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스트아크>는 어쩌다 복귀 유저를 받게 되었나?
출시 첫날 동시접속자 25만 명, 이어서 일주일 만에 동시접속자 35만 명. 지난겨울 <로스트아크> 열풍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2014년 <검은사막> 이후로 3년 만에 등장한 AAA급 PC MMORPG에 모두의 관심이 쏠렸습니다. 작년 한 해 한국인이 구글에 가장 많이 입력한 검색어는 '월드컵'도 '올림픽'도 '비트코인'도 아닌 <로스트아크>였습니다.
<로스트아크>를 들어가기 위한 전쟁, 정말 치열했죠. 게임에 접속하기 위한 '대기열'은 1~2시간을 훌쩍 넘겼습니다. 다음 날 출근을 앞둔 직장인은 회사에서 원격으로 게임을 켜놓고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단골을 대상으로 방문 시간을 말해주면 미리 <로스트아크>에 접속해주는 PC방도 생겨났다죠?
그런데 이 <로스트아크>가 예전만 못합니다. 그 '예전'이란 불과 5개월 전입니다. 실제로 게임트릭스 집계 기준, <로스트아크>의 PC방 점유율은 작년 12월 20일 이후 10%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점유율은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해 요즘은 2~3%를 오가고 있습니다. 물론 PC방 점유율이 게임의 인기를 판단하는 전부는 아니며, 게임이 현재 한국에서 서비스 중인 무수한 게임 중에 상위 10위 안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로스트아크>는 4월 3일부터 10일까지 '15일 이상 게임에 접속하지 않은 모험가'를 대상으로 복귀 유저 이벤트를 진행했습니다. 이것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통상적으로 온라인 게임의 '복귀 유저' 이벤트는 그 게임의 이탈 유저가 많이 생겨서 펼치는 모객 행사죠. 발길을 돌린 손님을 붙잡으려는 리턴 트리거입니다.
엄청난 기대 속에 문을 연 PC MMORPG가 서비스 5개월 만에 복귀 유저를 받는다는 건 드문 일입니다. 개발 기간 7년, 개발비 1,000억 원, '다시 MMORPG'로 화려하게 문을 연 <로스트아크>는 어쩌다 복귀 유저 이벤트까지 하게 되었을까요?
원론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해볼까 합니다. 우리는 왜 온라인 RPG를 할까요? 단순히 '역할놀이를 통한 성장'을 하고 싶다면 <젤다의 전설>, <엘더 스크롤> 등 대체제가 정말 많이 있습니다. 역할놀이를 통한 성장을 느끼기 위해 온라인 환경을 찾아야 할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미국의 게임 전문 조사기관 퀀틱 파운드리는 사람들이 게임을 하는 12가지 이유 중 하나로 '경쟁심'을 꼽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경쟁을 통해 남들보다 위에 서는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 게임을 합니다. 온라인 RPG, 그 중에서도 MMORPG는 이러한 경쟁심을 극도로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된 게임입니다.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MORPG)에서 성취, 즉 '강함'은 나만 즐기는 성취가 아니라 '대규모 다중 사용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성취입니다. 이것이 온라인 RPG를 즐기는 이유입니다. 여태까지 있었던 수많은 온라인 RPG 중에 경쟁심이라는 욕망을 자극하지 않는 온라인 RPG는 없습니다.
온라인 RPG에서 협동도 중요하지만 결국 '함께 해서 남들보다 강해진다'로 귀결되죠. 가족만큼 끈끈한 우리 혈맹이 남의 혈맹에게 던전을 내준다든지, 얼라이언스가 호드를 위하는 일은 일반적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게임 개발 환경의 무게추가 리소스가 덜 들어가면서도 빠른 성과를 낼 수 있는 모바일게임으로 옮겨가면서 'AAA급 PC MMORPG'는 많은 유저에게 그리운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바일게임의 홍수 속에서 꿋꿋이 개발 소식을 알려온 <로스트아크>가 특별한 관심을 받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MMORPG든 MORPG든 여러분이 한때 즐겼던, 그러나 이제는 접은 온라인 RPG를 떠올려보세요. 여러분이 게임을 그만둔 이유는 높은 확률로 이 중 하나에 포함될 것입니다.
