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문
~ 내가 일개 소설가에서 시대 고증에 손을 대게 된 이유랄까... 동기는, 역시나 어린시절부터 그러한 가정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계통과 할머니 계통이 모두 센고쿠시대(戦国時代)에는 오다와라 호죠(小田原北条) 가문을 모시던 가문인지라, 두 분의 선조님들이 모두 산채(山砦)이긴 했어도 성을 맡는다거나, 성주대리급 지위에 있었다.
할머니 쪽의 선조(호죠 가문에서 사도노카미라는 즈료나를 허락받았다)는 호죠 씨의 멸망에 의해 백성 신분이 되었지만, 마을의 촌장으로서 호죠 씨 시대와 다름 없이 넓은 영지를 소유해, 성씨를 쓰는 것과 검을 휴대, 에도 성(江戸城)의 혼마루(本丸)와 니시노마루(西ノ丸)를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감찰(鑑札)이 주어져 있었다(이 감찰은 누마즈 시의 메이지 자료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호죠 씨 시대의 고문서가 창고에 산처럼 쌓여있으며, 그 중 60통 정도가 나라, 현(県), 시 등의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郎) 씨가 취재를 하러 올 정도로, 시바 씨의 소설『箱根の坂(하코네 언덕)』에 나의 선조님이 등장하기도 했다.
나의 고조할아버지는 호죠 수군(水軍)의 요충지였던 시모다 성(下田城)의 성주인 시미즈(清水) 씨의 후예로, 데릴사위로서 들어와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후에는 초대 촌장이 되었다.
할아버지 쪽의 선조(호죠 가문에서 에치고노카미라는 즈료나를 허락받았다)의 부인은 보다이지(菩提寺)에 있는 것보다도 오래된 카코쵸(過去帳)에「北条氏康娘、北条氏規姉(호죠 우지야스의 딸이자, 호죠 우지노리의 누이)」로 출신이 기록되어 있다.
호죠 씨 멸망 후에는 누마즈 성에 들어가 미즈노(水野) 씨를 모셨으며, 토비치(飛び地: 본영토에서 떨어져 있는 땅)의 다이칸(代官)을 맡았다.
증조할아버지는 막말(幕末)에는 에치고(越後) 고센 쵸(五泉町)의 다이칸으로, 나가오카(長岡)의 카와이 츠구노스케(河井継之助)와 의견이 맞지 않아 단독으로 관군의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와 교섭하여 미즈노 가문이 관군 측에 가담하는 것과 맞바꿔, 미즈노 가문의 본령 안도를 획득했다(여기에 대한 경위는 카와이 츠구노스케 관계 사료에 등장한다).
메이지 유신 당시의 판적봉환(版籍奉還), 폐번치현(廃藩置県)으로 미즈노 가문은 치바(千葉)에 있는 키쿠마(菊間)로 전봉(転封)되었는데, 최후의 키쿠마 한시(藩士)로서 명부에 할아버지의 이름이 나와있다.
할아버지는 아홉살 때에 키쿠마 한시가 되었는데, 미즈노 가문에게 있어서는 공로자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미즈노 가문에서 학자금을 대주어, 일고(一高)와 대학 예비문(大学予備門: 훗날의 토쿄 제국 대학)에서 공부했으며, 또, 치바 도장을 다니며 호쿠신 잇토류(北辰一刀流) 면허개전(免許皆伝)을 받기도 했다.
치바(千葉) 가문으로부터 수여받은... 이토 잇토사이(伊藤一刀斎)에게서 시작된 터무니 없이 긴 면허장은, 오늘날에도 우리집에 남겨져 있는데, 보존이 걱정되어 감찰과 마찬가지로 누마즈 시에 있는 메이지 자료관에 보관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가문이기 때문에, 법사(法事)를 치르게 되면 센고쿠시대부터 이어진 친척 대다수가 얼굴을 맞대고「그 당시 우리들 선조께서 실수만 하지 않으셨더라면, 에도시대(江戸時代)에는 다이묘(大名)나, 메이지 유신 이후엔 화족(華族)이 되었을텐데...」같은 푸념이 화제에 오르는 식이라, 어쩔 수 없이 시대극, 시대 고증에는 상세해지기 마련이다.
그러한 지식으로 살펴 보면, 최근의 시대극 영화나 드라마, 시대 소설에는 너무나도 초보적인 오류나, 사실(史実)을 역방향으로 비튼 게 많다. 일본사 전문가들이 쓴 책에도 오류가 있다.
그래서, 망설이 없이 이번 같은 시대 고증 기획에 펜을 들게 되기에 이른 것이다.
때마침 시대극 붐이 되면서 세간에 시대 고증가는 우후죽순처럼 배출되고 있지만, 전천후적인 시대 고증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세한 분야와,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분야가 뒤섞인 상태인 게 일반적이다.
나야 무술이나 무기에 대해서는 단편적인 지식 밖에 없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잘난 듯 강평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방면에 관해서는 제일인자인 나가노 슌야(長野峻也) 씨와 알고 지내게 되면서 내가 가진 최대의 약점을 보충할 수 있었다.
페이지 수의 문제로, 이것저것 쓰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중에서 할애할 수 밖에 없었던 항목이 몇개나 되지만, 우선은 시대극 팬들에게 만족시켜 줘야 할 작품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 2014년 12월 길일(吉日) 와카사키 켄(若桜木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