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비메탈 밴드 그룹 시나위 Bass - 서태지>
*리더:신대철
* 시나위 출신 뮤지션 : 임재범, 김종서, 서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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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와 아이들>
<서태지와 아이들 1~4집>
대한민국 100대 명반
서태지와 아이들 전앨범 등록 대한민국 최다 4장기록
4장 : 서태지와 아이들 / 3장 : 산울림,패닉 / 2장 : 노래를 찾는 사람들,부활,시나위,이문세,장필순
-삼성기업의 서태지 보고서-
저자 신현암
연구인
삼성경제연구소 경영전략실 수석연구원
1997년 09월 10일
Ⅰ. 왜 지금 「서태지와 아이들」인가
여전히 계속되는 서태지 신화
□ 96년 1월 「서태지와 아이들」이 가요계를 은퇴한 후 1년반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신화가 이어지고 있음
-「서태지 신드롬」은 90년대의 사회문화 현상을 설명하는 키워드의 하나
- 주입식 교육에 대한 비판을 담은 「교실 이데아」에 대해 수많은 청소년이 공감하였으며,
「comeback home」이란 노래를 발표하자 가출했던 청소년이 집으로 돌아 옴
- 서태지 은퇴 직후 팬클럽들이 모여 만든 서기회(서태지와 아이들 기념사업회)는 전국적으로 1만 3천여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인터넷, PC통신 등을 통해 활발히 활동 중
- 현재의 인기가수를 서태지와 동급으로 비교하는 방송이나 기사가 나갈 경우, 이를 취급한 방송사나 신문사는 전화, 팩스나 PC통신 등을 통한 빗발치는 항의를 감수해야 할 정도
□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은 한국 대중음악의 기존 질서를 바탕에서부터 뒤흔들었을 뿐 아니라 한국 대중음악의 물고를 바꾼 획기적 사건이었음
-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장르라고 여겨졌던 랩(Rap)뮤직을 한국적으로 소화하는데 성공했으며 이후 각종 음악관련 차트에 트로트 가수가 발을 못 붙이게 했음
* 랩 : 멜로디없이 리듬만 타고 흥얼거리듯 노래하는 기법
- 가요계의 한 지류에 머물러 있던 댄스 뮤직을 주류로 끌어 올려 90년대 댄스 뮤직의 붐을 초래했고, 수많은 서태지 아류를 양산시켰음
- 기존의 사랑 타령에서 벗어난 파격적인 가사로 수동적인 「음악청취층」이었던 10대를 능동적인 「음반구매층」으로 변화시켜, 이후 10대 주도로 음반시장이 형성되었음
한국의 역대 최고 히트상품
□ 가요계 입성에서 은퇴까지 발매한 4장의 앨범이 모두 밀리언 셀러 반열에 오름으로서 음반업계 뿐 아니라 한국 역대 최고의 히트상품으로 평가됨
- 지금까지 국내에서 백만장 이상 팔린 앨범은 김건모의 「핑계」, 룰라의 「날개잃은 천사」정도
- 업계에서 속칭 「대박」이라고 부르는 30만장 이상 판매되는 앨범은 1년에 20개 전후로 전체의 3~5%
- 제작된 음반의 90% 이상이 적자를 내는 현실
- 이러한 요소가 반영되어 얼마전 실시한 한국의 역대 히트상품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하였음(삼성경제연구소 CEO 104호 참조)
※참고자료※
우리나라의 역대 최고 히트상품은
서태지와 아이들 음반,
컴퓨터 소프트웨어인 & #62778;한글과 박카스, 하이타이, 새우깡, 칠성사이다, 이명래고약, 초코파이, 하이트맥주도 상위에 오른 히트상품들이다.
이는 삼성경제연구소가 50년대부터 90년대에 이르기까지 국내에서 생산된 상품들을 대상으로 전문가 12명에게 의뢰해 분석한 ‘한국의 역대 최고 히트상품’이란 보고서에서 나타났다.
삼성경제연구소의 히트상품 분석에 참여한 기업연구소와 광고 대행사, 기업체 상품전문가들은 △소비자 호응과 효용(40.5점 만점) △수익(32.4점) △사회·문화파급효과(27.1점) 등 세 가지 요인을 고려해 50대 히트상품을 선정했다
역대 최고의 히트상품 10선 중에서는 ‘서태지와 아이들’음반이 영예의 1위를 차지했다.
‘서태지와 아이들’ 음반은 100점 만점에 85.7점을 얻어 공동 2위인 ‘& #62778;글’과 ‘박카스’를 큰 점수차로 따돌렸다.
‘서태지와 아이들’음반은 92년 ‘난 알아요‘로 가요계에 랩댄스 열풍을 몰고 온 이래 2집 ’하여가‘, 3집 ’교실이데아‘, 4집 ’컴백홈‘을 내놔 350만장 이상의 판매를 기록했다.
이들의 노래는 기성세대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져 가정과 학교생활에 기가 죽은 청소년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아 서태지 신드롬까지 창출했다.
