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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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서태지는 오타쿠다, 그리고 영리하다? (4) 2011/09/15 PM 10:08
레전드 프로파일 4탄 - 서태지
그는 오타쿠다, 훌륭하다, 그리고 영리하다.


후-하. 일단 한숨부터 한 번 쉬고 시작하자. “국내외 음악계에서 레전드로 꼽히는 뮤지션/밴드들을 보다 살갑고 친숙하게 소개”하기 위해 마련된 레전드 프로파일의 4번째 주인공은 서태지다. 서태지가 이 코너에 등장하기에 되기에 손색이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왜 내가 써야하는가? 서태지라고 하면 언제 어디서든 피튀기는 논쟁을 유발하는 희대의 떡밥아니던가? 안 그래도 그의 음악이 모방이냐, 독창적이냐, 신비주의냐 아니냐, 뮤지션이냐, 장사꾼이냐 등 수많은 이슈들이 얽혀 있는 마당에, 최근 이지아와의 결혼 및 이혼이 알려지며 서태지는 거대한 이슈의 블랙홀이 되었다. 그리고 본인은 지금, 그 블랙홀에 뛰어들려는 참이다. 후-하. 좋다.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주마. 이제부터 나는 서태지를 철저하게 분석하는 사설탐정이 되어, 서태지라는 뮤지션 혹은 정현철이라는 인물의 다양한 부분에 대해 ‘개인적인’ 결론을 낼 것이다. 설사 그 결론이 도발적이라 해도, 혹은 뻔하다 해도, 모든 것을 가감없이 드러낼 것이다. 그럼, 시작해보자.



# 서태지는 오타쿠다.
예전에 한 다큐멘터리에서 서태지가 무선조종(RC) 장난감들을 신나게 가지고 노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실제로 그는 육해공을 섭렵하는 엄청난 RC 매니아로 유명한데, 그 장면에서 서태지는 헬기를 조종하기도 하고 RC 비행기를 컴퓨터로 렌더링 한 후, 날개에 자기 이름을 써놓기도 하면서 좋아라 하고 있었다. RC 문외한으로서, 그걸 보고 든 생각은 딱 하나다. “얘, 오타쿠네.”

오타쿠란 무엇인가? 정의하기 나름이겠지만, 여기서는 보통 사람들이 그닥 관심을 가지지 않는 특정 분야에 빠져서 엄청난 희열과 열정, 집착을 느끼는 사람을 말한다. 말하자면, 건담 프라모델 MV002-알파에 색을 입히기 위해 한달동안 매일 6시간 동안 투자하는 사람이나, 자사 스마트폰에 등록된 한 어플리케이션의 노란색 그라데이션이 이상하다고 일요일 아침에 전화를 거는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수많은 RC기기와 수십만원 짜리 리모콘으로 트럭을 조종하면서 싱글벙글 웃는 서태지는 분명 오타쿠(그의 언어로는 ‘울트라매니아’)다. 하지만 RC는 서태지의 오타쿠적인 성향이 발현된 일부분에 불과하다. 서태지는 뭔가를 조립하고 조종하는데 희열을 느끼는 오타쿠다. 그의 이러한 성향이 가장 잘 드러난 앨범이 최근 앨범인 [Atmos]이다. ‘미스터리’와 ‘생명의 신비’와 같은 주제부터 뭔가 오덕스러운 냄새를 풍기더니, 드릴 앤 베이스와 IDM(Intelligence Dance Music)에 기반을 둔 음악은 오타쿠 정신의 진수를 보여준다. 원자처럼 잘게 쪼개진 리듬위에 베이스, 드럼, 하프, 피아노, 현악을 조립한 ‘Moai’나 ‘Human Dream’은 대충 들어도 드럼 트랙 만드는데만 두세달은 족히 걸렸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오타쿠 정신이 아니면 해낼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그의 오타쿠 정신이 [Atmos]에만 깃들어있는 건 아니다. 야성적인 느낌이 중요한 장르인 뉴메탈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오타쿠와 거리가 멀 것만 같은 앨범 [울트라맨이야]도 오타쿠 정신의 산물이다. 많은 트랙을 덧붙이지 않고 라이브의 느낌으로 녹음하는 게 일반적인 장르이지만, 서태지는 드러머의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킥이나 스네어를 연주자가 실제로 치고 그걸 샘플로 떠서 작업”했단다. 그러니까, 드러머가 직접 곡을 연주한 게 아니라, 기본적인 소리만 가지고 복사-붙여넣기를 한 후, 상황에 맞게 하나하나 조정했다는 말이다. 이런 식으로 작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들리게 만드는 과정을 보통 전문용어로 ‘정신적 노가다’라고 칭한다.

