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아버지는 6.25때 이북에서 남으로 피난을 오셔서 대전에 정착하셨다.
전쟁이 끝난 직후다 보니 살기가 워낙 어려웠고, 그 와중에 큰 돈도 만지기도 하셨다는데,
결국 사기로 돈을 모두 날리고 어린자식들을 다른집에 가정부, 잡부등으로 보내는등으로 돈을 버셨다고 한다.
어머니 말로는 그때가 너무 지옥같았다고 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집에서 도망치는 방법을 택했는데,
그 방법은 결혼이였다.
교회목사님에게 편지로 중매를 서달라고해서 아버지를 만났고, 아버지가 나한테 이야기 하시기를, 첫 만남에 결혼을 결심하기로 했다고 했다.
그렇게 본가에서 벗어난 어머니는
7년전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오랜시간 시댁부모님을 모셨어야했고, 모시면서 친가친척들에게 정이란 정은 다 떨어졌고, 할머니까지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자유의 몸이 되시나 했더니 아버지는 건축일을 하셨는데, 당시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몸이 성치않은 사람들이 많아 아버지가 무리를 하게되는 경우가 많았고, 그로인해 아버지는 몸에 연골육종이라는 희귀암에 걸려 2년 조금넘은기간동안 고생을 하시다가 돌아가셨다.
난 그사이에 몇가지 일들로 인해 아버지의 건축일을 물려받을려고 일을 배우던걸 그만두고 지금은 그냥 변변찮은 월급쟁이로 살고있다.
모셔야할 사람들이 전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그토록 원하시던 교회에 매진을 하시며 정신적으로 안정을 찾으셨고,
자식들도 변변찮지만 목에 풀칠은 하며 살고있고 다 컸으니 내가 상관할바가 아니라는듯 여유있게 지내셨다.
그러던중, 어머니에게 외할아버지를 모셔줄수 없냐는 요청이 이모들에게 왔다.
외할아버지는 평소 근근이 들러오던 소식에 따르면은, 성격이 굉장히 희한해서 외삼촌,이모들이 두손두발을 다 들었다고 했다.
예전에도 한번씩 모셔줄수없냐는 요청이 있었지만 나는 반대를했고, 그래서 어머니는 외할아버지를 우리집에 모셔올수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너무 사정을하면서, 어린이종사촌들이 할아버지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다면서, 사정사정을했고, 어린애들이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했지만, 난 여전히 반대를 했다.
외할아버지 연세가 많은건 둘째치고(93),외삼촌,이모들이 외할아버지 못모셔서 그런게 아니라고, 외할아버지가 유별난거라고, 모시고오면 분명 어머니 힘드시게 될거라고, 반대를 했다.
그렇지만 어머니의 고집을 꺾지못했고, 결국 모시게되었다.
나는 직업특성상 집에 자주있지않았지만 휴일에 집에 오실때마다 음식으로 너무하다싶을정도로 철부지없는 언행으로 어머니와 목소리를 높이시는걸 보며 조금 짜증을 느꼈다.
그러던중 어느날은 외할아버지가 집을 나가셨고, 어머니와 나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외할아버지를 찾았다.
어머니는 이 일로 굉장히 크게 충격과 스트레스를 받으셨고, 나 또한 그런 어머니의 모습에 마음이 무척 상해서, 외할아버지와 두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단 둘이서 이야기를 했으나, 고집쌔고, 까탈스러운 외할아버지는 대화가 통하는 상대가 아니였다.
그저 세살배기 어린애처럼 원하는 장난감을 사줄때까지 마트바닥에 드러누워 땡깡부리는 노인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사실상 외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전 마지막 있을장소로 우리집으로 오시게된것이었다.
우리집에 외할아버지를 보낸 외삼촌과 이모들은 다시 맡기를 질색을 하며 거절을 하였고, 요양원에 보내는 일 또한 금전적인 문제로 쉬이 보낼수도없는 노릇이였다.
어떻게든 겨우 설득을 해서 집에 계시게 되었는데, 또 집을 나가셨고, 어머니는 혼자서 외할아버지를 찾으러 다니셨다.
지난번에 내가 어머니와 외할아버지를 데려올때, 거의 끌고오다시피 했는데 93먹은 노인네가 힘이 어찌나 쌘지, 평소에 입맛까다롭게 좋은것만 먹더니 죽지도않고 힘만 여전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어머니가 혼자서 외할아버지를 데리고오신것을 일이 끝나고 집에와서보니 어머니가 진이 다 빠지신것같았다.
그날 저녁 어머니는 외할아버지의 저녁을 차려드리며 먹는 모습을 소파 한켠에 앉아 지켜보셨다.
나는 그 표정을 아마 오랫동안 기억할것같다.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보여줄수있는 가장 원망스러운 한이 담긴 표정이였다.
외할아버지는 어머니가 그런 표정을 짓고있는지 알지도못한채 왕성한 식욕으로 저녁을 먹었고, 어머니는 설겆이를 하셨다.
결국 외할아버지는 다시 대전으로 가시게되었고, 내가 직접 만난사람들중 가장 인간말종으로 꼽는 막내외삼촌이 외할아버지를 데리고 있겠다고했다.
정말 온갖 민폐만 끼쳐대던 막내외삼촌이였는데, 이 일로 내가 스무살초반에 내 돈 십만원 빌려가서 안갚은건 잊어버리자고 생각했다.
내 개인적으론 우리어머니가 교회다니시고, 요양보호사도했고, 시댁어른, 남편까지해서 누군가를 케어하는것에 있어서 온갖 볼꼴못볼꼴을 다 보신분이라 그쪽으로 면역력이 굉장히 높으신분이라고 생각하는데, 대놓고 질색이라고 말하는 것은 처음보았다.
어머니는 한참동안 잘모시지못하고 포기하게 된 이 상황과 스스로에게 자책을 하셨는데,
난 그런 어머니를 위로하며, 그런 외할아버지를 오래 모시지않게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