 것이라 생각된다.
세키슈사이는 이 시점까지 두 번 부상을 입었다. 모두 전장에서 입은 상처였다.
첫번째 상처는 에이로쿠 2년(1559), 마츠나가 히사히데가 카와치(河内: 오오사카 부 동부)와 야마토를 잇는 요충지인 시기산 성(信貴山城: 나라 현 이코마 군 헤구리 쵸)을 개수하여 이를 야마토 지배의 거점으로 삼기 전후에 反마츠나가 세력인 츠츠이 쥰케이(筒井順慶)에게 이끌려 토오치(十市: 카시하라 시 일부)나 하야마(吐山: 나라 시 츠바하야마 쵸)로 부친인 이에요시(家厳)와 함께 출진했을 때이다. 하지만, 익년(에이로쿠 3년 = 1560)에 히사히데가 호장(豪壮)한 히라야마지로(平山城)인 타몬야마 성(多聞山城: 나라 시 호렌 쵸)을 쌓아 야마토 남부의 거점으로 삼았을 무렵, 이미 야규 부자는 츠츠이 쥰케이를 떠나 히사히데에게 귀속해 있었다. 야규 씨는 앞서 츠츠이 씨가 약속한 소에시모 군(添下軍) 하쿠도(白土: 야마토 코오리야마 시 안) 등의 영지의 카에치(替地)로서 아키시노(秋篠: 나라 시 아키시노 쵸)를 그에 대한 보답으로 히사히데로부터 받은 상태였다.
두번째로 상처를 입은 것은, 에이로쿠 9년(1566) 1월의 토우노미네(多武峯: 사쿠라이 시 남부에 있는 산) 동쪽 입구에서 치러진 마츠나가 vs 츠츠이의 전투였다. 히사히데가 미요시 삼인방과 손을 잡고 츠츠이 쥰케이의 공격에 맞선 이 전투 도중, 적병인 미노와 요이치(箕輪与一)라는 자에게 주먹으로 맞았는데, 신하인 마츠다 겐지로 무네시게(松田源次郎宗重) 외 한 명이 미노와를 죽인 덕분에, 겨우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세키슈사이가 죽기 2년 전인 케이쵸(慶長) 9년(1604)에 마츠다 무네시게의 아들인 마츠다 겐지로(松田源次郎)에게 신카게류(新陰流) 인가(印可)를 주었던 이유 중 하나는 토우노미네에서 전사한 망부의 헌신에 대한 보답이었음에 틀림 없다.
이렇듯 세키슈사이는 마츠나가 히사히데 휘하의 무장으로서, 일족의 안녕과 발전을 위해 야마토의 전장을 전전해 왔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에 카미이즈미 이세노카미 노부츠나(上泉伊勢守信綱)로부터 신카게류 병법의 온오(蘊奥)를 전수받았는데, 마흔살이 되었을 때(에이로쿠 11년 = 1568)부터의 그는, 오다 노부나가라는 터무니없는 위협을 받아가면서, 자신의 거취에 마음이 부서져라 살아 남기 위해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할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