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의 게코도마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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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자] 시 한편 - 에이론(Eiron)의 독백 (0) 2010/12/07 PM 01:05
에이론(Eiron)의 독백







산그늘 지워지고 강물 소리 꿈에나 보이는

난쟁이 지붕들이 다닥다닥 붙은 곳에 이사를 와서

이렁저렁 닷새를 살다 보니

삶이란 본래 시끄러운 것인 걸 새삼 알겠다

처서가 지났어도 입이 삐뚤어지지 않은 모기 소리

귀뚜라미 소리 찌르라미 소리 개 짖는 소리

밤새도록 우는 도둑고양이 울음소리

삐걱거리는 대문 여는 소리

궁합이 맞지 않는 창틀과 창문이 싸우는 소리

부부싸움에 뭔가 박살나는 소리

술과 술이 엉긴 개새끼 씨팔놈 잡놈들의 육두문자들

폴리스 카의 경고음과 호루라기 소리

그리고 참 먼 귀를 바짝 대는 별들의 웃음소리

또 청(淸)한 은하수를 건너는 달의 숨소리

어두운 골목의 가로등이 눈 껌벅거리는 소리

가지를 친 적이 없는 나무가 바람을 뱉어내는 소리

그리고 새벽이면 샛별에 걸리는 닭울음소리

천지창조 이전의 카오스가 어쩜 이런 것이렷다

내 이제 비로소 귀를 가졌다

칡넝쿨 속에 살면서 짐짓 고요한 얼굴들

‘안녕하십니까’를 뜻도 없이 뱉는 입술들

멀리 그것들은 정녕 심장이 뛰지 않는 조화(造花)였다

가는 것은 가는 소리를 내고

오는 것은 오는 소리를 내고

부딪치니 부딪치는 소리를 내고

심장이 뛰니 그냥 헉헉 흑흑 뛰는 소리를 내고

그러고도 바람의 강물에 정(靜)히 정(淨)히 씻기는

목자를 기다리지 않는 검은 양들의 초장(草場)

내 이제 비로소 눈을 가졌다

바야흐로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있으니

새파란 감은 어떻게 익는가

은행은 어떻게 영글고 은행잎은 어떻게 물드는가

지붕에 서릿발이 앉으면 굴뚝에서 어떤 연기가 나는가

김장 김치에 범벅이로 묻는 고춧가루는 어떤 색깔인가

바람은 어떻게 낙엽을 끌고 서쪽으로 가는가

시나브로 겨울이 되면 함박눈은 어떤 옷을 입고 오는가

봄은 어떤 색깔로 수챗구녁에서 피어나는가

내 이제 비로소 기다림의 눈과 귀를 가졌다

산그늘 지워지고 강물 소리 꿈에나 보일락 말락

멀었던 하늘이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그네를 타고 있다
[출처] 에이론(Eiron)의 독백|작성자 시인박


p.s 학교에서 이게 뭔짓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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