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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르타트] 아무르타트 - ch2. 딸의 아버지 (6) (0) 2014/11/08 PM 10:24


*








모닥불이 타닥타닥 불꽃을 튀긴다. 어스름한 가을밤의 달빛이 내리쬐고 고요한 숲은 차분히 가라앉았다. 어둠에 그대로 녹아들 것만 같은 검은 머리를 가진 여성은 모닥불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따스한 온기와 요사한 붉은 빛이 그녀를 옭아맨다. 차갑게 식은 시무니안은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녀의 옆에 앉아 있던 남자는 마른 나뭇가지를 모닥불에 던져 넣었다. 불꽃은 금세 새로운 먹잇감을 받아들여서 잡아먹듯 새빨갛게 변했다. 모닥불은 바라보고 있는 셋도 잡아먹겠다는 듯 혀를 날름거리며 춤춘다.



새로운 나뭇가지가 불에 타오르며 다시 한번 불꽃을 튀긴다. 타닥타닥. 적막한 숲을 작은 연소만이 유일하게 채운다. 붉은 색으로, 작은 소리로.



“하아암.”



카피는 모닥불을 보다가 잠이 왔는지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하였다. 그녀는 나른한 눈을 비비며 리타의 무릎에 올라갔다. 모닥불도 좋지만 사람의 체온이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게 더 좋다.



리타는 밤과 같이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카피를 내려다보며 그녀를 쓰다듬었다.



“옛말에 식사하고 바로 자면 소가 된다는 말이 있어요.”



“왜 소가 된다 해요?”



“게으름을 경고하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소는 게으르지 않은데 왜 소다 해요. 게으르니까 소가 되어서 열심히 일하란 말인가 에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소는 부지런히 일하니까요.”



두 여성의 대화를 듣고 있던 톨러스는 끼어들어서 문제점을 바로잡아줘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역시나 상인답게 이득 없는 짓은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가만히 있었다. 그는 옆의 여성과 같이 있는 게 조금 껄끄러웠다. 전적으로 자신의 잘못이었고 그렇기에 더 껄끄러워서 조심스럽다. 그는 말없이 작은 나뭇가지를 부러트려 모닥불로 던져 넣었다.



리타는 검은 머리를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돌렸다. 카피를 놀리기 위해서 시작했던 대화는 소라는 동물의 정의와 사람을 소로 변하게 하는 마법학적 견해가 오가는 대화로 변했다. 그녀들은 토론 끝에 왜 그 말이 농담인지 알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화제를 다른 것으로 돌렸다.



“우르크가 마지막에 한 말은 뭐다 에요?”



톨러스는 움찔했다. 그가 자괴감에 젖어 있을 때 리타와 우르크가 주고받은 인사에 대한 말이었다. 오크치고는 꽤 어려운 말이었기에 의문이 따랐다. 리타는 그들의 인사를 회상하며 말했다.



“오크의 신은 복수의 화렌차입니다. 정확히 말해서는 오크와 복수의 화렌차이지요. 오크에게 있어 복수는 화렌차의 또 다른 자식이자 그들의 형제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있어 복수는 신성한 것이죠.”



“헤에.”



카피는 톨러스를 돌아보았고 톨러스의 얼굴은 새빨갛게 익었다. 그들 앞에서 복수를 떠든 그의 과거가 카피의 시선에서 그를 도망치고 싶게 만든다.



“흔히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고 합니다. 복수는 연쇄작용을 가져오죠.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세상은 단순하지 않기에 결코 끝나지 않습니다. 복수를 끝내는 것은 오로지 자신이죠. 자신이 상대방에게 하는 복수가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으로 끝내는 복수에요. 용서입니다.”



“용서?”



“복수를 포기하는 것도 가능하고, 시간이라는 암살자에게 대신 복수를 맡기는 것도 가능하지만, 역시 가장 좋은 복수의 종결은 용서에요.”



“그러면 우르크가 리타를 용서 했다 에요?”



“후후후, 그건 아니에요. 우르크들은 아마 뜻을 제대로 모르면서 말한 것일 테죠. 그 관용구는 오크들에게 전해져 오는 것이라고 예전에 들었어요. 그들답지 않은 행동을 했을 때 자주 하는 말이라고 하더군요.”



“역시 오크는 멍청하다 해요.”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인사의 의미를 조금 확대시켜보자면, 그들로서는 복수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복수 대신 인사를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죠. 사실 그럴 거라고 생각은 안 하지만요.”



