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TS에서 RPG를!
도대체 RPG란 무엇인가?
1부에서 [체인메일]이 단순한 규모의 변화를 통해 최초의 RPG인 D&D로 진화해 간 과정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축약과정을 통해서 한 명의 전투원과 플레이어는 하나의 캐릭터와 동일하게 취급되었다. 한 플레이어는 20명의 바이킹 떼거리가 아니라 한 명의 용사 토르(Thor)가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축약은 캐릭터에게 성격을 불어넣었고 게이머들은 또다른 자아로서 캐릭터를 플레이하게 되었다. CRPG들 역시 비슷한 축약에 기반하고 있다.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자신의 캐릭터를 창조하고 게임 디자인에 의해 정해진 방식으로만 캐릭터를 플레이한다(게임기용 RPG에서는 플레이어에 의한 캐릭터 창조과정 없이 미리 주어지는 경우가 많다). CRPG에서는 대부분 선다형 대화를 통한 선택과 전투 상황에서의 캐릭터의 반응으로 그 역할 수행(role-playing)이 제한되었다. 그리고 게임이 갖는 자유도에 따라서, 가야할 장소와 해야할 일이 결정되었다. 테이블 롤플레잉 게임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RPG 게임은 무엇인가? RPG 디자이너이기도 한 제프 포겔은 이렇게 말한다. "RPG라는 장르는 양자택일적이다. 한 쪽에는 매우 복잡하고 심리적인 과정을 통해 캐릭터를 형성해나가는 테이블 게임적인 역할 수행의 측면이 있다. 이 방면에서 컴퓨터는 적합하지 않다. 반면 다른 쪽에는 주어진 숫자들과 규칙의 틀이 있다. 이는 캐릭터 형성의 맥락을 제공한다. 이러한 방향에서 컴퓨터는 매우 뛰어나다."
토드 하워드는 이러한 개념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게이머가 캐릭터를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어떤 게임이 있다고 하자. 나는 플레이어가 캐릭터를 직접 만들어 가나도록 하고 싶다. 하지만. '캐릭터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주된 부분이 된다." 바이오웨어사의 그렉 제즈 첰도 동의한다. "RPG는 캐릭터의 변화과정을 요구한다. 이는 지위, 지식 심지어 경험의 축적까지 의미한다(양적인 것은 아니다). 나는 많은 게임들이 RPG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게임의 핵심을 캐릭터 변화과정에 맞추는 게임은 거의 없다. 캐릭터 변화과정에 중심을 두는 게임만이 '순수한 RPG'이다."
그렇다면, 단지 고든 프리먼([하프-라이프Half-Life]의 주인공)이 캐릭터로서 변화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데이어 엑스]는 RPG이고 [하프 라이프]는 슈터일까? 그리고 게임의 강조점이 끝도 없는 전투에 있어도, 캐릭터가 성장한다는 이유 때문에 [디아블로]는 RPG가 될까? 맞나?
스코피아는 말한다. "[디아블로]가 RPG가 아니라 팬터지 슈터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물론, 이 게임에는 캐릭터 발전시스템이 있고, 퀘스트도 있다. 하지만, 게임의 전반적인 느낌은 슈터이지 RPG는 아니다. 그래서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디아블로] 1편을 매우 즐겁게 플레이했고, 지금까지도 동류(同類)의 게임 중에는 최고의 밸런스를 지닌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스테판 "데스록" 자니키도 동의한다. "[디이블로]는 RPG의 캐릭터 발전 시스템을 가진 액션 게임이다. 굉장한 게임이지만, [팀 포트리스] 같은 게임에서 의미 있는 역할 수행이라는 요소를 찾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요소를 발견하기는 힘들다."
역할 수행에 대한 데스록의 정의 전반은 약간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캐릭터의 스킬, 능력치, 레벨의 상승이 가능할 때 RPG의 전제조건이라고 갖춰졌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캐릭터 발전은 RPG의 전형적인 요소이다. 하지만,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운 아니다. RPG게임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플레이어에게 그들이 선택한 역할을 맡을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가상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역할 수행의] 모든 것이다."
분명, [심 골프Sim Golf]도 이러한 요소가 있다. 어떤 게임에 RPG라는 딱지를 붙일 것인지는 매우 주관적이다. 독자들은 어떤 정의에 동의하는가? [파이널 팬터지] 시리즈(PC로 이식되었고 따라서 논의해 볼 수 있다)와 같은 선형적 진행의 RPG들은 플레이어가 주인공 이외의 역할을 맡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게이머는 역할을 수행하고 캐릭터는 진화한다.