ⓐ '토끼공주': 아 이 게임 콘텐츠가 없네. 만렙은 뭐 하라고? 할 게 더 없는데?
ⓑ '군중 속의 고독': 아 길드고 파티고 너무 싫어. 지금 끄고 싶은데 파티원 때문에 해야 하네. 내가 꼭 이 그룹에 있어야 해? 아이고 저 트롤 봐라. 와 나 쟤한테 사기 당했어.
ⓒ '고이지 못함': 아 이 게임 완전 고인물 게임이네. 이 성장 루트를 언제 다 타. 같이 하자던 애들은 저 위로 올라갔는데. 빠르게 강해지려면 현질하거나 쩔을 받아야 하네. 나는 아무리 해봐야 여기 이상은 못 크겠다 ㅅㄱ.
ⓓ '게임이 숙제냐?': 스토리, 일일 퀘스트, 서브 퀘스트, 전직 퀘스트, 파티 플레이, PvP, 수집, 강화, 던전, 이벤트, 공성전… 와, 할 게 뭐 이렇게 많아. 이걸 언제 다 해? 이거 안 깨면 내 캐릭터 못 커? 이거를 하루도 빼먹지 않고 매일 해야 한다고?
사실 이것은 모든 온라인 RPG가 안고 있는 극복 과제입니다. 다중 접속의 거대 월드에 많은 사람을 수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는 태생적입니다.
온라인 RPG의 콘텐츠는 유한하며 구조상 엔딩이 없죠(ⓐ). 다른 사람과 협력하거나 갈등하지 않으면 강해질 수 없습니다(ⓑ). 먼저 더 높은 구간에 도달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해서 따라가야 하는 입장이 있죠(ⓒ). 따라가기 위해선 앞 사람들이 풀었던 숙제를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온라인 RPG의 역사는 장르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역사입니다.
엔딩이 없는 대신에 패키지형 확장팩을 통해 계속 새 콘텐츠를 낸다든지 (<와우>), '고인물' 유저의 반발을 무릅쓰고 신규 유저를 확보하기 위해 초반부 경험치 테이블을 조정했습니다. (<바람의 나라> 등 넥슨 클래식 RPG의 초반부 레벨 디자인) '고인물'의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한 떡밥도 맞춰서 만들어야만 했죠.
길드, 파티 요소 없이 게임을 혼자 즐기고 싶은 이들의 욕구도 충족해줘야 했습니다. <와우> 처럼 레벨업 단계의 퀘스트에서 파티 퀘스트의 분량을 줄인다던가, 특정 직업군의 솔로잉을 위해 밸런스를 조정한다던가, 아니면 혼자서 협동 요소를 해결할 수 있게끔 다중 클라이언트 접속을 눈감아주는 게임도 있습니다. MORPG의 인스턴스 던전(Instance Dungeon, 인던)도 '군중 속의 고독'이 필요한 이들의 욕구를 해결해주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시간이 없는 사람에겐 돈을 내서 성장을 쉽게 할 수 있게 했습니다. <리니지>의 버프 패키지는 더 빨리 강해지기 위한 추가 결제 모델입니다. '리마스터'와 함께 새로워진 <리니지>는 얼마 전 월 정액을 폐지한 대신 '아인하사드의 축복' 효과를 30일 동안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는 상품을 공개했는데요. 역시 돈으로 성장을 구매하는 모델입니다.
게임의 문제가 도저히 해결되지 않을 때 게임을 밀어버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파이널 판타지 14>의 요시다 나오키 PD는 게임의 문제가 지나치게 많아지자 서비스 중단과 재시작을 위한 로드맵을 구축한 다음, 세계를 멸망시키고 서비스를 새로 시작했습니다.
