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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번역] 하야세 미사 -하얀 추억 #02 (0) 2017/09/29 AM 11:35

◇ 서장(序章) 下 ◇

~ 어둠. 그보다 더욱 더 새까만 옷을 입은 보도르자는 일어섰다. 오랜 생각 끝에, 끝내 프로토컬쳐 전멸을 결의한 것이다. 그것은,「프로토컬쳐에게 손을 대선 안된다」라는 규정에 반하는 짓이었다. 하지만, 그 규정을 순순히 지켜가게 된다면, 전군의 지휘에 지장을 줄 정도로 그들은 오염되어 있었던 것이다. 보도르자는 고뇌라고도 할 수 있는 이러한 마음을 견뎌가며 전군에 지령을 내렸다. 즉시 보도르자 휘하의 모든 함정(艦艇)이 집결하기 시작했다. 그 수는 약 510만여 척. 하나의 별을 전멸시키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충분한 숫자였다. 하지만, 보도르자는 여전히 불안했다. 

 지구인들의 운명은, 그들이 전혀 모르는 곳에서 결정지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서력 2009년, 운명의 2월 11일.

 그날 알래스카에 있는 통합군 총사령부 주변의 기후는 따뜻했다. 가녀린 햇살이 만년설을 눈부시게 비추고 있었다. 바람도 없어 오후에 들어서면서부터 기온도 상승했다. 지하에 있던 인간들은 지상으로 올라와 오랜만에 햇빛을 쬐고 있었다. 태양은 그들의 청백색 피부를 녹여주었다.

 구름이 천천히 흘러가는 푸른 하늘. 갑자기, 환한 대낮임에도 별이 빛났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수백, 수천개... 사람들은 경탄하는 눈빛으로 그 별을 바라봤다.

 그 대낮의 성단(星団)은 죽음을 관장하는 자들의 배였다.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수만광년의 허공을 달려왔다. 

 지구를 섬멸(殲滅)한다.

 그것만이, 그들 젠트라디인의 목적이었다.

 그 성단이 다시 한번 더욱 더 강하게 빛났을 때, 그것을 올려다보고 있던 사람들은 두번 다시 하늘을 바라 볼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외 대부분의... 대낮에 별이 나타났다는 사실 조차 몰랐던 사람들은 각각의 집에서, 각각의 평화 속에서 먼지가 되어갔다.

 전멸...

 괴멸(壊滅)... 소멸(消滅)... 인멸(湮滅)... 즉멸(即滅)... 뭐라 하던, 그것은 그저 단어에 지나지 않는다.

 무심결에 그 단어를 입에 담았던 미사도, 그 말을 실감할 수는 없었다. 

 각 도시에 설치된 모니터가 전해준 지상의 양상은 모두 마찬가지였다. 토쿄, 뉴욕, 베이징, 모스크바... 거기에는 황량한 광야(広野) 뿐이었다. 조금 전까지 천차만별이었던 도시들은 모조리 균질화(均質化)된 황무지가 되었다.

 미사는, 끝없이 황폐해진 대지가 지구 전토로 확산되는 것을 상상해봤다. 하지만, 너무나도 막연한 이미지로 비쳐져, 그녀는 망연자실할 뿐이었다.     


「거짓말이야!」


 그녀는 모든 상념(想念)을 떨치려 외쳤다. 그렇게 외치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오기라도 하듯이... 하지만, 그 말은 헛되이 오퍼레이션 룸 벽에 부딪혀 정적을 깨트릴 뿐이었다. 

 하야세 제독은 놀라고 있을 틈이 없었다.


「그랜드 캐넌은 무사한가?」

「파워 제너레이터에 지장은 있지만 발사는 가능합니다」

「다행이군. 즉시 카운트 다운을 재개하라!」

「라져!」


 통합군 총사령부 전체로, 고조된 파워 제너레이터 작동음이 울려 퍼졌다. 그것은 점차 강력하게 울부짓는 듯한 소리가 되어 갔다. 

 직경 800m, 높이 5km 크기의 그랜드 캐넌 본체 안에서는, 무수한 빛의 입자가 공허하게 광기의 춤을 펼쳤다. 그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수를 늘리며 녹아들어 위에 실어놓았던 1km짜리 암반을 날려 버릴 듯 부풀어 올랐다. 


「그랜드 캐넌, 에너지 임계량에 도달했습니다」

「좋아, 카운트 속행!」


 하야세 타카시 제독은 눈을 찡그렸다. 불과 수초만에 모든 것이 결정된다. 이미 멸망한 지구가 철저하게 멸망해버릴 것인지... 작은 희망이긴 하지만 부흥할 수 있을 것인지... 그것은 불과 몇초 후. 사랑하는 딸인 미사와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인지... 그것은 불과 몇초 후.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지... 그것은 불과 몇초 후.

 그의 마음속에서, 딸이 옳았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그는 이내 당황하며 그것을 부정했다. 


