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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아이폰은 크래킹 되지 않는가? (0)
2015/07/15 PM 06:11 |
도청에 대한 논란은 워터게이트같은 사건을 포함해서, 먼 옛날부터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없는 자리에서 다른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싶어하고, 그것이 도청/첩자로 이어져온 것이다.
아이폰은 크래킹 되지 않는가? 와 같은 말에 대해서 답하자면, 기술적으로는 소스가 공개되어있는 안드로이드에 비하여 exploit 이 공유되기 힘들어서 크래킹이 어려워서 개인에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지 몰라도, 아이클라우드라는 사업모델을 사용하고 있는한, 잠재적인 파국적 위험은 언제나 존재한다.
나는 클라우드라는 말을 난 싫어한다. 인터넷이 탄생하면서 서버가 만들어지고 나서 얼마있지 않아 나온 개념이고, 메인프레임이 주류였던 시절 조차에도 실물이 존재했던 스케일이 가변적인 분산서버 + 외부연산 서버를 왜 굳이 클라우드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그것들은 개인에게는 상상도 안될정도로 규모가 크고 연산력이 막대한 서버일 뿐이다.
여기에서, 외부연산 서버는 필연적으로 사용자의 raw 정보(암호화되지 않은 정보)에 서버가 접근이 가능해야한다. 그리고 아이폰의 경우에는 애플이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애플 서버는 가장 중요한 정보인 이메일의 raw 에 공식적으로 접근 가능하다. 그리고 사실, icloud.com 에서 자신의 암호를 넣으면 자신의 대부분의 정보에 접근 가능한 시점에서 애플서버 자체는 이미 대부분의 raw 에 접근 가능하다 봐야할 것이다.
exploit 을 사용한 크래킹을 무기를 든 적의 공격이라 생각한다면, 클라우드 자체가 사용자를 감시하는 것은 편안하게 집에서 쉬고 있는데 돈주고 고용한 집사나 하수인이 내 책상위의 서류를 마음대로 보는 것에 해당한다. 파국적 위험이란, 이 집사가 언제 어느순간에 자의이든 타의이든간에 어떤 거대한 집단의 앞잡이가 되어서, 사용자를 감시하게 될지 모른다는 점이다. 사용자가 자신이 직접 통제하지 못하는 정보는, 언제나 이러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여담으로, 에드거 포의 소설인 도둑맞은 편지에서, 무능한 경찰이 어떤 사람에게서 편지를 빼앗기 위해서 그 사람이 집안을 비웠을때 집안에 문서를 숨겨놨을듯한 곳을 구석구석 뒤진다. 의자다리 속에 숨겼나 해서 바늘로 의자다리를 찔러서 조사한다거나... 그런 정밀조사를 하지만 발견하지 못한다. 정작 그 사람이 편지를 숨겨(?)놨던건 평범한 편지 꽂이였다. 뭔가를 숨기고 싶거든 그것이 자신이 숨기고 싶은 것이라는 것부터 숨겨야한다. 그렇게 하면 의외로 사람들은 그것을 영원히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오귀스트 뒤팽이 등장한다면 모를까.
* https://support.apple.com/ko-kr/HT20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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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마이피는 거짓말쟁이 (5)
2015/07/15 AM 10:24 |
분류선택에 선택하지 않음 선택하면 메인노출 안된다고 해놓고서 최신글에는 노출되네...
이래서야 뻘글 하나도 쓰기 힘들겠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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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제목짓기 (1)
2015/07/15 AM 10:04 |
가장 좋은 제목 : 행복
(만약 행복이라는 이름의 소설이 많을경우) 좋은 제목 : 그 남자의 행복
아무리 길어도 이 이상은 양보할 수 없는 제목의 길이 : 젊고 내일이 두려운 그 남자의 행복
여기부터 나노벨, 혹은 소논문 타이틀 : 젊고 내일이 두려운 그 남자의 행복이란 무엇인가.
이미 나노벨 제목으로도 길다 : 젊은 그 남자, 내일이 두려운 그 남자, 하지만 그런 그도 행복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고뇌할 정도의 권리는 있으리라.
이미 abstract 급 : 그 남자는 분명히 자신이 젊다는 것을 안다, 내일도 그는 아마 젊을 것이다. 그러나 내일의 내일, 그리고 그 다음 내일에도 그가 계속 젊으리라는 보장은 없기에, 그는 내일을 두려워한다. 그런 그가 자신의 행복에 대해서 고뇌한다는 것은, 수 많은 선인들에게 있어서 젊음 그 자체로부터 나온 사치처럼 느껴지겠지만, 분명히 그것은 삶을 영위하는 자의 권리의 일부이리라.
