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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르타트] 아무르타트 - ch2. 딸의 아버지 (10) (0) 2014/11/17 PM 07:52


“크아악! 무슨 짓을 한 거냐!”



쓰러져 있던 드워프가 몸을 일으키며 외쳤다. 그는 눈앞의 인간놈들을 아작 내지 못한 것만으로도 분한데, 걷어차이기까지 하니 제정신이 아니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득 담아 리타를 쏘아보았다.



“살인을 방지했습니다.”



당연하다는 말투다. 리타는 왜 그런 질문을 하느냐라는 듯이 드워프의 시선을 받았다. 드워프는 예상외의 대답에 입을 다물었다. 뭐라고 말해도 화가 가라앉지 않을 것 같았는데, 오히려 어처구니가 없어 화가 나지 않는다.



리타는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청년을 힐끔 보며 차근차근 말했다.



“그대로 놔두었으면 저 사람들은 죽거나 큰 부상을 당했을 겁니다. 당연히 당신은 시의 경비대에 잡히거나 쫒기는 신세가 되겠죠.”



“그럼 그대로 당하고 있으란 말이냐!”



“일의 해결 방법은 폭력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지상의 종족이 지성을 가진 이유는 힘으로만 해결하지 말라는 의미가 있을 겁니다.”



“그런 건 너희 인간들이 잘하는 궤변이다. 불의를 참는 놈들이 무슨 말을 하든 믿을 것 같으냐? 자기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변명하는 게 훤하다. 뭐든 이유를 붙여가면서 자기를 합리화시키는 게 인간이지.”



아마도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부끄러움을 느낄 것이다. 구경꾼들 중에서 몇 몇 사람은 헛기침을 내뱉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드워프의 말을 부정하거나 무시했다. 그것은 대게 비웃음이라는 동작으로 나타난다.



건달들에게 조롱당하다가 여자에게 걷어차여서 나뒹군 드워프는 놀리기 좋은 소재였다. 드워프의 옷은 바닥을 뒹구는 바람에 엉망이 돼 있었다.



하지만 리타는 그의 말에 부끄러움을 느끼기 보다는 그대로 수긍했다.



“맞습니다. 옳은 일이라도 이유를 붙여서 행하여야지 납득하는 게 인간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영웅이나 바보…… 아니, 아닙니다. 어쨌든 당신의 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여러 사람이 곤란해지는 것을 보고도 막지 않을 수는 없지요.”



드워프는 도끼를 바닥에 내려찍었다.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으로 리타를 바라보았다.



“그 곤란을 내가 야기한다고 말하는 건가? 약자는 보호 받지 못하고 악인은 보호를 받는군!”



“당신은 약자가 아닌데요?”



드워프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는 리타의 말을 이해하기위해서 잠시 머리를 써야했다.



“…… 나를 보호했다는 말인가?”



리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무표정했으나 다른 사람들처럼 적의나 냉소를 담지 않고 있었다.



“기본 적으로는 당신이 말하는 악인의 목숨을 보호한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이대로 봉변을 당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습니다. 정의로워야 한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만, 인간의 약자를 위해 행동한 드워프에 대한 친절입니다.”



“상당히 폭력적인 친절이구만.”



“힘 조절을 한다고 했는데 아프셨나 보군요. 죄송합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됐어. 아프진 않았어. 이 정도가지고 아프다면 카리스누멘을 뵐 낯이 없지. 퍽 땡중 같은 말을 하는 인간이로군.”



드워프는 흥분한 기분이 누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비록 눈앞의 여성을 제외한 이곳에 있는 모든 인간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용기를 낼 수 있다는 사람이 있는 것에 기분이 나아졌다.



리타는 땡중이란 단어에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굳이 질문하지 않았고 드워프도 그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



그때 리타와 드워프의 대화를 멍하니 보고 있던 청년들이 정신을 차렸다. 아까 드워프와 대치하던 청년이 그들에게 건들거리며 다가왔다.



