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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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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설] 아름다운 악몽 (0) 2013/03/10 PM 11:42

오랫동안 두통에 시달려온 터라 이마에 손을 올리려다, 늘상 이마를 어루만지던 행위는 더이상 불필요하다는 생각에 손을 제 위치에 내리려 했다. 나의 팔은 단막된 영상처럼 서서히 내려가다. 가슴에서부터 따갑게 갈라졌고, 무수한 입자로 분해되어 연기와 같이 날아가 버렸다. "뭔가 이상하다." 손가락을 편뒤 천천히 앞, 뒤로 돌려 보았다. "손의 위치를 파악 할 수가 없다." 눈에 이상이 생겼다는게 아니다. 단지 시각으로는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미각을 제외한 후각, 청각, 촉각도 마찬가지였다. 미각의 이상여부는 당장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급한 마음에 떠올린 생각이라고는 아랫 입술을 조금 깨물어 피 맛을 느낄 수있는지 확인해 보는 것이었지만 아직까지 그 정도의 다급함은 없기에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다급함이란 내 몸안에 있는 숫자가 급격하게 줄어 들거나 많아질 때 발생하는 심리적 변화를 말한다.)



머리가 정상적으로 돌아오니까 이 번에는 다른 곳에서 오류를 일으키는 것인가? 아니면 무리하게 머리의 제 기능을 발휘하다 보니 내몸 어느 한 곳에 과부하라도 걸린 것인가? 이 세상 나 이외의 것은 없는 듯 했다. 외로움과 싸워온지 수 차례 그 동안 쌓인 공허함은 내 몸을 가득 채운지 오래 였다. 나의 근본적인 고통은 혼자라는 불안감이다. 나는 생각했다.


"누군가와 대칭이 되어 평온을 얻을 수없다면, 나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 되어 시작의 창조주가 되리라"
우선 내가 위치한 지점을 시발점으로 지정하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 것은 다수의 생명체인 인간이 하나의 집합체가 되어 안정됨을 찾기 위한 수단과 의사이며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무 것도 없는 것에 의미가 부여 되면서 공허함을 메꿔 넣을 수있었고,


이미 부여된 의미들은 시간과, 공간, 움직임 그리고 기억을 통하여 자가 발전식으로 또 다른 의미들을 만들어 냈다. 여기서 시간에대해 논해보자, 시간이 정확히 무엇이다 말 할 수 있는 가? 삶이 시작되고 죽음에 이르기 까지를 시간이라 하는가, 해가 뜨고 달이지는 별들의 순환을 보고 결정지음을 말 하는가, 일이 발생하는 순서를 시간이라고 해야하나, 기억,

약속 아니면 변화...
시간은 무엇이라고 해야하나?

종교의 믿음에 의하면 이세와 윤회로 영원한 삶을 산다고 한다. 영원한 삶은 현재와 지금만 존재할 뿐 시작이 어디 부터 였는지, 끝은 언제인지 알 수없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 진정 죽음이 끝이 아니라면 시간은 존재 할 수없다. 하지만 분명 시간은 존재한다. 신이 태초에 인간을 저울질 했다던 그 때 부터 기준은 메겨지지 않았는가, 단지 인간은 신을 따라 기준을 세우고 법과 질서를 만든 것이다. (법과 질서는 시간에 의해서 거미줄 처럼 얽혀 만든 규칙이다.)

시간이란 기준을 세워 놓은 것, 기준을 정 위치에 놓지 아니하고 세워놓으면 계속해서 솟아 오르는데 우리로서는 그 끝이 어디 쯤인지 예측은 할 수있어도 정확히 어디인지는 가늠 할 수 없다.

