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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진설(真説) 야규 일족(柳生一族) #31 (0) 2017/03/22 PM 06:05

제 3 장 전설의 검호(剣豪)를 베다 -야규 쥬베에(柳生十兵衛)의 진실

 

 

◎ 만들어진 온미츠 검사(隠密剣士)

~ 세간에「칸에이 어전 시합(寛永御前試合)」이라 일컬어지는 것은, 쇼군(将軍) 토쿠가와 이에미츠(徳川家光) 앞에서 여러 지역의 이름난 검사(剣士)가 한 곳에 모여 자신들이 갈고 닦은 비술(秘術)의 한계를 다하여 싸웠던 화려한 시합을 가르킨다. 

 이 일본인이 좋아할 법한 이 이야기의 소재는, 에도 성(江戸城) 무혈 입성의 입역자이자 스스로도 지키신카게류(直心陰流)를 익힌 카츠 카이슈(勝海舟)의 편찬에 의해 성립된『陸軍歴史(육군 역사)』권 28의「칸에이츄켄쥬츠쇼부츠케(寛永中剣術勝負付)」라는 기사인 듯 하다. 여기에는 시합 날짜가 칸에이 11년(1634)라 되어있는데, 그 외에는 2년 전인 칸에이 9년(1632)... 즉, 오오고쇼(大御所) 히데타다(秀忠)가 1월에 세상을 떠나고 이에미츠의「힘의 정치」가 시작된 해의 11월 11일이라 보는 설(텐포 연간의「寛永武術上覧之記」라는 문서에서 발췌) 등이 있다. 모두 신빙성이 희박한 자료에 지나지 않는다. 

 오오사카 여름 전투(大阪夏の陣)에서 토쿠가와가 토요토미(豊臣)를 멸망시키고 10년째에 시작된 칸에이 연간은, 아직 센고쿠시대(戦国時代)의 살벌한 여풍(余風)이 불고있던 세상이었다. 자연스레 용맹한 기풍을 선호하고 있어 무술... 특히 검술(剣術)도 성행하였기에, 검도사(剣道史)에 있어서는 막말(幕末)의 동란기와 더불어「검호(剣豪)의 황금시대」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한 시대의 화려한 존재 중 한 사람으로, 야규 쥬베에 미츠요시(柳生十兵衛三厳)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는 이는 아마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야말로「칸에이의 검사」의 상징적인 존재가, 후카아미가사(深編笠)에 가려진 예리한 안광(眼光)을 내뿜는 외눈 검사 쥬베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柳生十兵衛千葉真一.jpg

[야규 쥬베에 하면 떠오르는 애꾸눈 이미지(사진은 치바 신이치가 분한 야규 쥬베에). 사실 신빙성있는 사료나, 남겨진 초상화를 보면 어디에도 그가 외눈이었다고 나오지 않는다]

 

 이 캐릭터의 특색 중 하나는, 무리 지어 행동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그는 항상 단독으로 행동하며, 그 범위는 전국 방방곡곡에 달한다. 그가 출현하는 모습은 언제나 갑작스러우며, 별안간 호검(豪剣)을 휘두르고는 홀연히 모습을 감춘다.

 쥬베에의 행동형은 대단한 신비성(神秘性), 댄디이즘(dandyism)으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은 쇼군의 병법 사범인 야규 무네노리(柳生宗矩)의 장남이면서도, 중대한 밀명을 띄고 자유자재로 변환하는「陰」의 세계를 도량발호(跳梁跋扈)하는 임무... 온미츠(隠密)라는 임무를 수행하는 역할이 주어졌기 때문이리라. 쥬베에에게 있어서는 성가실 만큼의 지어낸 이야기일테지만,「온미츠」와「쥬베에」를 떼어놓는 것은, 이미 쉽지 않게 되어버렸다는 게 실정(実情)이다.

 쥬베에가 에도 바쿠후(江戸幕府)의 중량급 온미츠로서 여러 지역에 출몰하여 대활약을 펼치는 이야기는, 메이지시대(明治時代)나 타이쇼시대(大正時代)의 코단시(講談師)가 부채질한 것이다. 이윽고 영화라는 세계로 납치된 그는, 쇼와(昭和) 30년대(1955~64)의 검호 소설붐이 일었을 때에 배우 마츠카타 히로키(松方弘樹)의 부친인 코노에 쥬시로(近衛十四郎)가 주연한『柳生旅日記天下夢想剣(야규 여행 일기 천하 몽상검)』 등에 의해 은막에서 뛰어난 수완을 발휘하며 활약한다. 이후, TV 시대극이나 만화, 시대 소설은 이 외눈 검사의 업보에 한몫 낀 채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온미츠 쥬베에의 창작의 연원(淵源)을 더듬어 가 보면, 거기에 떠오르는 것은, 역시나 부친인 무네노리의 존재이다. 무네노리가 여러 다이묘(大名)와 하타모토(旗本)의 감찰역인 소메츠케(惣目付)로 임명된 것이, 허구 속의 쥬베에의 조형(造形)과 관련되어 있음은 틀림 없다.

 또 하나는,「쿠니마와리죠시(国廻り上使)」라는 특수 임무가 신설되었다는 것이다. 

 칸에이 10년(1633) 1월에, 이에미츠가 여러 지역(막령 및 사령)으로 파견한 쿠니마와리죠시는, 훗날의 쇼코쿠쥰켄시(諸国巡見使)의 시초이다. 이 사찰계(査察系)는, 전국의 여섯개 지역으로 나뉘어 파견되었다. 각 죠시조직의 구성은 세이시(正使)가 다이묘(1~3만석급), 후쿠시(副使)는 하타모토(츠카이반, 쇼인반, 코쇼구미반 같은 역직을 맡은 자)를 합해 세 명. 휘하를 포함하면, 예를 들어 큐슈(九州) 파견조는 4백여명에 달했다.

 파견의 주지(主旨)는, 길목이나 국경, 영지의 경계를 검분(検分)한다는 것이었기에, 쿠니마와리죠시는 사찰 전에 해당 지역의 영지 지도 제출을 명령할 수 있었다. 지도가 제대로 작성되어 있는지를 대조해보기 위함이었는데, 그런식으로 모은 영지 지도는, 바쿠후에 의한 전국 교통망 장악에 편의를 가져다 주었다. 

 전례 없던 이 상황에, 다이묘들은 흔들리고 있었다.

 길목이나 경계 사찰은 겉으로 드러나는 임무고, 내정 감찰이야말로 본래의 목적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을 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이 되었던 것이다. 

 요컨데「조직적인 온미츠」의 임무를, 쿠니마와리죠시는 담당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야규 쥬베에는 이른바 고독한 쿠니마와리죠시로 만들어졌고, 픽션이라는 세계에서는 에도에서 약 1640km(산킨코타이 때의 거리 수치로는 411리) 떨어진 카고시마(鹿児島)에 이르기까지, 멀고 먼 길을 정력적으로 돌아다니는 형세에 놓이게 되었으리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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