& #9737;국내 10대 히트상품& #9737;
순위히트상품대기업영향대소비자영향대사회영향총점
1위 서태지와 아이들 음반74.292.489.485.5
2위 한글과컴퓨터 한글77.887.381.082.5
3위 동아제약 박카스81.377.490.982.5
4위 럭키 하이타이77.381.889.482.4
출처 *매일경제신문(1997.8.21) 유봉석 기자
□ 제품수명주기가 3개월도 안되는 음반시장에서 4년간 정상의 자리에 머물렀으며 그 인기가 은퇴 후에도 지속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일임
- 신승훈과 김건모 정도가 「밀리언 가수」로 불리지만 사회문화 전반에 끼친 영향, 인기의 절대성 등에서는 서태지와 비교할 수 없음
□ 서태지의 성공요인은 기업경영에도 의미있는 시사점을 던져 줌
- 한명의 천재가 세상을 이끄는 시대
- 미래를 선도하되 Seeds와 Needs의 균형을 고려
- 실버층과 청소년층 시장에의 대응
- 질위주의 경영
- 최고의 순간에서 버릴 줄 아는 자세
- 기본기를 바탕으로 한 전략의 구사
Ⅱ. 서태지 신화 창조의 과정
제1집 : 전문가를 무색케 한 「난 알아요」
□ 92년 3월 평론가들의 혹평을 받으며 데뷔한 「서태지와 아이들」은 이후 10대들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으며 우상으로 자리잡았음
- 당시 최고의 작곡가로 불리우던 H씨는 리듬은 좋으나 멜로디가 빈약하다고 혹평한 바 있는데 이는 기존의 음악 스타일을 주도하고 있던 기득권 층에게는 이해할 수 없고 수용될 수 없었기 때문임
- 그러나 랩과 독특한 회오리춤으로 결합된 「난 알아요」는 새로운 것을 갈구하던 10대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으면서 무난히 밀리언 셀러에 진입
- 결국 이 한장의 음반으로 발라드와 트로트가 지배하던 한국 대중음악을 댄스뮤직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바꿔 버렸으며, 이후 수많은 댄스팀의 출현이 이어졌음
《 비틀즈를 알아보지 못했던 기성계층 》
- 비틀즈도 데뷔 당시 Decca레코드사 등과 계약하려다가 ‘기타연주가 유행에 뒤떨어진다’는 이유로 거절당하고 여러 음반사를 전전한 끝에 EMI와 계약
- 60년대 전세계 대중음악을 주도한 비틀즈는 총 2억장 이상의 음반을 판매
- 70년 팀이 해체된 이후에 나온 음반들도 계속 빌보드 차트 상위에 진입
- 세계 정상의 클래식 음악가들이 앞다투어 비틀즈 음악을 취입하였는데, 이는 예외없이 히트음반화
□ 음악의 조류 변화를 남보다 한걸음 앞서서 보는 능력과 함께 튼튼한 음악적 밑바탕이 있었기에 이러한 성공이 가능하였음
- 서태지 스스로 프로듀싱, 엔지니어링, 작사, 작곡 및 편곡을 할 정도로 음악적 능력이 탁월
- 댄스뮤직이 다른 장르보다 음악성이 떨어진다는 편견을 일시에 불식
제2집 : 힙합과 국악의 만남 「하여가」
* 힙합 : 대도시에 사는 아프로-어메리칸 신세대들의 패션, 춤, 노래, 의식 및 생활양식 등이 하나의 스타일로 정착된 문화현상으로서 힙을 흔들며 박자를 맞추는 유형의 음악을 총칭
□ 1집의 성공으로 정상에 올라 있던 서태지는 돌연 2집앨범 제작을 이유로 팬의 곁을 떠남
- 시한부 활동중단이라는 컨셉은 일단 앨범이 어느 정도 히트하면 철처하게 우려먹는 당시의 기존관행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
- 제작완성도를 높이겠다는 의도의 잠정 은퇴는 새 앨범에 내용에 대해 철저하게 비밀을 지키는 홍보전략과 맞물려 앨범 발매전 사전 주문량이 100만장 이상이라는 신화를 탄생시킴
-「앨범 발표 → 히트행진 → 전격 활동중단 → 콘서트 → 새노래 발표」의 새로운 방식은 이후 업계의 규범으로 정착
□ 93년 6월 힙합음악에 국악을 접목시킨 「하여가」를 타이틀로 2집을 출시하고 활동을 재개함
- 1집의 성공에 힙입어 다양한 음악적 시도가 가능하였으며, 태평소 소리를 집어넣어 거부감보다는‘역시 서태지’라는 인식이 확산
- 상표를 떼지 않은 옷을 입고 방송에 출연하자마자 10대의 유행이 되어 버렸으며 강력한 문화선도자로서의 자리 구축
제3집 : 강렬한 메시지의 전달 「발해를 꿈꾸며」
□ 94년 8월에 발매한 3집은 가사 및 음악성에 있어 획기적인 변화를 추구하여 또한번 팬들을 놀라게 함
- 기존의 사랑타령 일색에서 벗어나 통일문제, 획일적 교육에 대한 비판을 담은 가사를 통해 서태지는 10대의 정신적 지주로 군림했으며, 이후 패닉의 「벌레」, HOT의 「전사의 후예」처럼 가사에서 사회문제를 다루는 것의 기폭제 역할을 함
□ 시대의 흐름보다 너무 앞선 음악성으로 인해 전반적으로 곡이 어렵다는 평가를 받았음
- 이에 따라 판매량이 상대적으로 부진했으나 20~30대를 팬으로 흡수하는데는 성공
□ 「발해를 꿈꾸며」를 거꾸로 들으면 ‘사탄을 사랑해요’라는 말이 들린다는 악마주의 논쟁은 PC통신을 뜨겁게 달구면서 오랜기간 10대의 화제거리로 떠올랐음
- TV에서 진위여부를 가리는 실험을 할 정도로 세간의 화제거리였으며, 서태지가 10대 문화에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간접적으로 시사
제4집 : 갱스터랩으로 상업적으로 재기한 「컴백홈」
* 갱스터랩 : 랩을 하는 스타일이 과격하고 직설적으로 변화하여 탄생한 장르. 폭력과 반사회적인 가사내용으로 미국에서도 논란의 대상
□ 95년 10월에 발표한 4집은 주문예약을 100만장 이상 받는 등 3집의 부진에 대한 주변의 우려를 말끔히 씻음
- 발매전 철저하게 비밀을 지키고 음악적 진보를 반 걸음 후퇴함으로서 성공 가능
- 96년 1월 해체발표를 하여 음반 판매를 더욱 촉진
□ 공륜의 사전검열에 대한 반발로 「시대유감」의 가사를 삭제함으로써 자유와 저항이라는 서태지의 이미지를 더욱 공고히 함
