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스케치 #03 中
~ 반짝이는 7월의 태양 아래, 남 아타리아 섬에 떨어진 ASS-1의 표면은 사람이 만질 수 없을 만큼 뜨거워져 있다. 습기를 머금은 공기도 바닷가 바위 너설에 괸 바닷물처럼 미적지근해, 섬 전체를 그 거체 안에서 감싸고 있다. 그 공기를 한발의 총성이 찢어발겨버렸다.
일본 자치구 가까에서 들린 총성이었다. 즉시 통합군 극동 사령부는 ASS-1 방위를 위해 남 아타리아 섬으로의 파병을 결정했다. 그중에는 미사의 아버지나 라이버의 아버지도 포함되었다.
「그럼, 다녀오겠소」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여보」
「아버지, 꼭 무사히 돌아오세요」
미사의 아버지는 살며시 웃으며 그녀를 안아올렸다.
「아무렇지 않다. 나는 반드시 돌아올테니까」
미사는 아버지의 뺨에 작별의 키스를 했다. 아버지는 뺨을 가까이 갖다 댔다. 여남은 수염이 살짝 따가웠다. 그는 미사를 내려놓고 가방을 들었다. 미사도 서둘러 또 하나의 가방을 들었다.
「그건 네가 들기엔 무거울텐데」
확실히 무거운 가방이었다. 그녀는 전신에 힘을 주어 겨우 지면에서 가방을 떼어놓을 정도였다. 아버지는 그 가방도 자신이 들려했지만, 미사는 거부했다.
「괜찮아요. 이거 선실까지만 제가 옮길게요」
「괜찮다 미사야. 이제부터 출격이기 때문에, 아무리 군인의 가족이라 해도 군함 안에는 들어올 수 없어. 너도 군인의 딸이라면 그정도는 알아야지」
어쩔수 없다는 듯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버지는 미소를 지으며 그 가방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내가 없는 동안 집안을 잘 부탁하오」
어머니는 가만히 끄덕였다. 아버지는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트럭에 올랐다. 두 사람 사이에 오랜 세월의 애정의 실이 얇게... 허나 확실하고 강하게 이어져 있었다.
주변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중에는 라이버의 모습도 있었다. 라이버와 그의 부친인 헬베르트의 이별은 좀 더 간단했다. 두 사람 모두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 악수를 나눌 뿐, 그저 그것 뿐이었다. 작별 인사도 없었다. 두 사람 모두 이 헤어짐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선창에는 가족이나 친구, 연인이 나란히 서있다. 그들은 똑같이 안타까운 눈빛으로 각자의 남편이나 아내, 아버지나 어머니, 그리고 연인을 바라보고 있다. 어쩌면 두번 다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생각을 부정하면서도 안타까운 눈으로 보고 있다.
때 이른 매미들이 멀리 나무 그늘에서 울고 있다. 갈매기가 울면서 작은 고기들을 잡아 먹고 있다. 그런 소리가 다 들릴 정도로 주변은 고요했다. 갑자기 그 정적을 깨고 군악대의 웅장한 행진곡 연주가 시작되었다.
방현물(防舷物)이 걷히고 닻이 감겼다. 기적이 길게 꼬리를 늘어뜨리며 군악대 행렬 위로 지나간다. 공모(空母) 센티넬은 천천히 선창을 떠났다. 예인선이 회두(回頭)를 도왔다.
각 선창으로부터 전함 싱스크나 노후한 공모 인트레빗 등이 출항하기 시작했다. 주위를 몇척의 소형함에 둘러싸여 통합군 제 3 기동함대는 천천히 요코스카를 뒤로 하고 떠났다.
선창에 서있던 사람들은 마지막 배가 수평선 저편으로 사라질 때까지 지켜봤다. 미사는 센티넬이 모습을 감추자 두 손으로 모아 마음 속으로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가 조금이라도 빨리,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게 해주세요」
문득, 그녀는 근처에서 싫은 냄새가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유황과 기름이 뒤섞인 듯한 냄새. 그것은 그녀가 맡은 최초의 전쟁의 냄새였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그 냄새의 진짜 슬픔, 진짜 괴로움을 알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보니, 아버지가 없는 집이 이렇게나 공허했었나... 라고 놀랐다. 있어야할 것이 없는 집안. 애용하던 파이프가 놓여 있던 곳에 파이프가 없다. 있어야할 것이 없는 집안. 언제나 그 파이프를 물고서 아버지는 저 안락 의자에 앉아있었다. 들려와야할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집안. 아버지는 이제 더 이상 꾸짖어 주지 않는다. 칭찬도 해주지 않는다.
