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대 전후는 요지경같은 사회였다.
한국전쟁에서 수많은 장정들이 전사해 노동력이 부족해져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졌다.
서구로부터 많은 문화가 수입되었다. 비단 물질 뿐 아니라 정신적인 것들. '자유' 라는 것이라든지.
한 소설이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에 대한 욕망, '땐스'로 비유되는 자유로운 삶에 도취된 사회구성원들.
소설은 결국 댄스에 취하고 불륜까지 저지른 마누라가 교수인 남편의 연설을 듣고 뻑가서 다시 가정으로 회귀하는,
봉건적 가부장제 사회로의 복귀를 타진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소설과 영화를 본 여성들은 자신들의 자립을 꿈꾸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많은 모순들이 혼재했다.
'민주주의'나 '자본주의'에 낯설어하는 기성 세대와 이를 성급히 내면화하는 젊은 세대들
독립을 꿈꾸면서도 여전히 지아비의 능력을 자신의 능력인 양 여기는 여성들
'자유'의 가치를 부르짖으면서도 여성의 자유를 억압하던 남성들
이 모든 게 범벅된 모순덩어리가 한국사회에 만연해 있었다.
소설의 제목이던 자유부인은 유행어가 된다. 영화가 대박을 친 이후의 기사들에서 사용되는 자유부인의 형태가
상당히 재밌는데, 이들 기사의 공통점은 범죄 혹은 도덕 윤리를 어긴 '바람난' 유한부인을 일컫는 단어로 자유부인을
적극 활용했다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때때로 개체 혹은 집합으로서의 유한부인들이 아닌, 그들이 내면화한 새로운
시대의 성 윤리를 지칭하는 데에도 이용된다. 나아가 오히려 여성들이 이런 자유부인들을 꾸짖고 가정으로의 복귀를
촉구하는 기고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최근 현대 사회에서 주목할 만한 코드 중 하나는 바로 ‘여혐’이다. 여성 혐오의 준말로, 좁게는 상식 밖의 기상천외한
행동 혹은 개념을 바깥으로 드러내는 여성에 대한 혐오이며, 넓게 말하자면 아예 여성 전체를 싸잡아 혐오하는 것을 이
른다. 이러한 논의의 전신으로 바로 ‘된장녀’를 꼽을 수 있겠고, 여혐과 함께 현재진행형인 신조어로 ‘김치녀’를 꼽을 수
있겠다. 이 두 단어의 용례는 자유부인과 상당히 비슷한 과정을 거치는데, 처음에는 특정한 여성집합을 겨냥한 단어
로 출발하지만, 이후에는 공격자(주로 남성)이 설정한 프레임에 어긋나는 모든 여성, 혹은 여성 전체를 지목하는 식으
로도 활용이 되어왔다. 또한 그 속에 숨은 메카니즘 역시 상당히 유사한 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상당히 재미있다.
어떤 측면에서 보자면 1950년대와 현재의 사회상은 상당히 닮은 지점이 많다. 50년대는 전쟁 이후의 경제적 궁핍함과
혼란스러운 사상을 끌어안고 가는 시기였다면, 현재는 1997년 일어난 IMF 파동으로 인해 심한 경제적 타격을 받아 겉
으로나마 회복되었을 뿐 서민들의 체감 경제는 날로 악화되는 상황으로 피가 흐르지 않은 전후일 따름이다. 그 당시와
현대의 달라진 여러 사회ㆍ문화적 관념을 감안하더라도, 각자의 사회상 아래서 ‘자유’를 꿈꾸지만 한편으로는 지아비
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이중적 면모의 ‘자유부인’과 ‘경제적 풍요’를 갈구하지만 이를 남성을 통해 욕구를 채워가는 ‘된
장녀’와 ‘김치녀’의 모습은 묘하게 겹쳐 보인다. 이들 여성 주체들이 그러한 행동을 하게 된 연유는 무엇인가? ‘자유부
인’은 당대 사회에 급속히 퍼진 ‘자유’의 개념을 여성 뿐 아니라 사회구성원 전체가 방종하게 받아들인 결과라면, ‘된장
녀’와 ‘김치녀’는 현대의 여성 성 상품화에 따른 치장의 필요성을 숨가쁘게 따라간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이를 바라보
고 평가하던 남성들은 어떠한가? 앞서 언급했듯 ‘자유부인’에 대한 지탄이 ‘남성 지식인’들의 권력 상실에 대한 불안감
이었다면, ‘된장녀’와 ‘김치녀’는 좁아진 취업문으로 말미암아 경제력을 부여받을 기회 자체를 상실한 청년 남성세대의
위기감과 박탈감, 덧붙여 이에 동조한 남성들의 연대가 그 원동력이다. 또한, 이러한 시대상을 함께 구축해놓고서 그림
자 뒤에 숨어 오로지 여성만을 도덕성 상실의 주범으로 지목하는 것 역시 동일하다.
이러한 배경 아래서 남성들은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할 수 없다. 다만 그렇게 보일 수 있게끔 당위성을 부여해주는
무리들이 최근에 출연하고 있다. 이른바 현대의 '자유부인' 들이다.
독립 이전의 한반도에서는 이렇다 할 젠더 간의 갈등이 없었지만, 자유부인으로 촉발된 불씨는 이제와서 활활 타오르
고 있다. 최근에 와서 메읍읍 혹은 여읍 같은 단체들이 자신들을 여성들의 대표자이자 현대의 '자유부인'으로 분하고
있지만, 그 효용성은 의심스럽다. 여전히 세상의 주도권은 남자에게 있고, 그들의 극단적인 언행은 도리어 여성 일반을
부정적인 인식 아래 놓이게끔하는 비극을 초래할 수도, 아니 이미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60여년 전 '자유부인'을 통한 젠더전쟁에서 남성은 판정승을 거두었고, 교훈을 얻어냈다. 기존에 형성된 사회적
윤리 혹은 의식에 파격적으로 벗어난 주장을 하는 것은 '자유부인'의 자유이지만, 오히려 공고해지는 것은 자신(남성)
들의 사회이자 제국이다.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전 역사를 통틀어 봤을때, 여성의 숙원인 남녀평등의 실현을 위해서는
여전히 배울 것이 많다. 지금에야 여성들은 눈을 뜨고 발성을 하고, 울기 시작하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