당신의 관점이 캐릭터 진화에 있다면, 시드 마이어의 [심 골프]는 어떠한가? 이 게임에는 프로 골퍼가 등장하고, 그는 본질적으로 당신의 또 다른 자아이다(게이머는 시합동안 그/그녀의 역할을 맡는다). 게임을 진행하면서 발전시킬 수 있는 스킬들 역시 존재한다.
[심즈]는 어떨까? 게임에는 진행해나가면서 상승시킬 수 있는 지위와 스킬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RPG를 플레이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심즈]의 캐릭터들을 플레이한다.
이래셔널 게임즈사(Irrational Games)는 새 게임 [프리덤 포스Freedom Force]를 RPG로 부르고 있다. 하지만, 유연한 캐릭터 발전 시스템과 캐릭터 생성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게임은 [엑스-콤X-Com]과 비슷한 선형적인 진행을 갖는 전략 게임과 비슷하다. [프리덤 포스]에서 플레이어는 진짜로 "역할"을 맡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 게임은 RPG인가?
[스타트렉: 브릿지 코멘더Star Trek: Bridge Commander]는 제법 분명하고 그럴 듯하게 게이머를 선장의 역할로 인도한다. 하지만, 지위의 변화라는 면에서는 보면 아무런 변화도 없다. 하지만 이 게임에서 게이머는 분명히 일정한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프리덤 포스]는 그렇지 않다.
장르혼합형
이렇게 되면, RPG를 분명히 정의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질텐데, 이는 정의의 주관적인 측면 때문만은 아니다. 장르혼합형 게임들이 대거 등장했다는 점도 그 원인이 될 수 있다. 장르들은 각기 특성을 지니고 있지만, 이들간의 특성은 예전처럼 분명하지는 않다. [툼 레이더]는 어드벤쳐 게임인가 액션 게임인가? 이 게임은 액션-어드벤쳐이다. 스코피아에 따르면, "[시스템 쇼크 2]는 재미있는 RPG였지만, 슈터의 느낌이 가미된 게임이다. [울티마 언더월드]는 3D 시점의 게임이지만, 분명히 RPG이지 슈터는 아니다." 데스록은 말한다. "[시스템 쇼크 2]는 제한된 환경에서 벌어지는 전투에 주된 초점을 맞춘 게임이었지만 분명 RPG이다. 플레이어는 선택한 캐릭터를 창조하고 발전시켜갈 수 있고, 주어진 환경의 제약 안에서는 자유롭게 탐색할 수 있다."
데스록에 따르면, [데이어 엑스]는 "많은 면에서 [시스템 쇼크 2]와 유사한 RPG이다. (하지만, [데이어 엑스]는) 더욱 한정된 게임 "공간"(이러한 제한성은 게임이 선형적이지 않고 일정한 레벨개념에 근거하고 있지 않다는 인상을 주는 데에는 전혀 효과적이지 않다)을 가졌지만, 다른 의미에서 이 게임은 휠씬 비선형적으로 진행된다. 예를 들면, 문제를 해결해가는 측면에 그러하다." 하지만, 베세스다의 토드 하워드에 따르면, "[데이어 엑스]에서 게이머는 캐릭터를 부여받지만 직접 키워나가야 한다. 게임에는 탁월한 RPG적인 밸런스가 담겨있다." 여러 장르로부터 어떠한 요소들을 수용할 것인지의 문제로 접어들면, 진정한 RPG를 어떻게 만들어나가고 어떤 게임을 RPG라고 부를 수 있는지의 문제는 너무나 주관적인 것이 되어버린다.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장르혼합형 RPG가 얼마나 그 목적을 잘 달성할 것인지에 대해서 어떠한 기준이나 합의된 논의가 없는 실정이다.
결국, 다음과 같은 제프 포겔의 언급이 타당할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RPG가 무엇인지에 관해 너무도 다양한 기대와 생각들을 갖고 있다. 어떤 것은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 실현할 수 없는 내용들도 있다. 어떤 PC 게임이 'RPG'인가에 대한 논의 자체가 처음부터 뒤죽박죽이 되어버리는 셈이다." 심지어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이기도 한다. "어떤 게임을 RPG라고 부르고 싶은가? 게임디자이너 분들, 그냥 그렇게 불러요!"
