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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진설(真説) 야규 일족(柳生一族) #36 (0) 2017/03/29 PM 05:16

제 3 장 전설의 검호(剣豪)를 베다 -야규 쥬베에(柳生十兵衛)의 진실

 

 

◎ 수수께끼의 죽음을 둘러싸고...

~ 쇼호(正保) 원년(1644)라 하면, 타지마노카미 무네노리(但馬守宗矩)가 죽기 2년 전인데, 이 해의「부칸(武鑑: 다이묘나 하타모토 명감)」의 일종인「야시키즈케(屋敷付)」라는 사료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수록되어 있다.


柳生但馬守殿 虎口御門内

同 主膳殿 同所

同 刑部殿 同所

同 十兵衛殿 同所


 야규 한(柳生藩)의 저택은 당시「虎口御門内」, 현재의 치요다 구(千代田区) 카스미가세키(霞ヶ関) 3쵸메에 있었다(후에 아타고시타 다이묘코지로 이전). 슈젠(主膳)은 무네노리의 셋째 아들인 무네후유(宗冬), 교부(刑部)는 이때 이미 병사한 둘째 아들 토모노리(友矩)를 가르킨다.  

 이 기사는, 서른여덟살인 그 해까지는 쥬베에(十兵衛)가 쇼인반(書院番) 직에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6년 전인 칸에이(寛永) 15년(1638)에 재출사한 그가, 언제 또 다시 사직했는지 알 수 없으며, 동생인 무네후유가 이에미츠(家光)의 치세 때에 쇼인반이 된 시기도 불명확하다. 

 어찌됐든, 마흔살 때에 부친인 무네노리가 세상을 떠나자, 유언에 따라 남겨진 영지 1만 2500석 중 8300석은 장남인 쥬베에가, 4천석은 무네후유에게 나눠주었으며, 남은 200석은 세키슈사이의 보제(菩提)를 위해 무네노리가 칸에이 15년에 야규에 창건한 호토쿠지(芳徳寺)의 초대 주지가 된 막내 동생 레츠도 기센(列堂義仙) 앞으로 주었다. 

 야규 가문은 이때를 기점으로 하타모토(旗本)로 되돌아 가게 되는데, 무네노리가 이렇게 유언한 것은, 자신에 대한 이에미츠의 대우는 과분한 것이라 말하며 그가 생전에 일부러 부탁했던 것이리라. 그 배경에는, 과거에 사직한 적이 있는 쥬베에에게 다이묘(大名)로서 야규 가문을 계승시키기에는 과분하다는 생각이 있었음에 틀림 없다. 

 이리하여 하타모토가 된 쥬베에의 영지는, 야마토(大和)의 야마베(山辺)와 소에가미(添上) 2개 군(郡)에, 야마시로(山城)의 소라쿠 군(相楽郡)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이보다 앞선 서른여섯살 때에 성립된 야규의 병영의 주인이 되었다. 덧붙이자면, 야규 씨가 다이묘로 복귀한 것은, 무네후유 시대인 칸분(寛文) 8년(1668)의 일이다. 

 세월이 흘러 케이안(慶安) 2년(1649) 7월 1일, 쥬베에는『武蔵野(무사시노)』를 저술했다.『月之抄(츠키노쇼)』와 비교하면 회삽(晦渋)한 문장이고 난해하지만, 그가 여전히 신카게류 병법(新陰流兵法) 구도(求道)에 노력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서명은「스가와라 미츠요시(菅原三厳)」로 되어 있다. 야규 씨의 본래 카바네(姓)는 헤이세이 스가와라(平姓菅原) 씨였는데, 이때 이 서명을 처음 사용하고 있다. 

 쥬베에가 마흔네살에 급사한 것은 그 다음해인 케이안 3년, 부친인 무네노리가 세상을 떠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벚꽃이 휘날리는 계절인 3월 21일의 일이다. 

 야규 마을 북동방향으로 약 5km 떨어진 곳에 츠게 강(柘植川)과 나바리 강(名張川)이 합류하는 키즈 강(木津川)의 기점 근처에 유미가후치(弓ヶ淵)라는 꾸부러진 연못이 있다. 헤이안시대(平安時代)에 나바리 군(名張郡)의 군지(郡司)의 딸인 유메히메(夢姫)와 야마토의 코쿠시(国司)인 겐노죠(絃之丞)가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비관하며 투신했다고 하는 전설을 남긴 땅은, 이 유미가후치 주변이었다고도 일컬어진다. 현재의 쿄토 부(京都府) 소라쿠 군 미나미야마시로 무라(南山城村)가 있는 곳으로, 매를 풀어주던 중에 쥬베에는 졸도하여 그대로 죽었다 한다. 

 직후, 나라 부교(奈良奉行)인 나카노보 쵸베에 토키스케(中坊長兵衛時祐)의 검분(検分)을 받았으나, 사인은 판명되지 않았다. 

 술을 좋아하던 탓에, 순환기 계통의 지병이 발작했던 게 아닌가 하는 억측도 나오고있다. 죽은 토모노리의 가신이 독살했다는 설도 있다. 그 설에 따르면, 쥬베에는 일찍이 이복 동생인 토모노리가 이에미츠의 총애를 받으며 이례적으로 출세한 것을 질투하여 이를 암살했다고 한다. 덧붙여,『玉栄拾遺(교쿠에이슈이)』에는, 토모노리가 죽은 뒤에 그가 애용하던 궤짝에서 13만석(혹은 4만석)을 주겠다는 취지가 담긴 이에미츠의 보증서가 발견되었기 때문에, 무네노리가 몰래 그것을 처분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이에미츠의 기분을 건드린 쥬베에와, 반대로 이에미츠에게 극진히 대우받은 토모노리를 부회(付会)해서 만들어낸 이야기일 것이다. 

 쥬베에의 아내는, 야마토 소에시모 군(添下郡) 이키시노 무라(秋篠村)를 영유했던 아키시노(秋篠) 씨 출신이라 한다. 부부 사이에 아들은 없었다. 딸 둘은 무네후유가 양육해야한다는 취지의 명령이 이에미츠로부터 내려졌으며, 성장한 뒤에 장녀인 마츠(松)는 하타모토인 아토베 요시타카(跡部良隆: 2500석)에게, 차녀인 치쿠(竹)는 와타나베 큐조(渡辺久蔵: 1천석)에게 출가했다. 

 쥬베에의 초상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러 서적에서『好古類纂(코코루이산)』(好古社 메이지 38년 발행)에 수록된 그림을 싣고있긴 하지만, 외눈이 아닌 두 눈이 멀쩡하게 묘사되어 있는 그것이 쥬베에인지 진위여부가 불분명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어린시절 부친과의 대련에서 날아온 목검에 맞았다는 사고에 의해 외눈이 되었다는 전설도, 전설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다. 

 태평한 세상에 어울리는 검을 창조하려 한 구도자 야규 쥬베에 미츠요시(柳生十兵衛三厳)와 관련된 자료는 위화감을 느낄만큼 적으며, 그런 탓에 그는 앞으로도 허구라는 세상에서 더욱 더 날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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