- 서태지의 투사 이미지는 한층 부각되었으며 사회성을 다룬 가사와 함께 10대의 의식을 좌우하는 원동력으로 작용
- 힙합(hip hop)패션 뿐 아니라 기성세대에 반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힙합문화를 정착시켰다는 점에서 다른 뮤지션과는 차별
은퇴이후 : 여전히 살아있는 서태지 신화
□ 96년 1월 해체를 발표한 뒤에도 유작앨범의 판매량, 팬들이 주도한 은퇴 1주년 기념식 등에서 보듯 서태지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르고 있음
- 은퇴후 발매된 베스트 앨범 성격의 「굿바이」, 삭제되었던 가사를 다시 삽입한 「시대유감」등이 판매량에서 밀리언 셀러에 육박
- 97년 1월의 은퇴 1주년 행사에는 서태지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10대 청소년 5,000여명이 몰려 ‘단군이래 가장 위대한 인물 서태지’라는 피켓을 들며 행사를 치름
□ 서태지 컴백설은 은퇴후에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으며 서태지와 아이들을 주제로 한 게임이 출시되는 등 그들은 여전히 청소년들의 사이버 세계를 지배하고 있음
Ⅲ. 기업경영에 주는 시사점
서태지의 천재성 → 한명의 천재가 세상을 이끄는 시대
□ 대학에 가는 것은 시간낭비일 뿐이라고 판단한 서태지는 고등학교조차 과감히 자퇴하고 음악에 몰두함
- 컴퓨터 음악을 독학으로 터득하는 등 서태지의 음악적 천재성은 이미 고교시절에 시나위라는 록그룹의 멤버로 있을 때부터 정평이 나 있었음
□ 기획 및 제작에서 음반발매까지 스스로 해낼 수 있는 능력은 음악의 시대적 흐름을 남보다 먼저 포착할 수 있는 능력과 결합하여 환상적인 앨범을 탄생시킴
- 싱어송라이터(Singer-Song Writer)는 자기가 만든 곡을 직접 소화함으로써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명쾌히 함과 함께 오랜 수명 유지
□ 「서태지와 아이들」의 성공은 서태지 한 명의 탁월한 능력에 기인함
- 프로듀싱, 마케팅, 홍보 등 핵심성공요인을 서태지가 혼자서 관장하면서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을 작동시켰음
- 자기가 부족한 요소(춤, 코디 등)는 주변의 네트워크를 활용
□ 「한명의 천재가 세상을 이끌어간다」는 말처럼 소프트 시대의 가장 중요한 경쟁력은 리더의 탁월한 능력임
- 소프트 시대의 리더는 선견력, 기획력을 갖추어야 하고 카리스마를 통한 조직 장악도 때로는 필요
-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 소프트 뱅크의 손정의 처럼 몇몇 핵심CEO에 의해 조직의 흥망성쇠가 결정
- 「농업적 근면성」보다는 「튀는 창조성」이 요구되는 소프트 시대에 이런 창조적인 천재가 자리잡을 수 있는 풍토 조성이 급선무
- 천재가 없거나 천재를 포용할 수 없으면 소프트 사업은 포기해야 함
3집의 실패와 4집의 성공 → 미래를 선도하되 Seeds와 Needs의 균형을 고려
□ 서태지가 장기간 음악계를 제패할 수 있었던 것은 항상 시대의 흐름보다 한발짝 앞서 나갔기 때문임
- 데뷔 당시 「난 알아요」가 어색하다고 느꼈던 중년층도 요즈음에는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괜찮은 노래라고 평가
- 서태지의 새 앨범에서 추구한 장르가 그때부터 정착하기 시작
□ 그런데 시장을 무시한 채 너무 앞서 나가서는 결코 상업적인 성과를 거둘 수 없음
- 3집은 음악적으로 가장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판매량은 가장 저조했던 반면, 4집때는 다시 반발짝 물러서 앨범을 제작하였기에 상업적으로 재기 가능
□ 기업도 항상 시장에 최우선 가치를 두고 기술에서 판매까지의 경영기능을 조화롭게 맞추어 나가는 것이 중요함
- VTR 1차 전쟁에서 소니 진영이 마쓰시다 진영에게 패했던 것과 애플이 IBM -MS에게 패했던 것도 기술적 우위성만을 과신한 채 시장의 동향을 무시한데 기인
- 인텔, 모토롤라 등 동분야 최정상 기업들도 기술개발 속도를 시장진화 속도와 연관시켜가며 조정
시장과 고객을 창출 → 청소년층과 실버층 시장에의 대응
□ 80년대까지 10대는 음반판매에 영향을 못 미치는 시장이었으므로, 일반 제작자들은 10대시장을 처음부터 포기했지만 서태지는 이와는 달리 10대를 겨냥한 음반을 제작함
- 발라드와 트로트가 주도하는 음반시장에 댄스 장르를 도입하여 음반구매층을 20대에서 10대로 낮추는데 결정적인 역할
- 요즈음은 10대 초중반의 여학생 (국민학교 4학년 ~ 중학교 3학년)이 음반구매의 절대층으로 등장
□ 언제나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기성세대에 저항하며 자유롭기를 원하는 10대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고 대응함
- 매 앨범 발표시마다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여 10대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기대심리 고취
- 통일문제나 교육문제를 다루는 가사, 공륜의 사전검열에 대해 ‘가사삭제’로 대응 등은 10대에게 저항과 자유에 대한 대리만족 기회를 제공
□ 과거 중장년층 위주의 시장에서 청소년층과 실버층이 강한 구매력을 지닌 새로운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음
- 음반시장의 주 구매층이 20대 이상에서 10대로 변화한 것처럼 모든 시장에서 구매층의 변화에 대해 적절하게 대응하여야 함
