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스케치 #01
~ 잔들끼리 부딪히는 소리. 사람들의 교성. 아오야마(青山)에 자리 잡은 조용한 하야세 저택도, 이날 만큼은 떠들썩했다. 모여든 사람들의 눈 앞을 커다란 접시에 놓인 요리가, 가득 담긴 잔이 오고 갔다. 멋지게 꾸민 사람들이 저택 안에 넘쳐났다.
1999년 7월, 하늘이 찢어지며 거대한 운석이 떨어졌다. 낙하했을 때의 충격파로 몇개의 도시가 붕괴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즉시 조사대가 운석이 낙하한 남 아타리아 섬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 조사대의 보고는 운석이 낙하했을 때의 충격파 이상의 충격을 전세계에 가져다 주었다. 지구는 단 한권의 보고서로 인해 두려움에 휩싸였다.
ASS-1(Alien Star Ship-1)이라 명명된 운석은, 사실 거대한 우주선이었다. 인류는 자신들이 우주에서 유일한 지적생명체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그것은 전함(戦艦)이었다. 인류는 넓은 우주에도 전쟁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주선을 만들어낸 종족의 기술 수준은 당시 지구인의 그것을 초월해 있었다.
인류는 통합할 필요성에 내몰리게 된다. 정적만이 지배했어야할 우주는, 그즉시 위협으로 가득찬 존재로 변모해갔다. 이성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은 어려울 것이라 예상해 전지구 규모의 방어력이 요구되었다. 그것을 위해서는 국가 규모가 아니라, 지구 규모의 정부가 필요해지게 되었다.
물론, 그렇게 되기 전에 문화, 인종과 같은 민족의 벽과, 국가의 에고(ego)가 닥쳐왔다. 각지에서 소규모 전투가 시작되었고, 결국 전화는 전세계로 확산되어갔다.
사람들은 이 전쟁을 통합 전쟁이라 불렀다.
하지만, 한번 움직이기 시작한 거대한 톱니바퀴는 이미 누구도 멈출 수 없었다. 국가가 차츰 소멸되었고, 연방이라는 이름 아래 통합되어 갔다.
일본도 국가에서 자치구가 되었으며, 토쿄 외곽에 통합군의 극동 사령부가 설치되었다. 그리고, 각 자치구로부터 모여든 우수한 사관들에 의한 인종 혼합 부대의 편성이 개시되었다.
이날, 하야세 저택에서 열리고 있었던 것은, 작긴 하지만 새로운 부대를 위한 사교 파티였다. 모여든 인종은 다양했지만, 모여있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그런 사실은 아무래도 좋았다. 사람들에게는 술과 요리, 그리고 재미 있는 대화가 있었다. 담소를 나누다 갈증이 나면 술을 마셨고, 요리로 배가 차면 또 술을 마셨다. 건배하는 목소리가 몇번이나 울려퍼졌고, 웃음 소리가 술에 그 빛을 곁들였다.
그렇게 떠들썩한 파티 속을, 한 소녀가 뛰어 다니고 있었다. 조금은 어른스러운 드레스를 입고 있지만, 아직 어울리는 나이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젠 아동복이 어울리는 나이도 아니다. 어린 여자아이와 여자 사이에 있다는 느낌. 똑똑하고 귀여운 그녀는 파티의 꽃이었다. 모두로부터 귀여움 받았고, 모두가 좋아하는 타입. 그리고 그녀는 그것을 아이다운 민감함으로 깨닫고 있었다. 그때 그녀는 자신보다 연하인 아이를 상대로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다. 그 아이다운 놀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미소를 머금게 했다.
「이쪽이야, 이쪽」
소녀는 사람들 사이를 뛰어다녔다. 그러다 대화를 나누고 있던 한 청년의 등에 부딪히고 말았다. 손에 들고 있던 잔에서 쥬스가 쏟아져 그의 소매를 적셨다.
「죄송합니다」
소녀는 즉시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자신이 어떤 실수를 저질렀는지 이해하고 있었다. 그녀의 행위는 부드러운 분위기의 파티의 흐름을, 일순간 멈춰버리고말았다.
「아가씨, 저는 괜찮아요」
따스한 목소리에 소녀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는 상냥하게 미소짓고 있는 청년의 얼굴이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직 천진난만함이 남아있는 성장기 청년의 얼굴이었다. 그도 소녀의 똑똑해보이는 눈을 바라봤다.
두 사람은 일순간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손수건을 내밀며 그녀는 청년의 소매를 닦기 시작했다. 옷과 손수건 너머로, 그의 채 성장하지 않은 팔이 느껴졌다.
「미사! 그만큼 저택 안에서 뛰어다니지 말라 말했건만」
이 파티의 주최자인 하야세 타카시가 다가왔다.
「죄송해요 아버지」
「나에게 사과해봤자 어쩔 수 없지 않느냐」
「괜찮습니다. 세탁소에 맡기면 될 일이니까요」
청년은 궁지에 몰린 그녀의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다. 아이가 실수를 했을 때, 얼마나 자책감에 시달리는지, 그는 아직 기억하고 있을 나이였다. 하지만, 타카시는 꾸중을 멈추지 않았다.
