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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르타트] 아무르타트 - ch1. 그림자 경주 (20) (0) 2014/10/25 PM 10:16
*








공격용 마법을 제외하고 알람용의 트랩과 시간 지연용 마법트랩을 설치한 일행은 성으로 돌아왔다. 타이번은 칼이 떠날 때 집 문에 못을 박음에 따라서 성에 기거하고 있었다. 헬턴트 성은 빈 방이 많았고, 타이번은 헬턴트의 방위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었기에 이루어진 일이다. 하멜 집사의 간곡한 부탁도 한 몫 했다.



타이번의 방은 몹시 단출했다. 생활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도구만 갖춰진 방이다. 그것은 타이번이 장님이기에 그런 것이 아니라, 헬턴트 영지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들은 멋과 미관에 대해서 신경 쓰는 것은 사치라 여긴다.



성으로 들어오는 동안 카피는 웜링의 모습을 한 채 리타의 가방에 숨어서 들어왔다. 성에 있는 사람들은 캇셀프라임의 폴리모프한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혹여 시끄러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해 타이번이 제의한 일이다. 모든 일이 궁금한 카피는 자신이 왜 그렇게 행동해야 하는지 납득하지 못했고, 리타는 그녀에게 차근히 설명하느라 꽤 시간이 지체되었다.



“아무데나 편하게 앉게.”



“실례하겠습니다.”



“실례한다해요.”



타이번은 안락한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앉을 곳이라고는 침대와 소파 밖에 없는 곳에서 선택지 하나가 사라졌기에 리타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카피는 가방에서 바둥거리며 빠져나와 리타의 무릎에 올라가서 똬리를 틀었다.



타이번은 소파에 몸을 기대며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이 나이가 되다 보니 몸이 쉴 곳이 필요하더구만. 이 방에 있는 유일한 사치품이지.”



리타는 특별히 대답을 요구한 말이 아니었기에 대답하지 않고 바라보기만 했다. 그녀의 다리위에 누구보다도 안락해 보이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카피도 마찬가지였다. 타이번은 그녀들의 시선은 당연히 신경 쓰지 않고 말을 계속했다.



“음, 먼저 카피양의 정체부터 이야기 해 볼까? 내가 추측하기에 그녀는 캇셀프라임의 분신이거나 패밀리어가 아닐까 하네만.”



그렇게 짐작하고 있었으니 성에 들어올 때도 숨기를 권유한 것이다. 타이번은 자신이 제대로 느낄 수 없는 대상이 평범한 사람일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북해라면 화이트 드래곤의 레어가 있으리라 추측하는 장소다. 무엇보다도 드래곤 특유의 기운이 잔향정도라고 할만한 수준으로 느껴진다. 드래곤과 가까웠던 사람이나 드래곤 라자라면 카피에게서 누구나 특이한 기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리타는 카피를 내려다보았고 카피는 작은 입을 움직였다.



“분신이다 해요. 하지만 나도 정확히 모른다 해요. 본체의 기억을 많이 받지 못해서 몇 가지 목적이랑 단편적인 지식 밖에 없다 해요.”



“본디 분신이란 존재는 본체가 죽으면 같이 사라지는 것이네. 그렇다면 캇셀프라임이, 이런 실례했군. 본체가 살아있는 것인가?”



“그건 아니다에요. 분신이긴 하지만 나는 본체와는 독립적인 존재다 해요. 본체에게서 떨어져 나왔지만 나 자신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에요. 본체는 확실히 죽었다 해요.”



“자아 분열…… 아니, 그럴 리가 없지.”



타이번은 카피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스스로의 생각을 부정하는 행위다. 그의 행동을 보고 리타가 끼어들었다.



“캇셀프라임은 이미 드래곤 라자에 의해 인간을 많이 닮은 상태였습니다. 자아 분열이라는 표현이 어울릴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그것보단 우리 인간의 자신 복제가 더 비슷한 경우가 아닐까 합니다.”



“그렇진 않을 걸세. 아무리 인간과 닮았다고 하더라도 드래곤은 자신을 나눌 수 없어. 나눈다는 것은 완전히 자기의 일부분을 떼어내고, 그 부분은 비게 되는 걸세. 나누어 주고도 그 부분을 채워 넣을 수 있는 인간과는 달라.”



“드래곤에 대해 자신하시는 군요, 타이번. 정말 드래곤이 자신을 나눌 수 없다고 확신하시나요?”