“이봐 예쁜 아가씨. 그런 더러운 드워프는 그냥 내버려 두지? 걷어차는 폼이 꽤 멋지던데. 뭐 굳이 걷어차지 않았더라도 우리가 그런 드워프에게 어떻게 되진 않았을 거야.”



“이 놈이! 어떻게 될지 한 번 시험해 볼까?”



드워프는 노성을 터트리며 도끼를 다시 치켜들었다. 청년은 다시 움찔했지만, 한 번 부리던 객기는 계속 부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도발적인 제스처를 취하며 얼마든지 달려들라는 듯이 행동했다.



드워프가 도끼를 잡은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을 때 검은 머리의 여성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리타는 청년을 돌아보며 냉정하게 말했다.



“그건 아닙니다. 당신들의 힘으로는 이 분에게 순식간에 당하고 맙니다. 당신들은 제대로 된 무기도 잡아본 적 없고 신체의 단련도 똑바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태로는 제압은 고사하고 목숨이 위험했습니다.”



“뭐, 뭐라고?”



청년은 리타의 말에 흥분해서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리타는 그의 얼굴색이 변화하는 것을 보고 한 마디 더했다.



“당신은 이 분이 공격해 들어갈 때, 아무런 대비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 비명은 질렀군요. 그것이 대비 수단 이었나요?”



“아, 아니다. 그건 단지 방심시키기 위해서……”



리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다시 물었다.



“그랬나요? 하지만 방심시킨다고 하기엔 대비한 수단이 아무 것도 없어 보였습니다. 의식은 도망가려고 하는데 몸이 굳어서 다리를 후들거리는 상태인 것 같았습니다만. 제가 모르는 수단이 있었나 보군요.”



“그렇다!”



청년은 애처롭게 외쳤다.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 사이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다면 제가 괜한 짓을 했군요. 하지만 당신이 그런 수단을 준비할 수 있으리라 생각지 못했습니다.”



“아니, 그건……”



“야, 정신 차려.”



청년이 리타의 화술에 말려들고 있자 뒤에 있던 청년 중 하나가 그를 불렀다. 그의 말에 청년은 눈을 번뜩 뜨며 리타를 노려보았다.



리타는 진심으로 한 말들이었기에 청년이 정신을 차린 것에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다만 드워프와 청년들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청년은 사납게 이를 드러내며 리타에게 말했다. 그의 뒤에 서 있던 남자들도 가세해서 리타를 압박한다.



“이 요망한 게 사람을 가지고 놀아? 너도 저 드워프처럼 바닥을 기게 만들어 줄까?”



“보아하니 힘깨나 쓰는 모양인데, 실력에 자신 있나 보지? 침대 위에서도 실력이 있는지 볼까?”



“킥킥. 여자 혼자서 우리를 다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본데.”



그들은 시끌벅적하게 리타를 향해 흉흉한 말을 내뱉었다. 개중에는 성적인 내용도 섞여 있었기 때문에 지켜보던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리타는 그녀를 향한 비난과 조롱 가운데서 의연하게 서 있었다. 그녀는 다소 질린다는 듯이 손을 앞으로 들며 말했다.



“질문은 한 명씩 해주세요.”



“뭐?”



리타의 표정은 전혀 당황하거나 겁먹은 기색이 없었다. 청년들은 그들의 위협이 먹혀든 기색이 없자 입을 닫았다. 대게 이 마을에서 그들의 협박에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경우는 없었다.



상황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청년들에게 리타의 목소리가 들렸다.



“먼저 질문에 답을 드리자면, 저는 여러분을 가지고 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드워프분을 바닥에 쓰러트린 건 저 입니다. 여러분이 드신 예는 적절치 않군요.”



“어차피 우리게 기게 만들 거였어!”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말하는군! 네 놈들이 영영 다리를 못 쓰게 만들어주마.”



어느새 리타의 바로 옆까지 걸어온 드워프가 청년들의 말에 노호했다. 그는 자신이 땅을 뒹군 처지가 마땅찮았지만, 옆의 인간 여자의 말을 듣고 그녀의 행동을 묵과하기로 한 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 버릇없는 놈들을 용서할 생각은 없었다.