앨범의 Quality에 최선 → 질 위주의 경영
□ 앨범 한 장당 10곡을 무조건 채우겠다는 양 위주의 발상을 버리고 러닝 타임 30분대에 알찬 곡만을 모아놓음으로서 名盤의 입지를 굳힘
- 앨범은 한번 들어보고 마는 것과 영구히 보관하고 싶은 것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후자의 구매촉발력은 전자의 3배 이상
- 음반외에 주변 요소인 뮤직비디오, 캐릭터에도 최선을 다함으로써 상품의 가치를 더욱 상승시킴
□ 새 앨범 제작을 위해 한시적으로 활동을 중단하고 앨범출시간격을 14개월 이상 유지하는 등 충분한 시간을 투자함
- 보여줄 것을 다 보여준 뒤에는 인기 지속여부에 상관없이 새 앨범제작에 들어가는 이러한 방법은 실력에 자신이 있어야 가능
- 일반 가수들은 ‘반짝했을 때 뽑아 먹으라’는 업계의 속설처럼 성공열기가 식기전에 다음 음반이나 베스트 음반을 출시
□ 기업에 있어서도 양위주의 개념을 탈피하고 질 위주의 경영을 추구하여야 함
- R&D에 있어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고 결과를 기다릴 줄 아는 자세가 필요
정상에서의 변신 → 최고의 순간에서 버릴 줄 아는 자세
□ 서태지가 인기를 지속적으로 누릴 수 있는데에는 인기정상에서 활동을 중단한다거나, 새 앨범을 들고 나올 때마다 항상 새로운 모습이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음
- 앨범 제작을 위한 활동 중단은 새 작품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고, 앨범 발매시마다 새로운 유행이 탄생
□ 기업도 정상에 올랐을 때 결코 자만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과감히 변신을 추구해야 함
- 한국의 철강, 조선, 반도체 분야 등은 정상에 오르기도 전에 자만에 빠져 경쟁국으로부터 추월당하거나 어려움을 겪고 있음
- 기업도 정상에 오를수록 더욱 끊임없이 전략을 개발하고 변신을 추구해야 함
음악의 기본에 충실 → 기본기를 바탕으로 한 전략의 구사
□ 서태지의 성공요인에는 기존 가수와는 달리 다양한 전략을 구사했던 것도 일익을 담당함
- 기존 관행을 탈피하여 인기정상에서 활동을 중단하고 새앨범 제작에 들어감으로써 고객의 궁금증을 유발하고 기대심리를 부추김
- 방송을 통해 내용이 공개될 때까지 철저하게 비밀을 지키는 홍보전략을 구사하여 앨범발매 전에 상당한 口傳效果가 나타남
(PC통신 등 새로운 매체에 힘입어 급격한 붐 조성)
- 어린 나이,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의상, 고등학교 중퇴의 학력은 10대에게 더욱 친숙하게 느껴짐
□ 이러한 다양한 전략구사가 가능했던 것은 근본적으로 음악의 3박자인 리듬, 멜로디, 가사에 충실했기 때문임
- 기본기가 안되어 있는 상태에서 단지 춤만 잘 추었다거나, 적절한 홍보전략을 구사한다고 해서 결코 정상의 자리에 오를 수 없음
□ 기업의 기본은 「싸고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빠르게 제공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됨
- 너무 품질만을 강조하거나 고객이 외면할 정도로 원가절감을 추구하다보면 본말이 전도될 가능성
- 최고의 성능과 품질을 추구하면서도 획기적인 원가절감을 병행하는 것이 새로운 경쟁의 방식이며 그 관건은 기술력과 조직의 지속적인 혁신 노력
- 업의 개념을 항상 생각하고 내가 하고 있는 일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
<5집 "Seo Tai Ji">
락 매니아들이 서태지 음반중 최고의 음반으로 손꼽는
1인 작사,작곡,연주의 프로듀싱으로 완성된 일명 방구석 앨범
<6집 울트라맨이야>
해외 유명 웹진 리뷰
<7집 Issue>
대한민국 최초 올뮤직 리뷰 등록과 함께 4rating
올뮤직이란 전세계적으로 공신력을 인정받고 있는 음악싸이트로써 주소는
www.allmusic.com
http://www.allmusic.com/cg/amg.dll?p=amg&searchli-nk=SEO|TAI|JI&sql=11:09fwxz85ldhe
~T2
(기사 원문)
번역.
Seo Tai-Ji began his career in a dance-pop boy band, but soon steered the group towards more heavyweight lyrical and musical matters, and after leaving his band he became South Korea\\\\'s main alternative rocker.
서태지는 그의 음악 경력을 댄스ㅡ팝 보이밴드(서태지와 아이들)로 시작했으나, 곧 그들의 음악을 좀 더
무게감 있는 가사와 음악으로 바꿨다. 그리고 그가 밴드를 떠난 뒤 그는 남한의 메인 얼터너티브 락커가
되었다.
That\\\\'s an especially neat achievement, considering that he\\\\'s nowhere near prolific — in the decade since his solo debut in 1998, Seo Tai-Ji released only three records (counting the debut), each lasting only about half an hour.
그것은 그가 전혀 작품을 많이 만들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1998년의 데뷔 앨범을 포함해, 그는 그때부터
10년간 단 30분짜리 앨범을 3개밖에 내지 않았다) 상당한 업적이다.