타이번의 눈두덩이가 꿈틀거리는 것을 리타는 보았다. 그는 그렇다라고 튀어나오려는 대답을 간신히 억누르고 있었다. 그의 이성은 그의 입이 열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생각의 세계로 이끌었다. 그리고 마법사라는 직업의 종사자답게 그는 마법사로서의 본능인 이성에 충실한 종이다.



타이번은 한참 후에야 힘겹게 입을 열었다.



“확신할 수 없네.”



그가 보아온 드래곤들 중에서 인간에 물든 드래곤은 어느 정도 존재했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을 나누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것은 그가 저지른 일에 대한 회의와 죄책감을 가져왔지만, 그는 인간을 사랑한다는 명분을 포기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드래곤은 자신을 나눌 수 없다고 확정지었다. 그리고 그것은 보지 못했다고 해서 가능성을 닫을 수 없다는 마도의 길에 위배되는 것임을 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가능성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확정지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리타는 피로가 지배하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는 편안한 소파가 가시방석이라도 되는지 불편한 모습을 취하고 있다.



“일전에 칼의 집에서 말씀드린 적이 있을 겁니다. 캇셀프라임…… 당시는 술이 취해서 카피언니라고 부르는 추태를 부렸긴 했습니다만, 흠흠. 어쨌든 그녀는 변화한 자신을 받아들였습니다. 변화를 인정한다는 것은 또 다른 변화를 시도할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리타는 카피가 빤히 올려다보는 시선에 얼굴을 붉혔다.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도중이지만 부끄러웠던 기억은 그녀를 계속 속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타이번은 대화에만 집중했다.



“캇셀프라임은 자신의 변화를 부정하지 않는다고 했지. 드래곤은 신이 없는 존재. 그들은 자체로 완전성을 가지는 존재들이니 변화가 필요 없거늘.”



“드래곤에게 신이 없다니요?”



“으음…… 자네에게 설명해 주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은 이야기로군.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드래곤은 유피넬과 헬카네스도 간섭하지 못하는 존재들이지. 그들은 그 자신이 신이 될 수 있음에도 신이 되지 않은 자들이야.”



리타는 카피를 쳐다보았고 그것은 자신도 모른다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전에 화이트 드래곤인 캇셀프라임이 디트리히를 돌보고 저랑 이야기를 나눈 것은 유피넬의 의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그건 틀렸던 거군요.”



“그렇게 생각했는가? 드래곤은 일족에 따라 선악이 나뉘는 것일 뿐이네. 유피넬과 헬카네스가 그들의 종족성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



“화이트 드래곤이 선에 속하는 것은 그저 그들 일족의 문제군요. 자이펀이 항해에 능하고 북부 목동이 기마에 능한 것과 같은…… 아니. 이건 나고 자란 환경에 따른 변화일 뿐이네요.”



“잘못을 스스로 바로잡으니 늙은이는 할 게 없구만. 사실 드래곤의 선악 개념도 나는 잘못되었다고 본다네. 그들은 완전한 존재이기에 그것을 모두 내포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의 문제였겠지. 인간이라는 불완전한 존재가 완전한 존재를 완전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으니까 말일세.”



캇셀프라임의 조소가 기억나는 바람에 리타는 작게 웃었다. 불완전한 상태가 존재함으로서 완전한 상태가 존재할 수 있다는 논리는 이미 들었다.



“상대성에 의한 완전성이군요. 불완전한 인간이 있기에 완전한 드래곤이 있을 수 있다는 말 같습니다만.”



“반대지. 완전한 드래곤이 있기에 불완전한 인간이 있는 걸세.”



“상당히 인간 중심적이시네요.”



“우린 인간이니까 말일세. 허허허. 나는 아무리 해도 그 틀을 벗어날 수가 없구먼.”



타이번의 텅 빈 웃음소리가 방을 채웠다. 창가로 지는 노을이 살며시 새빨간 색을 칠한다. 휘이이잉. 저녁의 바람은 가을을 몰고 왔다. 물들어 가는 석양을 물감 삼아 세상을 붉게 칠하겠지.



창으로 들어오는 석양빛은 구석의 타이번에게 까지 이르지 않는다. 그의 얼굴은 석벽을 닮아 차갑고 생기가 없다. 웃고 있는 것은 그저 입을 통해 깊은 곳의 회한을 뱉어내는 행위일 뿐이다.



“맞아.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는 걸 자주 잊어먹지. 그렇지. 그렇게 겪고도 나아지는 게 없군.”



“타이번?”



“아무것도 아닐세. 자신의 실수를 곱씹으면서 자학하는 취미는 없으니 이만 넘어가지. 그러면 그…… 카피라고 부르면 되겠나?”



