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가락질과 식사예절
젓가락질을 '올바르게' 하는 것은 식사예절입니까? 네, 맞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식사예절은 좀더 복잡합니다. 어른보다 빨리 식사를 끝내면 안 됩니다. 그릇을 손으로 들고 먹으면 안 됩니다. 수저를 밥그릇에 걸쳐 놓으면 안 됩니다. 국물을 마실 때 소리가 나서는 안 됩니다. 수저가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가 나도 안 됩니다. 일단 이쯤에서 멈춰 볼까요.
자, 당신은 식사예절을 정확하게 지키고 있습니까? 조금전에 당신과 같이 밥을 먹은 사람은 어땠나요? 유심히 지켜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수도 있겠지요. 제 이야기를 하자면, 모든 식사예절을 정확하게 지키지 못합니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제 가정교육이 잘못 되었다고 자책하지는 않습니다.
저의 '무례함'에 대해 변명을 하기에 앞서, 그렇다면 과연 '예'가 무엇인지 검색해 보고 오겠습니다.
검색 결과: '예'의 유래
예, 예의, 예절, 같은 말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들까요? 뭔가 고상하고, 우아하고, 그래서 소중하게 지켜야 할 것 같은 이미지가 연상됩니다. 이것은 유교의 영향 때문입니다. 적어도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그렇겠지요.
유교가 이상향으로 삼은 나라는 주나라였습니다. 그래서 주나라 왕실과 귀족의 제사 방법, 나아가 생활습관을 본받기로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걸 지키지 못하는 자는 인간의 자격이 없다', 라는 좀 과격한 주장까지 나오게 됩니다. 그러니까 젓가락질을 잘 못하면 가정교육을 떠나서 짐승이 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때도 젓가락질을 했었던가요?)
지금 보면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춘추전국시대, 전란의 시기를 거치며 사람들의 생활이 피폐해져 갔습니다. 다른 의미에서 진짜 짐승과 같은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도 있었죠. 그래서 공자와 제자들은 사람들의 삶을 회복하고 망가진 공동체를 일으키고자 했습니다. 그러기 위한 여러 방법 중에 하나가 바로, 젓가락질!은 아니고, 일정한 규칙과 생활습관의 교육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다른 사람에 대한 존경, 인간의 도리 같은 것을 덧붙여서 지금의 '예'라는 개념이 만들어집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예는 '왕실의 규범+인간성'입니다. 앞의 것이 형식, 뒤의 것이 정신이 되겠지요. 참으로 먼 옛날의 이야기입니다.
그림자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조금 음험한 기운도 느껴집니다. 백성들에게 왕실의 규범을 가르친다. 여기에는 확실히 신분제 사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물론 꽤나 오랫동안 사람들은 정말로 신분제 사회에서 살았으니까요. 그렇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예절을 신분을 가르는 도구로 사용하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고급과 저급, 개념과 무개념, 제대로 된 가정과 잘못된 가정까지. 이런 태도에는 예의범절의 정신,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와 같은 것은 쏙 빠져 있습니다.
이것은 젓가락이 아니다
다시 맨 앞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문제가 되었던 주장, "서툰 젓가락질은 가정교육의 실패"였던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젓가락질을 못하는 건 젓가락질을 못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건 양치질을 빨리 하는 것, 신발끈을 느리게 묶는 것, 넥타이 메는 법을 17가지나 아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의 자잘한 여러 부분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젓가락질 때문에 밥을 천천히 먹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 그 사람은 밥을 천천히 먹는 사람이 되겠죠. 좋아요, 그 사람의 부모님은 젓가락질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바빴을 수도 있습니다. 좀더 무심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잘못된 건가요?
우리는 세상을 살아나가면서 수많은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합니다. 모든 것이 완벽할 수 있을까요? 아니, 모두 '표준'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할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강요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의심해볼만 합니다. 스스로를 왕족이라 생각하는 집단, 귀족이 되고 싶은 집단, 보이지 않는 계단을 만들어서 그 위로 올라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일 수도 있으니까요. 형식에 집착하고, 그걸 따르지 못할 경우에 비아냥거리고, 그것으로 우월감을 느끼는 사람들말입니다.
임방이 예의 근본을 묻다
그렇다고 식사예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을 싸잡아 비난할 수는 없을 겁니다. 저런 음흉한 의도 때문이 아니라 그냥 '습관'적으로 그럴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여전히 젓가락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도입부에 적었던 또 다른 몇 가지 식사규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줄어들었고 계속 줄어들겠죠. 십년 전에는 또 이십 년전에는 달랐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십년 후에는 또 이십 년 후에는 달라질 것입니다. 이제 예라는 것이 이전처럼 위에서 아래로 가르치고 교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성원들 사이의 눈에 보이지 않는 합의의 산물이라는 증거 아닐까요.
논어의 한 구절로 결론을 대신하겠습니다.
임방이 예의 근본에 대해서 물었다. 그러자 공자가 대답했다.
"좋은 질문이구나! 예라고 하면 거창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은 오히려 지극히 소박한 것이다. 장례를 치룸에 있어서는 여러가지 절차를 갖추는 것보다는 마음으로 슬퍼해야 한다."
-논어, 팔일 4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