그런데 사실 함정을 말하자면 소설이 문학으로 가치를 인정받기 전에는 소설에는 제목 자체가 없었다고 함. 보통 그냥 주인공 이름으로 불리는 정도? 제목은 내용을 모두 포괄하기엔 너무나도 짧지만, 그렇기에 너무 신경써서 제목을 지으려고 하면 나노벨처럼 되기 십상이니까. 왜 그렇게나 작품 이름을 공란으로 남겨두고 "무제" 라고 적어두는 사람이 많은지 이해가 갈만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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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유열의 기본 (1)
2015/07/12 AM 07:19 |
Fate/Zero 를 보면 젊은시절의 키레와 그의 둘없는 파트너 금삐까가 서로 알콩달콩 하면서 유열을 즐기는 부분이 나오는데, 나는 그곳에서 우로부치의 필력을 가장 강하게 느꼈다.
유열에 대해서 말하기 전에 키레와 금삐까 커플씬이 나오기보다 전에 위치한 에피소드, 질 드레와 류노스케 팀의 첫 만남에 대한 에피소드에서, 질드레가 잡혀있던 아이를 풀어서 도망가게 해주는척 하면서 도망가는 도중의 아이를 마수로 참살해버리는 에피소드가 있음을 기억하자. 그곳에서 질 드레는 말하길 "공포에는 신선도라는게 있습니다." 라고 한다. 이미 죽을 것을 알고, 그것을 받아들이기 직전의 공포로는 광인의 미학에 어긋난다는 것이 바로 질 드레의 말이었다(그 말 뒤에 바로 류노스케가 "형씨 엄청 쿨 하네!" 라고 하면서 찬사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것은 우로부치가 적는 작품들의 인물들의 절망의 과정과 상당히 연관이 있는데,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비록 질 드레와 같은 광인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상황에 배신당하는' 것을 즐긴다는 것은 사실이다. 우로부치는 이 상황이 인물을 배신하는 것을 즐겨 사용하며, 이것을 Fate/Zero 에서는 유열의 한 요소로 사용하고 있다.
이제 키레와 금삐까의 유열 즐기기 에피소드로 가서 생각해보면, 위의 상황이 배신하는 구도가 그대로 들어맞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상황의 피해자에 해당하는 사람은 우리의 애증어린 카리야 아저씨고, 그것을 극대화 시키기 위한 장치는 도짓코 토키오미와 아무것도 모르고 반쯤 죽은 아오이다. 키레는 유열극이 준비된 장소인 성당의 윗쪽에서 카리야가 토키오미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했음을 알게되고, 아오이가 들어와서 상황을 착각하는 비극을 겪고, 마지막엔 카리야 자신이 가장 사모했던 아오이를 목졸라 반쯤 죽여버린다. 상황이 배신한 것은 같으나, 이곳에서는 질 드레의 미학을 설명하기 위한 학살과는 명확히 다른 점이 있다. 카리야는 분명한 피해자지만, 표면상으로는 가해자이기도 하며, 자신이 그곳으로 가고싶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으로 갈 수 밖에 없는, '비극'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비극적으로 미쳐가는 과정 자체가 바로 키레와 금삐까의 유열이며, 카리야가 아오이를 목조르고 난 뒤에 반쯤 놔버린 정신으로 교회바깥으로 도망갈 때는 이미 키레와 금삐까는 이미 카리야에게 흥미를 잃고서 자기들 사이에서의 이야기를 하면서 유열의 정도가 어떻다 하면서 평가한다. "술의 맛이 이렇게 좋았던가" 라고 하면서 자신이 제작한 유열극에 자화자찬하는 키레를 보고 있으면 그들이 얼마나 이 유열극을 즐기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광인을 훌륭하게 소화해내는 연기자는 드물고, 그만큼 귀중하다. 그러나 광인이 되어버린 연기자는 별 가치가 없다. 관객이 원하는 것은 언제나 광인의 문턱에 발을 집어넣고서 그곳의 광기를 훌륭하게 전달하는 비극의 화신이다. Fate/Zero 의 유열을 즐기는 키레와 금삐까는 이 연기자를 일회용으로 사용해서 광인이 되어버리면 버려버리는 것을 제외하고는 비극, 혹은 관객의 입장에서는 유열극일 연극의 훌륭한 프로듀서다. 우로부치는 자기 자신의 명백한 일부를 이 잔악한 미치광이들 둘과 질 드레에게 투영시켰고, 그건 꽤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우로부치의 각본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상황에 배신당하고, 결과적으로 비극적으로 미쳐가거나 혹은 신선한 공포와 함께 참살당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들 관객에게 있어서, 최고의 유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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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리웹 메인페이지 최하단에 노출되지 않는다는 의미일겁니다
그리고 게시물 숨김버튼이 괜히 있는게 아닐거에요
잘 생각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