온라인 RPG의 주인공은 유저 전체입니다. 따라서 그 세계는 <갓 오브 워>나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처럼 정합하지 않고 불완전합니다. 현실세계와 마찬가지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경쟁이 있고, 온갖 암투와 사기가 도시라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망겜이네' '섭종해라' '꼬접한다'라는 푸념이 현실세계처럼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유저들이 그 게임을 욕하면서도 계속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게임 속에 스트레스를 상회하는 극복 요소가 있다는 뜻입니다. 온라인 RPG에서 그 극복 요소란 '남들보다 강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온라인 RPG를 소비하는 패턴을 떠올려봅시다. 온라인 RPG 유저, 특히 한국 유저는 빠르게 게임의 엔드 콘텐츠까지 빠르게 도달한 다음, '롤플레잉'을 통해 '파밍'을 하면서 더 큰 '성장'과 더 깊은 '관계맺음'을 추구합니다. 아무리 많은 콘텐츠를 준비해도 유저들은 최단 경로를 찾아서 '뚝딱' 해치워버리기 일쑤입니다.
<페리아연대기>를 총괄 지휘하고 있는 넥슨의 정상원 부사장은 지난해 디스이즈게임과의 인터뷰에서 "MMORPG 콘텐츠는 뭐가 나와도 3개월이면 끝이 난다"라고 말했습니다. 작년만 놓고 이야기를 해보죠. <와우>의 <격전의 아제로스> 확장팩 콘텐츠를 3달씩이나 붙잡고 있는 유저는 많지 않았습니다. 넥슨이 야심차게 내놓은 <메이플스토리>의 최종 보스 '검은마법사'는 불과 20일 만에 처치됐습니다.
온라인 RPG의 콘텐츠는 대개 일회성 콘텐츠와 반복성 콘텐츠로 나뉩니다. 웅장한 컷씬, 화려한 그래픽, 배경과 줄거리 이런 것들은 온라인 RPG에서 일시적인 만족, 일회성 콘텐츠에 해당합니다. "아 루테란 건국 씬 좋았지", "별빛등대의 섬 퀘스트 너무 감동적이야"와 같은 감상으로 온라인 RPG를 몇 달 동안 붙잡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콘텐츠가 주는 감동과 별개로 콘텐츠를 즐기는 물리적 속도도 '뚝딱'입니다. 부캐를 키울 때 이런 일회성 콘텐츠를 또 마주쳐야 한다면 귀찮기까지 할 겁니다.
앞서 다중 접속자 사이에서 나(또는 우리)의 강함을 보여주려고 온라인 RPG를 즐긴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강함이란 어디서 옵니까? 노가다, 반복성 콘텐츠를 통해 오는 것입니다.
반복성 콘텐츠는 설계상 '뚝딱' 하고 싶어도 '뚝딱' 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쉽게 성장하면 누군가의 강함은 증명되지 않을 테니까요. 스트레스의 극복을 통한 보상을 직관적으로 주는 거죠. 열심히 해. 그러면 네가 원하는 아이템이 나올지도 모르니까. 빨리 가서 더 잡아. 그렇게 경험치를 모아. 그러면 클 수 있어.
온라인 RPG의 성패는 반복성 콘텐츠가 얼마나 재밌냐에 있습니다. 반복의 재미라는 아이러니한 개념이야말로 유저들이 오랫동안 온라인 RPG를 즐기는 이유입니다.
구몬 하는 거 같아
'중나'(중갑 나크라세나) 등 4단계 레이드에서 뭇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바드 유저 A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물론 학습지를 풀면서 재미를 느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로스트아크>는 학습지가 아니죠. 다독여주는 선생님도 없습니다. 게임이 학습지 푸는 것 같다는 이야기는 어째서 나오게 된 걸까요?
'MMORPG는 만렙부터'라는 격언을 되새기며 스토리 라인을 따라서 엔드 콘텐츠 지점에 도달한 유저를 기다리는 것은 별다른 매력이 없는 반복성 콘텐츠입니다.
실링 수급 외엔 별다른 메리트가 없는 일일 퀘스트 '에포나 의뢰' 3회, 오직 아이템 레벨 465를 맞추기 위한 '카오스 던전 3회', 부 캐릭터까지 꼼꼼히 녹이면 반나절이 다 가는, 한때 어뷰징 악용 대상이 됐던 '실리안의 지령서' 3회, 이뿐 아니라 캘린더 섬과 시간제 섬까지 챙기면 <로스트아크>만 종일 해야 합니다.
