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남 MY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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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낙서] 긴 1초 (0) 2014/12/31 PM 10:59

목이 졸려 경동맥이 막히고 뇌에 산소공급이 중단되어 10에서 15초가 흐르면 의식을 잃는다고 한다. 나는 100미터 달리기 7초대를 끊으니 남들보다 건강한 편이니까 15초 정도는 견딜 수 있을 지도 모른다. 15초. 그래도 긴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목이 졸리는 그 순간을 생각해보라.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고통과 함께하는 15초의 시간은 분명 견디기 힘들 정도로 긴 시간일지도 모른다.
반면에 시험을 보고 있는 학생의 시간은 무척이나 짧을 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한국인의 대표 공인 영어시험인 토익시험 파트5 문법문제에서 한 문제를 푸는 시간은 대략 25초. 분명 수험생에게 있어 25초는 쏜살같이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25초라는 시간은 목을 맨 자살자가 두 번 의식을 잃을 정도의 시간인 것이다.

나는 숨을 들이마시고 참았다.
차가운 금속에 손가락을 걸었다.

만약 지금 총구를 내 머리에 겨누고 발사한다면 어떻게 될까?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방아쇠를 민다. 그 1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후퇴된 노리쇠가 탄알을 때리고. 탄 속에서 장약이 터진다. 그리고 그 반발력으로 탄두가 앞으로 밀려나가고 탄피는 배출구로 빠져나간다. 탄두는 총신에 강선을 따라 상처 입으며 회전하여 앞으로 날아간다. 불꽃과 함께 총을 빠져나온 탄두는 이내 내 이마를 뚫고 뼈를 부수며 뇌를 한껏 헤집어 놓으면서 내 뒤통수에 커다란 구멍을 내고 밖으로 탈출할 것이다. 피가 분수처럼 터질 것이고 내 의식은 방아쇠를 미는 그 순간 소멸하겠지. 이 모든 것이 1초도 안 되는 순간에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물리적으로 1초 동안 발생하는 시간에 지나지 않다. 내가 죽기로 마음먹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넣고 총알이 튀어나와 뇌 뇌를 찢어발겨 내 사고를 정지시키기 전까지의 시간이 아무리 짧다고 하더라도 죽기로 마음먹은 자의 시간은 분명 1초도 길 것이다.

멀리서 소년이 걸어 나온다. 검은 구리 빛 피부와 구불거리는 곱슬머리를 가진 소년이 천천히 걸어 나온다.
그 옆에는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가 있다. 검은 눈동자가 인상적인 여인이다. 나는 아시아인이라서 아프리카계 사람이나 아랍계 사람들이 익숙하지 않았는데 그 여자는 달랐다. 눈매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아니, 단지 그런 눈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또 1초가 흘렀다. 소년과 어머니를 보자 집에 있는 동생 생각이 났다. 동생은 대학교를 막 졸업했는데. 취직이 안 돼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기준으로 1시간에 5210원 벌 수 있다고 하니까 지금 내가 이렇게 동생 생각을 하고 있는 1초에 동생은 대략 1.4473원을 벌고 있을 것이다. 더럽게도 조금 버는구만. 평소에 투덜거리는 것을 좋아하는 동생은 분명히 일하는 1초가 미친 듯이 지겨울 것이다. 그렇다면 동생에게 있어서 1초는 분명 긴 시간이다.

눈알이 따끔거렸다.
눈물이 핑 고였지만 절대 감을 수는 없다.

“어떻게 되가고 있는가?”
귀에 낀 이어폰에서 지지직 소리와 함께 말이 들렸다.
나는 아직까지 별일 없다고 말해주었다.

1초가 긴 가?, 짧은 가? 결국 이런 문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소비성 논제인 것이다. 대답은 하나일 수밖에 없다. 그때그때 다르다.
그리고 지금 내 상황에서 1초에 대해 논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씨.발, 좆.같다고.

또 1초가 흘렀다.
상황은 아직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좋은 일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불쌍한 사람은 시간의 짧고 길고를 판단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급작스럽게 죽어버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자연재해가 있다.
벼락 맞는 사람을 생각해보자. 비오는 날 우산을 쓰고 가고 있는데 갑자기 큰 소리와 함께 벼락에 튀겨졌다. 이 경우에는 자신이 왜 죽었는지 조차도 모를 것이다. 물리적으로도 짧은 시간이 지났고 의식할 세도 없이 머릿속이 타버리기 때문에 무슨 마음에 준비를 할 시간도 없다. 그냥 그렇게 죽어버릴 뿐이다. 이렇게 죽는 사람이 가장 억울하지 않을까?
이런 자연재해는 막을 수조차 없다. 고인모독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죽음은 그냥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년의 어머니가 소년에게 무언가를 건내 준다. 무슨 검은색 상자 같은 물건이다. 소년의 어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왜 일까 나는 저런 눈을 보면 욕지거리가 튀어나온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분명의 인간의 의지로도 바꿀 수 있는 운명을 굳이 내버려 두어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이다.이것은 자연재해와 같다. 인간재해라고 해도 좋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너무나도 싫다, 혐오한다. 그리고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은 더욱더 싫다.

“부엉이, 부엉이! 상황을 보고하라.”
이어폰에서 노이즈 섞인 중저음 목소리가 나를 찾는다.
“여기는 부엉이. 표적이 물건을 수령했다.”
“좋다. 발포하도록.”
빌어먹을. 즉답이다. 저쪽은 고민 따위 하지 않는다. 그저 이 상황에 최대한 효율적인 결론을 이쪽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할 뿐.
또 1초가 지나갔다.

나는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역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자연재해에 의해 눈깜짝할 새에 죽는 사람도 아니다. 바로 인간에 의해 기습적으로 살해당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스스로 그 일을 하려고 하고 있다.

스코프의 정 십자가에 소년의 머리통을 올려두었다. 공교롭게도 거리가 600남짓이다. 소총 탄알이 대충 초속 600정도 되니 내가 방아쇠를 당기면 1초 만에 탄두는 소년의 머리를 수박 부수듯 박살낼 것이다.

하지만 멈출 수는 없다. 여기서 소년을 쏘지 않으면 소년은 들고 있는 폭탄으로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기습적으로 살해당할 것이 분명하다.
망설일 수는 없다.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당겼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스코프 너머로 소년이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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