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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오래된 글] [06년] 마녀사냥 (0) 2015/01/08 AM 02:46
87년 항쟁에서 그리 멀지 않았던 때이니, 대략 80년대 말쯤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뒤 유리창에 '내 탓이오'라는 스티커들을 붙인 차들이 눈에 뜨이기 시작했다. 알아보니 천주교 쪽에서 벌리는 운동이라고 했다. 때에 들어맞는 좋은 운동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내 탓이오'의 반대는 당연히 '네 탓이오'가 된다. 그리고 이 '네 탓이오'의 가장 나쁜 형태를 우리는 마녀사냥이라고 부른다.



중세의 마녀사냥의 피해자 수는 대략 200만 명 정도로 추정을 한다. 아주 적게 보는 학자가 30만 정도로 추정을 하며, 많이 보는 학자는 300만 정도로 추정을 한다. 심지어는 900만 명 설을 주장하는 글도 본 적이 있다.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당시의 인구 규모에서 적은 숫자가 아니었던 것은 확실하다. 마녀사냥의 극성기였던 17 세기의 세계 인구가 한 5억 정도라고 하니, 유럽 인구는 2~3 억 정도라고 보면 될 것이다. 대략 100~150 명의 한 명 꼴로 마녀 사냥의 희생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인구가 20억이 넘었던 1940년대의 세계 2차 대전의 군인 사상자를 2,500만 명, 민간인 희생자도 대략 그 정도로 본다. 민간인만 기준으로 보면 그 비율이 대략 100대 1 정도가 된다. 평화로운 시기에서 마녀로 몰려 죽은 사람의 비율이 가장 잔인하고 참혹했던 전쟁에서 죽은 사람의 비율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 죽음은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고문당한 뒤에 산채로 화형에 처해지거나 물에 던져져 죽은 죽음들이다. 요즘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한, 두 명만 그런 식으로 죽어도 세계의 인권단체가 들고일어날 방식으로 백만 단위의 사람이 죽은 것이다.



유럽의 마녀사냥의 기록은 꽤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5세기 로마시대부터 기록이 나온다. 그러나 이는 주로 반사회적 행동에 대한 응징의 형태였다. 사교 집단이 뚜렷한 반사회적 행동을 하거나, 사회의 윤리를 흔들었을 때 마녀로 취급했던 경우이다. 그러나 13세기부터 기록에 나타나는 마녀사냥은 형태가 달랐다. 무고한 사람을 마녀로 몰아 죽이는 타락한 형태의 마녀 사냥이 시작된 것이다. 처음에는 일부 광신적 원리주의자에 의해 산발적으로 행해지는 테러 행위였다. 교회는 마녀로 취급된 희생자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였지만 천주교 전체 차원에서 주도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14세기. 페스트가 유럽을 휩쓸기 시작했다. 페스트는 잊을 만 하면 다시 닥쳐 17세기까지 유럽을 덮치며 심할 때는 인구의 1/3을 단번에 줄이기도 했다. "신은 왜 우리를 구원하지 않는가?" 신앙의 위기, 교회의 위기가 닥쳤다. 당시 유럽의 최고의 권력이었던 교회의 권위가 무너지게 된 것이다. 교회는 서서히 마녀사냥의 전면에 나서게 된다. 교황청은 마녀사냥을 전담하는 기구를 두기 시작하며, 마녀사냥의 형태는 점점 잔인해져 간다. 17세기에 들어서면 인구 7,000 정도의 마을을 통째로 초토화시킨 기록마저 나온다.



사람은 누구나 남을 탓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특히 꼬여버린 운명, 어려운 환경을 차마 받아들이기 힘들 때, 남에게서 원인을 찾고 싶은 마음은 더 강해진다. 이럴 때 사람은 마녀를 원한다. 기형아가 태어난 것은 산파가 마녀이기 때문이며, 내 남편이 가정에 충실치 못한 것은 새로 이사온 여자가 마녀라서 온 마을의 남자들을 홀리고 다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개인의 이런 망상은 사회에 의해 막아지고 견제가 된다. 그 사회의 지성은, 또 사회가 이끄는 권력은 이를 막아야할 책임이 있다. 그런데 반대로 권력 집단이 이를 조장하고 나설 때, 이 엄청난 들불은 막을 방법은 없다. 관동 대지진의 참사에서 조선인 폭동설이 유포되며 6000명 이상의 조선인이 학살이 된다. 민심 동요를 막고, 지진 피해자의 분노에 표적을 제공하고자 하는 일본 경시청의 고의적 유언비어 살포의 결과였다. 1차 대전 패배 후 전쟁배상금으로 고생하는 독일인들에게 가장 우수한 민족인 아리안 족이 유태인의 착취로 고생한다는 히틀러의 말 한마디는 수백만의 유태인 학살로 이어진다. 권력의 위기가 닥쳤을 때, 대중이 어려워하고 있을 때, 권력은, 그리고 대중은 희생양을 원한다. 마녀를 원한다.



