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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기가 거의 사라져 안식과도 같은 어둠이 자리 잡아 간다. 두 달은 분명 밝지만 태양만큼 세상을 비추기엔 너무도 부족하다. 그리고 흩뿌려진 별들은 밝게 빛나지만 세상에 빛을 주지 않는다. 누군가 그랬던가. 별은 바라보는 사람에게만 빛을 준다고.
숲은 한없이 고요하기에 홀로 맞이하는 밤은 꽤 몽환적이다. 그러나 리타는 밤의 정취엔 관심을 주지 않은 채 자기 일만 하였다. 숲에 설치된 여러 시설들과 덫을 확인해보고 몬스터가 침입하진 않았는지 살펴본다. 영지의 숲은 마을 바로 옆에 위치해서 몬스터의 침입 경로가 자주 되기 때문에, 그녀는 아버지를 도와 기본적인 방책부터 알람 등을 설치하고 보수하는 일을 해왔다.
여성 혼자서 이런 일을 하는 게 위험하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사실 그녀는 헬턴트의 어지간한 남성보다 강하다.
어린 시절부터 여자애답지 않게 무술에 관심을 보였고, 경비대에선 놀이 삼아 그녀에게 이것저것 가르쳤다. 하지만 그녀는 무섭게 몰두했고, 십대 중반쯤엔 이미 동년배에서 상대를 찾아볼 수 없는 정도가 되었다. 스무 살에는 여행을 떠나 경험을 쌓았고, 돌아온 후 사람들과 제대로 검을 맞부딪친 적은 없지만 몬스터를 상대로 더 향상된 실력을 보였다.
물론 아무리 그런 그녀라 하여도 여러 몬스터를 상대하는 건 무리가 있다. 다만 숲에서 자랐기에 숲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게 가능해서 여차할 땐 몸을 쉽게 빼낼 수 있다. 대체로 그녀가 위험하게 생각하는 몬스터들은 그 움직임을 따라 올 수 없다. 그리고 경비대에 알려 몬스터를 퇴치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위험을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르기에 사람들은 홀로 다니는 그녀를 걱정한다. 그녀도 위험을 잘 알기에 아버지처럼 경비대 순찰에 맞춰서 같이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다만 오늘처럼 마을이 떠들썩 할 때는 홀로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 드래곤과 군사들이 있으니 침범을 격퇴하는 데는 걱정이 없지만, 침범하는 그 순간 사람들이 희생될 수도 있으니 주의를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녀가 하는 일련의 일들은 모두 그런 슬픔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철그럭
리타가 트랩에 신경을 쏟고 있을 때, 어디선가 병장기를 든 사람들이 움직일 때 나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손을 멈추며 감각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녀는 꽤 기척에 민감한 편이기에 소리의 진원지를 금방 파악했다.
“병사들이군.”
병사들이 아니고서야 횃불을 쓸 리가 없지. 거기다 병장기룰 제대로 갖추려면 오크 군단이 아닌 이상 불가능 할 것이고.
먼 거리에서 불빛이 일렁거리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안심했다. 병사들은 아래쪽에 나있는 숲길을 통해 이동하고 있었다.
“이 밤에 무슨 일이지? 오늘 순찰을 나온다는 말은 없었는데.”
들릴리 없는 질문을 혼잣말로 내뱉으며, 리타는 병사들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녀가 있던 쪽의 트랩은 거의 다 확인한 상태였고, 병사들이 무슨 일로 움직이는지 알아 볼 필요가 있었다.
그녀는 길도 제대로 나있지 않은 숲을 마치 사슴처럼 날렵하게 달려갔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엘프로 착각할 수도 있을법한 장면을 연출하며 리타는 병사들과 거리를 줄여갔다.
그렇게 병사들에 가까이 갔을 때쯤, 병사들이 아닌 다른 기척을 느꼈다. 기척을 감출 생각은 없었는지 확연하게 느껴진다.
리타는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기척의 정체가 몬스터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혹여 병사들을 습격하려는 존재일 수도 있다. 만일을 대비해 나쁜 것은 없었기에 그녀는 기척이 느껴지는 쪽으로 진로를 바꿨다.
이윽고 기척을 내는 상대방에게 가까이 갔을 때, 상대방이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둠과 숲에 가려 자세히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특유의 느낌은 인간임이 확실했다. 거기다 어째서인지 민트향이 느껴진다.
리타는 잘 버려진 롱소드를 천천히 뽑아 앞을 겨누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사람이면 답하고 몬스터라도 살고 싶으면 답해라.”
상대방은 달빛에 검이 번쩍거리는 것을 보며 숨을 삼켰다. 무기가 겨눠지자 자연스럽게 몸에 힘이 들어가며 긴장감이 전신을 지배했다. 리타는 상대방이 멈춘 게 확실해 지자 진지하게 말했다.
