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요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애니메이션 분야가 돈 되는 황금알 거위에서 돈 된 적 한번 없는 애물단지가 되어가자 여기저기에서 일단 돈부터 벌고 봐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한마디씩 한다.
황금알 낳는 거위가 황금알을 못 낳자 애가 타고 마음이 각박해져 그런 것이라고 충분히 이해는 하지만 오랫동안 해왔던 단편 애니메이션 제작 지원을 없애니 마니 하는 얘기까지 나오니 이제는 한번 천천히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다들 돈, 돈 하니까 정말 돈의 관점에서 한번 바라보자.
일단 천천히 시장이라고 하는 곳을 살펴보자. 그리고 진짜 돈 벌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따져보자.
그동안 단편애니메이션이 일궈낸 예술적 성과는 이번 이야기에서는 빼겠다. (진짜 돈의 관점에서 보자 이거지..)
문화예술 산업이라고 하는 곳을 구성하고 있는 구성 요소를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해보면,
시장, 배급, 생산
지금까지 우리는 산업 실패의 요소를 생산자에서 찾으려 했다. 할리우드의 영화처럼 돈을 벌지 못하는 원인을 할리우드의 생산자처럼 생산하지 못하는 한국의 생산자에서 찾아왔던 것이다.
우리가 늘 해오던 이야기 아닌가.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는 주체가 전문가의 입장이라면 위에 말한 세 가지 요소를 동시에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가지고 있는 시장이 있는가.
그 시장에 도달시킬 수 있는 배급력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세 번째는 그 시장에 맞는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생산자가 있는가.
앞서 말한 두 가지를 따져 보지 않고 바로 세 번째로 넘어가서 생산자에게 재미있는 걸 만드느니 마느니 하는 논의를 백날 해봐야 답 안 나온다. 아! 돈으로 얘기하기로 했지... 돈 못 번다!
시장에서 돈을 버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그중 하나가 돈을 많이 들여 많은 돈을 버는 방법이다.
우리가 롤 모델로 삼고 있는 많은 할리우드의 애니메이션이 위의 방법을 쓰고 있다. 많은 돈을 들여 생산하고 많은 돈을 들여 배급하여 많은 돈을 버는 방법.
우리가 산업적인 측면에서 애니메이션을 이야기할 때 거의 이 방법이 전부이다. 그 외의 방법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두 가지 질문이 생긴다.
첫 번째 질문은 우리는 돈이 있는가?
두 번째 질문은 시장에서 돈을 버는 방법은 이 방법뿐인가.
두 질문에 공통적인 답은 ‘아니다.’ 이다.
첫 번째 질문의 답은 너무 잘 아니 통과하고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부분을 좀 자세히 살펴보자.
고도화된 시장일수록 돈을 버는 방법이 다양해진다. 그리고 그 다양한 방법에 의해 다양한 작품이 돈을 번다.
미국을 예로 보면 만 돈을 버는 것이 아니다. 나 처럼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작품도 돈을 번다. 그리고 우리가 한번 듣도 보도 못한 애니메이션도 자기 나름의 시장에서 돈을 번다. 애니메이션만 놓고 보면 와이드 릴리즈 방식이 아닌 방식으로 돈을 벌고 있는 작품은 엄청나게 많다. 큰돈 들여 크게 버는 시장이 있고 적은 돈 들여 적게 버는 시장이 공존한다.
이게 어디 미국만의 이야기겠는가. 일본 역시 편당 200억 정도의 제작비를 쓰는 지브리의 애니메이션만 있는 것이 아니다. 15분짜리 시리즈 애니메이션도 있고 단편이나 저예산 애니메이션 역시 쏠쏠히 팔려나가며 한 번에 큰돈을 버는 건 아니지만 그 만큼의 적은 돈을 벌며 시장이라고 하는 곳을 돈으로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이것이 고도화된 현대의 시장이다.
이라고 하는 정체성이 중요해지면서 개인의 욕구도 다양해졌다. 개인의 욕구가 다양해지면서 다양한 소비 욕구가 만들어지고 또 그것은 다양한 시장을 만들어 낸다.
좋은 시장이라고 하는 것은 큰돈을 들여 큰돈을 버는 생산자와 적은 돈을 들여 적은 돈을 버는 생산자가 공존하는 시장이다.
이런 좋은 시장을 만드는 방법에는 또 역시 두 가지 방법이 존재하는데
첫 번째는 큰돈을 들여 큰돈을 벌고 시장에 돈이 많이 유입하게 되어 적은 돈을 들여 적은 돈을 버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하는 방식 그리고 두 번째는 적은 돈을 들여 적은 돈을 벌다가 시장이 점점 커져 큰돈을 들여 큰돈을 버는 사람도 나타나게 하는 방법.