“그렇게 하라에요.”



“알겠네. 그럼 카피양은 캇셀프라임이 남긴 또 하나의 자신인 게로군?”



“맞다 해요.”



“카피의 존재는 드래곤 라자에 의한 드래곤의 변화를 나타내는 일종의 증거품이 되겠군.”



“하지만 타이번, 방금 든 생각이지만,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어요.”



리타는 카피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겉모습대로라면 차가워야 할 테지만 사람처럼 온기가 느껴진다. 리타의 동작은 매우 섬세하고 조심스러웠지만 그 얼굴은 무표정하기 그지없었다. 리타는 그녀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리는 타이번을 위해 입을 열었다.



“캇셀프라임은…… 그 본체는 죽었어요.”



“…… 아무르타트에게 죽었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닌 건가.”



“그녀는 자신을 나누고 죽었지요. 카피를 자신과 완전히 분리된 존재로 만든 것은 카피가 본체의 죽음에 영향을 받지 않길 바랐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죽은 캇셀프라임은 자신을 나눈 것에 대한 반대급부를 감당할 필요가 없다. 그런 것이로군.”



“그녀는 드래곤이니까요. 차를 마실 때 저를 실컷 멍청하다고 놀렸던 것처럼 그녀는 드래곤이에요. 아무리 인간이 변화시킨다고 해도 드래곤은 드래곤이죠. 정말로 제대로 된 충격을 주지 않는 이상 인간의 불길은 그것을 완전히 태우지 못해요.”



“인간이 어느 정도 변화를 시키느냐에 대한 내 의견은 다르지만, 적어도 캇셀프라임이 드래곤으로서의 부분을 남기고 있었다는 건 동의하겠네.”



“그녀는 자신을 나누는 것만은 성공했지만, 인간처럼 나누고도 살아가진 못했어요. 나눔의 종결은 죽음으로서 완성된 셈이네요. 우리는 꽤 지독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군요.”



리타는 캇셀프라임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왔다. 이야기하면 할수록 그녀를 잡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이것이 후회라는 감정임을 아는 그녀는 서로가 멋진 선물을 한 것 같았다. 운명과 후회를 맞바꿔 서로를 변화시켰다.



타이번은 흰 눈을 감았다. 보이지 않는 것은 매한가지지만 동작 자체만으로도 자신의 심리를 표현할 수 있다.



“그렇게 나쁘진 않아. 자네는 적어도 걱정을 한다는 게 느껴지니까.”



“그것은 타이번도 마찬가지죠. 인간을 계속 말하면서도 당신은 어떻게든 다른 존재를 이해해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타이번은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지만 오히려 흰 눈이 보이지 않아 더 분위기는 부드럽다.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건 열망이 있기 때문이지. 나는 계속 타인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사람은 아니네. 나아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고, 그 끝이 정해져 있지 않다면 몰두할 수 있겠지.”



“그렇군요.”



리타는 그의 온화한 미소에 화답했다. 상대가 장님이라는 것은 별로 중요치 않았다. 언제나 기준이 되는 것은 그녀가 그녀를 보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니 조금 더 노력해 보겠네. 그렇다면 카피는 드래곤 라자의 죽음을 막기 위해 태어난 것인가?”



타이번의 생각은 리타의 추측과 비슷했다. 그는 리타와 캇셀프라임이 나눈 대화보다는 그녀가 아끼는 드래곤 라자에 대해 더 무게를 두고 생각했다. 그녀를 그토록 변화시킨 원인이자 한없이 사랑하는 존재인 드래곤 라자. 그의 생명은 그녀 자신의 생명이라고 할 수도 있기에 어떻게든 살리고 싶었으리라.



“그런 이유도 있습니다.”



“흠, 그 말은 캇셀프라임은 처음부터 자신의 죽음을 염두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드래곤이 일부러 또 다른 자신을 만들어 기억의 전수까지 하진 않았을 텐데.”



타이번은 카피가 기억을 완전히 받지 못했다는 말로부터, 그녀가 어떤 식으로 카피를 태어나게 만든 것인지 추측할 수 있었다. 드래곤의 마법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안다고 할 수 없지만, 캇셀프라임이 행한 탄생의 마법이 상당히 힘든 것이라는 것은 알 수 있다. 그 마법을 행한 목적이 드래곤 라자라면, 라자가 목숨을 잃을 조건은 그녀의 죽음이 된다.



리타는 고민하는 타이번을 보며 담담히 말했다.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아무르타트와 싸운다면 죽을 거라고요.”