일 더하기 일은 몇이지?”
“……이.”
“샌슨보단 나은걸 보니 사람이군. 누구냐. 이곳은 영주님의 숲이다.”
조심스럽게 나온 대답은 몹시 떨리면서 앳된 목소리였다. 상대방이 검을 먹었음과 나이가 어림을 짐작할 수 있었다. 리타는 검을 내렸지만 완전히 집어넣지는 않은 채, 계속 진지한 목소리를 냈다.
하나 상대방의 대답은 리타로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디, 디트리히 할슈타일…… 이에요. 드래곤 라자 입니다.”
실수했다.
리타는 황급히 검을 집어넣으며 상대방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어둠에 가려졌던 얼굴은 몹시 창백해진 상태로 불안함에 떨고 있었다. 나이는 두 자릿수가 되기에 조금 모자라 보이는 정도의 어린아이다. 단출한 평상복을 입고 있는데다 잔뜩 겁에 질린 얼굴은 낮에 본 그 아이가 맞나 의심스러웠지만, 그녀가 기억하기에 적어도 저런 곱상한 얼굴을 한 꼬마는 이 마을에 없다.
“죄송합니다. 어둠에 병사들을 노리는 습격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아…… 괘, 괜찮아요.”
디트리히는 검이 치워지고 상대방이 무릎을 꿇자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렇다고 아까전의 긴장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라 여전히 말은 떨리면서 나왔다. 그러다 그는 무릎을 꿇은 사람이 여자라는 것을 알고 의아함이 앞섰다.
“누나는…… 아, 그대는 어째서 이런 밤에 홀로 있는 거죠.”
리타는 순진한 어린아이를 잡아가기 위해서라고 대답할까 생각했지만 접어두기로 했다. 지금 보니 곱상하고 내성적인 보통의 꼬마일 뿐이지만, 정체는 드래곤 라자다.
“저는 리타 스마인타그라고 합니다. 영주의 숲인 이곳을 관리하는 숲지기의 딸입니다. 최근 아버지가 다치시는 바람에 숲을 홀로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아…… 네. 노고가 많으시네요.”
“아닙니다. 무례를 범하게 되서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일어나세요.”
리타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디트리히는 많이 진정된 듯 보였다. 그는 상대방이 무기를 치웠다거나 적대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보다, 젊은 여성이라는 사실에 더 안심할 수 있었다. 그러다 리타가 몸을 다 일으키자 눈이 커졌다.
“실례지만 키가 크시네요.”
“네? 아, 제가 꽤 큰 편이죠.”
“이렇게 키가 큰 누나는 처음 봤어요. 아, 처음은 아니구나.”
자연스럽게 누나란 말을 하는 걸 보며 리타는 눈썹을 살짝 움직였다. 본인은 눈치 채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걸 보니 사용하는 게 익숙한 모양이다. 문득 그녀는 전에 칼과 드래곤라자에 대해 나눴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서력 315년에 할슈타일가의 드래곤라자라니……
디트리히는 리타의 생각을 짐작할 도리가 없었으므로 무표정한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키가 커도 처음엔 알 수 없었을 만큼 균형이 잘 잡힌 몸에 얼굴은 미인이다. 큰 키에 검을 쓰는 미인은 어린 소년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디트리히의 시선을 느낀 리타는 살짝 웃었다. 그녀는 자신의 눈초리가 날카롭다는 걸 알고 있었고, 바라보는 상대방이 어린아이라면 굳이 겁을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할슈타일 공께서는 이 시간에 어쩐 일이시지요. 왜 병사들과 같이 가지 않으시고 몰래 뒤따라가십니까?”
본래 귀족의 일에 평민이 캐묻는 건 실례되는 일이지만, 리타는 그런 것에 대한 개념이 그다지 없었고, 그건 디트리히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자연스럽게 대화했다.
“캇셀프라임이 먹을 민트가 필요해서요. 병사들이 나갔지만 걱정되어서 따라 나왔어요.”
성안에서는 라자가 없어졌다고 난리가 났겠군. 이정도 꼬마라면 그런 생각까지 하는 건 아직 무리겠지.
“드래곤이 민트를 먹나요?”
“그냥 고기는 비린내가 심해서 잘 먹지 않아요. 카피가 워낙 많이 먹어서 성에 비축분이 모자라나 봐요.”
카피라니…… 아마도 캇셀프라임의 애칭이리라. 3백큐빗은 족히 넘어 보이는 드래곤을 부르는 이름치고 꽤나 귀엽다. 그러나 리타는 그 미스매치보다 다른 생각을 먼저 떠올렸다.
“역시 말보단 소를 좋아하는 군.”
“네?”
디트리히는 무슨 말이냐는 얼굴이 되었다.
