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스케치 #02 下
~ 두 사람은 VTOL을 타고 요코하마로 갔다. 라이버가 중화요리를 먹고 싶다 말했기에 차이나 타운으로 향한 것이다.
차이나 타운에서는 커다란 가게보다 작고 가정적인 가게가 좋다. 그것도 대로 쪽이 아니라 번화가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있는 가게가 좋다. 하지만 그러한 가게는 모두가 알고 있어서 혼잡하다. 그날도 눈여겨 둔 가게가 너무나도 붐볐기에 대로변에 있는 가게로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초등학교 3~4학년 정도의 여자아이가 쟈스민 차를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두 사람 앞에 찻잔을 놓고서 지그시 라이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엄마, 이 분 카이풍 오빠랑 닮았어」
주방 쪽에서 아이의 엄마인 듯한 여성이 뛰어 나왔다.
「민메이. 손님께 무슨 소릴하는거니」
여자아이는 즉시 물러났다.
「죄송합니다. 딸아이가 큰 실례를 범했습니다」
아이의 엄마는 몇번이나 사과했다. 미사에게 있어서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녀는 그후 그 일을 잊어버렸다.
하지만, 이「카이풍」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가 자신과 어떤식으로 관련지어질지...「민메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가 지구의 운명을 어떻게 바꿔버릴지... 이때의 미사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식사를 마친 뒤, 두 사람은 항구 근처에 있는 찻집으로 들어갔다. 4월이라고는 해도 아직 해가 짧다. 이미 이 근처는 밤의 장막이 지배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뉴 마린 타워에 등불이 켜지고, 항구는 항해등의 대열로 가득했다. 커피컵 안에도 가게의 조명이 비슷한 풍경을 그려내고 있었다.
미사는 커피를 한모금 마시고 창 밖으로 밤의 항구를 바라봤다.
「작은 배의 선장이 되어서 전세계를 누비는 것이 꿈이예요. 항구에는 만남과 이별이 있으니까」
「흐음... 나는 시인이나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었어」
일순간, 라이버는 뭔가 그립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좋은 꿈이네, 넌 아직 가능성이 있으니...」
「가능성이라니...」
「자신의 꿈은 될 수 있는한 쫒아가 보는 편이 좋아. 나처럼 꿈을 버려선 안 돼」
미사는 놀랐다. 라이버의 눈빛이 진지함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이제와서 아까의 꿈 이야기는 로맨틱한 거짓말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녀는 사실 「아버지의 신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 꿈이 이뤄질 수 없는 꿈이라는 걸 깨달은 최근에는 자신이 되고 싶은 것을 여전히 찾지 못 하던 중이었다.
「어째서 꿈을 버린건가요?」
그렇게 질문하고나서 그녀는 저질러버렸다고 생각했다. 사람에게는 건드려선 안될 부분이 있다. 이 질문이 바로 그런 것이라는 걸, 그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아버지가 완고한 군인이시니까... 억지로 사관학교에 집어 넣으셨어」
라이버는 툭 던지 듯 말했다. 그 말 한마디에는 그의 여러가지 감정이 담겨 있었다. 미사에게는 그가 마치 자신의 아버지를 두고 하는 말처럼 들렸다.
「그렇다면 어째서 사관학교를 관두지 않는건가요?」
아아... 이런걸 물어서는 안되는데... 건드려서는 안될 부분에 불에 달궈놓은 부젓가락을 찔러 넣은 격이야...
「결국 아버지를 거스를 만한 용기가 내겐 없었으니까. 또, 특별히 군대를 그만둬야할 이유도 없고 말이지... 울며 겨자먹기로 하고 있는거야」
그는 웃으며 얼버무렸다. 하지만, 미사는 그런 이유 뿐만이 아닐거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확실히 그는 그만한 이유로 군대를 그만두지 않을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자기나름대로 군대의 필연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차갑게 식은 커피를 단번에 마신 뒤, 라이버는 시계에 눈을 돌렸다.
「슬슬 나갈까?」
두 사람은 항구가 보이는 언덕 공원을 걸었다. 여남은 찬바람이 미사의 등을 때린다. 라이버는 입고 있던 상의를 벗어 그녀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그것은 세상 그 무엇보다도 따스했다. 그의 체온을 간접적으로나마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두 사람은 평온을 느끼고 있다.
그때, 두 사람의 머리 위를 야간 전투기가 날아가고 있었다. 밤하늘이 깨질 정도의 기세였다.
라이버는 전투기가 지나간 밤하늘을 바라본다.
