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아
접속 : 6213   Lv. 134

Category

Profile

Counter

  • 오늘 : 1211 명
  • 전체 : 2516375 명
  • Mypi Ver. 0.3.1 β
[서태지] [추억의 그 앨범] 서태지를 '락커'라고 부르는 것 (0) 2012/12/14 PM 04:21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헤비니스

지난 20년 동안 서태지는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로 네 장, 솔로 가수 서태지로 네 장의 정규앨범을 발표했다. 이 여덟 장을 한데 모으면 대략 ‘록’의 모양새가 나올 것이다. 그럼에도 서태지를 ‘로커’라고 부르는 것은 여전히 망설여지는 일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에서 서태지가 워낙 다양한 장르를 소화했고, 그 잔상이 서태지라는 음악인을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존재로 못박아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2년~1996년’을 지우고 ‘1998년~현재’에 집중하면 서태지는 영락없는 로커다. 얼터너티브 록, 뉴 메탈, 이모코어 등 록의 영역에서 운신하고, 외부 활동을 본격화한 2000년부터 항상 밴드를 대동했고, ‘ETP페스트’로 명명한 대형 록 페스티벌을 5회에 걸쳐 성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련의 활동은 서태지와 록을 하나로 묶을 수 밖에 없다.

앨범명: 6집 울트라맨이야
아티스트 및 발매일: 서태지 | 2000.09.08
타이틀곡: 울트라 맨이야
앨범설명: 서태지가 돌아왔다.짧지 않았던 4년7개월간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음악생활을 하기로 마음먹기까지 그는 지난5집 테이크원 앨범 이후로 2년동안 새로운 음반작업에 몰두해 왔으며 좋은 음악이 만들어졌다는 강한 자..

단, ‘로커 서태지’의 이미지가 극대화한 시작점은 1998년에 나온 5집이 아닌 2000년에 나온 6집이다. 1996년 은퇴 선언 후 약 4년 반 만에 모습을 드러낸 서태지는 새로운 멤버로 구성한 자신의 밴드와 무대 위에 서면서 ‘서태지와 아이들’에 갇혀 있던 대중의 인식을 무너뜨렸고, 5집의 얼터너티브 록보다 더 육중한 사운드로 대중의 인식을 재건하기 시작했다. ‘울트라맨’을 외치는 서태지는 더 이상 우리가 알던 춤추는 미소년이 아니었다.

5집과 마찬가지로 서태지의 6집, 즉 두 번째 솔로 앨범은 소품 세 곡을 포함한 아홉 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5집의 ‘Take Five’이나 7집의 ‘0(Zero)’와 같은 쉼표 없이, 소품을 제외한 여섯 곡 모두 격렬한 감정을 토로한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음악 자체는 콘(Korn), 림프 비즈킷(Limp Bizkit), 콜 체임버(Coal Chamber)와 같은 당대의 뉴 메탈 밴드들을 연상시킨다. 둔중한 저음이 낳은 기타 리프와 힙합에서 힌트를 얻은 탄력 넘치는 리듬, 하드코어에 기반을 둔 역동적인 창법이 대표적인 기제들이다. 그렇다고 완벽한 표절 예시가 되는 곡은 또 ‘예나 지금이나’ 찾기 어렵다. 원래 그랬던 것처럼 서태지는 자신이 흥미를 갖고 있던 장르와 스타일을 학습한 다음 본인 소유의 노래를 창작했을 뿐이다.

사운드의 포화 속에서 서태지가 입으로 뱉어내는 것은 분노와 고통의 언어들이다. “가만히 참기엔 가슴 시린 오기가, 기나긴 이 어둠이 사기 같아 엿 같아”(‘탱크’), “불타버려 우린 쓰레기인걸. 내겐 따뜻한 느낌이 없어 왜”(‘오렌지’), “내 두뇌를 넘어선 두려움이 내 피로 고통을 뿜어 올렸어”(‘ㄱ나니?’) 이와 마찬가지로 마니아를 위한 찬가인 ‘울트라맨이야’, 인터넷의 폐해를 논한 ‘인터넷 전쟁’ 역시 괴로움과 노여움이 남긴 흔적들이다. 히든 트랙 ‘너에게’의 변신은 더할 나위 없이 상징적이다.

뜨겁게 달궈진 언어들은 서태지의 화려한 표현력에 힘입어 더 강한 설득력을 갖는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서태지의 가창 스타일은 그 어느 때보다 매섭다. 거친 음악에 어울리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서태지가 각고로 노력했음을 노래 한두 곡만 들어봐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노랫말을 힘없이 읊조리다가도 핏대를 세우며 토해내고, 이것도 모자라 처절하게 울부짖는 서태지의 모습은 앨범의 하이라이트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서태지의 6집은 당시 ‘핌프 록’이라는 이름표를 단 뉴 메탈을 한국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지만 음악의 성격상 기대 이상의 대중화를 낳지 못했다. 한국의 가요계와 여러 모로 동떨어진 느낌이 강했다. 그러나 2012년에서 돌이켜 봤을 때, 한국이 잉태한 록 앨범 가운데 이만큼 차진 소리와 탄탄한 편곡 구성을 갖춘 경우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여전히 놀라운 것은 앨범 전체를 혼자 만들다시피 한 서태지의 음악적 역량이다. 6집은 서태지가 뛰어난 록 뮤지션임을 확증한다. 이 앨범에서 나타난 서태지의 음악적 학습 능력과 창작력, 구현 능력은 단연 발군이다. 그래서 2000년대 이후 많은 록 음악 팬이 서태지의 음악에서 ‘무언가’를 기대했고, 또 기대하고 있다. 이 기대감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야기한 기대감과 다른, 또 다른 설렘임이 분명하다.

백비트 | 김두완 (대중음악애호가)
<이즘>, <핫트랙스>에서 이런저런 글을 썼다. 대중음악과 함께하는, 정년 없는 인생을 꿈꾸고 있다.

http://100beat.com

신고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