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초반이였습니다, 당시 저는 중학생이였고 의료기 AS를 맡고 계셨던 아빠를 따라
봉고차를 타고 주말에 여러 동네를 돌아다녔던 기억이 있습니다. 명목은 집에서 티비랑 컴퓨터만 볼바에 아빠일도 배울겸,
바람도 쐴겸이였습니다만.. 아빠가 햄버거나 돈까스 같은 군것질거리를 많이 사주셔서
나중엔 식도락 여행으로 목적이 반쯤 변질되었지만요ㅎㅎ
그래도 덕분에 여러 계층,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세상엔 좋은 사람도 많지만
반대급부로 선하지 않은, 마음속에 선보다 악의가 더 많은 사람들도 만나는등 어린 나이에
세상구경을 한 긍정적인 측면도 어느정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저와 아빠가 수리도구를 돌라매고 AS가 필요한 가정에 방문하면
과일이나 음료같은 간식을 내놓으며 굉장히 고마워하던 인심좋은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었던 반면, 수리과정 내내 저희가 뭐라도 훔칠 도둑놈인것 마냥 의심으로 눈초리로 지켜보다가
최소한의 출장비도 못내겠다하며 결국 외상을 하고 돌아간 집도 있었지요.
그런 과정들중에 기억나는 집이 하나 있습니다.
주공아파트에 사는 가족이였는데 아빠는 한국인, 엄마는 일본인인 다문화가정이였죠.
아빠되는 사람은 밖에 나가면 술만 먹고 들어오고
집에서도 후줄근한 옷차림으로 TV만 보는, 당시 기준으로 놈팽이라 불릴만한 사람이였습니다만
일본인 아내분은 그런 남편을 두고 있음에도 굉장히 성실하고 내조도 잘하는 사람이였습니다.
차상위 계층이여서 일거리가 달리 없었지만 주방일도 하고, 학교 급식 노동자로도 일해 번돈으로
남편과 자식들을 전부 먹여살리는 전형적인 현모양처였습니다. 잠깐잠깐 AS하러 드나들때는
어떻게 저리 서로 동떨어진 사람들이 결합해서 살게되었을까, 왜 저런 남편을 두고 이혼을 안하고 같이사나 싶었지만
나중에 동네 이웃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여자가 과거에 통일교 합동결혼식으로 남자를 만나서
한국에 들어와 자식 낳고 살고있던 모양이더군요.
그것도 그때 당시 기준으로도 옛날일이 되버려서 지금은 통일교를 믿지않고 살고있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그런 종교적인 연결점도 사라진 마당에 왜 자식들을 데리고 상대적으로 나은 모국인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냐는 질문은 사라지지 않은채 제 관심점은 흐지부지 종결되고 말았습죠.
얼마남지 않은 사랑의 감정 때문인가 싶지만은 그 부부는 통일교에서 주선해줘서 연애결혼도 아니고, 얼굴도 모른채 결혼한지라
사랑때문도 아닐거고..아니면 자식들 때문인게 가장 유력하지 않을까 싶네요, 멋모르고 통일교를 믿고, 거기서 주선해준
합동결혼식으로 한국에 들어와 애까지 낳은 마당에 덥썩 일본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왔다 싶은걸까요?
암튼 그렇습니다, 최근에 통일교에서 또다시 문제 많은 합동결혼식을 치뤘다해서 옛날 기억이 나 끄적여보았네요.
두서없는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