그렇다면, 왜 검과 마법인가?
우리의 자문단에게 왜 여전히 많은 RPG들이 팬터지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지 질문해 보았다. 왜 공상과학, 느와르, 영웅물, 서부시대 혹은 호러물을 배경으로 하는 더 많은 게임이 등장하지 않는가? [웨이스트랜드], [쉐도우런], [시스템 쇼크 2]과 같은 고전이나 최근의 [뱀파이어: 더 매스커레이드-리뎀션], [아케넘: 오브 스팀웍스 앤 매직크 옵스큐라Arcanum: Of Steamworks and Magick Obscura]과 같은 일부의 게임들을 제외한다면, 엇비슷한 난장이, 오크, 엘프들이 여전히 판을 치고 있다. 여기 자문단의 답변을 들어보자.
스코피아: 제작사들이 보수적이다. 놀라운 성공을 경험한 혁신적인 선구자들을 따르고자 결심하지 않는 이상, 그들은 해왔던 그대로 한다. 여전히, 팬터지 RPG는 다른 장르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다. 전략 게임과 전쟁 게임은 하이테크/공상과학의 형태가 되기 쉽고, 슈터와 액션 어드벤쳐는 공상과학과 호러물이 된다. 따라서, 팬터지는 틈새를 차지하게 된다. 게다가, 우리는 여전히 마법을 믿고 싶어한다. 기관포로 방을 쓸어버리는 것은 멋진 일이다. 하지만, 손을 휘저어 같은 일은 한다면 더 멋지지 않을까?
마이크 울프: 발매사들의 최종 목표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생각해보고 싶다. 돈을 버는 일 말이다. 공상과학, 느와르, 호러, 이것들은 RPG 장르 내에서 이미 검증된 환경이 아니다. 일부 발매사들은 뻔한 공식을 깨보려는 시도를 주저하지 않지만, 그들은 많은 돈을 잃을 정도까지 모험을 하지는 않는다. 게임은 사업이고, 다른 사업처럼, 발매사들은 팔릴 것이라고 예상되는 게임을 출시하고자 한다. 그들은 팬터지가 팔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시스템 쇼크]와 더불어 [폴아웃] 1·2편은 미래풍의 게임도 실적이 좋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들은 규칙의 예외일 뿐이다. 대부분의 발매사들은 이와 같은 모험을 꺼린다. 특히, 오늘날 같은 치열한 경쟁상태에서 말이다.
스테판 "데스록" 자나키: CRPG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 수많은 전투와 학살을 특징으로 하는 게임으로 자리잡아 왔다. 검과, 마법에 잘 들어맞는 배경은 거의 없다. 특히 기술적인 제약으로 말미암아, CRPG는 전투 시스템 외에는 종이와 연필로 하는 RPG의 어떠한 요소도 수용하지 못했다. 컴퓨터 게임에서 플레이어들이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가능하게 해주는 자유도를 부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구나 상당한 정도의 자유도를 부여하는 데에는 엄청나게 많은 비용이 든다. CRPG는 잘해야 부분적인 비선형적 진행방식과 선다형 문제풀기 정도를 제공할 뿐이다.
플레이어가 취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의 결과를 프로그램 하고자 시도한다면 허무맹랑한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테이블 RPG들은 이러한 정도의 자유도를 준다. CRPG가 잘 해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전투와 캐릭터 발전 시스템 밖에는 없다. 팬터지를 배경으로 하면 이러한 장점이 잘 살아난다. 죽어 마땅한 사악한 수십 가지의 기이한 몬스터, 다양한 무기, 군대라도 해치울 수 있는 영웅으로 진화해 나가는 캐릭터와 같은 요소들을 소화해낼 배경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검과 마법은 (또한) 엄청나게 인기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검과 마법의 RPG들이 다른 배경의 RPG들에 비해서 휠씬 많이 팔렸기 때문에, 컴퓨터 게임 개발자들은 다른 유형의 RPG 제작을 꺼려한다. [폴아웃](그리고 앞서 등장한 [웨이스트랜드]) 시리즈는 미래풍 (그리고) 공상과학 게임의 가능성을 잘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들은 [발더스 게이트]만큼 팔리지는 않았다. 확실히 잘 만들어지기만 한다면, 보다 세련된 배경을 가진 게임들이 상업적으로 휠씬 크게 성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팬터지 RPG는 "안전한" 선택이다.
