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최초로 bl을 접한건 아마 고딩시절 봉신연의 bl패러디물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뭐 이런걸로?
원본 그림체와 거의 차이 없는 팬픽 이미지들, 특히 양전과 태공망이 껴안고 있는걸 보면서 남자들이 너무 찐한데? 하고 얼굴을 찌푸리면서 보다 어느순간 어울린다고 생각하게 된듯 하다.
큰 거부감은 없었다. 나는 그 전부터 순정만화를 읽었고, 남성만화의 거친 선이 가득한 만화보다는 여성만화가의 둥글고 미려한 그림체를 더 선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까지는 많았던 책 대여점. 거기서 붉은 책이 많았던 코너에서 레드 시리즈라 써져있는 만화 중 한 권을 빌려 읽은게, 처음으로 본 제대로 된 18금 bl상업지였다. 그리고 당연히 문화쇼크~ (헠헠)
참고로 그 작품은 내가 보게 된 최초의 bl물 기념(?)으로 수년 뒤 중고책방에서 구입해 현재도 소장하고 있다. ㄷㄷㄷㄷ....
그리고 그 뒤로 bl을 보면서 동인남으로 지내왔던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bl을 왜 보는가? 라고 말한다면 나에게는 솔직히 첫번째가 그림체다. bl장르의 그림체가 크로우즈 같았다면 난 아마도 bl을 보지 않지 않았을까ㅋㅋㅋ
bl은 복잡한 장르이다. 개중에는 여성들의 남자들에 대한 일그러진, 혹은 싸구려 이미지가 결합된 성性적 판타지라 보는 시선도 있다. 일정 부분은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bl은 여성만화, 순정을 대표하는 장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미 십수년 전에 bl은 순정장르의 50%를 차지하고 있었다. bl은 더이상 마이너가 아니라, 여성만화장르를 대표하는 메이저가 되었다.
남자로 태어나서 남성장르만 읽는다면, 아무리 만화를 좋아하고 많이 읽는 사람이라도 나는 사실상 전체 만화의 50%밖에 알지 못하는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복 받았다. 슬램덩크 드래곤볼 북두신권 등의 남성장르, bl로 대표되는 여성장르 등을 모두 읽었으니 나는 남들보다 폭 넓은 만화세상을 즐겼던 것이다.
사실 이런 블로그, 마이피는 내가 한창 bl창 인생(?)을 살았을 때 했어야했다.
이젠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리고 나도 변했다. 이제 bl을 많이 보지 않는다. 예전엔 좋아하는 작가와 좋아하는 작품을 쫙 정리해두고는 했는데, 사회생활을 하고 치이고 지쳐 집에 돌아오면 잠들고. 가끔 미친 남자새.끼가 bl을 보고 자빠졌네 회의감이 들어 그 때까지 모은 레어한 bl 작품들을 모조리 폐지통에 넣어버리고 지금까지 후회하기도 하고.
bl을 떠나 정확히는 만화를 거의 보지 않는다. 게임도 새로운건 하기 싫어지는 그런 나이가 되었다.
예전보다 정보 얻기 엄청 쉬운 세상이 됐건만. 막상 새로운 작가, 새로운 작품을 찾아보기엔 이젠 힘들다. 새 것을 받아들이기엔 이제 머리가 굳었다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bl도 예전에 비해 많이 변화해왔다. 내가 한창 bl만화와 소설을 보던 시기는 높은 사회적 지위와 절륜한(?) 능력, 정력-.- 을 갖고 있는게 공인 작품이 많았다.
"나는 남자를 사랑하는게 아니라 사랑하게된게 너였다" 같은 오글거리는 문장도 꽤 많이 나오고는 했다.
공은 다른 일반인 수컷들을 벌벌 떨게하는 카리스마 가득했고, 수는 천상 꽃미남, 혹은 미소년으로 속절없이 공 아래 깔리는 작품이 많았지만 점점 시간이 흐르며 공과 수 모두 평범하게 변해갔다.
그리고 강수(성격이 아주 괄괄한 수), 지랄수 등이 나오는 bl소설이 인기를 많이 얻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많은 유행이 지나갔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가장 변하지 않는건 결국 사랑이리라.
bl은 결국 사랑을 말하는 장르다. bl은 남자작가라면 도저히 생각할수도, 따라할 수도 , 묘사할 수도 없는 감수성이 있다. 일반 순정에 비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기에 더욱 치명적으로 아름답고, 그것을 접근하는 시각과 방법, 묘사에서 작가의 역량이 드러난다. 이런 부분이 내가 bl에 빠지고 아직도 좋아하는 이유가 아닐까.
첫 글이 너무 길었는데 뭐 솔직히 내가 쓰고 싶은 부분은 엄청나게 많다만 이거 쓴다고 남들이 뭐 보겠어? 그러니까 대충 줄이는게 낫지.
마이피는 내가 좋아하는, 혹은 완성도 높거나 재미있는 bl작품들을 리뷰하고 소개한다는 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그 외에 심오한 동인계, 여덕의 이야기도 (거의 모르긴 하지만) 아는 대로 써볼 생각이다.
그렇게 이 순간부터 남덕후의 메타 루리웹 한가운데에서 bl을 외치겠다.
bl 전문 마이피 시작해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