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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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 DAUM 뮤직 스페설 기획연재 레전드 프로파일 19탄 (1) 2012/01/08 AM 01:59

 




 


레전드 프로파일 19탄 – 마이클 잭슨


지금, 이렇게 한정된 공간 안에서 마이클 잭슨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에 대해 생각한다. 큰 품 들지 않는 간단한 검색만으로도 전세계 규모로 무섭게 쏟아지는 그에 대한 정보가 얼만큼이며, 마이클 잭슨이라는 이름을 등에 업고 세상의 빛을 본 수 많은 서적들, 기사들 또 그 숫자만큼이나 많을 팬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중한 추억은 또 얼만큼인가. 그렇게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에 대해 아무런 부담 없이 말할 수 있는 건 어쩌면 객관적인 수치뿐일 수도 있겠다 싶다. 최연소 빌보드 차트 1위, 롤링 스톤지 표지를 장식한 최초의 흑인 뮤지션, 그래미 상 한해 최다부분 수상기록(1984년 [스릴러(Thriller)]로 8개 부문 수상), 역대 가장 많이 팔린 단일앨범으로 기네스북 등재[스릴러], 1억 4000만장 이상), 13곡의 빌보드 싱글 차트 1위 곡 그리고 지금도 분초 단위로 팔리고 있다는, 무려 7억 5천만 장이 넘는 음반 판매고. 하자고 들면 이런 놀라운 숫자와 기록들만으로도 몇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도 남는, 바로 그런 존재가 마이클 잭슨이다.

이리저리 둘러 말했지만, 지금의 내 상태는 어쩌면 ‘자신이 없다’는 게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58년 생. 5살의 나이에 데뷔해 갑작스레 유명을 달리한 2009년까지, 무려 40여 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끼 많고 탈 많은 팝 계의 정상에 흔들리지 않고 군림하며 ‘팝의 황제’라는 타이틀이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다 간 그의 인생을 도무지 어떻게 정리 해야할 지 감이 오지 않는다. 문화 변방 중의 변방 한국 변두리 골목에서마저 문 워크를 추는 아이들을 양산했고, 이름을 딴 만화 캐릭터와 노래들을 탄생시켰으며, 대통령 이름보다 기억하는 이들이 많았던 그 이름을 말이다.


 


그렇다. 생각해보면 우린 그를 그렇게 단순한 뮤지션이 아닌, 어떤 대명사처럼 그를 기억하고 있다. 팝스타=마이클 잭슨이라는 공식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수많은 히트곡들의 숫자만큼 그의 춤이나 무대, 뮤직비디오가 익숙했던 것이다. 가끔 앨범 제작보다 더 공을 들인 것처럼 보이는 그의 뮤직비디오들은,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까지 인정 받은 마이클 잭슨의 대표적인 트레이드 마크였다. MTV에서 방송된 최초의 흑인 음악 뮤직비디오인 Billie Jean', 무려 14분이라는 길이로 웬만한 단편영화 뺨을 치던 길이와 완성도를 자랑했던 ‘Thriller’, 몰핑 기법’이라는 새로운 기술의 도입으로 표현의 장을 넓힌 'Black Or White'까지. 그가 남긴 뮤직 비디오들은 단순한 뮤직비디오가 아닌 혁신과 도전의 기록이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그의 전설적인 라이브는 또 어떤가. 공연을 할 때마다 747 점보 여객기가 몇 대씩 동원된다는 엄청난 규모의 장비도 장비지만, 마치 그 한 곡을 위해 준비된 무대인 것처럼 시시각각 변화하는 무대, 의상, 조명은 마치 이것이 라이브의 정석이다 소리 높여 외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가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공연자(Performer)’ 부문에 ‘작곡가’ 부문보다 먼저 헌액되었다는 건 그런 의미에서 꽤 의미심장하다.

물론 이렇게 화려한 면모를 갖췄다고 해서 음악적인 성과가 그에 미치지 못했냐 한다면 천만의 말씀. 두말하면 입이 아프기 때문에 가만히 있었을 뿐이다. 초록은 동색이라 했던가. 이 전설 곁엔 그만한 전설들이 항상 들끓었다. 그 가운데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건, 퀸시 존스(Quincy Jones)의 이름이다. 솔로 데뷔작 [Off The Wall]에서 [Bad]까지 격동의 80년대를 그와 함께하며 ‘노래 잘하는 소울풀한 꼬마’를 지금의 팝의 황제 자리에 끌어올린 일등공신이 바로 그였다. 이 두 천재가 손 잡고 만든 작품들이 이후의 팝 음악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는, 이거야말로 두 말하면 잔소리다. 이쯤에서 더없이 아쉬워지는 건 이들의 결별 후 마이클 잭슨의 행보다. 사실 이후에 발매된 작품들 역시 황제의 이름에 부족하지 않을만한 훌륭한 앨범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성과가 좋지 않았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천문학적인 판매량이나 ‘최고의 팝스타’라는 네임 벨류는 변함없었지만 그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90년대 초반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각종 사생활 관련 가십들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 번 잡힌 발목은 좀처럼 뿌리치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솔로 데뷔 이후 단 6장의 앨범밖에 내지 않은, 이 완벽주의 엔터테이너의 삶은 그렇게 스캔들로 얼룩진 채 막을 내렸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십 수년 간 그를 가리키던 검지손가락들은 이제야 그의 소중함과 위대함을 깨달았다는 듯 하나같이 엄지손가락으로 갈아 탔지만, 늦어도 한참 늦은 북이었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 위대한 팝 아이콘이 남기고 간 흔적들을 듣고 또 듣고, 보고 또 보는 일뿐이다.


 


마이클 잭슨을 기억한다. 황색언론에 찢기고 밟혀 불운했던 말년을 보낸 한 천재의 드라마틱한 삶 따위로서가 아닌, 우리 모두의 어린 시절에 각자의 모습으로 자리한 완벽한 엔터테이너로서 기억한다. 음악 좀 듣는다는 이들만의 대통령이 아닌, 꼬부랑 말 하나 몰라도 사랑할 수 있는, 라디오와 TV만 켜면 더없이 가까운 곳에서 만날 수 있는 그런 가까운 별로 기억한다. 가능하다면 유통기한 없이. 그리고 그 유통기한 없는 황제의 음악과 이야기는, 영원히 살아 세대를 넘어 우리 곁에 남을 것이다. 거기엔 이 글 아래에 달릴 수 많은 이들의 덧글도 한 몫 할테다. 전설의 숙명이란 이토록 이 세상을 떠나도 쉴 틈이 없다.


 


 



 


출처: http://music.daum.net/musicbar/musicbar/detail?menu_id=13&board_id=2703



Michael Jackson - Dangerous World Tour Live In Mexico, ''J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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