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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번역] 하야세 미사 -하얀 추억 #21 (0) 2017/10/21 AM 10:44

하얀 결별(訣別) #03

 

「왜 그러니 미사, 기운 없어 보이네?」


 힘 없이 돌아 온 그녀에게, 같은 방을 쓰는 멜리사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연이어 소중한 사람을 둘이나 잃은 건 이해 해. 좀 더 기운 내. 그렇게 침울해져 있다가는 이쪽까지 전염될 것 같아」

「미안해」

「혹시 다른 고민꺼리라도 있으면 이야기라도 들어줄게」


 그녀에게 상담해 봐야할지 미사는 망설였다.


「실은...」

「뭐야, 남자라도 생긴거니?」


 그 한 마디로, 미사는 마음이 약해지고 말았다. 


「미안, 미안. 진지하게 들어줄테니까, 이야기 해 봐」

「실은 군인을 관두고 싶어」


 미사는 뜻을 정하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라이버의 죽음, 이어진 어머니의 죽음, 그리고 아버지의 냉담함에 대해.

 

「만약, 아버지도 라이버도 군인이 아니었다면, 이런 비극은 없었을 거라 생각해. 나도 군인이 된다면 이런 꼴을 당할지도 모르겠어」


 그녀는 단숨에 말했다. 아마도 그동안 쌓여왔던 게 분출되었으리라.

 이야기를 다 들은 멜리사는 철썩 하고 자신의 이마를 때렸다. 


「진심이야?」

「뭐?」

「진심으로 아버지를 원망하고 있는거야?」


 멜리사의 기백에 눌리기라도 하듯, 미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한심하다 한심해」


 멜리사는 크게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쯤, 아버지도 딸의 한심함에 눈물을 흘리고 계실꺼라구」


 그녀의 말에 미사는 놀랐다. 대체 왜 내가 한심하다는거지.

 

「너 말이야, 자신이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거야? 이 세상에 태어나서 네 멋대로 살아온 것도 누구 덕분이라 생각하는거야? 정말로 어리광쟁이가 따로 없네」


 어리광쟁이라는 말을 태어나 처음으로 들었다. 아무도 지금까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같은 방을 쓰던 다른 동료들도 두 사람 사이에 무슨일이 벌어질지를 지켜보고 있다.


「군무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고 있지만, 반나절 정도는 괜찮지 않아... 라니. 그딴 말을 하는 것 자체가 군에 대해 이해 못 하고 있는거라고. 알겠니? 전장에서는 매일 사람이 죽어나간다고. 매일. 그런 전장을, 최고 사령관이 반나절이라도 자리를 비우면 어떻게 될꺼라 생각하는거야? 아마도 장병들 사이에서 신용을 바로 잃어버릴걸? 매일 목숨을 걸고 있는 장병들은, 단 하루라도 자기 주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집으로 돌아올 수 있어. 하지만, 최고 사령관은 그래선 안 돼. 그런데다 네 아버지 하야세 준장님은 전선 지휘를 담당하시는 것으로 유명한 분이잖아. 장병들에게 있어서 그런 분이 얼마나 마음의 지주가 되는지 모르는거야?」 

「아, 알고 있어」

「너는 몰라. 전혀 몰라」


 멜리사는 또 다시 고개를 크게 흔들었다.


「알고 있었다면, 그딴 소리는 꺼내지도 않았을꺼야. 너 말이야, 아버지로부터 얼마나 큰 은혜를 입었는지 생각해봤어? 애당초에 이 후보생 양성소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도 다 아버지 덕분이잖아」


 미사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대체 아버지가 무슨 짓을 했다는 걸까?


「아버지의 입김이 없었다면 너 같은 햇병아리가 이곳에 들어올 수 있었을거 같아?」


 그랬구나.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들어올 수 있었구나. 전부 자신의 실력이라 생각했는데... 

 자연스레 미사의 눈에서 눈물이 나왔다.

