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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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역사의 시작... 1992... 난 알아요 ! (1) 2011/06/22 AM 11:31
역사의 시작, [난 알아요]


 


'서태지와 아이들'의 1집은 우리의 대중음악사를 그 이전과 그 이후로 나눌 수도 있을 만큼 몇 가지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우선, 비트 중심의 흑인 음악으로 트렌드를 바꾸고, 퍼포먼스의 개척을 통해 오디얼에서 비주얼로 대중의 관심을 전환시켰으며, 대중음악시장의 열쇠를 십 대에게 넘겨주었다. 사실 이런 변화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갑작스레 이루었거나 한 것은 아니다. 80년대 디스코 열풍을 통해 비트중심의 음악은 이미 우리 가요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었고, '소방차', '박남정', '김완선' 등등 퍼포먼스 위주의 가수들도 이미 한자리를 꿰차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시작하'진 않았으나 '완성시킨' 것은 누가 뭐래도 '서태지와 아이들'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당시 '뉴키즈온더블럭'같은 팝 아이돌에게 빠져있던 국내의 십대를 평정하고 새로운 팬덤을 형성한 것은 작금의 우리대중가요계에 절반은 그들의 몫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난 변화였다.

이처럼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난 알아요]는, 때로 음악외적인 것들로 인해 음악적으로 과소평가 받기도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결코 만만한 앨범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선 '랩댄스'로 표방되는 장르의 음악을 하면서 기타 리프의 과감한 사용은 자칫 단조롭고 기계적일 수 있는 비트 중심의 사운드에 풍성함과 라이브한 느낌을 가져다 주었다. - 록스러운 기타 리프의 사용이나, 김종서의 코러스에서도 보이듯, 수많은 팬들을 관광 보냈던 3집 [발해를 꿈꾸며] 이전에도 '서태지'의 록사랑은 꾸준했었다. - 이런 점은 보다 일찍 랩댄스를 시작한 현진영의 [New Dance 1]과 비교해서 들어보면 더 귀에 띄는데, 현악기의 기본속성인 긴장감과 그 중에서도 일렉기타 특유의 강렬함과 집중력을 이용한 곡들은 댄스음악에서 일렉기타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또한, 전적으로 비트에 의존하는 요 근래 댄스음악과는 달리, 비트 중심의 댄스음악을 하면서도 일정 수준이상의 멜로디를 뽑아내어 감성적으로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두었다.

당시 수많은 소녀팬들이 밤잠을 설친 건 단순히 미성의 목소리와 외모 뿐만은 아니었다. 앨범 전체를 통해 치고 빠지고, 조였다 풀었다 하는 능수능란한 그들의 테크닉은 '오빠 믿지?' 처럼 사춘기 그네들의 가슴을 파고 들었다. 이에 보듯이 [난 알아요]는 기본적으로 강약조절과 완급조절이 제대로 된 지극히 테크니컬한 구성의 앨범이다. 인트로인 'Yo! Taiji!' 에서 타이틀 곡인 '난 알아요'를 지나 서브 타이틀인 '환상속의 그대' 까지는 강렬하게 청자를 몰아붙인 뒤, 이어지는 '너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와 '이 밤이 깊어가지만'에서는 미디엄 템포로 한 번 숨고르기를 한다. 그 다음 라이브를 연상케하는 믹싱의 '내 모든 것'으로 살짝 분위기를 올린 뒤 '이제는'에서 다시 한 번 숨을 죽여준다. 그리곤 '난 알아요'의 영어버전(Blind Love)과 'Rock'N Roll Dance'로 달려주고 아웃트로인 'Missing'으로 모든 걸 정리해주는 구성은 '서태지'가 마케팅 뿐만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뛰어난 수완가이며 '작업' 능력이 상당함을 알게 해준다. 이러한 '작업' 능력은 뒤이은 2집 [하여가]에서도 빛을 발하고 결국 단 두 장의 앨범으로 우리 대중가요계를 송두리째 장악하는 결과를 이끌게 된다. 3집 [발해를 꿈꾸며] 당시 '교실이데아'에 멍해지고, '내 맘이야'에서 안드로 갔다온 수많은 십대들이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이라는 이유만으로 록을 찾아 듣고 메탈을 알려 했던 것은 이미 이 [난 알아요]와 후속작인 [하여가]를 통해 이들이 '대중이 듣고자 하는 음악을 하는'이 아닌 '우리가 하는 음악을 대중이 듣고자 하는' 위치에 까지 올랐기 때문이다.

혹자들은 서울올림픽 이후 대대적으로 밀려온 서양문화와 문민정부 출범을 앞둔 당시 상황 등을 거론하며 그 누구였든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올 수 밖에 없었으며 그것이 단지 '서태지와 아이들'일 뿐이었다고 한다. 또, 누구는 현재 대중가요의 모든 병폐의 시작이 그들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어쨌거나 대중에게 선택 받은 그들의 능력을 폄하할 이유는 없으며, 90년대 대중가요의 르네상스기를 이끌고, 좋게든 나쁘게든, 현재의 대중가요의 형성에 끼친 그들의 영향력은 분명히 인정해 주어야 한다. - 어차피 대학교 논문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그를 분석한 마케팅, 문화 서적이 만들어지는 마당 아닌가? - '서태지와 아이들'은 단순히 일개 가수로 보기엔 지나치게 거대하다. 그런 그들의 시작이 조금은 촌티나는 자켓의 33분 짜리 앨범 하나였다는 건, 그들의 데뷔 무대가 심사위원들의 악평으로 장식된 7.8점 짜리였다는 건 대부분의 역사가 그러하듯 '그 시작은 미미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기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글 / 김한얼 (네티즌 선정위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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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얼씨. 폰트 간약 조절 좀 맞추지. 눈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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