리타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미소를 지었다. 카피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톨러스는 아무래도 좋으니 다른 이야기를 했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내용이 어떤 것이든 오크에 과한 이야기는 그를 부끄럽게 만들어줄 뿐이다. 다행히 리타가 그의 마음을 읽었는지, 카피에게 다른 질문을 던졌다.



“카피, 12인의 다리는 어땠나요?”



“신기했다 해요!”



“드래곤이 인간의 마법으로 움직이는 다리보고 신기하다는 것도 꽤 신기하네요.”



카피는 볼을 부풀리며 리타를 올려다보았다.



“우우웅. 카피는 모르는 게 많다 에요.”



“하하, 놀리려는 의도는 아니었어요. 그보다 뭐가 신기했나요?”



“협곡 사이를 뗏목이 움직이는 것도 신기했지만, 정말 딱 12가 되니까 움직이는 게 제일 신기했다 해요.”



일행은 12인의 다리까지 가서 야영을 결정하기로 했다. 혹시 12인의 다리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면 건넌 다음에 야영하기 위해서다. 야밤에 숲을 달릴 수는 없으니 야영은 필수였지만, 12인의 다리를 건너서 야영한다면 다음날 일찍 달릴 수 있다. 톨러스의 말에 의하면 해가 뜰 때부터 트롯(말의 속도 단위)으로 달리면 정오에는 레너스에 도착할 수 있다고 하였다. 칼 일행이 하루 전에 지나갔으니 조금 서둘러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12인의 다리에 도착하니 이미 와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톨러스와 같은 상인들이었다. 그들은 톨러스의 말처럼 딱 여섯을 맞추고 있었고, 카피가 가는 길에 토끼를 한 마리 생포해 와서 수는 딱 맞아 떨어졌다. 그리하여 일행은 다리를 건너고 적당한 장소를 찾아 야영을 하기로 한 것이다. 참고로 생포했던 토끼는 셋의 배에 골고루 나누어진 상태다.



카피는 그들이 지나온 길을 보며, 그 방향에 있을 12인의 다리를 회상했다. 모든 것이 새로운 그녀에게 있어, 리타처럼 경험자도 신기해하는 다리는 흥분의 대상이 되기 충분하다.



“다시 한번 타보고 싶다 해요.”



“그러려면 사람을 꽤 기다려야 할 거에요. 이곳이 그렇게 왕래가 잦은 편은 아니거든요. 같이 건넜던 상단도 오후부터 기다렸지만 오늘 건너는 건 포기하고 있었다고 했으니까요.”



“그래도 또 타고 싶다 에요.”



“애초에 협곡을 날아서 건널 수 있잖아요.”



“그거랑 이거는 별개다 해요.”



카피는 다시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리타는 계속 미소 지은 상태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카피가 보기엔 그 다리가 신기한 게 전부였나요?”



그녀의 질문에 톨러스도 고개를 돌렸다. 그는 리타의 질문이 대답을 유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의 생각에 12인의 다리는 신기하다기 보다 불편한 것이다. 과연 저 작은 드래곤도 같은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어…… 불쾌했다 해요. 리타의 말처럼 그건 확실히 불쾌하다 해요.”



“왜 그렇습니까?



톨러스는 그의 예상과 다른 대답에 저도 모르게 질문했다. 그는 뒤늦게 끼어든 자신을 탓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다. 그는 대화에 집중하기로 했다.



리타도 눈으로 카피의 의견을 물었다. 카피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헛기침을 한 다음 말했다. 드래곤에게 코가 있다면 한껏 콧대를 세웠을 것 같은 포즈다.



“엣헴. 그건 강제적이니까요.”



“강제적이라고요?”



“그 다리 앞에서는 같이 타는 게 사람이든 아니든 누구든 간에 싸울 수 없다 해요. 반목을 없앤다는 건 좋다 해요. 하지만 그게 강제적이다 에요. 자기 스스로의 의지보단 다리라는 타의에 의해서 억지로 이뤄진 조화다 해요.”



“그렇더라도 다툼이 없는 게 좋지 않습니까? 흔히 아이를 교육할 때는 싸움에 대한 반대급부를 만들어서 억지로 못하게 만듭니다. 사람이나 다른 종족이나 강제당한다고 해서 그 사실만으로 나쁘다고 하긴 힘들다고 봅니다.”



“인간은 자유를 희망하지만 속박을 사랑한다.”



