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장 전 에스컬레이터 줄
계산하고 나온 풍경
오늘의 전리품
보닌은 바이크만 있지 차가 없다.
근데 5월 13일 이날 새벽부터 비가 오지게 내렸다.
다행히 친구를 밥사준단 구실로 운전기사로 섭외해서 아침부터 눈 비비며 부산으로 출발.
건담베이스 센텀시티점으로 향했다.
10시 10분 경 센텀시티몰에 도착.
엘레베이터가 지하주차장 3층과 4층만 오갈 수 있어서 몹시 당황했다. 4층 에스컬레이터 앞에 형성된 줄을 보고 아 여기구나 싶어 눈치껏 줄 섬.
건프라는 무슨 그랑죠 키트나 초딩때 만져본 게 전부인지라, 건베 방문이 첨이었다.
사실 그동안 이 악물고 외면해왔다. 한번 빠지면 내 지갑이 영혼까지 털릴까봐 무서워서.
근데 제타는...제타는...그게 안되더라.
1.0 2.0때는 경제적 사정이 허하지 않았지만, 이제 내 지갑은 제타를 감당할만한 뚠뚠함을 지니고 있잖은가.
10시반이 되자 마침내 입장.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자마자 건담베이스 간판이 보였다.
사실 늘어선 줄을 보고, 이 중 절반 정도나 건베로 향하겠지 지레짐작했다.
나쁜 버릇이긴 하지만, 외양을 봤을때 나와 같은 목적을 지닌 사람들이 딱 표가 났었기에.
다른 사람들, 가족 혹은 여성 등 일반적인 '씹드억'의 이미지와 다른 사람들은 다른 매장도 오픈런이 있겠거니, 넘긴 것이다.
그런데 내가 안일했다.
진짜 서넛 정도를 제외하면 죄다 건베로 빨려드는 게 아닌가.
유달리 유난을 떠는 바로 앞의 아조씌 때문에 덩달아 급해진 내맘.
직원들이 열심히 물건 많아요~ 천천히 움직이셔도 됩니다~ 외치는 소리를 배경삼아, 침착하게 박스 하나를 집어들었다.
난 그동안 hg 다음 등급이 mg인줄 알았다.
근데 박스가 내 생각보다...너무나도 컸다. 미친듯한 부피감, 광활한 표면에 당당히 우뚝 선 제타를 보니 그저 감동해서 굳었다.
잠시 그러다가, 매장 전경을 좀 둘러보니, 사람들이 또 호다닥 어딘가로 간다.
센텀시티 매장은 빈말로도 넓다하기 힘들었고, 빠르게 움직이던 사람들은 계산대로 향한 것.
그제야 부랴부랴 줄을 서기 시작하는데, 이미 늦어서 매장을 한바퀴 삥 돌아 계산대 앞쪽에 선 형국이 되어버렸다.
유난히 땀내나는 안경 쓴 형아가 외쳤다. 여기 줄 좀 만들게여~! 여기로 서주세여~!
근데 건베 직원 옷차림이 아니었다. 단골인지 건베 직원들도 딱히 뭐 터치를 안하더라.
그 열정이 맘에 들었다. 분명 땀내도 빗속을 뚫고 달려오느라 나는 걸테지.
그때부터 지옥의 줄서기가 시작되었다.
20~30분 정도로는 내가 계산대 앞에 설 일이 없다는 걸 대충 유추하고 나니 그냥 맘 편하게 첨 보는 건베 매장이나 둘러보게 되더라.
온갖 건담건담건담. 귀칼 원피스 스타워즈 포켓몬 피규어. 심지어 토이스토리까지.
건베라고 건프라만 파는 건 아니라는 게 뭔가 신선했다.
내 앞쪽엔 사이좋게 제타버카를 든 부자가 있었다. 부자 중 아버지쪽은 머리가 아예 희끗희끗하신 분으로, 나중에 계산할 때 멤버십 등록이 되어있어야 한단 걸 몰라서 많이 헤메셨다.
내 뒤쪽엔 아저씨, 아줌마, 그리고 중학생 쯤 되는 소녀가 가족단위로 서 있었다. 아버지 쪽이 건프라에 깊이 심취하신듯 했는데, 아줌마가 딸 쪽도 드래곤볼이나 원피스, 지나가다 보이는 각종 건담 작품들에 대한 조예를 보여줬다.
그렇게 있다보니 참으로 기분이 묘해졌다.
우리는,아니 나는 무의식중에 인터넷에서 형성된 안여돼 오타쿠, 혹은 멸치 오타쿠의 이미지를 통칭 '씹덕'의 표준으로 삼아왔고, 분명 그 공간에 그와 부합하는 사람들은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연인들, 가족들, 심지어 나이 지긋한 분까지 이렇게 오픈런을 하는 모습을 보자니 새삼 수십년 묵은 아이피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를 실감하고, 또 작품이란 게 얼마나 광범위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지에 생각이 닿는 것이다.
비교적 어린 친구들은 제타 버카에 더해 수성의 마녀 상품들을 주워담고, 연식이 좀 있는 분들은 마크로스까지 주워담고...
저마다의 경험을 물질화하기 위해 이렇게 한 장소로 헤쳐모인 것이다.
당장 나부터가 인생 첫 건프라를 위해 아침부터 달려왔잖은가.
계산을 마치고 후련한 마음으로 매장을 나서니 시간은 11시 34분.
사진처럼 매장에 입장조차 못하고 대기중인 사람들이 굉장히 많더라.
그때서야 나는 어쩐지 일찍 온 보람을 느꼈다.
분명 매장 입장 전까지, 아니 계산을 위해 줄서는 동안에도 이럴 가취가 있나 싶었는데...
친구에게 밥도 거하게 사주고, 볼링까지 치고 돌아왔다.
뭐랄까, 별거 아니라면 아니랄 수 있는 '고작 장난감' 따위를 위해 움직인 하루가
내게 여러 감상을 불러일으켰다.
재밌었다.
재미난 하루신거 같네요!
제 제타버카는 택배사에서 안움직이네요 ㅠㅠ
그리고 건프라 등급은 다음이 아닌 다른 거라고 보시는게 좋습니다
등급별 컨셉이 다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