미사는 어머니의 가슴에 안겨 울었다. 어머니는 상냥하게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녀 역시 남편이 없는 공허함을 마음 속에 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군인의 아내가 된 순간부터, 이날의 괴로움을 각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하고 있던 것 이상으로 괴로웠고, 불안했다. 그녀를 지탱해주고 있는 것은 「내가 없는 동안 집안을 잘 부탁하오」라는 남편의 한마디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미 하루 하루 있을 괴로움을 각오하고 있었다. 그것은 생각할 수 있을 가장 잔혹한 날. 그녀는 그날이 오지 않기를 마음 속으로 바라고 있다.
그해 여름은 하야세 모녀에게 있어서 가장 긴 여름이 되었다. 공허한 채로 매일매일을 보냈고, 채워지지 않은 채 내일이 왔다. 두 사람은 매일 남편의... 아버지를 생각하지 않는 날이 없었다. 미사는 라이버와 만나고 있어도 즐겁지 않았다. 마음 어딘가에 언제나 아버지의 모습이 있었다.
전국은 장기화 되고 있었다. 예상외의 끈질긴 반통합군의 저항에 부딪혀 타카시들은 잠을 자지 못하는 나날이 몇일이나 보내야했다. 작은 섬이었기 때문에, 게릴라 소탕은 쉬웠다. 하지만, 소탕한 다음날에는 인근 섬에서 게릴라들이 찾아왔다. 방위망의 틈을 소수의 부대로 뚫고 들어와 게릴라들은 찾아왔다. 타카시는 지친 병사들과 함께 싸웠다. 보급은 끊이지 않고 이어지긴 했지만, 그 간격이 점점 길어져 갔다.
병사들의 피로를 풀어주는 것, 그것은 가족으로부터 온 편지였다. 우편물이 도착하는 때만큼은 살벌한 그들의 얼굴에 웃음 꽃이 피었다. 그들은 그 편지를 탐욕스럽게 읽고, 몇번이나 읽고 또 읽기를 반복했다.
남겨진 가족도 편지를 읽고서 일희일비했다. 일주일에 단 한번 밖에 배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매일 편지를 썼다. 그리고, 편지가 배달 되는 날이면 항상 우채통 앞에서서 사랑하는 이로부터 온 편지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들 중에는 마지막 편지를 사관들로부터 건내받는 이도 있었다. 복장을 단정히 한 사관이 문 앞에 서있다. 가족은 누구나 그의 방문을 기뻐하지 않고 원망했다.
긴 여름동안, 하야세 저택을 이러한 사관이 찾아온 적은 없었다. 그리고, 매년 검게 타버렸어야할 미사의 피부가 새하얀 채로 지나려 하고 있었을 때, 드디어 전쟁이 끝났다. 겨우 남 아타리아 섬 부근으로부터 게릴라들이 모조리 소탕되었고, 섬에는 다시 더운 여름이 찾아왔다. 하지만, 하야세 준장은 전투 뒷처리 때문에 오랜동안 돌아가지 못했다.
어느날, 하야세 저택에 갑작스럽게 방문객이 찾아왔다. 때마침 하야세 모녀는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문이 크게 열리고 그곳에 방문객이 서있었다. 어머니는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손에 들고있던 그릇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미사도 컵을 떨어뜨리게 되었다.
「다녀왔소」
그 방문객은 아버지였다. 출발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들고서 그는 문 앞에 서있었다. 어머니는 그에게 달려가려다 떨어뜨린 접시 파편을 밟아버렸다. 그녀는 당황하며 그것을 집으려 했다.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난 도망가거나 하지 않소」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며 어머니를 안고 키스를 했다. 그 안에는 2개월간의 마음과 슬픔이 있었다. 오랜 입맞춤 뒤, 아버지는 아내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조금 야위었구려」
「당신이야말로 많이 여위셨네요」
확실히 아버지는 야위어있었다. 2개월간의 고투가 그의 몸에서 살을 조금씩 깎아먹었던 것이다. 그리고 같은 기간동안 고뇌에 빠져있던 아내도 야위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미사는 완전히 잊혀진 존재였다. 그녀는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남자와 여자로 돌아간 양친 사이에 자식이 끼어들 틈은 없었다.
「다녀왔다 미사」
아버지는 겨우 미사를 바라봤다. 그녀는 그에게 달려갔다.