알 수 없는 막연함 그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두려움이었다. 시간은 알 수없는 두려움, 즉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을 대비하여 평온을 존속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 동안 내가 부여해온 수 많은 의미들은 보내온 시간과 공간만큼 하나, 하나 정보로서의 충분한 역할을 역임한 채 내게 돌아왔다. 난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영역을 넓혀 갈 수있었다. (영역 확장의 일은 수그러 들지 모르는 불안감의 해방이었다) 정보를 얻기위한 작업은 매우 피곤한 작업이다.


최초에 이루어지는 의미 부여작업에 필요한 가장 큰 재료는 아무것도 아니며 알 수 없는 상태의 완전 무결한 "무"가 필요한데, 이 곳의 자원은 그리 넉넉한편이 못 된다. 언젠가 일어날 자원 고갈로 당황하지 않도록 적절한 조율을 해야 하는데 이게 여간 까다로운게 아니다. 모든 것에 내가 만든 일정한 규칙과 규율을 발라 놓고 머리 속 대뇌 질 앞 쪽 삽잎구에 넣어 고속회전 시켜 생산 해낸 의미는 눈과 입, 행동을 통해 방출되어 순회한다. 그 사이 기다림과 인내, 고독을 가지고 기다려야 비로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율법서에 쓰여진 신은 자신이 만든 인간을 아끼고 사랑한다. 하였다. 그러한 신이 인간을 시험에 들게하사 올바른 선택을한 인간만을 사랑했다 한다. 올바른 선택이란 신이 가지고 있는 기준이지 않은가? 태초에 태어난 인간은 신의 기준을 알 방법이 없었다.



그러므로 신이 원하는게 무엇인지 몰랐다.



인간에게 있어서 선택의 기로는 매번 발생하는 고비였다. 애초에 자신의 취향에 걸 맞은 작품을 만들었다면 인간을 저울질 할 수고는 필요없지 않은가? 저울기의 기준은 선과 악이었다. 이 것은 신이 인간을 만든기 전에 만든 것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기준 점으로 만든 것이다. 그는 우리를 바라보고, 수고하기 만든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원해서 행동으로 옮겨 만든 것이고, 신 또한 인간 처럼 고생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율법서에서 처럼 신은 자신이 만든 인간을 아끼고 사랑할 것이라 믿는다. 선과 악을 나누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우리는 선과 악을 천국과 지옥이란 공간으로 만들어 분별하고 있다.



천국이란 자신이 좋아하는 모든 것으로 이루어진 곳이고,
지옥이란 자신이 싫어하는 모든 것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즉 천국과 지옥은 나자신의 삶 속에서 태어 났으며, 지금 내 머리 속에서 끈임없이 경합을 벌이고 있다.
(그러므로 난 고뇌한다)



천국과 지옥은 개개인 마다 뇌의 크기와 활동력, 자극, 유통기간 간 등이 다르므로 차이가 있을 수있다. 하지만 사회의 획일 적 교육을 끈임없이 받아 오면서 개개인의 차이는 점점 줄어들고있다.



불행은 의도된 모든 일에서 발생하며, 타이밍은 항상 맞지 않는다.

축척된 시간의 방출은 혼란을 가중 시킬 뿐 내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동안 내 안에 쌓인 그리움은 자신들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헤메기 일 수 였다. 얼마 간 이렇게 지내야 할 것 같다.

걸음이 내 발을 재촉했다. 무언의 쫓김으로 김장감이

더 하는 것 같다. 생각과 사상이 다르다는 것은 지금의 나를 말 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추구해온 모든 것이 무너지려 할 때 난 내 꿈을 붙들고 사상을 운운한다. 내 주위에 광명이 내려오기를 바라는 꿈을 꾼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꿈을 꾼다. 매일 밤 같은 장소에서

난 산책을 한다.

시간은 알 수 없다. 내 꿈에 시간은 없다.

시간은 죽음을 대비하기 위한 수단 이라 정의 지었던 난 꿈속에서만은 모든 수단을 포기한 채

죽음 앞에 나 자신을 내버려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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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쓴 글 입니다.

카테고리는 어디로 할지 몰라 도서로 체크하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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