IMF 위기가 닥쳤을 때 당시의 권력은 김영삼 대통령을 희생양으로 삼아 이를 돌파하려 하였다. 나는 김영삼 대통령의 허수아비를 몽둥이로 치던 이회창 후보의 모습을 기억한다. 김영삼 정권에서 감사원장과 국무총리를 했던 사람은 아무 책임도 없었던 것일까? 김영삼 정부 시절의 민자당은 여당이 아니었던가? 신한국당은 이름을 바꾸었으니 민자당과는 다른 당이었던가? 외환위기가 코앞에 닥치도록 펀더멘탈이니 뭐니 하는 용어들을 써 가며, 외환위기는 절대 없다고 호언장담을 하던 조선일보는 책임이 없는 것이었을까? 그들에 의한 김영삼 허수아비 화형식은 한 편의 마녀사냥이었을 뿐이다.



마녀사냥은 주로 사회의 약자 층을 겨냥을 한다. 사자가 코뿔소나 하마를 노리지 않고, 영양이나, 얼룩말을 노리듯이 약자일수록 사냥을 하기에 쉬운 표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녀사냥의 대상이 꼭 약자인 것만은 아니다. 대중의 불만이 클 때, 만만한 약자 층이 찾아지지 않을 때 마녀사냥의 표적은 최상층부를 겨냥한다. 대중이 같이 뜯어먹을 만한 큼직한 고기를 노리는 것이다. 특히 실제 권력과 표면상 권력이 서로 다를 때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두 개의 권력이 팽팽할 때는 제 2인자가 주로 표적이 된다. 문벌 관료들의 권력과 부딪힌 영조는 자기 아들 사도세자를 희생양으로 삼는다. 사상적 권력과 정치적 권력이 갈라진 국가에서는 아예 최고의 담당자가 희생자가 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제정일치 국가에서 제정 분리 국가로 갈라진 것은 바로 이런 속셈에서 비롯된 것이다. 국가의 불행이 닥쳤을 때 정치 권력이 강한 나라의 왕은 제사장을 희생자로 삼고 자신은 비난의 대상에서 빠져나간다. 반대의 경우는 왕이 희생자가 되어 제사장의 권위를 지켜낸다.



1997년 대한민국은 어떤 상황이었을까? 언론, 대부분의 관료, 재계, 검찰, 지방권력, 심지어는 교육계, 종교계, 문화계마저 공화당에서 민정당으로 이어지는 독재세력의 원류가 담당하고 있었다. 여론 형성 능력의 대부분이 한 쪽 집단에 쏠려있었다는 것이다. 제사장의 세력이 왕의 세력보다 강한 형태와 유사했던 것이다. 게다가 김영삼 대통령은 그들의 적자가 아니었다. 희생양으로서의 모든 조건을 갖춘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 독재세력의 원류가 계속 정권을 담당했으면 절대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그러나 과연 그랬을까?