리타는 모닥불을 바라보며 씁쓸하게 말했다. 모닥불이 그녀의 얼굴에 기이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덕분에 무표정한 그녀의 얼굴은 다양한 표정이 떠오른 것처럼 변했다.



톨러스는 리타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말하고자하는 것을 리타는 꿰뚫어 보았다.



“그렇죠. 강제가 없고 자유의지만 있다면 결국 혼란만 남을 뿐입니다. 저 같은 상인들은 쉽게 접하는 것이죠. 가격은 쉽게 오르거나 떨어지지만 일정 선을 넘지 않습니다. 전쟁이라도 나는 게 아니라면 말이죠. 이는 상법이란 것이 상행위를 규제해서 그런 겁니다. 만약 규제되지 않았다면 가격은 소수에 의해서 기하급수적으로 등락할 수 있습니다.”



“사재기 같은 것 말입니까?”



“네. 그것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가격을 뒤흔들 수단이 있습니다. 그것들이 강제되지 않았다면 세상은 살기가 훨씬 힘들어 졌을 겁니다. 강제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라도 결과가 좋다면, 그건 좋은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장의 형성 기준은 수요와 공급이다 해요. 기본적으로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는 곳에서 가격이 형성 되지만, 그 형성 점을 움직일 수 있는 요소는 많다 해요. 가격이 형성 되지 않으면 생존의 문제에 직결된다 에요. 생존에 따른 필수불가결한 강제와 12인의 다리를 비교하는 건 조금 어울리지 않는다 해요.”



턱을 괸 카피의 말이었다. 톨러스와 리타는 다소 얼빠진 눈으로 카피를 보았다. 아무래도 경제에 대한 관념은 카피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모양이다. 그것도 꽤 복잡한 수준으로 말이다.



다행히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둘은 카피의 말을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을 정도의 지식을 쌓고 있었다. 그들은 말을 한 주체에 놀랐지만 내용 자체는 수긍을 하였다. 톨러스는 카피의 자세를 따라 턱을 괴며 말했다.



“가벼운 예시입니다. 저는 상인이다 보니 최대한 저에게서 가까운 것을 가져왔습니다. 실재로는 상행위에서뿐만 아니라 사람의 여러 문화에서 강제에 의해 이뤄지는 조화가 많겠죠. 저는 그런 면에서 12인의 다리가 가져다주는 조화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너무 인간 중심적이로군요.”



리타는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나무에 걸터 앉아있는 자세 그대로 모닥불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무릎에 앉은 카피가 귀여운 눈망울로 그녀를 쳐다본다. 리타는 마치 모닥불이 어느 마법사인냥 보고 있었다.



“사람은 그렇겠죠. 변화시키고 스스로 변하는 종족이니까요. 하지만 다리를 이용하는 다른 종족들도 그럴까요?”



“아마도…… 그렇진 않을 것 같습니다.”



“간단히 여기 앉아 있는 카피가 있지요. 카피는 그 강제성의 조화 앞에서 불쾌함을 느꼈다고 했어요.”



“맞다 해요.”



“인간이 아닌 당신이 보는 다리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해 주실 수 있겠어요?”



“어렵지 않다 에요.”



카피는 리타의 다리 위에서 자세를 바로 했다. 과연 바른 자세인지 알 수는 없지만, 꼬리를 뒤로 빼고 엉덩이를 바닥에 붙여서 다리를 앞으로 뻗고 몸은 똑바로 세웠다. 새하얀 그녀의 몸이 불빛을 받아 붉게 물든다.



“종족은 그 마다의 종족성을 가지고 있다 해요. 나는 완전히 드래곤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드래곤으로서의 자아는 형성되었다 해요. 그런 나에게 다른 종족과의 화합을 강요했다 에요. 나는 나로서 있고 싶은데 그걸 방해하는 것이다 에요. 그건 썩 유쾌하지 않은 짓이다 해요.”



“다른 종족과 어울리는 게 어째서 그런 겁니까?”



“어울리기 이전의 문제다 해요. 종족을 가지고 예를 더 들어 보겠다 해요. 엘프는 모든 것과 조화를 이루고 드워프는 모든 것에서도 드워프다 해요. 오크는 조화를 거부하지만 그들만의 조화를 이룬다 해요. 하플링(호비트)은 인간과 유사하니 제하더라도 종족성은 각기 다르다 에요. 그들은 모두 다른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해요. 그 각기의 조화를 12인의 다리는 인간의 조화로 뭉뚱그려 버린다 에요.”