“죄송합니다. 혼잣말이었습니다. 그것보다 드래곤을 많이 챙기시는 군요. 이런 일에도 직접 나오시고.”
“카피는 소중한 친구니까요.”
“친구…… 입니까?”
“둘도 없는 소중한 친구에요.”
리타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오랜 연습 끝에 얼굴위에 올리게 된 미소를 제외하곤 다른 표정을 잘 짓지 않는 그녀로서는 드문 표정이었다. 그만큼 디트리히가 던진 친구라는 단어는 이질적이다.
“드래곤이 친구라니. 꽤나 차이가 많이 나는 친구로군요.”
디트리히는 잠깐 생각하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아직 어린 그로서는 머리에 생각하는 것을 입으로 옮기는 데 필요한 어휘가 잘 생각나지 않았다.
“어, 음…… 그냥 친구하곤 좀 달라요.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둘 있는 것 같아요. 카피가 느끼는 걸 저도 느끼고, 제가 느끼는 걸 카피도 느껴요. 그래도 다른 건 분명해서…… 그, 어, 그냥 친한 친구 같은 느낌이에요.”
“그런가요?”
“어떤 땐 누나 같기도 해요. 이것저것 많이 도와줘요.”
누나라는 표현이 와 닿는다. 리타는 디트리히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말에서 느껴지는 친밀함에 어렴풋이 관계의 깊이를 짐작할 순 있었다.
“부러운 누나네요. 저도 드래곤이 언니였으면 좋겠는데요.”
타고 다니는 건 무리지만, 마법을 잘 쓰니 편하긴 할 거다. 잡아먹힐까봐 걱정은 좀 하겠지만.
리타의 농담에 디트리히는 불편한 표정이 되었다.
“저, 그런데 누나.”
“죄송합니다. 제가 무슨 결례를 했나 보군요.”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라 부탁이 있어요.”
리타가 표정을 보고 바로 사과하자 디트리히는 손을 흔들며 부정했다. 리타는 결례는 아니라는 데 안심하고, 사뭇 진지한 분위기에서 나온 부탁에 몸을 굳혔다.
“어떤 부탁이신가요?”
“카피를 드래곤이라고 하지 말고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
잘 놀라지 않는 그녀지만, 지금은 어떤 대답도 떠올리지 못한 채 놀라고 말았다.
“사람도 이름으로 안 부르고 ‘인간, 인간’ 이라고 하면 기분 나쁘잖아요. 전부 카피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다 드래곤이라고만 불러요.”
디트리히의 말은 리타에게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주변에서는 그녀가 인간적인 면이 부족하다는 말을 하곤 한다. 그녀는 인간의 입장이나 감정에 대해서 서툴다. 하지만 그녀조차도 드래곤의 이름을 불러달라는 소년의 말은 생각지도 못한 바였다.
디트리히가 든 예시보다는 그의 생각이 충격이다. 그는 분명 드래곤이 친구라고 생각한다. 리타의 생각에 드래곤이 이름으로 불리거나 드래곤이라는 대명사로 불리거나 하는 사실에 대해선 그다지 관심이 없을 것이다. 다만, 그건 인간이자 드래곤 라자인 디트리히가 인간으로서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라자의 감정을 드래곤이 느낀다면 라자를 통한 불쾌함 같은 것을 받을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어디까지나 드래곤의 감정은 아니다.
리타는 이 디트리히 할슈타일이라는 꼬마와 화이트 드래곤 캇셀프라임에 대해 개념을 잡을 수 있었다. 드래곤 라자와 드래곤. 그들은 이런 존재인 것이다.
“제가 잘못했군요. 앞으로 이름으로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지엄한 드래곤의 위명, 국왕의 드래곤에 대한 경외심 같은 사소한 건 뒤로 넘기자.
“고마워요. 누나.”
이번엔 본인이 말하고 본인의 실수를 안 것 같다. 황급히 손으로 입을 막은걸 보면 말이다. 실재로 누나가 있는지 누나라는 호칭이 퍽 자연스럽다.
리타는 아이의 실수를 모른 척 할 수 있는 도량정도는 갖추었다.
“경비병들이 꽤 멀어졌군요.”
“앗, 언제 저렇게……”
“저희가 이야기 나누는 사이에요.”
“어서 따라가요.”
꽤 먼 거리에서 일렁이는 횃불을 보며 디트리히는 급하다는 걸 몸으로 표현하였다. 발을 동동 구르는 꼬마는 정말 어느 마을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타고날 때부터 귀족은 아니었을 테고 행동으로 보니 귀족이 된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리타는 어떤 생각을 떠올렸고, 그것을 입 밖으로 꺼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안아도 되겠습니까?”
“……네?”