IMF는 70년대부터 싹튼 것이다.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으로 지탱하기에는 경제 규모가 너무 커졌다. 대수술이 없이는 언젠가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를 수술할 기회가 있었다. 단군이래 최대의 호기였다는 80년대 초의 3저 호황이 바로 그 기회였다. 그러나 80년대는 올림픽 유치니, 국풍이니, 평화의 댐이니 하는 식으로 흘러갔다. 경제구조의 개선은 전혀 없었고, 사회 간접자본 투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렇게 누적된 결과가 외환위기인 것이다. 물론 김영삼 정부에서도 IMF 위기를 막을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외환위기 사태에 대해 김영삼 전 대통령을 변호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공동 책임을 져야할 사람들이, 어떻게 보면 책임의 가장 큰 부분을 담당해야 할 사람들이 마녀사냥으로 책임을 벗어나려 했던 잔꾀를 부리던 모습은 너무도 역겨웠다. 권력의 위기, 권위의 위기를 한 사람에게 덮어 씌워 민중의 질책을 피하려는 모습은 마녀사냥의 정확한 공식 그대로였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섰다. 대한민국은 3년 만에 IMF 체재를 벗어나 세계를 놀라게 했다. 영국도 7년 이상이 걸린 일을 대한민국이 3년 만에 해낸 것이다. 잘한 일일까? 가능한 것을 한 것일까? 기적이란 매우 확률이 낮기에 기적이라 부르는 것이다. 확률은 규모가 커질수록, 다양한 요소가 개입될수록 예측도가 높아진다. 조그만 중소기업이나, 가정의 일이라면 기적적인 일도 일어날 수 있다. 로또 한 번이면 인생이 역전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구수 4,700만의 국가가 하는 일에서 기적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정상적인 방법이라면 우리나라의 외환위기 극복은 10년은 걸려야 정상이었다. 김대중 정권의 IMF체재 극복의 실상은 극복이 아니었다. 무리한 신용카드 발급을 통해 내수를 과도하게 부풀린 것에 불과했다.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었으며, 심하게 말하자면 폭탄 돌리기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김대중 대통령을 무능하고 비겁한 지도자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김영삼 정부의 외환위기 초래의 책임을 변호할 생각이 없듯이, 김대중 정부의 외환위기 극복을 폄하할 생각 역시 없다. 비록 무리한 내수진작을 통한 외환위기 극복이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일단 그 기간 중 어느 정도 경제구조 개선도 있었으며, 남북관계 개선으로 외자유치 환경을 훨씬 개선시켰다. 아니 이런 공이 없었다 하더라도 김대중 정부를 욕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김대중 정권은 김영삼 정권보다 훨씬 더 적대적인 언론환경에 둘러 쌓여 있었다. 사회 주류 계층의 대부분은 몇 십 년을 적으로 싸워 온 세력들이었다. 만일 김대중 정부가 외환위기 극복의 속도를 조금만 늦췄어도 그 역시 마녀사냥의 희생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3년 만에 외환위기를 극복하고도 세 아들을 희생양으로 바쳐야 했던 것을 생각하면 대통령 본인이 희생양이 되고, 우리나라가 또 다시 외환위기를 맞지 않을 수 있는 최선의 길을 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결과로서 노무현 정부는 300만 명의 신용불량자, 전 세계의 유래가 없이 높은 자영업자 비율이라는 부채를 앉고 정권을 인수하게 된다. 표면적 선언과는 무관하게 외환위기 극복은 여전히 진행형이었다.



현 정권이 들어선 지 4년이 좀 넘었다. 언론은 매년 명절마다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싸늘한 재래 시장 분위기를 강조했다. 그러나 대형 마트의 매출액이 어떻게 늘고 있는지는 보도하지 않는다. 어쩌다 택시를 타면 경기가 나쁘다는 하소연 일색이다. 그러나 서울의 택시 숫자가 인구수나 자동차 보급률이 비슷한 런던이나, 도쿄의 세 배가 넘는 상황이라는 것은 별로 아는 사람이 없다. 미장원 숫자가, 음식점 숫자가 우리와 경제 수준이 비슷한 나라와 어떻게 차이가 나는 지를 보도하는 언론은 없다. 경기가 어렵기는 어려운 걸까? 경기는 어렵다는데 해외 관광 경비의 지출은 점점 늘어만 간다. 스키장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매년 내장객 숫자를 경신한다. 전체 경기야 어쨌든 서민 경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외환위기가 부른 양극화는 아직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경제는 크게 좋아졌다지만, 수출 기업 위주로 경제가 회생했기에, 고용 효과가 높은 중소기업의 경제는 아직 어렵다. 정부가 이런 상황을 빨리 개선했으면 하는 바램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노무현 탓'이라는 주장이 과연 타당한 것일까?