「3, 2, 1, 0!」


 카운트 다운이 종료되었다. 그 순간, 지하 6km에 비축되어 있던 에너지가 모두 빛의 덩어리가 되어 지상으로 분출되었다. 광조(光条)는 공기를 오존 냄새로만 채워 찢어버릴 듯 꿰뚫었다. 살아 남은 사람들 모두의 마음을 싣고서 우주로 향했다.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는 별들... 그보다 더욱 더 강렬한 빛이 기포를 스쳤다. 그것은 지구인이 쏜 최후의 화살. 빛이 스쳐 지나간 뒤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한순간에 몇만 척이나 되는 함정이 증발했으며, 수천만에 달하는 목숨이 끊어졌다. 빛은 약 5초간 살육을 이어갔다.

 5초 동안의 반격. 그것이 지구인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꾸준히 이어져 온 인류 200만년의 역사가 반격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그것 뿐이었다. 즉시 젠트라디 함 전체의 포구가 알래스카로 향했다.

 통합군 본부는 그랜드 캐넌보다 강한 빛에 휩싸였다. 빛이 공간을 스치고, 그랜드 캐넌의 포강(砲腔)은 하얀 어둠으로 부풀어 올랐다. 지하 6km 아래에 있던 본부는 그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붕괴하기 시작했다. 


「응답하세요. A-4 에이리어」


 반파된 오퍼레이터 룸에서 공허한 미사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녀는 외톨이가 되었다.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열명 이상의 오퍼레이터들이 각 에이리어를 호출하고 있었다. 그것이 둔탁한 소리와 함께 충격이 가해진 뒤, 한순간에 침묵이 찾아왔다. 

 기적적으로 미사 혼자만 살아남았다. 떨어진 파편으로 인해 어깨를 다쳤을 뿐이다. 그녀는 될 수 있는 한 동료들 쪽을 보지 않으려 했다. 거기엔 봐서는 안될 "무언가"가 이빨을 번뜩이며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무언가"와 눈을 마주치게 된다면, 즉시 그것은 그녀의 목을 쥐어 뜯어버릴 것이다. 보지 않으려 했지만, 그 이빨로부터 비릿한 피냄새가 풍겨져 왔다. 그 혀를 낼름 거리는 소리, 낮은 신음 소리가 들려 왔다.

 

「A-4 에이리어, 응답 바랍니다. A-4 에이리어!」


 미사는 A-4 에이리어를 계속해서 불렀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미쳐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A-4 에이리어로부터의 응답은 없었다. 다른 에이리어도 침묵을 이어갔다. 숨바꼭질에서 술래가 된 아이가 백까지 세고 눈을 떴을 때 엄습해 오는...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불안. 그녀도 그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고독이라는 이름이었다. 고독은 어느샌가 그녀의 어깨를 짓누르고, 살을 불려갔다. 

 그때, 헤드폰에서 흐르던 잡음 속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그것을 고독이 가져다준 환청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환청은 더욱 더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미사!」


 그것은 그리운 부친의 목소리였다. 그것은 환청에서는 있을리 없는 영상을 동반한 것이었다. 심한 노이즈로 확실하게 잡히지는 않았지만, 부친임에 틀림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역시 환각이었던걸까?


「미사!? 아직 거기 있는게냐」


 환상은 말을 걸었다. 환영.... 아니, 이것은 환청이 아니라 진짜 아버지의 목소리. 그녀는 부친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제독님이야말로...」


 그런 그녀의 기쁨과는 정반대로,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아버지야말로」가 아니었다. 도대체 이러한 판국에 무엇을 망설이고 있는걸까?


「이쪽은 이미 틀렸다. 너만이라도 탈출하거라」


 뒤는 잡음으로 지워져 들리지 않았다.


「그럴수는... 아버지!」


 미사는 몸을 내밀며 외쳤다. 아무런 꺼리낌 없이 그 한마디를 겨우 할 수 있었다. 

 다시 모니터에 아버지의 모습이 비쳤다. 이번에는 비교적 깨끗한 영상이었다. 아버지가 있는 지휘소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결국, 네가 말한게 옳았을지도 모르겠구나」


 그것이 아버지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러던중 폭발이 화면을 하얗게 만들었다. 아버지의 모습은 사라지고 말았다.


「아버지!!」


 미사는 외쳤다. 몇번이고 외쳤다. 목소리는 이윽고 흐느낌으로 바뀌었고 슬픔 속으로 가라앉아버렸다.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고독이 그 눈물을 삼키고 한층 더 커졌다. 벽에 웅크리고 있던 "무언가"가 혀를 낼름거렸다.

 눈물은 그대로 그녀의 마음 속으로 흘러들어가 슬픔의 바다를 만들었다. 그 바다는 미쳐 날뛰기 시작했고, 바닥에 가라 앉아있던 슬픔의 결정체를 녹이기 시작했다. 슬픈 추억이 솟아났고, 과거를 되돌려놓았다. 

 

「나는 왜 군인이 되어버린걸까. 군인이 되지 않았더라면, 이런 슬픔을 맛보지 않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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