 

「나가줘...」

「뭐? 나가야 하는 건 너야. 이곳은 네 방이 아니라구. 모두가 함께 쓰는 방이야」


 미사는 벌떡 일어나, 흐르는 눈물을 참으며 방을 뛰쳐나갔다. 그녀의 뒤를 같은 방의 동료 한 사람이 쫓아가려 했다.


「내버려 둬」

「참아 멜리사. 그만하면 됐어. 그애 울고있었다구」

「괜찮아. 저런 어리광쟁이는 퍽 하고 누군가 한방 먹여줘야 한다고. 세상의 괴로움도 고마움도 깨달아야 하니까」


 그렇게 말했지만, 그녀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미사는 화장실에 틀어박혀 있었다. 이곳에서라면 마음껏 울 수 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자존심이 무너졌는데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오래 그렇게 틀어박혀 있으면서, 미사는 하얀 벽을 바라보았다. 벽에 적힌 낙서 하나하나를 기억할 정도로 오래 틀어박혀 있었다.

 그리고,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조금도 어른스러워지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깨달은 순간, 자신이 없어도 세상은 돌아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결국, 자신은 어른의 세계를 언뜻 들여다 봤을 뿐이며, 그 세상에 들어서지 못 했다는 것이다. 그런 주제에, 자신은 그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고, 그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자신을 어린아이 취급하는 아버지를 원망했다.

 다음날부터 그녀는 전과 다름 없이 교련에 참가했다. 전과 다름 없이 멋진 군인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멋진... 한 사람 몫의 군인이 되어, 아버지를 돌아보게 할 것이다. 그것이 그녀를 움직이게 했다. 그것은, 라이버의 뒤를 쫓아 멋진 군인이 되리라는 의식과도 닮아 있었다.

 만약, 그녀가 아버지의 입김으로 입소한 것을 알지 못 했더라면, 그년느 어쩌면 군인이 되는 것을 포기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아버지를 돌아보게 하기 위한 최고의 방법으로, 자신의 실력만으로 멋진 군인이 되는 길을 선택했다. 

 전쟁과 죽음의 공허함은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 삶과 죽음의 경계 세계 -라이버나 아버지의 세계- 로 자신을 몰아넣고 싶다는... 어딘가 자포자기한 생각이 작용한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게 노력을 했건만, 아버지의 입김이 작용한 양성소에서 군인이 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2월. 미사는 양성소 제 2 과정을 수료하면서 준위(準尉)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솔직히 기뻐할 수 없었다. 자신의 노력의 전부가 이러한 결과를 초래한 게 아니다. 그것이 불만이었다. 졸업 증서는 한 장의 얄팍한 종이일 뿐이었다. 무거움도 그 무엇도 없는... 글자가 쓰여져 있는 종이일 뿐이었다.

 아버지의 입장에도 변화가 생겼다. 알래스카에 있는 통합군 총사령부로의 발령이 결정된 것이다. 


「미사, 아직 정식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너도 이제 준위구나. 이제 한 사람 몫의 군인이 되었어. 축하한다」


 한 사람 몫이라는 말에 미사는 찝찝함을 느꼈다. 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한 사람 몫이라는걸까? 자신의 노력만으로 뭔가를 이루는 것을 말하는걸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서 이룬 것을 말하는걸까?

 

「나도 통합군 총사령부로 발령되었단다. 미사, 너도 와줬으면 하는데...」


 미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만약, 여기서 따라가게 된다면 어찌되는걸까? 역시나 아버지의 손바닥 위에서 벗어나지 못 하는 게 아닐까? 준위가 되자마자 알래스카로 가는 것도 아버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잠시동안 생각 좀 해보겠어요」


 그녀는 즉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 안에서의 결의는 확고해져 있었다. 그저, 두 번 다시 뒤돌아 보지 않을 형태로, 아버지 곁을 떠나고 싶을 뿐이다. 