하지만 <로스트아크>의 반복성 콘텐츠는 유저들에게 강해진다는 느낌을 주지 않습니다. <로스트아크>의 반복 콘텐츠 → 파밍 노선은 아이템 레벨, 골드, 실링 수급으로 한정됩니다. 소유욕을 불러일으키는 레어 아이템의 드롭이 없습니다. <로스트아크>에서 아이템 레벨과 상관없이 갖고 싶다는 아이템이 얼마나 있나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반복의 재미가 잘 연출된 사례는 이렇습니다. 성장 과정에서 새로운 몬스터가 나온다. 이 새로운 몬스터를 공략하기 위해선 더 좋은 아이템이 있어야 한다. 이 아이템을 구하려면 특정 재료가 필요하다. 특정 재료는 다른 몬스터에게서 낮은 확률로 떨군다. 플레이어는 이 과정에서 목적성을 부여받고 반복 과정을 버텨낸다. 그렇게 플레이어는 (다른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더 강해진다.
<몬스터 헌터>에서 대검으로 몬스터를 썰던 헌터는 어느 순간 다른 무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다른 헌터들은 다 총을 쏘는데 자기 혼자 대검을 들 수는 없습니다. 상대 몬스터에서 들어오는 딜량도 너무 높습니다. 헌터는 보우건을 필요로 하고 그에 따른 빌드업을 새로 해야 합니다. 무기를 맞추고, 장식주를 추가하면서 테크를 올려야 합니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마침내 목표하던 몬스터에게 보우건 한 방을 날릴 때, 헌터는 쾌감을 느끼게 됩니다.
<로스트아크>는 어떤가요? 현재 게임에서 파밍이란 더 높은 티어의 아이템을 먹고 아이템 레벨을 높여서 다음 레이드의 입장권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에 그칩니다. 몇 번 왔으니 더 강해진다는 스택 요소, 다중 사용자 사이의 상호작용은 그 비중이 크지 않습니다. 딜 미터기도 없기 때문에 파티 플레이 중 자신의 딜량이 얼마나 올랐는지 알기도 어렵습니다.
반복성 콘텐츠 중 가장 그 비중이 큰 레이드 시스템은 그 문제가 심각합니다. <로스트아크>의 CBT 단계에서 공개된 레이드와 현재 게임의 레이드는 그 수준이 크게 다릅니다. 아래 영상의 8분 20초 구간부터 등장하는 '에픽 레이드'의 모습이 사람들이 기다리던 <로스트아크>의 레이드의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로스트아크>의 가디언 레이드는 별다른 매력이 없습니다. 유저의 성장 욕구를 제대로 보상시켜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티어가 올라갈수록 난이도는 올라가지만 보상도 비례해서 올라가지 않습니다.
가디언을 잡는 당위도 없습니다. 플레이어가 플롯에 따라 베른성에 도착하면 갑자기 가디언을 때려잡아야 합니다. 물론 '짙은 안개 능선' 섬에 들어가면 조사관 NPC를 통해 가디언 레이드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긴 합니다만, 그건 플레이어가 그 섬에 운 좋게 들어갈 때 이야기입니다.
가디언 레이드의 입장 인원은 4명으로 한정되어있습니다. 가디언 레이드의 맵은 3개, BGM은 1개뿐이라 개성이 없습니다. 가디언을 잡으러 길에 나타나는 잡몹은 스킬 한 방이면 해결 가능한, 있으나 마나 한 대상입니다. 레이드의 보스 격인 가디언의 생김새도 대체로 비슷합니다.
현재는 개선이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보스전은 긴박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컨트롤과 탱-딜-힐의 상성보다는 편중된 인기 직업군 중심의 배틀아이템의 소모로 해결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비인기 직업군이 일일 3회 가디언 레이드에 선택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일부 유저에게 해결 불가능한 스트레스로 다가왔습니다. 평소 원거리 클래스를 즐겨 했기 때문에 큰 고민 없이 호크아이를 골랐던 B는 기자에게 "레이드에 끼워주지도 않는데 무슨 게임이냐"라며 게임을 접은 이유를 밝혔습니다. 돌아선 그의 마음은 밸런스패치와 매칭 시스템 변경으로도 바꿀 수 없었습니다.
