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전설의 검호(剣豪)를 베다 -야규 쥬베에(柳生十兵衛)의 진실
◎ 천재 검사, 스무살의 좌절
~ 부친인 무네노리(宗矩)가 이에미츠(家光)의 사범으로 임명된 것은, 쥬베에(十兵衛)가 열다섯살 때이다. 그런 부친의 명령에 의해 쥬베에는 이에미츠의 연습 상대를 맡게 되었다. 2년 후(겐나 9년 =1623), 이에미츠가 쇼군(将軍)이 된 뒤에도 그의 임무는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3년 뒤, 쥬베에가 세는 나이로 스무살이 된 칸에이(寛永) 3년(1626)의 일이었는데, 그는 이에미츠로부터 자신의 근무 태도에 대해 질타를 받았다.
이 일에 대해 서른여섯살 때에 저술한『月之抄(츠키노쇼)』라는 전서(伝書) 모두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寛永三年拾月日、さることありて、若之御前を退て、私ならず山にわけ入ぬれば... (후략)】
여기서 등장하는「さること」란 무엇일까?
쇼군의 연습 상대를 해주면서 쥬베에가 봐주지 않고 했다는 설이 있다.
본디 하늘은 두 가지 재능을 주지 않으며, 천재적인 검사였던 만큼 대련이 서툴렀을 것이기에,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다.
또 다른 설로, 타고난 효웅(梟雄:『玉栄拾遺』)... 즉, 사납고 용맹스런 성격인 쥬베에에게, 여러가지로 폭력을 행사했던 데에 있다는 설이 있다. 나아가서는, 쥬베에의 술버릇이 까탈스런 성격인 이에미츠의 역정을 산 게 아닐까 하는 설도 있다.
쥬베에가 술을 사랑한 것은 사실이며, 이 때문에 무네노리가 눈살을 찌푸릴 정도의 나쁜 행실을 보였던 적도 있었던 듯 하다. 12년 후에 재출사가 이뤄졌을 때, 타쿠안(沢庵)이 쥬베에 앞으로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써내려갔다.
【오랫동안 야규에 머물렀던 자네에게 이제부터 에도에서의 봉공(奉公)은 고충이 많아질 것이네. 술만 많이 마시지 않는다면 만사 괴로움 없이 잘 풀리게 될터이니, 이 부분은 엄중히 지켜주길 바라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하면, 쥬베에는 은인자중(隠忍自重)한 성격의 부친과는 대조적으로 천의무봉(天衣無縫: 꾸밈 없고 자연스러운), 직정경행(直情径行: 마음 먹은대로 행동함)한 성향의 남자인 것 처럼 상상된다.
그렇다고 한다면, 당연히 그는 조직에 소속되지 못 하는... 벼랑 끝에 몸을 두어야 물 만난 고기처럼 살아갈 수 있었고, 높은 사람을 받들어 모시는 일과는 맞지 않았다는 뜻이 될 것이다.
어쩌면, 무네노리는 그런 쥬베에를 이에미츠 곁에 내버려뒀다가는, 일가의 장래에 화를 가져다 주지 않을까 걱정해서, 스스로 명령을 내려 관직에서 물러나게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식이 쇼군에게 꾸중을 듣는 것은 부모에게 있어서의 중대한 잘못이었기에, 아무리 이에미츠의 신임을 받는다 해도 어떠한 사태가 기록에 남겨지는 게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꾸중 운운하는 것은 표면적인 이유에 지나지 않았던 게 아니었을까?
어찌됐든, 칸에이 3년 늦가을 10월에 에도를 뒤로 한 쥬베에는,『玉栄拾遺(교쿠에이슈이)』의 기사를 통해 추고(推考)해 보면, 그 직후에는 오다와라(小田原: 카나가와 현 오다와라 시)에 몸을 의탁한 듯 하다.「謫居(귀향살이)」라 기록되어 있으니, 벌을 받아 오다와라 죠카마치(城下町) 어딘가에서 궁핍하게 살았을 것이다.
과거 後호죠(北条) 씨의 본거지였던 오다와라는, 이에야스(家康)의 에도 입성 뒤, 후다이(譜代) 가신인 오오쿠보 타다요(大久保忠世), 이어서 그의 아들인 타다치카(忠隣)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었는데, 타다치카가 권력 투쟁에서 패배해 짓밟히고 난 뒤부터는, 여러 다이묘들이 교대로 성을 지키는「반죠 제도(番城制度)」아래에 놓여있었다.
훗날에 아베 마사츠구(阿部正次)의 5년에 걸친 한슈(藩主) 시대를 거친 뒤의 제 2차 반죠시대는, 하타모토(旗本)인 콘도 히데모치(近藤秀用)가 성주대리를 맡았던 때에 쥬베에가 이 곳에 머물렀으리라 사료된다.
스무살에 처음으로 경험한 천재 검사의 좌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