「대체가... 모두들 즐기고 있는 파티에서 뛰어 놀다니, 어리광을 피우는게냐...」
미사는 고개를 떨구었고 조금전까지 보여줬던 쾌활함은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었다. 청년은 그녀 또래의 여자아이가「어리광」이라는 말을 듣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뭐, 괜찮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야세 준장님. 딱히 악의를 갖고 있었던 것도 아니니」
그곳으로, 덩치가 크고 딱딱한 외모를 한 군인이 다가왔다. 키는 타카시보다 머리 둘 정도 컸고, 어깨도 떡 벌어져 있었다. 팔 굵기는 미사의 허리와 비슷할 정도였다.
「이 녀석이 멍하니 서있다가 아가씨를 제대로 피하지 못한 게 실수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그 군인은 청년의 어깨를 두드렸다. 가볍게 두드린 것 처럼 보였지만, 청년은 두, 세발짝 정도 뒷걸음질 쳤다.
「자네 아들이었나?」
타카시는 의심스럽다는 듯 그렇게 물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도 무리는 아니죠. 어쨌든 불초 자식이라고나 할까요」
군인은 소리 높혀 웃었다. 그만큼 이 부자는 닮은 데가 없었다. 완강함 그 자체인 아버지에, 여자라 해도 좋을 정도의 아들. 솔개가 매를 낳았다고 해야할까... 매가 솔개를 낳았다고 해야할까... 물론, 타카시가 느끼고 있었던 것은 후자 쪽이었다.
「미사, 이분은 헬베르트 폰 플루링 중좌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다」
「준장님, 그 "폰"은 붙이지 말아 주십시요. 새로운 세계에서는 작위 따위 의미가 없습니다」
헬베르트는 미사에게 다가가 허리를 굽히고 악수를 청했다. 그녀의 손은 손목에서 손끝까지 커다란 손에 덮혀버렸다. 미사는 그 커다람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가씨」
「처음 뵙겠습니다. 하야세 미사라 합니다」
미사는 이럴 때를 대비했다는 듯 환하게 웃는 표정을 보였다. 헬베르트도 싱긋 웃으며 답했다. 웃는다고 해서 어떻게 될 얼굴은 아니었지만, 그 눈만큼은 너무나도 상냥해보였다.
「이 녀석이」
그는 청년의 어깨를 붙잡았다.
「자식놈인 라이버입니다. 그렇다 해도 이미 서로 안면을 익혔겠지만...」
라이버는 부끄러운 듯 쑥스런 미소를 지었다.
「자네는 현재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네, 사관학교 학생입니다」
라이버는 타카시의 질문에 자세를 바로 잡고 답했다.
「뭐, 그럴거라 생각했네. 파티 자리이니 좀 더 편하게 대해도 괜찮네」
때마침, 급사가 잔을 들고 다가왔다. 타카시는 재빠르게 그들 중 세 잔을 취해, 헬베르트와 라이버에게 건냈다.
「이 녀석은 아직 미성년자입니다 준장님」
라이버의 잔을 빼앗으려 하는 헬베르트의 손길을 타카시가 말렸다.
「뭐 괜찮지 않은가. 몇살인가」
「아직 애송이 햇병아립니다」
「중좌 자네에게 물어본게 아니네. 나는 라이버 군에게 질문한걸쎄」
「열일곱살입니다」
「열일곱이라면 이미 멋진 어른이네」
타카시는 라이버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것보게, 여전히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잖은가. 오늘만큼은 가벼운 회식자리라 생각하게나」
그렇게 말하며, 잔을 라이버의 잔에 가볍게 댄 뒤, 단숨에 마셨다. 라이버는 잠깐동안 잔에 기포가 떠있는 샴페인을 들여다 봤다. 그리고, 결심이라도 한 듯 마셔버리고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술냄새가 나는 숨결이 미사 위에서 풍겼다. 어째서 어른들은 술을 저렇게 맛있게 마시는걸까?
그후 잠시동안 미사에게는 어려운 내용의 대화들이 오고갔다. 이성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이라던가, 전후 처리라던가... 이제 막 중학생이 된 그녀에게는 아직은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들 뿐이었다. 하지만, 미사는 아버지와 대등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젊은 남성을 처음으로 보았다. 보통 젊은 남성들은 아버지 앞에 서면 위축되고말아서 제대로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 데에 반해, 라이버는 반론까지 했다. 그 어조에는 강한 확신과 의지마저 느껴졌다.
미사는 그런 라이버를 바라보다보니, 어째서인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녀는 그 커다란 심장의 소리가 아버지나 헬베르트, 특히 라이버에게 들리는게 아닐까 하고 불안해졌다. 하지만, 세 사람 모두 이야기에 빠져있는지라, 다른 일들... 설령 폭탄이 터진다 해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어째서 이렇게 두근거리는걸까. 제발 부탁이니 멈춰줘...」
하지만, 심장은 파티가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뛰었다.
카이훈대신 출연시켜서 사각관계를 만들어 버렸으면 어땠을까 싶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