“사람의 조화가 나쁩니까? 단순히 다리를 이용하기 위해서 다른 존재와 협력할 뿐이잖습니까.”



리타는 후치가 있었더라면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 소년이 있다면 이 남자에게 뭔가 속 시원한 말을 해 주었을 텐데. 하지만 그녀는 이 인간중심적이기에 인간다운 인간에게 질러줄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 자신이 인간답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카피는 리타가 톨러스에게 느낀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인간의 기준에서 만들어진 조화를 ‘단순히’라고 다른 종족에게 말한다고 해서, 다른 종족이 그것을 마찬가지로 ‘단순히’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본다 에요?”



“어? 음…… 그런 것 아닌가요? 제 생각으로는 너무 복잡하게 가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톨러스, 기분 나쁠 것 같으니 미리 사과해두고 예를 들어도 되겠습니까?”



리타의 말에 톨러스는 의아해했지만, 그녀답지 않게 사과라는 말을 한 것에 어쩐지 겁이 났다. 그리고 리타는 톨러스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말해버렸다.



“오크는 위대한 자가 죽으면 그 시체를 먹습니다. 그것은 그들 사이에서는 ‘단순히’로 치부될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존경하는 누군가가 죽었을 때, 그 사람의 시체를 ‘단순히’ 먹으라 한다면, 당신은 어떨까요?”



“…… 확실히 기분 나쁜 예시긴 하군요. 저라면 거부하겠습니다.”



“우리가 보는 인간 기준의 ‘단순히’라는 것이 다른 종족에게도 같을 수 없다는 게, 카피의 말인 것 같습니다.”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종족과의 협력이 그렇게 큰 의미를 가진다는 것은 여전히 납득할 수 없군요.”



“협력이라는 말 자체가 다른 종족에게는 변화를 가져오는 단어가 될 수 있으니까요.”



“어째서죠?”



리타는 기대고 있던 나무에 머리도 기대었다. 자연스레 시선이 올라가면서 밤하늘이 보인다. 밝아도 세상을 밝힐 힘은 없는 월광과 자신만을 밝힐 수 있는 별빛이 눈에 들어온다. 새까맣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그 빛들 때문에 남색으로 보이는 그 하늘에서 작디작은 불빛들이 각자를 뽐낸다.



리타는 하늘을 보며 말을 하지 않았고, 톨러스와 카피는 그녀를 따라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무수히 많은 별빛이 그들을 마주한다.



“사람은 별을 보고 별자리를 만들지만, 엘프는 별을 보면 별빛이 되어버립니다. 인간과 엘프의 종족성을 극명히 나타내는 말이라고 할 수 있지요.”



“리타리타, 나쁜 버릇.”



리타는 가볍게 웃었다. ‘훗.’



“엘프는 만물과 조화를 이루면서 자신을 유지합니다. 인간은 만물을 변화시키면서 자신을 유지하죠. 받아들이기만 하는 종족과 주기만 하는 종족이 만난다면, 그 시너지 효과는 꽤 대단할 겁니다. 단순히 협력이라는 행위를 통해서라도 말입니다.”



그녀가 말하는 단순히는 꽤 강조되어 있었기에 톨러스는 그의 말이 잘못되었는지 떠올려보았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말한 것뿐이지만, 어쩐지 카피와 리타의 말을 들으면서 그 생각이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리타가 미녀이고 카피가 드래곤의 분신이라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의 말은 이제까지 생각해본 적이 없는 관점이다.



“생소하지만 납득은 할 수 있겠습니다. 12인의 다리는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종족에게 강제적인 협력을 요구한다는 것이군요. 그리고 그 협력은 종족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것이고요.”



“오, 맞다 해요. 잘 이해했다 해요, 톨러스.”



“괜찮은 답변입니다. 선생으로서는 똑똑한 학생을 둬서 기쁘군요.”



“이거 감사합니다.”



셋은 잠시 낮게 웃었다. 소리 내서 웃는 웃음은 아니었지만, 고요한 밤의 정취에 썩 어울리는 모습이다.



“그런데 리타, 리타는 뭘 말하고 싶어서 카피한테 물은 거다 에요?”



리타의 눈은 살짝 크게 떠졌다가 이내 호를 그렸다. 날카로운 두 눈이 몹시 부드럽게 휘어진다. 불빛을 받아 붉게 물든 그 얼굴은 어쩐지 따뜻해 보인다. 바라보는 톨러스는 얼굴이 뜨거워 지는게 모닥불 때문이라고 자신할 수 없었다.