 미사는 준위 임명식에 출석하지 않는 것으로 그 결의를 보였다.

 당일에는 아침부터 눈이 내려서 부근은 은빛으로 된 세계가 되었다. 새롭게 임명된 준위들은 새눈을 밟으면서 식장으로 향했다. 본래라면 미사도 그 무리 속에 있었어야 했다. 식장은 살짝 소란스러운 분위기였다. 왜냐하면, 결석은 그때까지의 훈련 과정을 모두 방치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 무렵, 미사는 근처 공원에서 아이들과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녀가 마지막으로 한 아이다운 놀이였다. 

 옷은 다 젖은 채로 상기된 얼굴로 집으로 돌아와 보니, 아버지가 있었다.


「미사...」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옷을 갈아입지 않으면 감기 걸리니까요」


 그녀는 서둘러 2층으로 뛰어가더니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다시 뛰어내려왔다. 그리고 난로 앞에 앉아서 다리를 내밀고 불을 쬐었다. 눈이 신발 안에 들어와 그녀의 발에서 감각을 앗아가버렸기 때문이다. 


「어릴 때, 눈이 내리면 언제나 그랬었지」


 타카시는 그렇게 말하면서 따뜻한 코코아를 내밀었다.


「고마워요」


 타카시는 그녀 옆에 앉아서 함께 난로를 쬐었다. 난로를 쬐었을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은 따뜻한 담요를 함께 덮었다.


「가려워~~」


 자꾸만 발을 문지르던 미사. 따뜻함에 녹은 발에 감각이 돌아왔을 때, 가려움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다리가 저릴 때와 비슷한... 찌릿찌릿하고 끝에서 부터 올라오는 가려움.


「미사야, 진심인게냐?」


 아버지의 그 말에, 따뜻함이 하나 사라졌다. 미사는 일어서더니 의자를 가지고 와서 정자세로 앉았다.


「진심이예요」

「모처럼 한 사람 몫의 군인이 되었구나 싶었는데, 뭐가 불만인게냐」

「저 혼자 이뤄낸 것이라면 불만일 게 하나도 없어요. 하지만, 이건 아버지의 힘을 빌려서 이룬 거예요. 저는 스스로 한 사람 몫의 군인이 되고 싶어요」


 그녀는, 부친의 지위를 발판삼아 자신을 성장시키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부모의 후광도 자신의 특질(特質)이라 명쾌하게 주장할 수 없었다. 자신에 대한 평가는 자신이 한 노력에 대해서만 내려줬으면 했다. 젊다는 것은 순수하다는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준위 자리를 이제와서 내팽겨친다는 것은, 알래스카행도 포기하겠다는 뜻이다, 알겠느냐?」

「네에, 충분히 알고 있어요」


 아버지는 그것을 유감스럽게 여겼다. 그리고, 딸의 행동력에 놀라고는 더욱 더 이를 기뻐했다. 딸이 자립하여, 자신의 곁에서 떠나는 날. 그날은,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오기를 바라지만, 동시에 두려워하는 날이었다. 그리고, 그는 오늘이 그날임을 확신했다.


「그러냐. 너 좋을대로 하렴. 그런데, 이제부터 어쩔셈인게냐?」

「스스로의 힘으로 사관이 되어 보겠어요」

「이제는 도움 같은 건 없다. 해보고 싶은 만큼 해 보거라. 네가 좋아서 힘든 길을 택한 데에는, 그만한 각오는 되었겠지?」

「네, 반드시 해낼거예요」


 미사의 결의는 굳건해서, 쉽게 뜻을 꺾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그런 그녀를 믿음직하게 여겼다. 그리고, 자신들이 잠시동안 만나지 못 하게 되리라는 것, 다음 번에 만날 때는 부모와 자식이 아니라, 한 사람의 군인으로서  만나게 될 것 등을 생각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다시 만나기까지는, 그가 생각한 것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난로 속에서 장작이 소리를 내며 바스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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