현재 <로스트아크> 유저들이 반복성 콘텐츠를 즐기는 배경에는 '강해질 수 있다는 믿음'보다는 '지금 이걸 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 반복성 콘텐츠에는 나만 하는 것, 나만 얻을 수 있는 것이 특별히 없습니다. 모두 시간 되면 똑같은 일을 하고 얻는 것도 대동소이합니다.
일회성 콘텐츠 연출에는 공을 들였으면서 정작 오래도록 머무는 반복성 콘텐츠는 심심하다는 것이 현재 <로스트아크> 유저들의 공통적인 반응입니다. 학습지를 풀면서 재미를 느끼는 이유는 매일 매일 정해진 양의 학습지를 풀면서 머릿속에 남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헬스장에서 아무리 꾸준히 근력운동을 해도 몸에 근육이 붙지 않는다면 아무리 시설이 좋고 트레이너가 친절해도 헬스장에 갈 동기를 잃어버리겠죠.
<로스트아크>는 전투를 제외하고도 방대한 볼륨의 콘텐츠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항해, 수집, 생산, 카드 배틀, 호감도 등 다양한 콘텐츠가 게임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로스트아크>의 '한계 극복 시도'는 방대한 양의 콘텐츠를 천천히 풀어가며 유저들을 계속 붙잡겠다는 모델로 보입니다. 점차적으로 유저들이 즐길 거리를 내서 '토끼공주'들이 지겨울 틈을 주지 않는 거죠. 흔히 말하는 '테마파크형 RPG' 모델입니다.
"내 놀이동산에 계속 머물러 줘"라는 콘텐츠의 의도와 유저의 소비 방식이 톱니바퀴 물리듯 맞아떨어져야 테마파크에 유저를 가둘 수 있겠죠? <로스트아크>의 테마파크를 한 번 둘러봅시다. 현재 <로스트아크>에서 생활형 콘텐츠는 배틀아이템을 잘 팔 수 있는, 돈 되는 쪽으로 치우쳐있습니다. 식물채집, 벌목, 채광, 수렵, 낚시, 고고학 6가지 콘텐츠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화염병이 잘 팔리면 채광, 암흑폭탄이 잘 팔리면 벌목이 주목받을 뿐입니다. <로스트아크>에서 스톤은 돈벌이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고고학 콘텐츠를 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돈 되는 기술에 사람이 모이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로스트아크>의 생활형 콘텐츠는 그 이상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로스트아크>의 '대항해' 콘텐츠도 육지를 바다로 옮겨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바다에는 해적도 있고 섬도 있고 수중 탐사나 인양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보상이 적어서 쉽게 정체 구간에 도달하게 됩니다. 게임의 대항해란 '행운의 기운'을 쓰는 사람에게는 돈벌이고, '행기'가 '풀충전'이 돼도 쓰지 않는 사람에게는 이동시간만 잡아먹는 불필요한 과정입니다.
생산 콘텐츠를 도입해 반복의 재미를 추구한 다른 MMORPG를 떠올려봅시다. <아키에이지>의 생산은 무역이나 길드의 이권 등 게임 전체의 경제 로직과 연결됩니다. <마비노기>는 초보부터 고수까지 모두 애용하던 아르바이트 시스템, 직접 생산의 비중이 큰 아이템 구조 등으로 생활형 콘텐츠를 게임의 필수 요소로 설계했습니다. <로스트아크>는 벌목이면 벌목, 채광이면 채광 배틀아이템을 제작해 주머니를 채우는 정도입니다.
<로스트아크>와 마찬가지로 전투 이외에 항해, 인양, 고고학, 낚시 등의 콘텐츠가 있는 <대항해시대 온라인>이야기를 해봅시다.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 엔드 콘텐츠로 가려면 무조건 랭작을 해야 합니다. 빨리 가려면 항해 스킬을 랭작해야 하고, 많이 사려면 거래 스킬을 랭작해야 합니다.