다시 드워프와 청년들의 대치상태가 펼쳐졌다. 언제 달려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에 사람들은 긴장했다.



리타는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과 대치한 이들의 긴장이 느껴지자 생각을 그만두었다. 속으로 청년들의 질문에 대한 답을 정리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닌 것 같다.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는 드워프와 청년들은 제쳐두더라도, 지켜보는 사람들은 그저 구경거리 정도로 이 상황을 여기고 있다. 걱정스런 시선은 거의 없다. 그마저도 별 볼일 없는 수준의 걱정이다.



리타는 이런 감정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선의나 자연스러운 감정에는 둔하지만 악의나 이성에 따른 감정은 파악하기 쉽다.



“우선 이 상황이 정리되어야겠군요.”



“이보게, 그러려면 저놈들을 아작 내는 게 가장 좋지 않겠나?”



리타는 청년을 한번 슥 바라보았다. 여전히 도발적인 시선과 자세가 그들을 향하고 있다. 자세히 들을 생각이 들지 않는 욕설도 마구 내뱉고 있다.



“그러면 제가 말린 보람이 없어집니다만.”



“으음, 그러면 그냥 저놈들을 봐주란 말이냐?”



리타는 드워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복잡한 광장에서 자리를 떡하니 잡고 그들을 보는 수많은 시선을 살폈다. 여전히 기분이 나빠지는 시선들이다.



남의 일이 어떻든 자신에게 해만 되지 않으면 된다.



“계속 구경거리를 제공할 생각은 없으니까요. 한시라도 빨리 이 곳을 벗어나고 싶습니다.



“그건 동감하네. 그러면 어떻게 할 건가?”



드워프도 그들을 둘러싼 시선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인간이 이상해진 것인지 모르겠다. 분명 그의 생각으로 이 상황은 정상이 아니다.



“어이, 지금 무시하냐?”



청년은 고개를 삐딱하게 틀며 들이밀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리타를 향해 험한 말을 쏟아 내는 중이었다. 그러나 정작 리타는 느긋하게 드워프랑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청년의 행동에 드워프는 노기를 띠었지만 리타는 여전히 그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청년은 그녀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게 대놓고 사람을 무시하네?”



그는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기며 리타에게 손을 뻗었다. 그는 리타의 멱살을 잡으며 그의 앞으로 당겼다. 리타는 드워프에게 뭐라고 말하려는 도중에 그의 손에 이끌려갔다.



청년과 리타의 키는 거의 비슷했기 때문에, 멱살 잡힌 채 끌린 리타는 청년과 눈높이가 같았다. 그녀는 태연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죄송합니다. 그쪽과는 대화의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서 우선순위를 저 분으로 두었습니다.”



“그래? 그럼 이제부터 가치 없는 대화 대신 다른 걸 해볼까?”



청년은 그렇게 말하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 리타의 말이 그의 화를 제대로 돋우었다. 그는 자신의 위협에 겁먹지도 않고 오히려 무시하는 상대를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다.



청년의 뒤에 있던 남자들은 그가 주먹을 올리자 너무 심한 건 아닐까 걱정했지만 나서서 말리지는 않았다. 그를 말리다가 화가 자신에게 향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은 지켜보던 다른 사람들에게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그렇기 때문에 리타는 행동하는 데 주저함이 없을 수 있었다.



“아까 말하셨죠?”



“뭐? 윽!”



남자의 주먹은 어느새 리타에게 잡혀 있었다. 리타는 차라리 제미니의 손이 더 빠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휘두르는 남자의 주먹을 한손으로 가볍게 비껴 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꺾었다.



“아앗! 아아악!”



리타의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은 다른 손의 고통 때문에 동작을 지속하지 못했다. 그는 완전히 꺾인 손목 때문에 비명을 지르면서 멱살을 잡았던 손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드워프분께 볼을 때려 달라고요.”



