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만이 가능했던 라이브 엔터테인먼트 역사상 전무한 초대형 월드 투어의 시금석, 20여년 만에 최초로 공개되는 [Bad] 투어의 하이라이트인 전설의 웸블리 아레나 퍼포먼스에서의 뜨거운 기록. [Live At Wembley July 16, 1988]
[Bad] 월드 투어가 마이클 잭슨의 첫 솔로 투어로서 개최되어 장장 16개월 동안 123회 공연을 통해 440만 명 이상의 관객 동원을 기록하면서 역사상 가장 성공한 투어로써 기네스북에 등재된다. 1987년 6월, 처음으로 그의 솔로 투어 계획이 발표됐다. 일본에서의 9회 공연을 시작으로 강행군이 이어졌다. 총 22대의 화물트럭 분량의 투어물량이 소요됐는데 스테이지에는 700여 개의 조명, 40개의 레이저, 두 대의 24X18피트 스크린, 그리고 마이클 잭슨과 연주자들을 위한 70여벌의 무대의상을 갖춰내고 있었다.
사실 [Bad] 투어는 일본에서의 라이브, 그리고 로마에서의 [Bad] 투어 라이브가 비공식적으로 공개되기도 했는데, 지금 당신의 손에 쥐어진 웸블리 라이브의 경우 유독 수많은 팬들이 릴리즈를 기다려왔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풀버전을 원한 팬들의 탄원서에도, 완벽주의자 였던 마이클 잭슨은 공연이 이런 식으로 릴리즈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시간이 25년 흐른 지금 드디어 이 라이브 실황의 뚜껑이 열렸다. 라이브가 펼쳐지는 스타디움 내에서 당일 중계스크린에 실시간으로 비춰졌던 영상을 녹화한 이 VHS는 마이클 잭슨 자신이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있던 물품으로이 카피만이 유일하게 존재하는 웸블리 실황의 풀 버전 비디오이어서 디지털 복원과정에서 약간의 화질보정을 통해 우리 앞에 공개됐다. 마이클 잭슨이 직접 가지고 있던 카피를 추출해냈다는 대목이 어떤 면에서는 더욱 친밀하게 다가오는 듯 느껴지기도 하다.
1988년 7월 14일부터 5일간 펼쳐진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 라이브는 그야말로 이 투어의 어떤 절정이었다. 투어의 시기와 29세였던 그의 나이로 짐작했을 때도 꽤나 탄력을 받고 있었을 무렵이었고 결국 웸블리에서의 공연을 [Bad] 투어의 하이라이트로 지목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이 열기는 가히 전세계적이었고 때문에 5일간의 공연에 무려 백 5십만 명의 사람들이 티켓을 원했다. 결국 한달 후에 두 번의 추가공연을 가져 웸블리 쇼에 총 5십만 4천 여명이 쇼를 관람하여 단독 아티스트로 웸블리 스타디움 최다 관객동원이라는 기록을 수립해내면서 기네스북에 등재된다. 어마어마한 관객의 수치였지만 그나마 맨 처음 요청된 티켓수의 3분의 1이 채 안 되는 수준이었다
Bonus
7월 16일 웸블리 영상 이외의 세 곡이 DVD에 보너스로 추가됐다. 1987년 9월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불려진 [Bad]와 [I Just Can’t Stop Loving You], 그리고 본 편 공연 하루 전날인 7월 15일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The Way You Make Me Feel] 역시 본 DVD를 통해 확인할 수 있겠다.
마이클의 영혼이 담겨진 곡과 경이로운 몸 동작, 그리고 노래가 어떤 시대의 중요한 순간처럼 각인되어졌다. 모니터에서 연기가 나올 정도의 열기가 영상이 진행되는 내내 이어진다. 유일무이한 표현력에서 비롯되는 압도적인 힘으로 유지 되는 이 종합 퍼포먼스는 다른 여느 라이브들과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땀 투성이가 되어도 논스톱으로 열창하면서 춤추는 모습은 마치 스스로의 절정기를 알고있다는 듯한 위엄 같은 것이 느껴졌다.
