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안병하 경무관
1928~1988
강원도 양양군 출생. 육사 8기 출신으로 1961년 경찰에 들어와서 1979년 2월에 전라남도 경찰국장에 임명되었습니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신군부 세력은 경찰에게 강경 진압 및 발포 명령을 내리지만,
안병하 국장은 문득 4.19 혁명 당시 경찰이 시민들을 상대로 발포한 불행을 떠올렸고,
"상대는 경찰이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우리 시민들이다. 시민들을 향해 발포할 수 없다 "고 하며,
강경 진압 및 발포 명령을 거부하고 학생 및 시민들의 시위에 온건하게 대처할 것을 일선 경찰들에게 명령했습니다.
특히 돌발적인 유혈 사태를 대비해 오히려 일선 경찰들로부터 총기를 회수할 것을 명령해 1960년 4.19 혁명 때처럼
경찰에 의한 사상자가 발생하는 것을 막았습니다.
그러나 5월 26일 시위진압 실패의 이유로 직위해제 당하고, 이후 신군부 세력에게 '직무 유기 및 지휘 포기' 혐의로
체포되어 보안사 동빙고 분실로 끌려가 10여일동안 혹독한 고문을 받고, 자진 사직이란 명목으로 경찰 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이 때의 후유증으로 1988년 사망했습니다.
고 안병하 경무관은 죽기 전 유언으로 "신 군부에 동조하지 않은 자신의 판단이 옳았으며,
언젠가는 역사가 자신을 알아줄 그 날이 반드시 올 것이고, 가족들 모두 국립묘지로 나를
반기로 오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라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2005년
깨어있는 의식이 있다면 느릴 지라도 역사는 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