리타는 휘두르는 손을 다른 손으로 제압하며 양손을 다 꺾어버렸다. 졸지에 양손이 다 붙잡힌 남자는 리타에게 이끌려 포박당한 범인 같은 자세가 되었다.



그는 고통과 수치심에 얼굴을 붉히며 바락바락 고함쳤다.



“으윽! 뭐하고 있어, 이 자식들아! 빨리 도와줘!”



“어, 어!”



남자들은 주춤거리다가 그의 말에 눈빛을 바꾸었다. 그리고 바로 리타에게 달려들었다. 몇 명이나 되는 건장한 남자들이 달려드는 모습에 사람들은 기겁했다.



하지만 리타는 붙잡은 청년의 발을 걸어 바닥에 엎드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사정없이 붙잡은 손을 들어올렸다.



“으아아악!”



뿌드득



“멈추시는 것을 권유하겠습니다.”



“으헉! 으어어어……”



청년의 한쪽 팔이 섬뜩한 소리를 내며 관절의 동작범위 이상으로 움직였다. 그의 한쪽 팔을 탈구 시켜버린 리타는 남은 한 팔을 잡은 채 사내들을 향해 말했다.



탈구된 팔은 리타가 손을 놓자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달려들던 사내들은 그 모습에 섬뜩함을 느끼며 제자리에 멈췄다.



“만약 조금이라도 저에게 위해를 가하고자하는 행동을 보이신다면, 남은 한 팔도 꺾어 버리겠습니다. 치료가 불가능할 정도로 관절을 손상시키면 어떻게 될까요?”



리타의 행동에는 전혀 망설임이 없었다. 그녀는 계속 무표정한 얼굴로 쓰러진 남자를 밟고 있었다. 이 상태로 보아서는 만약 청년들이 달려들었다간 남은 한 팔도 꺾어 버릴게 분명하다.



“끄으어어어……”



쓰러진 남자는 팔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에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신음만 흘렸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는 신음뿐만 아니라 침이 질질 흘렀다. 바닥의 먼지와 침이 그의 얼굴을 마구 더럽힌다.



“미, 미친 거 아냐?”



“팔을 바로 부러트리다니……”



청년이 고통에 무너진 모습을 보며 남자들은 주춤했다. 단순히 꺾는다고 위협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꺾어 버렸다. 팔은 두개라는 사실을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 하나를 본보기로 보여주었다. 이런 협박방식은 흔히 사용하는 것이지만, 그만큼 당할 때 무섭다.



한편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도 끔찍한 일을 자행한 리타를 향해 두려운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여전히 자리를 뜰 생각을 하지 않는 눈치다.



리타는 시선의 폭력에 기분이 나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청년을 더 난폭하게 다루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이만 상황을 정리하죠.”



“이렇게 벌려 놓고 무슨 소리냐!”



남자들 중 하나가 외쳤다. 발밑에 깔린 청년도 꿈틀거리는 것을 보니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모양이다. 그리고 어느새 뒷전으로 밀린 드워프도 다소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별로 찬성하시는 분이 없나 보네요.”



“우리 친구의 팔을 부러트려 놓고 무사할거라 생각하나?”



“퉷.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이대로 넘어가려고?”



청년들은 거세게 항의했다. 욕설은 안나왔지만 표정으로 보아서는 한바탕 퍼부을 걸 참고 있나 보다. 잡혀있는 남자가 아니었다면 이미 그렇게 했고, 거친 행동까지 나왔을지도 모른다.



리타는 피식 웃었다.



“원하신다면 그쪽 분들 모두 똑같이 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



사내들은 소리치거나 화내는 대신 침묵했다. 리타가 청년의 탈구된 팔을 발로 툭 걷어찼기 때문이다. 힘없이 늘어진 시체마냥 팔이 움직였고, 청년은 고통에 다시 비명을 질렀다.



그들을 침묵시킨 리타는 수많은 적의가 향해 있음에도 느긋하게 뒤를 돌아보았다.