서민의 어려움은 경제 구조가 대기업 위주로 되어있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대기업의 횡포를 막기 위한 조치들이 없이 중소기업의 육성은 불가능하다. 매출에 비하여 일자리 창출이 적은 것이 대기업의 특징이다. 중소 기업의 육성 없이 일자리 창출이 불가능한 것은 세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이 나라의 여론 주도층은 무조건 대기업에 대한 규제를 풀라고 한다. 규제만 풀면 경제 성장률이 올라가고, 우리의 삶이 좋아질 것이라고 한다. 지금 우리가 어려운 것은 정부가 반기업 정서로 대기업을 탄압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숫자를 먹고 살지 몰라도 대부분의 사람은 밥을 먹고 산다. 경제성장율 7%라는 기사만 보면 저절로 배가 불러지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경제성장율 7%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1년에 1억씩 버는 사람들을 2억씩 벌게 하면 된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고 1,000만원 버는 사람이 2,000만원 벌게 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경제는 좋아졌는데, 서민은 여전히 어려운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나 역시 현 정권의 양극화 해소가 느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실망이 한나라당으로 몰리는 것은 너무나도 비논리적이다. 대기업에 대한 규제를 풀라고 주장하는 한나라당에 지지가 몰리고, 현 정부를 사회주의라고 공격하는 조선일보가 여전히 영향력을 가지는 것을 나는 이해하기 어렵다. 숫자가 아니라 밥을 먹어야 사는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 아니 이해할 수 있기는 하다. 단 한가지 논리, 마녀사냥의 논리로 보면 이해가 된다. 모든 것이 마녀사냥 이론과 너무도 흡사하다.



우리 경제를 짓누르는 두 가지 문제가 부동산과 사교육비라는 것은 누구도 인정을 한다. 현 정부가 이를 잘 해결 못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부동산 상승을 계속 부채질한 조선일보가 어쨌든 부동산을 잡으려고 애썼던 정권을 부동산 상승의 책임으로 모는 것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 선진국 중 가장 낮은 부동산 관련 세금을 선진국의 반 정도로라도 올리려하지 세금 폭탄이라면 방정을 떨었던 것은 누구인가? 부동산 대책이 나올 때마다 또 실패할 것이라며 떠들어 복부인들에게 걱정말고 투기하라고 암시를 주었던 것은 누구인가? 국회가 법을 통과시켜 주지 않으면 정부는 무장해제를 당하게 된다. 도대체 이 정부가 정부 의지대로 일을 진행했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을까? 재단의 투명화를 위한 사립학교법에 끝내 딴지를 거는 것은 누구인가? 고등학교 시험제를 부활시키려고 끊임없이 시도하는 세력은 누구인가? 학력에 의한 임금 격차를 줄이려는 노력을 사회주의니, 파퓰리즘이니 하며 공격하는 것은 누구인가? 해외 유학 가이드를 툭 하면 실어서 해외 유학을 안 보내면 큰 낙오자나 되는 듯이 느끼도록 조장하는 것은 누구인가?



누구도 그들을 탓하지 않는다. 모든 책임은 노무현의 탓이라고 한다. 언론의 대부분과 지방정부의 대부분과 경제계, 문화계, 교육계, 종교계의 대부분을 장악한 그 교단은, 교단은 무오류 집단이며, 모든 사회악은 마녀의 짓이라고 주장한다.



대통령을 대상으로 마녀사냥을 하는 시대가 오히려 행복한 시대일 지도 모른다. 그들이 다시 정권을 잡게 되어, 사회 상층부에서 마녀를 찾을 수 없게 되었을 때를 생각하면 나는 문득 문득 몸서리가 쳐진다. 노조를 탄압하고, 간첩 사건을 조작하는 시대. 약자를 마녀사냥의 대상으로 활용하던 시대가 다시 올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끼기 때문이다.



20년쯤 전에 '내 탓이오' 스티커를 보았을 때, '내 탓이오'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 중세 유럽에서 마녀사냥을 주도했던 카톨릭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인간에 대해, 종교에 대해 희망의 싹을 보았다. 인간은 오류의 극복을 통해 발전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지금 이 사회의 주도세력에 대해 나는 아직 희망의 싹을 보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들은 무오류의 존재라 주장하기 때문이다. 대중을 향해 "모든 것은 저 마녀의 탓"이라고 주장하는 모습에서 나는 절망의 어둠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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