However, this is a case of quality over quantity, because 7th Issue is a very well-done piece of modern rock/metal.
그러나, 그의 7집 Issue는 굉장히 잘 만들어진 모던 락/메탈 앨범이기 때문에, 이 앨범의 길이가 짧다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Seo Tai-Ji doesn\\\\'t attempt to hide his influences — the music is indebted to American metalcore of the Sevendust/Godsmack kind.
서태지는 그가 받은 영향들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그의 음악은 미국의 메탈코어 밴드인 Sevendust/Godsmack
의 분위기를 풍긴다.
But Seo Tai-Ji adds an interesting upgrade to this — admittedly pretty stale — sound by shedding all the angst that seemed irreplaceable to nu metal and alt metal since Korn first tuned to dropped A.
그러나 서태지는 진부한 감이 없잖아 있는 그의 음악에 흥미로운 업그레이드를 해 놓았다.
콘이 기타의 가장 낮은 현을 A로 낮춘 후,(간단히 말하자면, 극저음의 기타조욜)
그 바뀔것 같지 않던 트렌드를 깨려고 한 것이다.
Instead, he throws in a good amount of romantic melodies, although this move isn\\\\'t a commercially conscious sellout — the result rather reminds of Jesu, with the same big guitars that create a sunny mood, plodding ahead at a steady relaxed tempo.
그가 그의 음악에 감성적인 멜로디를 집어넣은 것이다. 상업적인 성공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음악은
밝은 분위기를 만드는 기타와, 한결같이 편안한 템포의 진행을 사용하여 Jesu를 떠올리게 한다.
Seo Tai-Ji \\\\'t really Justin Broadrick, and 7th Issue is more of a proto-Jesu, without this band\\\\'s hypnotizing, majestic drone: some of the tracks are still fast ("Hefty End"), and most are too dynamic.
서태지는 Justin Broadrick이 아니다. 그의 매혹적이고 장엄함을 뺀다면, 그의 7th Issue는 초창기의 Jesu의
음악의 발전형이라고 볼 수 있을것이다. (Heffy End와 같은 곡은 빠르고, 대부분은 매우 다이나믹하긴 하지만
말이다.)
But it\\\\'s still the kind of metal that sounds positive rather than menacing.
그러나 그의 음악은 공격적이기 보다는 밝은 분위기의 메탈이다.
If that\\\\'s not enough, there\\\\'s another reason to enjyy 7th Issue as well: the quality of songwriting.
이것만으로는 그의 7th Issue에 빠져볼 이유가 되지 못한다면,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그의 작곡수준이다.
The album is full of smart textures and arrangements, right up to tiny Aphex Twin breaks ("DB") that sound so natural they\\\\'re hard to spot at first, and, while there are no instant hits here, a couple of listens will reveal all the small hooks to sing in.
그의 앨범은 매우 뛰어나게 구성, 편곡되어있다. 거의 작은 Aphex Twin처럼 들리는 그의 음악(DB등 브릿지곡)
들은 매우 자연스럽게 연결되기 때문에, 처음엔 다음곡으로 넘어갔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힘들정도이다.
그리고, 한번 듣고도 외울만한 곡이 없기는 하지만, 두세번만 들어보면 짧은 후렴구까지 알 수 있을 것이다.
Even the short duration doesn\\\\'t work against 7th Issue, because Seo Tai-Ji can free flow quality riffs like a rock & roll James Joyce, and he packs them tight enough to make the record a good example of the "less is more" adage at work.
심지어 서태지는 락앤롤을 하는 James Joyce(아일랜드의 소설가)처럼 리프들을 자유롭게 흘러가게 했고
(James Joyce는 의식의 흐름이라는 기법을 사용), 적은것이 좋은것이라는 격언을 증명이나 하듯이 타이트하게
앨범을 구성하였기에 아주 작은 부분도 7th Issue의 흠이 되지 않는다.
[참고 : 서태지의 7th Issue는 이 리뷰에서 별5개 만점에 별4개를 받았습니다.]
-서태지 러시아 공연-
연예인들의 연예인
동방신기
최강창민이 최화정이 진행하는 라디오에서 우상이
서태지라고 밝힌바있음 2004년도에 서태지가 MBC라디오에
출연했을때 우연히봤는데 그 모습에 카리스마가 넘쳤다고함
영웅재중은 오만가지 생각이나는 광채가 몸에서 흘렀다고 말함
세븐
라디오에서 서태지와아이들 너에게 부르고,
연예가중계에서 서태지와아이들을 보고
가수의 꿈을 키웠다고 하고 교감서태지에서 공연도 함
비
비는 데뷔 초 서태지 5집 가사집 들고있는 사진이 있음...
가사집은 당시 팬들도 구하기 힘든것으로
앨범에 수록된 것이 아닌 삼성에서 자체적으로 나온것임
방송에서 서태지와아이들을 이태원에서 봤는데 영화같았다고 함.
방송 축제때 서태지와아이들의 난알아요 컴백홈을 부름
SS501
김현중 (\\\\'서태지선배님따라서 학교를 자퇴한적 있다고 말함.)
영생, 규종 서태지 컴백무대 보러 간다고 섹션방송에 나옴
영생에게 서태지는 우상과 같음
슈퍼쥬니어
이특, 김희철등이 팬이라고 알려져 있음
김희철은 미니홈피 노래에 서태지노래가 자주등장하고 이특은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에서 자주 서태지노래를 틀음..
정일우
홈피노래도배. 드디어 컴백
난 영원한 팬.. 이렇게 써있네요
V.O.S 최현준
악~~!!!