일전에 발매된 [Dangerous] 투어 당시의 부카레스트 라이브라던가 [This Is It]과 비교했을 때 확실히 젊은 육체에서 발현되는 저돌적인 힘같은 것이 영상에서 감지됐고 이는 어떤 흥분의 감정을 유도해냈다.
'팝의 황제(King Of Pop)'라는 미사여구는 과장 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그냥 있는 그대로의 마이클 잭슨을 수식하는 단어로, 마이클 잭슨의 솔로 투어는 최초부터 끝까지 최고였다. 우리의 삶에서 감동이란 매일 일어날 수 없는 것이지만 이 컬렉션, 그리고 DVD를 통해 이 소중한 감동과 떨림을 손에 넣을 수는 있다.
한상철(불싸조 facebook.com/bullssazo) 평중 발췌
노래 : Michael Jackson 마이클 잭슨
마이클 잭슨 음악 여정은 주지하다시피 1963년 4명의 형들과 함께 결성했던 패밀리 그룹 잭슨 파이브(Jackson 5)로 시작되었다. 5살이라는 어린 나이와 그에 걸맞지 않게 리드 보컬을 맡았던 그는 너무나도 빼어났던 가창력과 귀여운 춤 실력 때문에 언제나 세간의 관심대상이었다. 지방을 중심으로 명성을 쌓아가던 잭슨 파이브와 마이클은 1969년 베리 고디의 모타운 레코드와 계약하면서 본격적으로 팝 음악계에 뛰어들었다.
첫 넘버 원 싱글 ‘I want you back’에 이어 ‘ABC’ ‘The love you save’ ‘I’ll be there’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2년 간 그룹활동에 전념하던 마이클 잭슨은 1971년 12월 탐라-모타운 레코드와 솔로 계약을 체결했다. 1971년 데뷔곡 ‘Got to be there’를 발표해 싱글차트 4위에 랭크시킨 후 ‘Rockin’ Robin’, ‘Ain’t no sunshine’, ‘Ben’, ‘I wanna be where you are’, 등을 잇따라 히트시키며 솔로와 그룹활동을 성공적으로 병행했다.
마이클 잭슨이 변성기가 지나고 성인으로 접어들자 잭슨 파이브도 점점 퇴색해갔고, 1979년 마이클은 드디어 성인으로서 첫 음반 을 발표했다. 1977년 흑인판 <오즈의 마법사>였던 뮤지컬 영화 <더 위즈(The Wiz)> 사운드트랙을 통해 만났던 퀸시 존스가 앨범의 프로듀서로 동참해 마이클 잭슨의 ‘성인신고작’을 한결 윤택하게 빛냈다.
활기 넘치는 리듬의 펑크(funk)와 디스코, 소울, 그리고 록과 팝, 발라드가 퓨전된 그 음반에는 마이클 잭슨이 작곡한 2곡의 업 템포 댄스넘버 ‘Don’t stop till you get enough’(최근 영화 <러시아워2>에 삽입되었음)와 ‘Working day and night’와 로드 템퍼튼 작곡의 깔끔한 팝 넘버 ‘Rock with you’, 절제된 보컬의 발라드 ‘She’s out of my life’ 같은 히트곡이 실려있었다. 수록곡 중 ‘Girlfriend’는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가 작곡해 준 곡으로 향후 둘 간의 파트너십을 예고했다.
이 마이클 잭슨의 방향성을 제시해 준 앨범이라면 1982년 12월에 발표된 는 ‘팝의 황제’라는 마이클 잭슨의 원대한 꿈을 실현시킨 회심작이었다. 퀸시 존스와 마이클 잭슨의 공동 프로듀스작인 그 앨범은 37주간이나 앨범차트 정상을 지켰으며 현재까지 미국에서만 2천6백만장의 경이적인 판매고를 올렸다. 또한 전례가 없는 무려 7곡이 싱글 발매되어 모두 차트 10위 내에 올랐고 그 중 2곡이 정상을 차지했다. 그 앨범으로 마이클 잭슨은 1984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역대최다인 7개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2000년 산타나와 타이 기록).