멀리 거슬러 올라가서, 데뷔곡 ‘난 알아요’에 그의 오타쿠적인 성향이 나타난다. 이 곡에는 그냥 들으면 잘 들리지 않지만, 자세히 들으면 들리는 복잡하고 섬세한 베이스 트랙이 삽입되어 있는데, 이는 그가 모태 오타쿠임을 증거하는 중요한 자료다. 이런 식으로 작업을 진행하니, 앨범 하나를 만드는데 4~5년이 걸리고, 앨범 하나에 곡이 대여섯곡 밖에 들어있지 않은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음악적 측면에서 이러한 서태지의 정체성은 대체로 장점으로 작용한다. 국내 아티스트 중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는 사운드 퀄리티나 라이브에서도 그에 못지 않는 수준의 사운드를 뽑아낼 수 있는 것도 모두 그의 손길을 거쳤기 때문이다. 오타쿠의 기본은 완벽주의다. 일반인들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부분도 절대로 그냥 넘기지 않으며, 이는 일반인들이 범접할 수 없는 퀄리티로 그대로 이어진다.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서태지의 오타쿠적인 정서는 서태지를 따르는 강렬한 팬심과 맞물려 손발이 오그라드는 멘트(“자, 같이 가자구요, 당장. 이스터섬으로 출발하도록 하죠.” - ‘Moai’, [The Great Seotaiji Symphony])나 가사(“U feel me / Here I came to show you love / U with me - ‘Live Wire’, [Issues]”)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오타쿠적 정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러한 접근방식이 지나치게 계산된 듯한 음악을 낳는다는 것이다. 물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구성된 음악도 좋지만, 때로는 원테이크로 녹음을 함으로써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을 드러내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있다. 오타쿠적인 접근이 더 강해진 서태지의 최근 음악에 감탄할 수는 있지만, ‘슬픈 아픔’이나 ‘너에게’와 같은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의 곡에서 느낄 수 있었던 풋풋한 감동은 쉽게 느낄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서태지는 훌륭한 뮤지션이다.

서태지의 음악세계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랩과 댄스를 주무기로 한 ‘난 알아요’부터 메탈과 랩, 국악이 혼합된 ‘하여가’, 힙합의 영향이 묻어나는 ‘Come Back Home’, 뉴메탈적인 성향의 ‘울트라맨이야’, 드럼 앤 베이스류의 일렉트로닉 ‘Moai’ 까지 다양한 음악장르를 넘나들어온 뮤지션을 한 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매 앨범마다 장르를 바꿔온 서태지의 행보를 보며 ‘장르 장사꾼’이라거나 ‘철학이 없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이러한 비판은 서태지가 특정 장르의 핵심적인 정신을 거세한 채 작법만 그대로 차용했다는 주장인데, 뭐,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지만서도, 모든 뮤지션이 한 장르에 철학을 가지고 매진할 필요는 없다. 서태지에게 장르라는 건 자신이 새로 재밌는 걸 만들어낼 수 있는 도구정도다. 장난감 배를 만들려는데, 그게 프라모델이든, 레고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이렇게 변화무쌍한 장르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결코 변하지 않으며 서태지의 중요한 음악적 정체성을 이루고 있는 건 다름아닌 대중적인 멜로디다. ‘난 알아요’가 처음 나왔을 당시, 사람들에게 충격을 던져준 건 분명 그 스타일이었지만, 사람들을 열광하게 한 건 귀에 박혀 떨어지지 않던 “오~ 그대여 가지마세요 / 나를 정말 떠나가나요” 였다. 이 때부터 서태지는 ‘하여가’, ‘널 지우려 해’, ‘Free styte-’ 등을 통해 자신의 멜로디 제작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고, 그 능력은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 본인처럼 서태지와 청소년기를 같이 보낸 사람이라면, 가장 많은 멜로디를 알고있는 뮤지션이 서태지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여러 장르의 요소들을 마음대로 가져와서 자신의 작법대로 주조를 하고, 거기에 환상적인 멜로디를 입혀내는 일은 십수년 동안 해왔다는 거, 이거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만큼 서태지는 훌륭한 뮤지션이다.