“이 정도면 만족하시나요?”



“허, 흠.”



“아, 노인에 대한 무례를 꾸짖기 위함이 본래 목적이셨죠. 그러면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라 훈계를 해야 했나요?”



“뭐, 내가 말한다고 들을 놈들은 아니겠지. 인간은 본인은 쉽게 변하지 않는 동물이라고 들었네. 이런, 동물이란 말은 실례군. 흠흠, 어쨌든 내가 하려던 건 그 정도면 족하네.”



“이 사람을 갱생시킨다는 목적은 이루시지 않아도 됩니까?”



“그러면 좋겠지만, 그 정도까지 관여할 문제가 아니지. 나는 그저 정의를 추구하고 불의에 대응할 뿐이야. 눈앞의 불의에 대해서 화만 내면 되는 것이지.”



“퍽 무책임한 소리 같습니다만, 지금은 납득하도록 하겠습니다.”



드워프는 무책임하지 않다고 외쳤지만 리타는 듣지 않고 고개를 다시 돌렸다. 슬금슬금 움직이고 있던 남자들은 다시 검은 눈이 그들을 향하자 멈춰 섰다.



리타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눈을 치켜떴다. 그녀가 지닌 아름다움과 묘한 매력마저 집어삼킬 정도로 매서운 눈매가 그들을 향한다.



“그쪽 분들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본디 잘못은 그쪽 분들이 저질렀고, 드워프 분은 만족한다고 하셨으니까 그쪽만 납득한다면 이 상황은 해결될 것 같습니다만.”



“웃기지마라. 사람 팔 부러트려 놓고 납득하라고?”



“그러면 어떻게 해야 납득하시겠습니까?”



“네가 옷이라도 벗고 춤추면 납득해주지.”



“낄낄.”



사내의 음담패설에 다른 남자들도 웃음을 터트렸다. 그들의 기분 나쁜 시선이 리타의 몸을 훑었다.



리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래도 그들은 입장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상기시켜 줄 필요가 있겠지.



리타는 잡고 있던 사내의 팔을 치켜들었다. 순간 남자들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리타는 사내의 팔 관절에 발을 가져갔다.



“아아악! 아으! 그만! 제, 제발 그만!”



“싫습니다.”



리타는 잡고 있던 팔의 팔꿈치 부분을 발로 지긋하게 눌렀다. 죽은 것처럼 쓰러져 있던 청년은 고통에 온 몸을 몸부림쳤다. 핏발 선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콧물은 입으로 들어갔다. 입으로는 침이 마구 흘러내린다.



“미, 미안해! 잘못했어! 다신 안 그러, 으아악! 그럴게요! 죄송합니다! 제발, 제발 그만둬 주세요. 아으으으……”



사내는 리타에게 애걸복걸 했다. 하지만 리타는 발에 힘을 빼지 않았다.



“그런 말은 친구 분들에게 하시지요.”



“사과해! 이자식들아! 빠, 빨리! 빨리하라고. 으아으…… 이 개자식들아, 어서!”



리타의 행동에 사색이 된 남자들은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리타의 발에 조금만 더 힘이 들어간다면, 정말 청년의 팔은 회복할 수 없을 만큼 심하게 꺾일 것이다.



“빨리해!”



청년은 우물쭈물하는 남자들에게 소리쳤다. 그의 팔을 꺾으려는 그녀보다 멍청한 저 놈들이 더 원망스러워 진다.



남자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청년의 비명소리가 커지자 황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뭐가 말인가요?”



“네?”



“뭐가 죄송하다는 거죠?”



“아, 그게……”



리타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남자들을 보았다. 죄가 지은 게 많아서 말을 못하는 것일까, 죄라고 생각하는 게 없어서 말을 못하는 것일까?



리타는 잡고 있던 남자의 손을 놓았다. 발로 계속 압박하고 있었기 때문에 팔은 꺾이지 않았어도 힘없이 늘어졌다. 청년은 움직이지 않는 양팔을 어쩌지도 못하며 땅바닥에 얼굴을 박고 울었다.