한국의 애니메이션 산업이 선택한 방법은 첫 번째 방법이다.
그리고 실패했다.
그래서 큰돈을 들여 큰돈을 잃게 되었다.
사실 재화가 풍부한 곳이라면 첫 번째 방법도 해볼 만하다. 하지만 한국의 영화 산업은 그렇게 재화가 풍부한 산업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너무 큰 도박을 했었다는 것이다.
그 큰 도박으로 시장의 재화가 말라붙었는데 여전히 스스로를 셈에 밝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은 첫 번째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
다양한 욕구가 있는 생산자의 의욕을 꺾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재앙이다.
한마디로 두 번째 방법을 쓰려고 하더라도 그 다양한 작품을 만들 생산자가 존재하지 않으면 두 번째 방법을 쓰고 싶어도 쓸 수 없게 된다.
이 정도 쯤에서 단편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하자. 단편 애니메이션은 개인의 창작 욕구에 가장 근접해 있는 장르이다. 너무도 당연하게 다양성이 개인 창작자의 욕구만큼이나 다양하다. (스스로 셈에 밝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자위행위라고 할 만큼 다양하다)
그리고 너무도 당연하게도 이 다양한 작품 중에는 대중적인 작품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봐도 이나 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의 경우는 대사위주의 스토리텔링이 아님에도 대중적인 지지를 얻었다.
나는 늘 이런 작품들을 보며 한국의 애니메이션 시장이 고도화되어 있다면 이런 대중성이 돈으로 연결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진 못했다.
큰돈 들여 큰돈 벌겠다는 욕구가 만들어 낸 획일화 된 시장 때문이란 말이다!!!
큰돈 들여 큰돈 벌겠다는 너희 욕구가 다 같이 돈을 못 벌게 된 가장 큰 주범이라고!!!!!
물어내!!!!
자 돈, 돈 하는 친구들아. 이제 돈 벌 생각을 하자.
급변하는 대중의 취향을 위해서라도 하나에 몰아주는 방식은 너무 위험하다.
하나에 몰아줘서 다양한 작품이 존재하지 않게 되면 몰아준 작품이 성공한다 해도 급변하는 대중의 취향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생겼을 때 그를 대체할 수 있는 돈 되는 상품이 자생할 수 없게 된다. 그럼 또 시장이 죽게 된다.
그뿐 아니라 생산자의 창작 욕구를 보장하기 위해서도 몰아주면 안 된다. 연애물이 먹힐 것 같아 연애 물에 몰아주자! 실패하면 연애 물은 안 되는구나. 아동용에 몰아주자! 실패하면 아동용은 안 되는구나. 교육용 콘텐츠에 몰아주자! 실패하면 어쩔 것인가 북미용 포르노에 몰아줄 것인가?
지금의 한국 상황에서 유일하게 시장이 돈이 넘치게 하는 방법은 적은 돈으로 적은 돈을 벌 수 있는 다양성이 보장된 시장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다양성이 시장을 활기차게 한다. 그러다 보면 그렇게 바라던 큰돈 들여 큰돈 벌 수 있는 시장이 만들어 진다.
아니다!! 적은 돈 들여 큰 돈 벌수 있는 시장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현재 한국은 기술적으로 다양한 시장을 만들기에 아주 적합한 상황이다. 인터넷을 통한 유료 다운로드 문화도 정착되어 가고 있다. IP TV도 활성화되어 10년 전의 비디오 시장보다 더 커질 분위기다. 일본의 OVA 문화가 한국에서 다른 방식으로 싹틀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스마트 폰을 이용한 앱 시장 역시 한국에서 엄청나게 활성화되고 있다.
한국의 기술적 상황은 다양성을 받아들일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다.
시기적으로 보나 상황적으로 보나 이른바 다양성의 시대이다.
오히려 단편 애니메이션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그 작품들이 시장에 도달할 수 있는 지원을 서둘러야 한다.
그래서 다양한 작품이 팔리며 다양한 자본이 유입될 수 있는 시장이 장기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야 돈 번다.
큰돈 들여 몰아주는 방식은 실패하면 한 번에 시장이 말라붙어 버리지만 적은 돈을 들여 다양한 작품이 나오면 그것들이 시장에 가서 실패하더라도 그것은 문화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문화는 시장을 스스로 형성하게 된다.
자! 뭘 망설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