# 서태지는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영리하다.

서태지의 가장 큰 약점은 보컬이다.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부터 그의 보컬은 그의 가장 큰 무기가 아니었으며, ‘특색있다’ 이상의 칭찬을 이끌어내기는 어려웠다. 그의 목소리는 미성에 가깝기 때문에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기가 어렵고, 특히 그의 음악적 기반이라고 말할 수 있는 락 음악에 어울리는 목소리는 확실히 아니다. 서태지가 영리한 건, 그가 이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서태지는 라이브에서도 음반에서나 한번에 여러개의 보컬트랙을 겹쳐서 사용한다. 기본적으로 주 멜로디에 여러개의 트랙을 사용하며, 거기에 각종 화음을 넣는 트랙을 다시 여러개 받쳐준다. 서태지의 음악에서 보컬이 다소 기계적인 느낌을 주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물론 부작용이 없는 건 아니지만, 자신의 약점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장치를 만들어놓는 것은 영민한 뮤지션으로서의 당연한 자세다.



그의 영리함은 음악적인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상업적인 측면에서도 빛을 발한다. 한마디로, 그는 대중들이 뭘 좋아하는 지를 안다. 이건 그가 상업적으로 성공하기 위해 대중들의 기호에 따라간다는 말과는 약간 다른 말이다. 오히려 자신의 취향을 대중들이 좋아해준다는 말에 가깝다. 애플이 보통 일반적인 기업들이 하는 시장조사나 소비자 기호조사도 하지 않고 물건을 만드는데도 새로운 제품이 나올때마다 히트를 치는 것도 비슷한 원리다. 서태지는 기본적으로 대중적인 멜로디를 만들어내는 촉을 가지고 있으며, 팬들이 원하는 패키지가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다. 그런 영리함이 최근 싱글 3장을 분리해서 내고, 그걸 합쳐서 다시 앨범으로 발매하는 꼼수를 부리는 쪽으로 나타나는 것 같아 실망스럽긴 하다.



# 서태지 최고의 노래 10곡은 바로 이것이다.

어떤 뮤지션이 한 시대를 풍미하는 커리어를 이루었는지 알아보는 가장 쉬운 방법은, 몇몇 사람들에게 그 뮤지션 최고의 곡 10곡을 꼽아보게 하는 것이다. 사람마다 비슷비슷한 노래를 꼽는다거나, 10곡을 꼽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면, 그 뮤지션은 아직 그런 위치에 오르지 못한 것이다. 반대로 곡이 너무 많아서 10곡을 고르는게 어렵다거나, 사람마다 다른 곡들을 고른다면 그 뮤지션은 어느정도 반열에 오른 뮤지션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는 뮤지션이 과연 누가 있을까? 지금 언뜻 생각나는 건 조용필, 그리고 서태지 정도다. 십수년 동안 8장의 앨범을 통해 수많은 히트곡을 양산한 뮤지션으로서 서태지의 최고의 노래를 꼽는다는 건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그냥 본인이 했다.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마라. 서태지 커리어 사상 최고의 노래 10곡은 바로 이것이다. 모든 딴지와 비판은 정중히 사양한다.



10위 Human Dream
9위 필승
8위 너에게
7위 Take Five
6위 교실이데아
5위 하여가
4위 Take One
3위 Live Wire
2위 난 알아요
1위 시대유감



스캐터브레인 | 김종윤 (스캐터브레인 음악웹진 [스캐터브레인] 주인장)
음악웹진 '스캐터브레인' 주인장. (사)취직안하고먹고살기협회장. 햄스터 나이로 1살. 온라인에서는 로그스라는 닉네임을 쓴다.

http://www.scatterbr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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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포카렝    친구신청

RC하는 걸보고 오타쿠라 하다니..

비락 식혜    친구신청

싫어하진 않는데 그닥 좋아하지도 않음.
서태지 최근 노래는 노래방에 별로 업서..

욘사마빈라덴    친구신청

서태지 노래 거의 다 있을텐데요.. 제가 종종 불러서 암,

시대유감은 레알 명반이고,,
서태지 음악은 옜날 3, 4집을 지금 들어도 전혀 오래된 티가 없음, 오히려 더 좋습니다...

김꼴통    친구신청

대장님 만세!

하지만 제발 조용필이랑 묶지좀 말자.

신중현이랑 가왕님은 대중음악계에서 그냥 따로 존재하시는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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