“끄으……”



사내들은 갑자기 그녀가 팔을 놓자, 금세 얼굴을 험악하게 바꾸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청년의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에, 바로 달려들지는 못했다.



“당신들의 사과는 당신들이 잘못을 저지른 대상에게 향해야 하겠지요. 방금 건 저에 대한 욕설과 음담패설에 대한 것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이 드워프분과 다른 피해자들에 대한 것은 그쪽의 자유의사에 맡기지요.”



남자들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리타는 감흥 없이 그 동작을 보며 말했다.



“저는 이 상황을 빨리 벗어나고 싶으니 일축하겠습니다. 이대로 친구분을 데리고 사라지세요.”



“네가 그러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무사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으면 이런 일을 했을까요?”



리타는 그들의 협박에 당당하게 받아쳤다. 남자들은 주춤거리며 말했다.



“허세 부리지 마라! 보아하니 이 마을에 처음 온 여행자 같은데, 네까짓 게 알량한 힘만 믿고 까불다가 어떻게 될지 똑똑히 보여주마.”



“으음.”



리타는 팔짱을 꼈다. 그리고 그녀답지 않게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그녀는 찌푸린 얼굴로 남자들을 보다가 쓰러진 청년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청년에게 향하자 남자들은 움찔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리타가 무슨 짓을 할 거라고 느꼈다. 리타에게 말했던 남자는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저는 이 정도까지 하고 싶진 않았습니다만…… 친구 분들이 별로 당신을 생각해주지 않는군요.”



“으허허헝. 죄송합니다. 제발, 제발 봐 주세요.”



쓰러진 남자는 차라리 기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랬다면 떨거지들의 말 때문에 그에게 향하는 무서운 기운을 느낄 수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는 울며불며 매달렸지만 리타가 멈출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기어서 도망치려고 했지만 팔이 움직이지 않아 그것마저 불가능했다. 절망에 빠진 눈으로 리타를 올려다보았다.



마주보는 리타는 싱긋 웃고 있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목숨에 지장은 없습니다.”



리타는 어디까지나 사실에 입각한 객관적인 말을 한 것이지만, 듣는 청년의 입장에서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도 기절하지 않는 자신의 정신을 탓했다.



“이야압!”



그때 남자들 중 하나가 리타에게 달려들었다. 리타가 청년에게 정신을 팔고 있는 틈을 노렸다. 그는 품속에서 나이프를 꺼내 손에 들고 있었다.



“기습하면서 기합은 왜 지르시죠?”



리타는 의아해하며 나이프를 든 남자의 손을 걷어찼다. 그리고 대답을 들을 생각이 없었기에 몸을 돌리며 다른 발뒤꿈치로 남자의 턱을 날렸다.



“컥!”



남자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줄이 끊긴 인형처럼 그대로 쓰러졌다. 리타는 일격에 남자를 쓰러트리고 그의 팔을 잡았다. 동공이 풀린 것을 보니 턱을 얻어맞은 충격으로 정신이 나간 모양이다. 그녀는 다른 달려드려는 남자들을 보았다.



“자, 잠, 그만둬!”



“거듭 말하지만, 그런 것은 행동하기 전에 말하세요.”



그녀의 시선은 불안했기 때문에 남자들은 그녀를 말리려고 했다. 하지만 리타는 그대로 쓰러트린 남자의 팔을 비틀었다.



“으아아악!”



관절이 뒤틀리는 고통에 정신을 차리며 남자는 비명을 질렀다. 리타는 처음 쓰러트린 청년과 달리 고통을 오래 줄 생각은 없었는지 단숨에 팔을 탈구시켰다. 그는 힘없이 늘어지는 팔을 붙잡고 비명 섞인 울음을 터트렸다.