태지혓님 나오셨다~!!로 싸이 대문이 되있고 태지노래로 도배되있네요
이준기
젊은 시절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최송현 아나운서
싸이에 서태지 노래로 도배~ 컴백축하 글귀
영화배우 윤진서
녹화방송참여, 싸이에 컴백 반기는 글귀
에픽하이
팬이라고 자주 얘기했음
H.O.T의 멤버들
토니안
나는 서태지형을 너무나 좋아했다.
하지만 연예인이 되어서
다시 생각해보는 형은, 거의 신화와 같은 존재다.
서태지 형만큼은
보통 사람이 넘을 수 없는 비범함을 가지고 있었다.
시스템을 넘어선 가수
그가 이루어낸 뮤지션의 본보기였다고 생각한다
문희준,토니안,장우혁,강타 모두 서태지선배를 좋아한다고 말한적이 있다.
장우혁은 서태지를 욕하는 팬에게
[한 번 더 태지형을 욕하면 가만두지 않겠다] 라고 말한적도 있음
본인 팬이라도 서태지 욕하면 좋은 소리 못들음
양동근,
서태지 옷도 따라입고.. 노래가사에 서태지 \\\\'컴백홈\\\\' 을 넣었음
(참고로 고등학교 수학여행때 컴백홈에 맞춰 춤도 춤. 듀스도 좋아함)
이소라
만화책 속 인물같아요
이기찬
억압된 청소년들의 카타르시스였던 \\\\'교실이데아\\\\'
신화
이민우와 앤디가 좋다고 함
신화멤버.. 18번이 필승이라는ㅋㅋ 방송에서도 필승부름
서태지 6집 컴백때 서태지보러 합정에서 기다리는 것이 목격됨
신혜성도 팬이라며
라됴에서 서태지와아이들 1집 이밤이 깊어가지만 추천
S.E.S
멤버 전부 좋아한다고 했음.
데뷔 초 서태지와아이들이 괌에 슬픈아픔 뮤비촬영차 방문했을때
팬이었던 유진이 달려가서 같이 사진찍었다고
스스로 사진을 방송에서도 보여주고 인터넷에 올리기도 함
서태지와아이들 10주년 인터뷰에서도 여전한 팬임을 밝힘
김종서
둘도 없이 친하고 태지는 뼈를 통째로 태우는 애라는 말이 기억에남음
GOD(김태우, 데니안, 손호영)
음악의 길을 걷게된 이유가 서태지때문이라고..
지오디 팬 회보에도 가장 존경하는 인물과 내 인생을 바꾼 인물이 서태지라고 써있음
한면이 몽땅 서태지 얘기;; 말만하면 서태지 얘기가 따라나옴;; 서태지음악을 첨들었을때 어쩌구저쩌구;;)
기획사 통해 서태지 싸인을 얻으려고 했으나..
같은 음악인끼리 무슨 싸인이냐며 나중에 만나면 음악이야기 하자고 거절당했음;;
방송중에서도 음악추천하면 서태지노래를 주로 추천함
아 100일 콘서트 개인기때 교실이데아를 의상부터 소품까지 똑같이 공연함
손호영 팬페이지에 존경하는 선배님이며 한번도 뵙지 못했지만 영원한 스타이고 음악적인 면과 음악 외적인 면에서 천재라고 씀
NRG
박선주
서태지와 아이들 3집 콘서트에 참여한적이 있으며 당시 서태지를 보고 머리속에 음악생각밖에 안하는사람이라고 말한적 있음
김경호
잘알려지지 않았지만 김경호씨도 서태지의 열렬한 팬임. 개인 콘서트에서도 서태지의 얘기를 종종했다고 알려져
있고 서태지솔로1집때 정말 잘만든 음반이라고 얘기한적있음.
코미디언 유세윤
제2의김태희임선희
말할것도 없이 열혈팬.
이적
이적도 서태지의 열렬한 팬임을 숨기지 않으시죠~최근 그가 진행하는 라이디오에 게시판글입니다.
우리 DJ적군이, 너무나 보고 싶어하는 그 분!
우리 DJ적군이, 그토록 한 잔 하고 싶어하는 그 분!
바로바로바로 서태지씨 텐텐클럽에 출연할수 있도록
텐텐 가족들의 힘을 보여주세요
바로 이곳, ,공개출연요청. 게시판에 글을 올려주시면 되구요우리 텐텐 가족들의 진심이 모여모여
서태지님께 전달 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 주시면 됩니다!
다른거 생각 마시고 다른분은 일단 접어두시고
서태지 단 한분만 생각해주세요
그럼 여러분의 힘을 기대합니다.
클릭비(오종혁,우현석)
우연히 스키장에 갔다가 서태지를 만난 후 가수가 되겠다고
결심한 리더 김태형<-클릭비 프로필중에서..
홍진경
서태지와 아이들시절 4집때 컴백홈의 안무를 따라한적있으며 좋아한다고 여러차례 밝힘
클래지콰이
클래지콰이는 "당분간 클래지콰이라는 이름으로 한 무대에서 공연할 계획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존경하는 뮤지션인 서태지 선배님이 기획한 페스티벌인 만큼 생각할 필요도 없이 기쁜 마음으로 ept페스티벌에 참가한다고 말했다.
베이비복스(심은진...),
어렸을때 우상이 서태지였다고..
네이버 블로그에 써놓음
많은 사람들중에 서태지라는 사람을 인정하고 아끼는 사람을 모두 입모아 "서태지 매니아"라고 부른다....
솔직히 나도 그 중의 한명이었고....
지금 역시 서태지라는 사람을 인정하고 아끼는 사람중에 한 사람이다....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장기자랑이나 체육대회....각종행사땐....
항상 서태지의 음악은 운동장과 강당을 울렸고...
