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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진설(真説) 야규 일족(柳生一族) #32 (0) 2017/03/24 PM 09:05

제 3 장 전설의 검호(剣豪)를 베다 -야규 쥬베에(柳生十兵衛)의 진실

 

 

◎ 쇼군 후계자인 이에미츠에게 출사하다

~ 자신은 아무말 없어도, 앞으로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될 것임에 틀림 없는 쥬베에(十兵衛)지만, 이쯤에서 그의 실제 인생을 살펴 봤으면 한다.

 쥬베에는 야규 마을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부친인 무네노리(宗矩)가 서른일곱살 때인 케이쵸(慶長) 12년(1607)의 일이었다. 모친... 즉, 무네노리의 정실은 토토우미(遠江) 쿠노(久野: 시즈오카 현 후쿠로이 시) 1만 6천석을 영유한 마츠시타 유키츠나(松下之綱: 일설에는 요시츠나라고도 한다)의 딸이다. 

 세키슈사이 무네요시(石舟斎宗厳)가 죽은 다음해의 일로, 성장한 쥬베에가 조부인 무네요시의 이미나(諱)인「厳」를 계승해 미츠요시(三厳)라는 이름을 쓰게 된 것은, 신카게류 병법(新陰流兵法)의 후계자로서의 장래를 갈망했기 때문이리라. 

「厳」은 무네노리의 큰형인 토시카츠(厳勝)에게서 그의 아들인 효고노스케 토시토시(兵庫助利厳) 이후, 오와리 야규(尾張柳生) 가문이 대대로 이름으로 사용했는데, 에도 야규(江戸柳生) 가문에서는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쥬베에 미츠요시 이외에는 이 글자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정도로 검의 길에서 기대를 짊어지고 있던 쥬베에는 어릴 때부터 그 재능을 드러내면서 세키슈사이의「환생」이라며 일족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무네노리는 4남 2녀를 두었다. 차남인 사몬 토모노리(左門友矩)는 쥬베에의 여섯살 아래 동생으로, 이복동생이었다. 셋째 아들인 마타쥬로 무네후유(又十郎宗冬)는 쥬베에와 모친이 같은 여덟살 연하의 동생인데,『寛政重修諸家譜(칸세이쵸슈쇼카후)』는 토모노리와 같은 해에 태어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넷째 아들인 로쿠마루(六丸)는 무네노리가 예순여섯살 때 본 아들이기 때문에, 쥬베에 보다 스물아홉살이나 어렸다. 쥬베에와 무네후유의 모친(무네노리의 정실)이 겐나(元和) 4년(1618)에 죽었으니, 토모노리와 마찬가지로 이복동생이다. 그는 훗날에 출가하여 레츠도 기센(列堂義仙)이라는 호를 쓰게 된다. 장녀(쥬베에의 바로 아랫 누이)는 무토 야스노부(武藤安信)라는 사무라이에게, 차녀(무네후유의 바로 아랫 누이)는 나카노코지 스케쿠로(中小路助九郎)라는 이가(伊賀)의 사무라이에게 출가했다. 덧붙이자면, 무토 야스노부(500석)는 쿠니마와리죠시(国廻り上使)의 일원으로 참가하기도 했다. 

 선천적으로 재능을 타고 난 쥬베에는, 언제쯤 야규에서 신흥 도시인 에도(江戸)로 왔을까? 그것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주거지인 야규 저택은『慶長江戸絵図(케이쵸에도에즈)』를 통해 알 수 있다. 도산보리(道三掘)라는... 에도 미나토(湊)와 성 아래를 잇는 운하 남쪽에「야규 마타자에몬(柳生又左衛門)」이라 기록되어 있다. 무네노리의 통칭은「마타에몬(又右衛門)」이 정확한데, 이곳이 야규 저택이었다. 훗날, 다이묘(大名)들의 고급 주택이 나란히 들어서게 되는 땅의 일각으로, 현재의 토쿄 역 북쪽 출구에서 북쪽으로 약 50m(치요다 구 마루노우치 1쵸메 6번지 주변)이 그 유적지이다. 

 그 저택에서 부친을 스승삼아 일찍부터 검을 배운 쥬베에는, 열살 때인 겐나 2년(1616), 2대 쇼군(将軍)인 히데타다(秀忠)를 알현했다. 당시 무네노리는 3천석을 받는 하타모토(旗本)였으며, 가전(家伝)인 병법으로 히데타다의 사범을 맡고있었기 때문에, 알현 자리는 필시 장남인 쥬베에에게 있어서 영광스러운 자리였을 것이다. 

 열세살 때인 겐나 5년(1619), 이어서 쥬베에는 이에미츠(家光)의 코쇼(小姓)로서 출사하게 되었다.

 이에미츠는 앞서 말한대로 병약하고 신경질적인 소년이었다. 부친인 히데타다와 모친인 오고(お江)의 애정은, 이에미츠(아명은 타케치요)보다 동생인 타다나가(忠長: 쿠니마츠)를 편애해서, 그는 적자였다고 해도 항상 안정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리라. 너무나도 불안했던 나머지 열두살 때는 자살하려 했던 적도 있었을 정도다. 그래서 유모인 오후쿠(おふく: 훗날의 카스가노츠보네)가 그의 이러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슨푸(駿府)에 있던 오오고쇼(大御所) 이에야스(家康)에게 호소했다. 그리고, 히데타다 부부에 대한 이에야스의 일갈이 있고나서야 겨우 쇼군 후계자 자리가 정해졌다. 이 무렵부터, 이에미츠의 잠들어있던 자유분방한 성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쥬베에는 만사에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는 세살 연하인 이에미츠를 가까이서 모시게 된다.

 쇼군 후계자 자리를 보장받은 이에미츠는 2년 전(겐나 3년)에 에도 성(江戸城)의 니시노마루(西の丸)로 거주처를 옮겼다. 도산보리의 저택에서 니시노마루로 등성하는 나날을 보내던 중에, 쥬베에의 병법 사범으로의 장래도 보장받게 되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출세 가도를 밟지 못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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