<대항해시대 온라인>은 기본적으로 실제 '대항해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향신료의 가치가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게임에서 향신료 무역은 돈벌이의 꽃이죠.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 품목마다 있는 교역 스킬은 그 품목을 더 많이, 그리고 싸게 살 수 있게 합니다. '향신료 거래'는 향신료를 더 많이 살 수 있게 하는 기술입니다.
하지만 이 기술은 쉽게 배울 수 없습니다. '향료 거래' 3랭을 찍어야 하며 캘리컷의 NPC에게서만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높은 부가가치가 있는 육두구나 메이스를 많이 사려면 인도에서 미리 후추를 사고 파는 게, 다시 말해서 랭작을 해두는 게 좋습니다.
이뿐 아닙니다. 동남아시아의 향신료를 유럽에 팔기 위해서는 동남아시아 입항 허가, 발주서 수급, 해적 대비책, 물리적 시간(항해)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따라서 향신료 거래만 올릴 게 아니라 부가적인 작업도 빠짐 없이 해둬야 합니다. 예를 들어 동남아시아까지 빨리 가기 위해선 항해 스킬도 올려놔야겠죠.
하지만 이 모든 고생을 극복하면 플레이어는 게임 안에서 막대한 실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는 그때부터 두캇(화폐)을 쓸어담을 수 있습니다. 거래 랭이 높기 때문에 남들이 서너 번 오가야 살 수 있는 향신료를 한 번에 구매할 수 있죠.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 향신료 거래 고랭은 '다른 신분'으로의 입구와 같습니다.
암보니아(향신료 구매처)에서 향신료를 사고 있으면 '파티 한 번만 맺어달라'는 부탁을 받게 됩니다. 파티를 맺고 있으면 파티원의 구매 스킬을 같이 적용받을 수 있거든요. 어떤 도시를 잡고 '투자'를 쏟아부어 특정 도시의 최대 투자자에 오를 수도 있습니다.
그때부터 플레이어는 그 도시 뿐만 아니라 국가의 VIP가 됩니다. 모두의 선망을 받는 대상이죠. 투자전 등으로 길드에 돈을 벌어다줄 수 있으니 꼭 모셔와야 할 귀인입니다. 엄청난 시간을 소모했지만, 그만큼 강력한 캐릭터가 될 수 있습니다.
<대항해시대 온라인> 케이스는 <로스트아크>의 배틀아이템 장사로 주머니를 채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득입니다. <로스트아크>의 생활형 콘텐츠의 목적은 돈벌이에 한정되어있으며, 이는 유저에게 특별한 우월감을 주지 못합니다. 준비한 콘텐츠는 많지만 보상은 적어서 애착이 생기지 않습니다. 비유하자면 넓은 바다에 뛰어들었지만 닻을 내리기엔 그 깊이가 얕은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온라인 RPG는 태생적으로 문제를 안고 있으며 그 역사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장르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였습니다.
<로스트아크>에는 성장에 따른 보상(아이템, 딜량, 남들 앞에 강한 나의 모습)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아서 반복성 콘텐츠의 꾸준히 즐기기 버겁고 동기부여가 되지 않습니다. 전투부터 생산형 콘텐츠까지 통틀어 현재 게임에는 장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을 찾기 어렵습니다.
24일, 게임에 신규 클래스 '창술사'가 추가됩니다. 사전 예약 페이지까지 열어 모집을 했던 창술사지만, 게임에 클래스 하나가 추가된다고 게임 전체가 바뀌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울러 작년 발표에 따르면 <로스트아크>에는 '로그라이크 모드'의 추가가 예정되어있습니다. 지금의 <로스트아크>에 로그라이크가 들어간다면 또다른 '구몬'이 될 공산이 큽니다.
온라인 RPG의 고질병을 해결하고자 하는 <로스트아크>의 처방전이 분명하지 않다면, 게임의 하락세는 이미 예견된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