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의 신작이 다른 때보다 무게감이 실리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전작을 낼 때와는 차원이 다르게 높아진 위상, 또 하나는 '3집'이라는 것이다. 걸그룹의 1인자 자리를 논하는 것은 이미 의미가 없어진 시점에서, 같은 기획사의 에이치오티나 에스이에스, 신화와 플라이투더스카이가 정점을 찍었던 시기와 맞물리는 세 번째 스튜디오 앨범이다. 관심이 없는 사람도 지금의 소녀시대라면 한번쯤 귀를 기울이게 될 법도 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신작에 대한 반응은 극과 극으로 갈리고 있다.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는 이들은 모두 '소녀시대'다운 모습의 실종을 근거로 삼는다. 사실 누구보다 이것을 잘 알고 있을 기획사임에도 끝까지 타이틀을 'The boys'로 밀고 나간 것은 굉장한 모험이다. 과감히 'Gee'와 같은 후크송 리바이벌을 버리고 새로운 고지를 목표로 삼은 것은 기획사가 남들보다 몇 수 앞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사실 그게 실패든 성공이든 중요치 않다. 다만 그것을 시도할 만한 시기라는 것이 확실할 뿐이다. 케이팝 열풍에 발맞춰 세계화라는 명목으로 내놓은 'The boys'라는 곡은 어떻게 보면 리스크가 굉장히 큰 싱글이지만, 지금이야말로 적기라고 생각했던 SM은 그 선택을 밀고 나갔다. 이렇게 기대가 팽배한 상황에서 이들은 내수 시장의 요구를 백퍼센트 맞추기보다는 그 희생을 발판삼아 가속도를 올리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많은 이들이 언급했듯 이 곡에서 지금까지 느껴왔던 '소녀'들의 감성을 느끼기는 힘들다. 강한 전자사운드, 둔탁한 비트에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 멜로디는 예사. 이미지는 전례 없이 강하고, 후렴은 중독성 있는 후크대신 'Girls' generation make you feel the heat! 전 세계가 너를 주목해'와 같은 랩 프레이즈가 반복될 뿐이다. 그럼에도 곡 자체의 완성도 자체는 녹록치 않다. 여백을 적당히 주며 감상하는 이들을 밀고 당기는 미묘한 매력, 단단한 리듬 구조는 굳이 한 부분을 포인트로 주지 않아도 '한 덩어리'의 곡 자체로서 승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느 걸그룹에 비해 한 발 앞서 있는 이미지는 이러한 통찰력에서 비롯된다. 남들이 트렌드에 '반응'해 따라가기에 급급할 때 사람들이 어떻게 보든 생각했던 대로 행한다는 것이다. 테디 라일리(Teddy Riley)가 라니아(Rania)의 'Dr. feel good'을 작업할 때도 이 정도로 대중들의 요구를 배제하지는 않았다. 오랜 경험을 통해 쌓인 회사의 노하우가 적어도 아이돌 시장에서만큼은 신항로를 개척하고 있는 것이다.
'The boys'를 제외하면 나머지 부분은 여느 국내 작품과 비슷한 구성이다. 특별한 것은 없지만 대신 < Oh! >(2010)에 비교했을 때 훨씬 들을만한 트랙이 많다. 애초에 프로모션 트랙을 염두에 두고 작업하는 듯한 요즘의 방식과는 달리 깊이는 없어도 함께 즐길만한, 후속곡으로 쓰여도 무리가 없는 트랙이 대폭 늘어났다. 상쾌한 선율의 신스팝 '텔레파시(Telepathy)', '훗'의 노선을 잇는 'Top secret'과 일본에서 발표했던 곡을 번안한 'Mr. Taxi' 등 빈약한 구성을 띄는 여타 그룹의 정규작에 비하면 훨씬 알차다는 인상을 준다.
다만 갈수록 쳐지는 듯한 가창은 문제시될만한 부분이다. 러닝타임이 끝남과 함께 느껴지는 무미건조한 감정처리는 동방신기의 < Mirotic >(2008)이 떠오르게 한다. 완벽한 이해 없이 스케줄을 쪼개 녹음했기에 생기는 결점이다. 다듬는 데까지 다듬었겠지만 그럴수록 공산품의 흔적은 더욱 뚜렷이 드러나는 법이다. 사운드의 여백이 생기는 발라드 '봄날'이나 '제자리걸음'에서 보컬만으로 그 빈 공간을 메우지 못하는 것이 그 예이다.
음악 팬들은 케이팝 열풍에 대해 약간은 역설적인 태도를 보이곤 한다. 국내에서 활동할 때는 알맹이가 없다고 비난하다가 일본에서 외화를 벌어오면 자부심을 느끼는 그러한 이중적인 태도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분명 아이돌 문화를 엔터테인먼트 자체로 인정하는 자세도 어느 정도 필요한 시점이다. 상업적으로 가공된 결과물들을 아무런 생각 없이 부르는 그러한 행태가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아이돌에게 뮤지션적 과업을 부과하려는 것 역시 그렇게 옳은 일임은 분명 아닐 것이다. 이미 시대는 이들의 음악을 세계에 알릴 대표적인 한국의 문화로 선택했다. 전세계의 10~20대를 뒤흔드는 대중성의 구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들은 신작을 통해 이를 가장 밀도 있게 만들어 냈다. 바야흐로 진짜 '소녀시대'다.
2011/10 황선업(sunup.and.down1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