‘문워크(Moonwalk)’라는 독창적인 댄스를 유행시킨 ‘Billie Jean’과 에디 밴 헤일런의 기타 속주가 흐르는 ‘Beat it’이 차트 1위에 올랐으며, 첫 싱글로서 폴 매카트니와의 듀엣 곡이었던 ‘The girl is mine’(2위), ‘Wanna be startin’ somethin’(5위), ‘Human nature’(7위), ‘P.Y.T.’(10위), 마지막 싱글 ‘Thriller’(4위) 등이 연속해서 히트했다. 백인 최고스타 폴 매카트니와 록 기타의 거장 에드워드 밴 헤일런을 끌어들였다는 것은 크로스오버는 물론, 더 많은 수요층에게 다가가려는 그의 음악적 야심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Billie Jean’의 뮤직비디오는 MTV가 백인 록 뮤지션의 뮤직비디오만을 방영한다는 불문율을 깨고 틀었던 역사적인 첫 흑인 뮤직비디오였다. 한편 1984년 4월에는 폴카 음악과 ‘패러디의 대가’인 얀코빅(‘Weird Al’ Yankovic)이 ‘Beat it’을 패러디한 ‘Eat it’을 발표해 싱글차트 12위에 진입시키기도 했다.
영국의 난민구호 자선 프로젝트였던 밴드 에이드(Band Aid)의 ‘Do they know it’s christmas?’의 성공에 자극 받은 마이클 잭슨과 라이오넬 리치는 막강한 스타들을 규합, 유에스 포 아프리카(USA For Africa)를 조직해 1985년 1월 그 미국 버전인 ‘We are the world’를 만들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다. 그 해 8월에는 그간 음악동지였던 폴 매카트니와의 심각한 균열이 생겼다. 마이클 잭슨이 ‘레논/매카트니’ 크레딧으로 된 250곡이 넘는 비틀스 곡들의 판권을 4천7백5십만 달러에 사버렸기 때문이다. 이 일로 인해 협력관계가 깨졌음은 물론 현재까지도 그 둘은 관계를 회복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갱스터 영화의 대부 마틴 스코시즈가 감독한 17분짜리 뮤직비디오 ‘Bad’가 1987년 2월에 선보였고, 8월에는 분위기가 한층 어두워졌으며 록적인 느낌이 강화된 새 앨범 가 발매되었다. 퀸시 존스가 세 번째로 프로듀스를 맡은 이 앨범은 전작의 흥행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그래도 8백만장 이상 팔려나가는 성공을 거둔다. 특히 무려 5곡이 싱글차트 1위를 기록해 2곡이 1위에 오른 전작을 능가했다.
여성 보컬 시다 가렛과 호흡을 맞춘 ‘I just can’t stop loving you’를 시작으로 타이틀곡 ‘Bad’, 흥겨운 핑거 스냅이 시종일관 등장하는 ‘The way you make me feel’, 시다 가렛과 글렌 발라드가 공동 작곡한 발라드 넘버 ‘Man in the mirror’, 음산한 분위기가 압권인 ‘Dirty Diana’ 등 모두 5곡이 차례로 정상에 등극했다. 그 외에도 ‘Smooth criminal’, ‘Leave me alone’ 등 수록곡 전반이 주목받았다. 1988년 12월에는 마이클 잭슨과 존 레논의 아들 숀 레논 등이 출연한 영화 <문워커(Moonwalker)>가 전 세계에 개봉되었다.
보다 자신 고유의 음악을 찾기 위해 퀸시 존스와 헤어진 마이클 잭슨은 1991년 홀로서기를 시도한 첫 작품 를 발표한다. 젊은 프로듀서 테디 라일리를 메인 프로듀서로 받아들여 만든 이 음반은 마이클 특유의 사운드에 최신식 힙 합과 랩, 메탈 음악 등이 합쳐졌다. 작곡과 제작에 있어 마이클 잭슨의 재능을 마음껏 펼쳐 보인 음반이었지만 너바나 같은 그룹의 얼터너티브 록 태풍에 휘말려 전작들의 파괴력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Remember the time’, ‘Jam’, ‘In the closet’ 등 테디 라일리가 솜씨를 발휘한 곡들과 영화 <프리 윌리>의 주제곡으로 쓰였던 ‘Will you be there’ 같은 곡들은 대중들과 평단으로부터 동시에 큰사랑을 받았다. 또한 ‘Black or white’의 뮤직비디오에서 보여준 ‘모핑’ 기법 같은 놀라운 기법들은 향후 영상 발전에 디딤돌이 되었으며 에서부터 구현된 환상적인 스튜디오 기술로 다시 한번 녹음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마이클 잭슨은 자신이 원하는 악기음색과 음원을 찾을 때까지 스튜디오 작업에 매달렸으며, 코러스 만해도 음색을 바꿔가며 다채롭고 풍부하게 꾸며 일반 제작자들은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음악을 들려주었다. 녹음기술만으로 볼 때는 모든 ‘프로듀서와 엔지니어의 드림’이었다.