제프 포겔: 호러는 컴퓨터 게임에서 오랫동안 유지되기에는 너무나 빈약하다. 기초부터 다시 헤아려보자.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1. RPG 게임의 구매자들은 단순한 팬터지를 좋아하는 경향을 띤다. 적어도, 지금까지 팬을 확보해온 방식이다.
2. 오래된 사업적 마인드. 현재 발매사들은 팬터지 게임이 장사가 된다고 판단한다.
3. 사람들이 RPG라고 기대하는 게임의 시스템에 현대적인 무기들을 그럴 듯하게 맞추는 일은 생각보다 휠씬 어렵다. 검은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먼 과거의 무기이다. 따라서 검에 맞은 후 치료 마법을 통해 멀쩡해지더라도, 이를 휠씬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반면 만일 우리가 로켓 런쳐에 맞는다면, 통구이가 될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적들을 날려버리면서도 즐거운 전투의 느낌을 주는 일이 휠씬 어려워진다.
앤드류 S. 법: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은 앞서의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나는 다른 점을 지적하려고 한다. RPG는 CPU의 세계에서는 주로 팬터지에 기반하고 있다. 하지만, 테이블 세계의 RPG들 역시 판터지에 기반한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물론, 테이블 RPG의 모습은 휠씬 다양하다. 공상과학([트래블러스]), 코믹북스([챔피언스Champions]), 호러([콜 오브 크수루]), 만화 캐릭터(누구 [툰Toon]을 아는 사람?). 하지만, 이는 종이에 룰을 인쇄하는 것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이들을 프로그래밍하여 하드 드라이브에 집어넣는 일은 휠씬 비싸다. 여기서 합의할 수 있는 사실이 있다면, 게임회사들은 팬들이 구입할 것 같은 게임을 보수적으로 출시하지만, 팔리는 게임이 반드시 팬들이 원하는 게임은 아니다. 이러한 현실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이단적인 RPG들이 눈이 띄거든 구입해라. 아마도, 이들이 팔린다면, 더 많이 등장하지 않을까?
CRPG의 미래
미래의 관망
이 특집을 통해 우리는 1980년대의 초기 RPG게임에서 90년대의 몰락을 거쳐 오늘날의 인기작 RPG에 이르는 역사를 살펴보았다. 우리는 대형 온라인 게임과 장르혼합형 게임의 번성에 대해서도 논의하였다. 자, RPG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차세대 경향은 무엇인가? 분명 우리는 더 좋은 그래픽과 사운드가 실현될 것을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또다른 혁신은 무엇일까?
(2002년 5월 출시예정인 [모로윈드]의 수석개발자) 토드 하워드는 이렇게 설명한다. "[MMORPG는] 현재 온라인 플레이에서 가장 앞서 나가고 있으며, 따라서 다른 여느 분야에 비해 많은 혁신을 기대할 수 있다. 개발자금이 몰리는 곳은 바로 여기이다. 더 뛰어난 기술을 사용한 게임들도 보고 싶다." 마이크 울프에 따르면, "개선된 그래픽, 개선된 온라인 접속, 그리고 개선된 기술적 성취가 기대된다." 하지만, 또한 그는 "우리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은 장르를 뛰어넘는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항상 그렇고 그런' 게임플레이 스타일에 싫증을 내고 있다. 신선하고 도전의식을 일깨우는 뭔가를 원하고 있다." 제프 포겔은 다른 견해를 피력한다. "물론, 휠씬 멋지게 구현될 그래픽을 제외한다면, 나는 크게 낙관적이지는 않다. AI와 플롯상의 진전이 없다면, 이미 우리는 한계에 도달했다고 본다."