「저길 봐. 화성이 보여」
미사는 라이버가 가르키는 방향에서 빛나는 별을 발견했다. 그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화성을 봤다. 천문에 흥미가 없었기에 그 별은 그녀의 인식 밖에 있었던 것이다.
「예쁜 별이네요」
두 사람은 잠깐동안 화성을 바라봤다. 미사는 그대로 시간이라는 우리 속에 갖혀 있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는 우주 임무를 맡게 된다면 화성에 가고 싶어」
「로맨틱하네요」
「로맨틱한건가? 여기서 이렇게 보고 있으면 예쁘게 보이는 별일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사막과 폭풍 뿐인 곳인걸?」
「그럼 어째서 그런 곳에 가려는 건가요?」
「순수하게 과학적인 흥미 때문이야. 무엇보다 전쟁으로부터 달아나고 싶다는 마음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그의 대답은 미사에게 있어서 기이하게 들려왔다.
「전쟁으로부터 달아나?」
「나는 다른 군인들처럼 사람을 죽일 수 없어. 살인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으니까」
「아버지는 살인자가 아녜요」
라이버는 실수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상대가 하야세 타카시 준장의 딸이라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다.
「미안. 그럴 생각으로 한 말은 아니었어」
하지만, 미사의 기분은 풀리지 않았다. 그녀는 부친에 대한 악담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느꼈기 때문이다. 그녀는 걸치고 있던 상의를 벗어서 라이버에게 돌려주었다.
「이제 춥지 않아요」
그런 그녀의 말과는 정반대로 몸도 마음도 추웠다.
「미안. 기분나쁘게 해버렸네...」
「아뇨, 그런 게 아니예요」
그녀는 살며시 웃음을 지어보였지만, 그 웃음은 어딘가 공허했다.
두 사람은 잠깐동안 공원을 걸었지만, 대화는 겨우 두, 세마디 뿐. 두 사람의 톱니바퀴는 완전히 어긋나버렸다. 그저 몇마디 말 만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올 뿐이다.
집 앞까지 배웅을 받고 헤어진 뒤에도 미사의 기분은 풀리지 않았다.
「돌아왔어요」
「어서 오너라. 재미있었니?」
「네에, 즐거웠어요」
미사는 퉁명스럽게 대답하고서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오늘은 많이 피곤하니까 일찍 잘게요」
어머니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계단을 바라봤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요? 그렇게나 기대하고 있었던 데이트면서...」
「글쎄... 저 나이 때의 여자아이의 마음은 잘 모르겠구려」
라고 말했지만, 아버지는 펼쳐놓은 신문에서 눈을 뗄줄을 몰랐다.
「설마, 이상한 짓이라도 당한 게 아닐런지...」
「설마...」
아버지는 신문에서 눈을 뗐다. 불안한 듯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 라이버 군이라면 그럴 일은 없을게요. 그는 꽤나 좋은 청년이니」
그렇게 말하며, 또 다시 신문으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그 표정에서 불안감이 완전히 떨쳐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신문을 구석 구석 읽으며 그 불안감을 떨치려 했다.
「라이버는 바보야...」
베개가 벽에 부딪혔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어서 그토록 좋아했던 봉재 인형도 하늘을 날았다. 인형이 벽에 부딪히며 떨어졌다.
던질 만한 게 주변에 없어지게 되자 미사는 그제서야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베개를 다시 주워 그것을 안고서 침대 위에 앉았다. 마음 속에서 라이버의 모습이 되살아 났다.
「특별히 군대를 그만둬야할 이유도 없고 말이지」
「그렇다는 건 군대가 있어도 상관 없다는 얘기?」
「그게 그렇게 되나?」
「그래도, 전쟁은 살인이라 할 수 있는걸까요?」
「살인으로는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으니까」
상상 속의 라이버는 너무나도 서글픈 표정을 하고 있다.
「결국, 군은 필요악이라 말하고 싶은 건가요?」
상상 속의 라이버에게 그렇게 말하고나서 번뜩 정신이 들었다. 그녀는 베개를 끌어안은 채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필요악이란 말이지... 그런가? 군대란 게 그런거였나?」
급우들로부터 전쟁에 대한 부정적인 말이나 군대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는 들었던 적도 있다. 그때는 깔보는 듯한 태도를 취했었다.
하지만, 라이버에 대해서 만큼은 같은 태도를 취할 수 없었다. 그는 군을 필요악으로서 받아들이고 있었고, 그 안에 몸을 두고 있고, 이상과 현실의 갭(gap)으로 고민하고 있다. 그것을 미사도 가까스로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부친의 생각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생각이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라이버는 전보다 크고, 그리고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녀는 방에 들어왔을 때와는 정반대로 한층 더 행복한 기분으로 잠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