“자네는 정말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재주가 탁월하군.”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한 것인지는 제쳐두고, 왜 그런 말을 한 것인지 들을 수 있겠나?”



리타는 타이번에게 캇셀프라임과 나눴던 대화를 들려주었다. 캇셀프라임이 죽을 것이라고 언급한 순간부터 그녀가 죽음을 받아들인 순간까지 빠짐없이 이야기했다. 리타의 이야기를 듣던 타이번은 시시각각 표정을 바꾸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타이번은 다시 눈을 감으며 생각에 잠겨들었다. 리타는 카피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그가 생각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기다림이란 행위에 대한 어떠한 감흥도 없이 그저 가만히 있었다. 타이번은 한숨쉬듯 내뱉었다.



“캇셀프라임…… 만나볼 걸 그랬군.”



그녀는 일반적인 드래곤과 달랐다. 달라진 드래곤을 그는 경험해보고 싶었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변화를 결심하고 마침내 자신을 끊어내는 드래곤이라니.



“여기 그녀의 분신이 있습니다만, 원하시는 건 그게 아니시겠군요.”



타이번은 말없이 웃었다. 리타는 그의 웃음을 잠시 지켜보다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



“카피가 나온 목적은 몇 가지 더 있습니다. 사실 이번에 상담하고자 한 것은 거기에 관한 것입니다.”



“말해보게.”



“카피는 저를 북해의 레어로 안내해야 한다는군요.”



“……”



“이유를 물으실 것 같지만, 카피도 제대로 기억나는 것이 없다고 해서 대답해 드릴 것이 없습니다. 그녀는 레어에 왜 가야 하는 것인지, 가서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하나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으음. 기억을 되찾을 가능성은…… 아니 없겠군. 망각의 축복을 받지 못한 존재가 망각할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렇다해요. 본체의 기억은 대부분 사라졌고, 아하암, 그 기억은 말 그대로 사라진 것이기 때문에 되살리지 못한다에요.”



똬리를 틀고 있던 카피가 리타의 손길에 나른해지는 것인지 하품을 하며 말했다. 카피의 큰 눈망울에는 작게 눈물이 맺힌다.



타이번은 처음과 같이 소파에 몸을 파묻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대화에 따라 변화하곤 하였지만 자세는 그대로였다. 때때로 바뀌는 분위기가 그를 불편하게 보이도록 만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은 한손을 허공으로 들어올리며 몸을 앞으로 하였다.



“하! 드래곤이 자신의 레어로 다른 존재를 초대해?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군.”



“꽤 어이없어 하시는 군요.”



리타는 타이번의 반응에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그녀가 기억하는 늙은 마법사는 쉽게 감정을 바꾸지 않는 부류였다. 감정의 기복이 적고 잘 표현하는 편이 아닌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이다니 놀랍다.



타이번은 다소 격양된 상태로 리타를 쳐다보았다. 눈동자가 존재하지 않는 그의 하얀 눈이 리타를 똑바로 쳐다보는 것만 같다.



“당연하지! 나는 드래곤이라는 놈들을 그렇게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들에게 붙이는 수식어에 대해서 부정할 정도로 멍청하진 않다네. 위대한, 지고한, 지극한 등의 듣기만 해도 낯간지러운 그 모든 수식어들은 드래곤에게 적합해. 단순한 강함 때문이 아냐. 고작해야 인간 마법사랑 검사한테 발리는 놈들이니까. 하지만 불멸자로서 존재하며 쌓아온 지식과 구축된 사고, 어느 누구에게나 평등할 수 있는 정신이 있어. 그런 존재가 자신들보다 하등한 존재를 집에 초대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



“그런 존재기에 하등한 것과 상관없는 것은 아닌가요?”



“퍽 짧은 생각으로 말을 하는군, 리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는 것은 아닐테지?”



“실례했습니다.”



“그놈들은 인간을 몬스터의 한 종류로 밖에 보지 않아. 그저 다른 것들보다 비겁하고 뭉치기 좋아하는 정도의 인식이지. 그게 드래곤 라자에 의해 억지로 맺어지게 되었다고 해서 크게 바뀌진 않아. 현자라면 어린아이의 지혜도 구한다는 말이 있어. 웃기는 소리. 아이에겐 아이의 지혜만 있을 뿐이야. 그걸 받아들이면 현자가 아니라 아이가 되는 거겠지. 드래곤이 인간을 집에 받아들일 이유가 아무 것도 없어. 더욱이 자기 것에 대한 경계가 뚜렷한 놈들이니 두말할 필요가 없지. 라자조차도 그들의 레어에 들어가는 일은 없다네.”