“우리는 오늘 그곳을 건넜지요.”



“당연하다는 말을 꼭 해야 한다 에요?”



“후훗. 미안해요. 천천히 말하는 게 습관이 들었나 보네요. 그러면 오늘 우리가 12인의 다리를 건널 때, 과연 카피가 불쾌함을 느끼고 톨러스씨가 당연하게 여겨서 간과할 만한 일이 일어났나요?”



톨러스와 카피는 나쁜 버릇이라고 면박을 주는 대신 잠깐 머리를 굴려보았다. 지금까지의 대화 주제를 떠올려보면, 그녀의 말은 이종족에 대한 것이다.



“없었죠.”



“카피는 있었다 해요.”



“그래요, 카피만 있었죠. 하지만 12인의 다리를 이용한 드래곤은 카피가 처음이지 않을까 싶네요. 카피는 조금 특수한 경우라 생각해도 될 거 같아요. 그러니 우리는 카피를 제외하고는, 언어를 가진 종족 중에 인간으로만 12인의 다리를 건넌 셈이에요.”



“아마도 인간의 마을이 가장 많으니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톨러스씨는 평소에도 이 다리를 이용해 다니셨을 텐데, 다른 종족과 조우하신 적이 있습니까?”



톨러스는 수염이 까슬까슬하게 나 있는 턱을 손으로 긁었다. 그가 다리를 이용한 횟수를 결코 적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 동안 다른 종족과 같이 이용한 적은 손에 꼽을 수 있다.



“거의 없습니다. 선배들에게 듣기로는 옛날에는 그런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요즘은 다른 종족을 보기가 힘듭니다.”



“그래요. 인간이 인간의 기준으로 만든 이 다리는, 결국 인간만이 이용할 뿐이죠.”



톨러스는 리타가 어떤 말을 더 할 것 같아서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지만 리타는 입을 굳게 다물고 하늘에서 모닥불로 다시 시선을 향했을 뿐이다. 그녀는 더 이상 할 말은 없다는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톨러스는 이해하기 어려웠고 더 말을 듣고 싶었지만, 그녀의 분위기에 함부로 말을 걸 수 없었다. 다만 카피는 리타의 말에 잔잔하게 웃으면서 눈을 감고 리타의 위에 편하게 엎드렸다. 카피는 리타의 말을 이해한 것 같았기에 톨러스는 그녀에게 물어볼까 했지만, 그 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애초에 대하기 힘든 걸로 치자면 카피가 더하다.



리타가 바라보는 모닥불은 익숙한 양초와 달리 거대한 불꽃을 피워 올린다. 주변을 이루는 모든 것을 남김없이 잡아먹을 것처럼 활활 타오른다. 그래, 인간은 이렇게 세상을 모두 잡아먹어 버리겠지.



엘프는 그들의 숲으로, 드워프는 자신만의 광산에, 요정은 격리된 세상에 숨어버린다. 오크는 떨어지는 지능에 사라져가고, 하플링은 적응할 수 없는 것에 포기해버릴 테지. 드래곤은 홀로 오롯하지만 결국 외로워하게 되어서 세상을 등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드래곤만이 유일하게 자신을 지키며 세상에 도태되지 않을 것이다. 이 인간이란 불꽃이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세상에서. 하지만 그것도……



눈을 감은 하얀 드래곤의 분신은 행복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녀의 본체인 캇셀프라임은…… 그녀는 디트리히를 위해 카피를 남겼지. 그 위대하고 지고하신 드래곤마저도……



리타는 12인의 다리가 싫었다. 톨러스의 말처럼 단순하지만 단순하지 않은 그 강제성은 불쾌하다. 하지만 겨우 그 정도다. 싫을 정도는 아니건만, 그녀가 이토록 12인의 다리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인간만이 이용하게 된 이 다리는, 마치 인간만이 남은 세상을 대표하는 증거와도 같아서, 세상에 홀로 남은 외로움이 된다.



“인간인 주제에……”



홀로 남은 인간의 공허한 목소리가 조용히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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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저는 궤변을 있어보이게 늘어놓는걸 잘하는 것 같습니다.

드래곤라자를 얄팍한 이해를 통해서 풀어내는 게 제일 즐겁네요.

이제 레너스에 들어갈텐데, 과연 내일도 이 시간에 올릴 수 있을지...

그럼 좋은 밤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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