그리고 항상 서태지 따라하기(?)엔....내가 속해있었다....^^;
내가 서태지를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의 음악과 ,
그의 잠재력...외모..무대매너..등
다양한게 있겠지만....
아마도 내 학창시절의 추억이기에.....그렇기때문에....
난 서태지를 좋아한다.
핑클(성유리,이효리)
성유리는 중학교때 서태지와 결혼하는게 인생 목표였다고 말함
서태지가 던지는 껌을 콘서트에서 받으려고 했다고 말했음
95하늘 콘서트 감
이효리는 서태지와 에이치오티둘다 좋아한다고 말한적있음
원타임
대니는 라이벌에서 컴백홈 춤 추고,
송백경은 서태지와 만나 지구 공동설에 대해 얘기도 하고
서태지와 송백경이 술자리를 같이 했는데 술을 못마시는 서태지는 요구르트를 먹었음
서태지가 주위사람은 젓가락, 자기는 밥그릇 너는 요구르트병이라고 하면서
지구공동설에대한 이론을 농담삼아 했음]
송백경은 방송에서도 서태지 얘기 많이함..
7집때도 태지형 짱이라고 공연중 외침..;
테디도 핸드폰 벨소리가 서태지 로보트~
젝스키스(은지원,강성훈....),
젝스키스 멤버.. 어렸을적 서태지를 따라다녔을때 서태지의 모자를
살짝 건드렸는데 경호원이 강성훈을 막대기로 머리를 때리자
태지가 안타까운 눈빛으로 쳐다봤다고 팬미팅에서 밝힌바 있음
젝키 신인상 수상 소감 中 [태지형님 감사합니다!!] 라고 말함
영화배우 김혜수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4집때 필승을 너무나 좋아한다며 라디오에서 말한적 있음
자두
라됴중 팬이라 말함
서태지가 7집 라됴방송 출연할때 태지오빠 외치며
라디오하다 뛰쳐나가감;( 동일 시각 은지원도 라됴에서 서태지씨 보러
나가봤는데 경호원이 많아서 머리털밖에 못봤다고 함;;)
김진표
서태지와아이들 1집을 듣고 충격먹어서 곧바로 음반매장에 가서
앨범을 샀고 그게 태어나서 처음 산 앨범이라고 말함
예전에 윈엠프방송 할때 마지막 곡은 맨날 서태지노래임.
서태지가 옆에 있으면 아무말도 못할꺼같고 신비롭다고 말함
안흥찬이 서태지와 말했다고 하니까
말도 해?] 라고 되물음-_-;;
싸이에..
(솔직히, 서태지의 팬이기 이전에 연예인으로서, 더군다나 가오 너무나 잡는 연예인으로서, 이런글을 올린다는게, 좀 쪽팔리지만, 그의 컴백을 생각하면, 신나는 일이 아닐수가 없다. 시한부 컴백도 아닌........ 완전 컴백..... !!!!!!
항상 앨범이 나오기도 전에 "앨범 대박이예요~~"라고 확언을 하며 나에게 용기를 주는 fan들을 바라보면
정말 너무나 고맙지만, 한편으론 이해할수 없었다.
"어떻게 이런 믿음이 생긴단 말인가?"..... 생략. 그러면서 이제 이해할수 있다고 말함 서태지를 보며
조PD 김원준
이 분도 예전부터 팬이였음을 공공연히 말했고 솔로 앨범이 나왔을때 그동안 서태지가 쉬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앨범이라고 말한적있음
이정현 유승준
서태지보려고 데뷔했다고 함데뷔초 방송에서 서태지 말만함
96년 서태지와아이들 은퇴할때 꽃임 영화찍을때였는데
일주일간 식음을 전폐해서 영화촬영이 지연되었다고 말함..
콘서트도감 방송에서 태지얘기 매우 많이 함
이주노라디오에서도 연결된 팬이랑 얘기하고
충전100%란 공중파방송에서도 양군에게 태지오빠 소식을 직접적으로 물음-_-a
아 04 라이브와이어 콘서트 다녀감)
하하, MC몽
(듀스와 서태지와아이들 제일 좋아함. 절대적인 우상이라고 말한적있음)
하하몽의 영스트리트에서 셋이 너와함께한 시간속에서 부르고
우리는 서태지 매니아니까 서태지노래로 또 부르자고 하며
마지막축제도 부름
93마지막축제 콘서트도 다녀왔다고 함..
이요원
(팬클럽 포트회원이었을정도로 열정적인 팬)
라이브와이어, 제로콘서트 서울 3번째날 + 앵콜 다녀옴
고양이를 부탁해 란 영화에서 서태지 좋아한다는 대사도 넣음
마술사 이은결
서태지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장장 세페이지나 작성할 정도로 열혈팬. 인터뷰내용도 굉장히 열혈팬임을 알수 있다.
옮겨 적고 싶으나 너무 긴 관계로 생략(궁금하시면 검색)
박광현
기사떳음; 어렸을때 서태지와아이들이 있다는 옷가게에 갔더니
양군이 회오리춤을 춰보라고 해서 췄더니 잘춘다고 칭찬 받았다고함
서태지와아이들과 찍은 사진을 가보로 간직하고 있다고 함
문근영
장화홍련 홈페이지에 나와있음.잡지에도.. 좋아한다고 함
인터뷰할때도 열렬한 팬이라고 나옴
개그맨 박준형(아내인 김지혜도 팬)
서태지 팬들끼리 주고받는 [만원만]이란 말도 알아들음
산다라박
팬이라고 기사뜸
최강희 언타이틀
싸이에 사진올리고 좋아한다고 적어놓은적있음,서태지와아이들기념사업회 서기회 회원이었음
다음은 싸이에 서태지의 사진과 함께 최강희씨가 써놓은글
누가 어떤이유를 쳐다발라도 어쩔수 없다.