“음…… 디트리히와 캇셀프라임을 볼 때, 드래곤과 라자의 관계가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만.”



“그들은 특별히 친한 케이스지. 캇셀프라임은 아직 아이가 없는 드래곤이야. 드래곤이 사람의 아이를 키움으로서 대신 만족감을 느낄 일 따위는 없겠지만, 어떤 대상을 돌본다는 감정 정도는 가질 수 있었겠지. 그렇다고 해도 라자를 레어에 초대한다는 건 다른 수준의 문제다.”



리타는 머릿속에서 캇셀프라임을 그려보았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눈 그 짧은 시간이 파악할 수 있는 전부다. 그것만으로 그녀를 안다고 할 순 없지만, 어쩐지 그녀라면 자신을 충분히 집으로 초대했을 것 같다.



“저는 유일무이하게 초대받은 셈이군요. 카피를 보내 레어에 찾아가라고 한 것은 이미 실현된 일이니까요.”



“하아…… 그렇지. ‘왜?’라는 주제에 파고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마법사의 숙명이로군.”



“사람의 버릇이지요.”



“알겠네. 자네는 그 이유에 대해서 더 이상 궁금하지 않다는 소리군.”



리타는 버릇처럼 웃었다.



“저도 이유는 궁금합니다. 다만 타이번과 방향이 조금 다르겠네요. 저는 드래곤이 다른 존재를 초대했다는 것보다, 캇셀프라임이 저를 초대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벌어진 과거에 대한 추측일 뿐이지 앞으로 찾아갈 수 있는 일이지요. 지금은 조금 더 시간을 앞당긴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리타의 말에 타이번은 피식 웃었다. 그는 즐거운 듯이 이야기했다.



“현자는 앞을 보지만 뒤를 생각한다.”



“바보도 앞을 보지만 뒤를 생각하죠.”



“껄껄껄. 이거 계속 미안한 말만 하는 것 같구만. 사과하지. 그래, 그러면 어떻게 할 생각인가?”



“가야겠지요.”



“혼자서?”



“모든 시작은 혼자인 법이니까요.”



과정은 타인과 함께할 지라도 시작과 끝은 혼자서 이루어진다. 맺고 끊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뜻이다. 그 의미를 아는지 타이번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조금 돌리겠네만, 만약 레어에 보물이 있다면, 그게 아무르타트에게 가져다 줄 보석금이 되지 않겠는가? 캇셀프라임이라면 거기까지 예상했을 법도 한데.”



“…… 남의 재화를 탐하진 않습니다만.”



“주인이 없는 재화는 소유권이 없는 상태지.”



가늘어졌던 리타의 눈이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편안한 자세로 숙면을 취하고 있는 카피를 내려다보았다. 카피의 존재에 대해서 실컷 이야기했으니 굳이 소유권으로 다시 이야기를 꺼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카피가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겠지만, 그러진 않을 것 같네요.”



“내 생각도 그러네.”



“그래도 남을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니, 그 의사는 깨어난 후 물어서 확인해야겠습니다. 카피가 태어난 이상 그녀의 생명은 계속 이어질 테니까요.”



“그러시게나. 어디까지나 추측의 이야기였으니 기분 상하지 않았으면 좋겠네.”



“별말씀을.”



타이번은 리타가 어떤 표정을 지으면서 말하는지 알 수 없다. 그는 다만 음의 높낮이가 일정한 편인 그녀의 어조에서 감정을 읽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 리타가 화나지 않았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는 단지 리타에게서 받는 이질감의 정체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타이번은 흥분해서 앞으로 당겼던 몸을 다시 뉘였다. 소파의 안락함에 파고들 듯 기대어 앉아서 그는 여상스럽게 말했다.



“그러면 자네는 캇셀프라임이 레어에 가라고 했기 때문에 가보는 건가? 아직 짧은 시간이지만 내가 봐온 자네는 남이 가라고 해서 갈 것 같진 않네만. 아무리 드래곤이 말한 것이라도 말일세.”



“저는 제 속의 캇셀프라임을 존중합니다.”



타이번은 웃음을 띄었다. 리타는 그것이 상대방을 모욕하거나 매도하는 경우에 짓는 종류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필멸자가 불멸자 흉내를 내고 있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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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장이나 되는걸 한번에 올리려니 너무 많아서 절반으로 나눴습니다.

아무도 의견을 안내셨으니 제맘대로죠.

ch2를 구상중인데 오리지널 스토리가 꽤 있어서 힘드네요.

어쩌면 ch1을 끝내고 조금 쉬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좋은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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