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청나라의 황제가 아마 중국역사상 3손가락안에 꼽히는 최고의 황제인 강희제일겁니다.
이완용과 비교할 수 없는 한국의 은인이라 봐야죠.
북벌론 자체가 판타지인게 삼번의 난이 진압된 가장 큰 이유가 상대가 강희제라서 입니다.
중국에서 최고의 황제 3명을 뽑을때 중국인도 아니라 만주족인 강희제를 뽑을 정도면 얼마나 탁월한지 알 수 있죠.
오히려 바보처럼 북벌했다가 강희제에게 털리고 주변나라들이 강희제에게 정복된 것을 볼때 오히려 그거 안알려주고 멍청하게 조선에서 북벌났으면 지금 한국은 존재하지 않고 중국의 일부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북벌론에 호응 아무도 안했음.
조정 내부에 이미 친명파가 없었고 명나라가 무너진걸 봤기에 겉으로만 재조지은 이었지, 청나라에 반기들고 싶어하지 않았고
효종도 북벌론 외친게 조정내부와 산림에서 소현세자의 적통이 대를 안 이어서 효종을 인정 안하고 있었기에
인정받을라고 존나 외치고 송시열이랑 송준길 양송을 우대했음.
그 결과 효종이 죽어갈때 산림의 힘이 비대해져서 조정이 유명무실해지고 산림에 은거한 송시열이
숲속에서 영의정처럼 조정을 좌지우지하며 지내서 다음대인 현종이 재위기간 내내 얘네들 제압하느라고 쌩고생을 했음.
그리고 결국 합리적으로 무혈진압에 성공하고 지난 50년간 거대해져있던 서인을 누르고 남인을 격상시켜
백중세를 이뤄냈으나 그 스트레스가 심해서인지 일찍죽고 그 다음에 뒤를 이은 숙종은 아버지처럼 논리적으로 애들 제압하는게 아니라 피비린내 나는 숙청으로 자기 왕권 강화하며 신권을 유린함.
그 덕분에 남인 씨가 말라서 이후 영 정조 탕평때 남인 애들 찾아보기가 힘듬.
오죽하면 정조시절 시파 소론 남인 다 합쳐도 노론 벽파 하나가 안될 정도로 심각했음.
추가로 북벌론은 효종시절 대두된게 아니라 현종시절 대두됐는데 이 북벌론 카드를 꺼내든게 송시열이었음.
왜냐면 송시열이 현종한테 논리적으로 개떡발리면서 산림의 유종으로서의 입지가 상당히 흔들리고 무너지던 상황이라 효종과 자기가 북벌을 얘기했다면서 화제를 돌리며 자기 입지를 강화할라고 꺼내듬.
그러나 그런다고 송시열 입지가 나아질리 없었는데 그 순간 현종이 죽으면서 다시 송시열은 건재하게 됨.
이상 댓글로 배우는 조선왕조실록 효종-정조편이었습니다.
아 김자점은 친청파 인사중 하나였지만 그가 나가리 된건 그 아들내미 때문이었음.
본인이 청에 고변한것도 있지만 효종은 부왕인 인조의 유언 때문에 김자점을 배려해서 유배보내는 선에서 그침.
그러나 아들의 역모 덕분에 목이 잘림.
특히 저 김자점은 효종때 북벌론이 확산되자 청나라에 북벌을 꼰질름...
이완용과 동급인 놈들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