“아까 말하지 않았습니까? 모두 똑같이 해드릴 수 있다고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다시 청년에게 몸을 돌렸다. 청년은 움직이지 않는 팔을 질질 끌며 땅을 몸통으로 기어가고 있었다. 그의 몸부림은 그의 평소 행실을 아는 사람들마저도 불쌍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리고 리타는 그 불쌍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에 속한다.



“다른 한 쪽 팔을 꺾는 건 관두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아까 드워프분께 때려 달라던 볼을 때리도록 하지요.”



“끄으…… 제발……”



“죄송합니다만 어쩔 수 없네요. 친구 분들에게 한 말을 지켜야 하니까요. 음, 그러고보니 드워프 분이 때려야 하는 건가. 때리실래요?”



“아니, 됐네.”



드워프는 리타의 행동에 기가 막혀하면서도 약간은 통쾌한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리타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그가 보기에 리타는 과한 면이 있었고, 거기에 그가 주먹을 휘두른다면 청년은 영원히 죽만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군요. 그러면 당신이 저한테 보인 행동에 대한 대가로가 치겠습니다. 생각해보니 제 몫을 챙기지 않았네요.”



“사, 살려주세요.”



리타는 고개를 갸웃했다.



“죽이지 않아요. 다만 식사하는 데 조금 불편하실 겁니다.”



“아, 앞으로 절대 나쁜 짓 하지 않겠습니다. 착하게 살겠습니다. 복수는 꿈도 꾸지 않을 겁니다. 저자식들, 아니 저 사람들도 착하게 살게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제발 한 번만……”



청년은 두 손으로 싹싹 빌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는 게 원통한 듯 했다. 방금 전만 해도 그렇게 기세등등하던 청년이 단순히 팔이 꺾인 정도로 이렇게 군다는 게 리타는 웃겼다.



헬턴트의 어느 남자도 이 남자처럼 비굴하지 않다. 그건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후치 같은 소년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평화가 사람들을 이렇게 만든 것일까? 아니면 청년이 약하디 약한 것뿐일지도 모른다.



사실 어느 쪽이든 지금 중요한 건 아니었다. 리타는 보는 사람에 따라서 한없이 잔인해 보이는 얼굴로 말했다.



“당연히 그 말들은 지키실 거라 생각합니다.”



“네, 네. 물론이지요! 이 자식들아, 니들도 어서 엎드려서 빌어!”



청년은 머리를 땅바닥에 조아리며 외쳤다. 정말 고작 팔 하나로 이렇게 사람이 바뀌다니 놀랍다.



그의 말에 뒤에 있던 남자들은 눈치를 살피다 몸을 엉거주춤하게 숙였다. 청년은 다시 한번 윽박질러 그들을 모두 엎드리게 만든 다음에 흉한 얼굴로 웃었다.



“헤헤. 저 놈들도 모두 말을 들을 겁니다.”



“그렇군요. 원래 당신들에게 이 정도까지 개입할 생각은 없었습니다만, 그렇게 하시겠다니 믿도록 할게요.”



“크흑, 감사합니다.”



리타는 청년의 앞에 몸을 숙이며 앉았다. 눈물, 콧물로 범벅된 그의 얼굴에 흉한 웃음이 떠올라 있다. 리타는 그가 똑바로 고개를 들도록 그의 턱을 받쳤다.



“그럼 어서 한 대만 때리고 끝내도록 하죠.”



리타는 왼손으로 턱을 받치고 오른손을 어깨 뒤로 당겼다. 가죽 장갑을 낀 그녀의 손이 꽤 단단해 보인다. 청년은 흔들리는 눈으로 뒤로 당겨진 주먹을 보다 얼빠진 소리를 내뱉었다.



“네?”



리타는 고개를 갸웃하며 당연하다는 투로 말했다.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잖아요?”



남자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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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입니다.

말한대로 지난주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며칠간 올리지 못했네요.

죄송하단 의미에서 간만에 8장 분량을 들고 왔습니다.

이런건 적절하게 끊는게 중요한데, 아무래도 약하군요.

다음 씬은 12인의 여관입니다.

그럼 좋은 밤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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