RPG는 한때 거대한 세계를 다루었지만, [모로윈드]조차 [대거폴]보다는 휠씬 작다. 이러한 축소경향은 대부분 그래픽에 대한 강조 때문이다. 게임의 세계가 점점 작아지는 대신 휠씬 상세해지는 것일까? 하워드에 따르면, "현재 우리가 그래픽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굉장하다. 게이머들은 앞으로 점점 좋은 그래픽의 RPG를 보게 될 것이다. 다른 장르의 게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마침내 RPG에서도 일어나고 있는데, 게임의 규모가 대폭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평균적인 게임 플레이 시간은 대략 10시간에서 20시간 정도이다. 앞으로 출시될 RPG는 20시간에서 60시간 정도의 플레이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가 덧붙인 바에 따르면, "[엘더 스크롤]은 분명 이것보다는 휠씬 긴 플레이 시간을 갖는다. 하지만, 앞으로 다른 게임들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발더스 게이트]는 이러한 경향에 역행하는 것이었데, 속편이 원편에 비해서 휠씬 더 길었을 뿐만 아니라 휠씬 더 짜임새를 갖추었다. [발더스 게이트 2]가 주는 교훈이라면 주요한 플롯은 휠씬 간결하게 다듬어져야 하며, 서사는 보다 더 짜임새있게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화된 컨텐츠
유비 소프트사(Ubi Soft)가 출시할 온라인 RPG [쉐도우베인Shadowbane]의 집행 프로듀서인 스캇 허링턴(Scott Herrington)에 따르면, "아마도 (적어도 온라인 게임에서) 앞으로의 CRPG에 가장 큰 영향을 주게 될 두 개의 게임은 [심즈 온라인Sims Online]과 [네버윈터 나이츠]이다. 차세대의 대형 멀티플레이 온라인 게임들이 실현해야 할 가장 큰 혁신점이라면, 플레이어가 만들어 나가는 컨텐츠의 강화와 레벨 노가다의 탈피 두 가지이다."
바이오웨어사의 그렉 제즈 첰도 동의하다. "사용자-조정 컨텐츠가 게임업계의 커다란 이슈가 될 것으로 본다. 많은 다른 개발사 및 소프트웨어 업체가 그렇듯이(예를 들어 디스크릿(Discreet)사의 [GMAX]가 좋은 예이다), ([네버윈터 나이츠]에서) 우리팀의 역시 이것에 집중하고 있다. 사용자들은 그들이 플레이하고 싶은 컨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다. 팬들이 우리의 게임으로 만들어 놀라운 것들을 지켜볼 날을 고대하고 있다."
[뱀파이어: 더 매스커레이드-리뎀션]을 차용하여 만들어진 [네버윈터 나이츠]의 파티기반적인 측면에 대해 마이크 울프는 이렇게 말한다. "([뱀파이어]에서) 시도는 했다. 하지만, 이 게임은 몇 가지 내재적인 기술상의 문제와 접속의 문제 때문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만일 [네버윈터 나이츠]가 성공한다면, 다른 게임들이 우리를 따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온라인의 열기가 가열되면서, 최고의 자리를 놓고 자웅을 겨루는 게이머들의 클랜이 형성될 것이다. 이 같은 커뮤니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게임들이 이 장르를 벗어나 이를 재정의하는 위치에 올라서게 될 것이다." 짧은 기간 동안 한정된 동료들과 플레이할 수 있는 모듈 게임(Modular game), 이것이 [네버윈터 나이츠]의 성공 이후에 등장하게 될 게임이다."
더 많은 다양성을 추구한다
데스록은 현재 RPG는 또 하나의 정점에 도달해 있다고 본다. 90년대에 업계에 큰 타격을 주었던 경향과 비슷하게 "기본적으로 엇비슷한 게임들이 양산되는 퇴행적인 모습이 나타난다면," 또 다시 쇠퇴기가 올 수도 있다고 염려한다. 따라서, 장르의 건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 데스록도 이에 동의한다. "더 다양한 배경의 게임이 나왔으면 한다. 펜과 종이로 하는 RPG들은 [마블 슈퍼히어로즈Marvel Superheroes], [감마월드], [스페이스 프론티어즈Space Frontiers], [부트 힐Boot Hill], (스티브 잭슨(Steve Jackson)이 개발한 롤플레잉 규칙에 기반한) GURP 게임들은 팬터지가 아닌 배경에서도 제대로 된 RPG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토드 하워드는 말한다. "게임에서 보다 역동적인 AI 시스템이 도입되었으면 한다. 직업을 가진 NPC들, 서로 루머까지 퍼트리는 NPC들 등등. 우리가 앞으로 더 연구해야 하는 분야는 바로 이것이다." 게임스파이에서 지난 달 전해 받은 [모로윈드]의 시험판으로 판단해 본면, 그는 이 방면에서 성공을 이루어가고 있다. 제프 포겔은 모든 것은 복잡성과 캐릭터에 달려있다고 본다. "복잡한 세계와 이 세계와 엮이게 되는 캐릭터들을 더욱 그럴 듯하게 창조하게 될수록, 보다 진정한 역할 수행의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데스록은 장르의 기본에 충실한 게임을 기대하고 있다. "최초로 흥미로운 게임세계를 창조하고 이를 발전시켜 나갔던 '울티마의 디자인 철학'으로 회귀하는 RPG들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이러한 방향에서 [모로윈드]와 같은 게임들은 중요한 진전이 될 것이다. 우려하는 바는, 이후 상업적으로 성공한 많은 RPG 게임들이 등장하게 되어, 조만간 질 낮은 아류작들이 등장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독립개발사와 모드(Mods)
모드 제작자들과 독립 개발사들은 CRPG의 역사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독립개발사는 무엇인가? 단 한 명이 그들이 좋아하는 게임을 뜯어고치는 것일까?