「아버지, 어서오세요」
그녀의 눈이 자연스레 젖어들며 방안 전체가 일그러졌다. 어머니도 안심해서 마음이 풀린 탓인지 소리 높혀 울었다.
그날 밤, 아버지는 반통합군과의 싸움을 두 사람에게 들려주었다. 야음을 틈타 잠입한 적을 소탕했을 때의 일, 적에게 기습을 받고 아차했으면 목숨을 잃을 뻔 했던 일. 이야기의 내용은 끝이 없었다.
미사는 눈을 반짝이며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버지는 그녀에게 있어서 변함없는 슈퍼맨이었다. 지구의 통일을 방해하는 반통합군과 싸워 평화를 되찾아온 아버지. 그 모습은 지금까지보다 한층 더 의지가 되었고 멋지게 보였다.
하지만, 그때 그녀 안에서 한가지 말이 되살아났다.
「살인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아」
아버지가 한 일은 옳았던걸까? 옳다고 한다면, 라이버의 주장은 틀렸다.
미사에게 있어서, 두 사람 모두 옳은 것처럼 여겨졌다. 어느쪽이 옳은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조금 불안해지긴 했지만, 그녀는 그런 생각을 떨쳐버리려 아버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날부터, 하야세 저택에도 원래의 평화가 찾아왔다.
하지만, 그 평화도 하루 뿐이었다. 다음날부터, 남 아타리아 섬 방위전 때의 부하들과 전우들의 방문이 시작되었다. 하야세 타카시에게 도움을 받아 목숨을 구한 남자, 타카시의 목숨을 구해줬던 남자, 적을 쓰러뜨린 남자들이 하야세 준장이 보고 싶어 방문한 것이다. 그중에는 라이버의 부친인 헬베르트 -그는 대게 라이버와 함께 찾아왔다- 나, 매력적인 독신... 사십대인 글로벌 중령이 있었다.
그는 하야세 타카시와 다섯살 정도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아이는 물론이고 결혼조차 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탓이 아니라 그저 운명의 장난 때문이었다. 독신인 주제에... 아니 그렇기 때문에 아이를 좋아했다. 마치 자신의 자식인양 미사를 귀여워했다. 그녀도 나이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안심하고 그를 따랐다. 글로벌은 하야세 저택을 자주 찾아와 오랜 시간을 그녀와 놀며 보냈다. 아버지는 스스로 "미사에겐 아버지가 둘이나 있구나" 하고 농담을 했을 정도였다.
양친... 그리고 라이버에다 새로이 글로벌이 더해진 미사의 세계는 평화롭던 중에 천천히 회전해 갔다. 그리고 해가 바뀌어 그녀도 열세살이 되었다. 중학교 1학년을 마치고 2학년이 되려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해 -2003년- 는, 그녀의 인생 중에서도 파란으로 가득한 해였다.
3월에는 글로벌이 하야세 부부의 중매로 결혼을 한다. 대체 어찌된 일인지 그의 아내가 될 사람은 20대의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이름은 미호(美穂), 어엿한 일본인 여성이었다.
스포트 라이트가 두 사람의 모습을 비췄다. 잔뜩 들떠 뻣뻣하게 굳어버린 글로벌과, 부끄러운 듯 눈을 감은 신부. 강한 라이트의 빛은 웨딩드레스에 반사되어 참석자들 사이로 흩날렸다.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미사 역시 그 장면에 시선을 빼았겼다. 그리고, 언젠가 웨딩드레스를 입게될 자신을 꿈꿨다. 순백의 무구한 드레스로 몸을 감싼 자신. 당연히 그녀의 옆에는 라이버가 있었다. 웨딩드레스를 보며, 소녀들이 그리는 달콤한 꿈... 순수하기에 그것은 아름답다. 그런 탓에 그녀들은 아름답다.
3월의 눈부신 빛 속에서 신랑신부가 나타났다. 사람들은 박수를 쳤고 쌀을 던졌다. 신부도 답례로 부케를 던졌다. 그것을 받은 것은 미사였다. 그녀는 자신과 라이버가 맺어지게 되리라 확신했다. 하지만, 그 확신의 토대는 모래성 처럼 약하디 약했다.
글로벌의 발길은 결혼식 이후부터 조금씩 하야세 저택으로부터 멀어져갔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미사는 견딜 수 없었다. 결국 다시 하야세 저택을 찾아오긴 했지만, 그럴 때는 항상 부부가 함께였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미사는 견딜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