신비주의에서 탈출한 그가 더 멋있으니 말이다.
그는 영리하다
"따라올테면 따라와봐"
지누션
서태지와 아이들시절부터 함께하며 방송에서 누누히 얘기했음
휘성
휘성의 경우 서태지가 극찬한 신인이라는 근거없는 이슈로
휘성 데뷔무대인 태지보이스10주년 콘서트에서 사과한 적도 있음..
정확한 자료로는 [여러분들이 화나셨을줄알았는데...너무 호응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앞으로 선배님 얼굴에 먹칠하지 않는 가수가 되겠습니다 지켜봐주세요] 라고 했음
유아인
서태지 공연 ETP 같다왔다고 밝히고..
차 안에서도 서태지노래를 흥얼거린다고
이수영
라디오에서 말함
데뷔 초 서태지와아이들의 교실이데아를 좋아한다며방송에서 부른적이 있음
앞으로도 이만큼 획을 그을 수 있는 가수가 뮤지션이 나올 수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한 획을 아주 그냥, 제대로 표시나게 냈죠.)
정말로 현대 음악은 서태지씨의 음악을 빼놓으면 시체죠.
지금 행해지는 모든 음악이 서태지씨가 시작한 것에서 거의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가수 이수영의 "감성시대" 中
보아
보아는 신인시절 서태지 좋아한다고 하고
너에게란 노래에 반했다고 하는데
진심인지 기획사 의도인지 모르겠음..
차태현 다나
데뷔 초 잡지에서
[최근 가장 기뻣던 일 : 서태지와아이들 빅쇼 본것]
[최근 가장 슬펐던 일 : 서태지와아 읻르 은퇴]
몰래카메라찍는 도중이었는데
박경림이 와도 모르고 대형티비에 넋놓고 서태지 화 콘서트 비디오를 봄;;
2000년 서태지 화 콘서트 25일 다녀감
드라마촬영하다가 사라지면 서태지 공연보러 간것이라고 함...
서태지와아이들 빅쇼때도 찾아보니 리허설 구경가 있더라는-_-;; )
류시원
서태지 노래가 싸이월드 배경음악
봉태규,
라디오에서 밝힘..
서태지 6집 컴백때 태지매니아란 싸이트에 글도 올림
라됴에서 서태지와 같아지기 위해 자퇴를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고 함
봉태규가 기르는 강아지 이름은 Maya(마야-서태지 솔로 1집 1번트랙 제목;)
(여기서부터는 봉태규가 직접쓴 엽서. 이미지를 올려놓고 싶지만 형평성 생각에.ㅋ 이것도 궁금하면 검색)
지금 저는 태지형이 컴백홈 해 너무 좋구요
울트라 맨이야 를 매일 듣는 답니다.
글구 태지형 안티 사이트가 생겨 열 받는 답니다.
그럼이만 쓸께여 저희 영화 개봉되면 많이
봐 주시고요 저는 앞으로 다시 연기할 기회가 생기면 좀더
업그레이드 된 모습 보여 드릴께요 그럼 yo
아참 마지막으로 한말씀
"울트라맨 어렸을적 내꿈은"
진짜 끝 yo
이완,
엠넷 왓츠업요에서 태지형 팬이라면서
만나면 해주고 싶은말이 [태지형 사랑해요!!] 라고 함
하지원
기사떳음; 발리 ost에서 서태지 노래 10월4일 넣음
혜령, 체리필터
공연도 감
야인시대 개코
서태지와 같이 찍은 사진이 많이 알려짐
서울기획 사장 아드님으로 알고있음.
방송작가들
미안하다 사랑한다 작가..
홈페이지에
은채 설명하다 도중에 서태지얘기를 넣음
반올림 작가도 반올림중 서태지얘기와 노래를
심하게 많이 넣음
영화감독
\\\'살인의 추억\\\'의 봉준호
감독은 서태지의 열렬한 팬이어서
극 중 김상경이 맡은 서태윤이란 이름과 이미지를
서태지에게서 따왔다고 밝힘
서태지 핌 CF에 출연한 3명의 감독
지구를 지켜라 장준환감독 로드무비의 김인식감독 광복절 특사의 김상진감독
양동근,
서태지 옷도 따라입고.. 노래가사에 서태지 \\\\'컴백홈\\\\' 을 넣었음
(참고로 고등학교 수학여행때 컴백홈에 맞춰 춤도 춤. 듀스도 좋아함)
김생민
항상 서태지 소식 전할때 흥분함;; 팬이라고 자주 밝힘
이윤석도 동일
영화배우 감우성
서태지와아이들 2집때 신애라 라디오에서
서태지의 음악에대해 극찬함
영화배우 정보석
서태지를 보며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한다고 하셨었나.아무튼 홈페이지에 글쓰셨음
컨추리꼬꼬 탁재훈
부인이 서태지 팬이라고 야심만만에서 말함
임백천씨 부인도;팬이심..
임백천씨 본인도 서태지와아이들 데뷔때부터 든든한 지지자
최수종씨와 하희라씨도 말할필요없는 지지자
이휘재
스윗소로우
존경한다고 말한적있음
최홍만
씨름선수..최근 격투기 선수로 전향 K-1데뷔전 테마송을
서태지노래로 하고싶다고 기사
이본
데뷔때부터 서태지와아이들 & 서태지를 좋아함..
볼륨에서 진솔하고 당당한 서태지씨를 너무 좋아했다고 말함
김대중 전 대통령
서태지 7집 컴백 후 둘과의 만남 공개방송
방송불가 판정 난 노래에 대해 지지해줌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원
콘서트 갔다왔다는..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
나의 존경1호는 서태지라고 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