우리 자문단의 한 명인 제프 포겔은 스파이더웹 소프트웨어사를 꾸려나가고 있다. 포겔은 혼자서 고전풍의 RPG를 만들어 인터넷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그는 또한 [컴퓨터 게임 매거진]에 '투덜이 게이머(Grumpy Gamer)'라는 칼럼을 쓰고 있기도 하다). 그는 팬터지에 초점을 맞춘 단순한 RPG들([애버넘], [애버넘 2]), 고대의 로마와 바바리안이 되어 플레이하는 게임([니서게이트Nethergate]), 그리고 많은 팬들이 모드를 제작하고 있는 세련된 어드벤쳐 제작도구([블레이즈 오브 엑사일Blade of Exile])를 선보였다. 팬터지와 공상과학을 혼합한 그의 최신작 [지니포지Geneforge]는 당장 다운로드하여 플레이해 볼 수 있다. 특히 예전 [울티마]의 팬이라면 베타판이라도 체험해보기 바란다.
과거의 게임들이 다시 제작되는 경향 역시 생겨나고 있다. 대부분의 [울티마] 시리즈가 다시 제작되고 있다. [울티마4]편의 3D 리메이크판인 [더 돈 오브 버츄The Dawn of Virtue]를 비롯해, [울티마] 1편, 5편, 6편 등이 현재 제작중에 있다. [데블 휘스키Devil Shiskey]는 최신 기술을 통해 태어난 [바즈 테일]의 리메이크판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다(아직 컨텐츠 사용에 대한 라이센스도 받지 못했다). 프로그래밍에 대한 애정과 그들이 리메이크하고 있는 게임에 대한 애정이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길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내가 이 특집을 작성하고 있을 때 [마이트 앤 매직 9]가 출시되었고, [던젼 시즈]는 이 글이 올라갈 때 즈음 출시될 것이다. [모로윈드]는 5월에 등장할 예정이고, [네버윈터 나이츠]는 6월이나 7월에 선보이게 될 것이다. 게임스파이는 최근 GDC(Game Developers Conference)에서 발표된 앞으로의 멀티플레이 게임들에 대해서 상세히 소개한 바 있다.
MMORPG 게임의 리스트는 방대하다. 수퍼히어로([시티 오브 히어로즈City of Heroes])물에서 3류 액션([로스트 컨티넨츠Lost Continents])를 거쳐 우주 저편([스타워즈 갤럭시즈Star Wars Galaxies])을 배경으로 하는 게임들이 향후 2년 간 등장할 것이다. [애셔론스 콜] 2편도 대기중이며 블리자드사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도 있다. 바이오웨어사의 [나이츠 오브 더 올드 리퍼브릭Knights of the Old Republic]은 엑스박스로 먼저 출시되고 PC로도 등장할 예정이다. 그 이후에는? [마이트 앤 매직 10]? 얼마든지 있다.
아직 시도되지 않은 RPG의 세계는 많이 남아 있다. 따라서, 많은 게임들이 제작될 것이고 많은 혁신들도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컴퓨터는 더욱 정교해져서 게임 역시 이를 반영하게 될 것이다. 언젠가는 컴퓨터로 D&D보다 더욱 사교적이고 복잡한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게 되리라고 확신한다. 이러한 경지에 오르는 것이 개발사들이 추구해야 할 제일의 목표이다. 이렇게 열성적인 팬들이 있는 이상, 이러한 게임은 반드시 등장할 것이다.
ps. 이걸로 마지막입니다. 꽤나 오래전 글이지만, 게임을 좋아한다면 한번쯤 읽어볼만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