디트리히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후치가 있었다면 어린 게 밝힌다고 할만했지만, 리타는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저는 숲에서 자란지라 숲을 달리는 데 능숙합니다. 할슈타일 공께서는 아직 어린데다 숲은 익숙하지 않으실 테니 제가 안고 가는 게 더 빠를 것 같습니다.”
리타는 덤덤하게 말했고, 디트리히는 약간 멍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리타는 디트리히를 품에 안았다. 눈으로 보기에도 왜소하단 느낌이 있었지만 직접 안아보니 생각보다 더 가볍다. 예닐곱 살의 아이라고 해도 참 가냘프다. 이런 아이가 그 드래곤, 아니, 캇셀프라임의 라자라……
디트리히는 리타에게 안기며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저택의 하녀나 유모도 그를 이렇게 안아 준적이 없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엄마만이 그를 이렇게 안았었다.
“꽉 잡으세요.”
리타는 양손으로 디트리히를 단단히 안으며 숲을 달리기 시작했다. 그 속도가 꽤나 빨랐기에 디트리히는 저도 모르게 리타의 품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리타는 라이트레더를 입고 있었기에 체온보단 밤공기에 노출된 서늘함이 느껴진다.
보통의 여성이라면 낯선 아이가 이렇게 꼬옥 안긴다면 어떤 반응이라도 보이겠지만, 그녀는 보통 여성의 범주에서 몇 발자국 정도 벗어나 있었다. 그녀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묵묵히 달렸다. 차가웠던 라이트레더의 감촉은 둘의 온기에 따뜻해진다. 살짝 달콤한 냄새가 디트리히의 코를 간질었고 포근한 품이 마음을 편하게 했다. 처음에 붉어졌던 얼굴은 가라앉아서 평온해진다.
주변 풍경이 빠르게 지나가는 게 불안할 법 하였지만, 아이에게는 어떤 그리움이 느껴지는 여성의 품이 가져다주는 안락함이 더 컸다.
나무들이 스치듯 지나간다. 달과 별이 차지한 하늘에서는 주위를 둘러볼 만큼의 빛만 허락해 주었다. 고요하게 가라앉은 숲은 고요를 깨트리는 자를 경계한다. 그 고요에 녹아들 듯 암흑이 되어 숲의 잠을 깨우지 않으며 바람이 된다. 그 모든 것 안에서 횃불만이 유일한 이정표가 되었다.
횃불에 가까워지자 경비병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횃불이 멈춰선 것을 보니 앞에 무슨 일이 있어서 그들이 정지한 것 같았다. 거리낄 것 없었기에 가까이 다가서니 웅성거림의 정체가 밝혀졌다. 노랫소리와 고함소리다.
“미풍에 스치는 처녀, 코에 익은 향기."
“후치! 임마! 형님! 아버지! 할아버지!”
“부엌의 음식냄새? 빨래터의 잿물냄새? 저장고의 와인냄새?”
“마가렛하고 그 금발머리, 그래, 앤이다.”
“설마 그라디스?”
“셋 중 하나 확실한데, 이 냄새는… 이 냄새애애애느으으으은…”
병사들은 숨을 멈춘 채 노래를 부르는 소년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병사들이 눈물을 뽑을 지경인 오거, 아니, 샌슨을 붙잡고 있다. 병사들의 표정은 더 없이 진지했으며, 이 달밤아래 소년이 무슨 현자라도 되는냥 그의 말을 기다린다.
“어랏? 이게 무슨 냄새야?”
병사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후치는 상관하지 않고 코를 킁킁 거렸다.
“꽃향기 같은데… 무슨 꽃인지 모르겠네?”
여자 목소리가 들려와서 보니 제미니가 나무에 기대어 눈을 깜빡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말에 병사들은 어리둥절해서 서로를 쳐다보았다.
리타는 숲을 헤치며 한걸음 앞으로 나갔다.
“아마 나한테서 나는 향기일 거야.”
“어, 리타?”
병사들의 뒤였기에 그들은 놀라며 뒤돌아보았고, 리타를 정면에서 보게 된 후치만이 그녀를 제대로 불렀다.
“정확히는 나 말고 여기서 나는 향기지.”
리타의 말에 사람들은 일제히 그녀의 품에 안긴 아이를 보았다. 예닐곱 살 정도의 곱상한 소년이 엄마 품에 안긴 것처럼 꼭 붙어있다. 양조장 첫째이자 경비대원인 터너는 그 광경을 보고 나오는 감상을 그대로 꺼냈다.
“네 아이야?”
“아니.”
디트리히의 머리가 조금만 굵었다면 사형이 확실한 발언을 리타는 단호하게 부정했다. 실없는 농담은 넘어갔지만 느닷없이 마을 제일의 미녀가 데리고 나타난 아이에 모든 사람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제미니의 놀란 목소리가 사람들의 귓가를 때린다. 확실히 제미니가 사람을 잘 알아본다.
“드래곤 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