해가 지지 않는 성공가도를 달리던 마이클 잭슨의 기세가 한풀 꺾인 것은 1993년의 일이다. 그 해 8월 바로 어린이 성추행 사건이 터진 것. 이 사건은 그간 깨끗한 이미지를 이어가던 그에게 막대한 타격을 주었으며, 한동안 그는 언론의 집중포화에 시달렸다. 그러다 얼마 후 갑작스레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 리사 마리 프레슬리와 결혼했고, 이에 매스컴은 ‘여론 무마용’이라며 그에 대한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매체의 공격이 심해짐에 따라 마이클 잭슨의 분노도 정비례했다. 그에 대한 분노는 1995년에 발표한 더블앨범 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한 장은 히트곡들로, 다른 한 장은 신곡들로 구성된 이 음반은 ‘역사’로 해석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얘기들을 많이 담고있었다. 특히 그를 괴롭혀온 매스컴과 어린이 성추행 소송인에 대한 원한과 경멸, 냉소 등이 짙게 깔려있었으며, 그 때문에 음악도 예전과는 달리 상당히 거친 사운드가 지배적이었다.
알 켈리와 지미 잼 & 테리 루이스, 댈러스 오스틴 등이 프로듀서로 참여한 이 음반에서는 여동생 재닛 잭슨과 듀엣을 이룬 ‘Scream’과 ‘They don’t care about us’, ‘D.S.’, ‘Money’, ‘2 Bad’ 같은 곡을 통해 쇼비즈니스와 세상의 폭력에 대한 분노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물론 ‘You are not alone’, ‘Smile’ 등 따뜻한 노래들도 있었지만 다른 차가운 곡들 탓에 듣기가 좀 부담스러웠고, 그래서였는지 ’주라기음반’에 걸맞지 않게 흥행도 부진했다. 1997년에는 리믹스 앨범 을 발매하기도 했다.
4년이 흘러 2001년 그는 솔로 데뷔 30주년을 맞았다. 3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영예를 얻었으며, 9월에는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휘트니 휴스턴을 비롯해 엔 싱크, 브리트니 스피어스, 데스티니스 차일드, 어셔 등 당대 최고의 팝스타들이 출연한 가운데 그의 솔로 30주년 기념 공연을 가졌다.
그리고 10월 30일, 마이클 잭슨은 6년만의 정규 앨범 을 발표하며 다시 팬들 앞에 섰다. R&B 최고의 프로듀서 로드니 저킨스가 메인 프로듀서로 참여한 이 음반은 전작에 비해 훨씬 부드러워졌으며 한동안 찾아보기 힘들었던 특유의 활기 넘치는 리듬도 회복했다.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는 등 여러 좋은 일이 겹쳐서인지 밝은 분위기의 내용물들이 담겼다.
3마디의 독특한 리듬이 중독성을 발휘하는 첫 트랙 ‘Unbreakable’, 춤추기에 좋은 부드러운 댄스리듬 그리고 약간은 복고적 사운드가 듣기 편한 첫 싱글 ‘You rock my world’, 변화가 심한 비트가 인상적인 ‘Heartbreaker’ 등이 비트감 느껴지는 곡들. 라틴 풍의 기타 연주가 잔잔한 ‘Whatever happens’에서는 산타나의 무게감 있는 연주도 들을 수 있으며, ‘Speechless’, ‘The lost children’, ‘Break of dawn’ 같은 곡들은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발라드 곡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