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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르타트] 아무르타트 - ch3. 뿌리깊은 나무 (2) (0) 2014/12/26 PM 11:33


*








이루릴은 영지를 완전히 벗어나기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후치와 샌슨은 조바심이 나는 바람에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칼도 가끔 뒤를 돌아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만 리타는 계속 안색을 창백하게 한 채 묵묵히 이루릴의 뒤를 따랐다.



일행은 처음 영지의 모습을 확인했던 언덕에 다다랐다. 이루릴은 말에서 내리며 땅에 앉았다. 일행은 덩달아 말에서 내려 그녀의 근처에 모여들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고민에 빠졌던 이루릴은 고개를 들어 일행을 봤다.



“앉지 않으세요?”



“아, 예.”



그들은 각자 땅에 앉았고, 이루릴이 나직하게 말했다.



“그 영지는 이상하더군요. 그 여자처럼 오로지 헬카네스의 기운만을 가지고 있었어요.”



샌슨과 후치는 서로를 돌아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모르는데 너도 모르겠지?’ 라고 묻는 시선이었다. 하지만 칼은 사색이 되어 물었다.



“유피넬이 없다는 말입니까?”



“네. 그곳에 조화는 무너졌어요. 유피넬의 저울대가 무시되는 곳입니다. 이해할 수 없군요.”



조화의 유피넬과 혼돈의 헬카네스. 그들은 엄밀히 말해 신이라기보다 어떤 진리와 같은 더 상위의 존재다. 그 하위의 인격신들에 대한 종교는 있지만 그들은 세상의 법칙에 더 가깝기 때문에 특별히 신앙이 존재치 않는다.



세상 모든 것은 혼돈이나 조화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그것은 유피넬의 어린 자식이라는 엘프나 헬카네스의 자식인 드워프, 오크 등에게도 마찬가지다. 종족의 경향이 있을 뿐이지, 절대적인 속성이 아니다. 조화만으로 가득하다면 그 세계는 정체될 것이고, 혼돈만이 있다면 그 세게는 무너진다. 가령 칼라일 영지처럼 말이다.



인간은 양자를 따른다. 그렇기에 거침없이 나아갈 수 있다. 양쪽을 모두 따르는 인간과 양쪽을 모두 따르지 않는 드래곤만이 세상의 패권을 다투었다. 치우침의 종족은 결코 그러지 못한다.



그 여자는 오직 헬카네스의 기운만 가지고 있었다. 칼라일 영지도 마찬가지다. 조화는 존재하지 못한다. 법칙은 일그러지고 상식은 통용될 수 없다.



“그녀가 리타의 말처럼 뱀파이어라면, 헬카네스의 기운만 느껴지는 걸 납득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영지는 무엇일까요?”



“오직 헬카네스의 기운만이……”



“가능성이 하나 있어요.”



“무엇입니까?”



“헬카네스의 기운만을 뿌린다는 것은 헬카네스의 하위신이 가진 힘일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그 역사함으로 헬카네스의 기운을 강하게 퍼트릴 수 있는 신이라면?”



칼은 눈을 끔뻑거렸다. 리타는 창백한 얼굴을 더 새하얗게 물들였다. 칼의 낮은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흘러 나왔다.



“세이크리드 랜드라고 생각하시오?”



이루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어요.”



“오, 맙소사!”



칼은 리타를 따라하듯 창백하게 질려버렸다. 리타는 힘겹게 고개를 들며 말했다.



“헬카네스. 뱀파이어와 까마귀. 일그러진 조화와 오롯한 혼돈. 몸을 엄습하는 병마의 기운.”



“무슨 말이오?”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리타는 어렵사리 대답했다.



“정답은 간단하군요. 까마귀와 질병의 신입니다.”



칼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이루릴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커다란 까마귀, 역병의 제일 원인자, 무덤만 지키는 무덤지기.”



“게덴.”



후치는 처음 듣는 신의 이름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샌슨을 바라보았으나 얼떨떨한 표정을 보고 이내 고개를 돌렸다. 좋은 학생은 모르는 게 있을 때 아는 사람에게 주저 없이 질문하는 태도를 견지한다.



“무덤만 지킨다는 게 무슨 말이죠?”



“무덤만 지킬 뿐 시체는 지키지 않아요. 파먹거나, 또는 꺼내어 훼손한다거나……”



“우윽. 그런 신을 믿는 사람도 있어요?”



칼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답했다.



“우리들이 사는 웨스트 그레이드 쪽에서는 별로 득세하지 못한 신이지만, 사우스 그레이드 쪽에서는 꽤 명성 있는 신이라네. 특히 사우스 그레이드의 이파실 시에는 게덴의 화신이라 불리는 두 머리 까마귀 체로이가 살고 있지. 그 시의 시민들은 체로이에게 직접 공물을 바치기도 한다더군.”



“엣? 머리가 두 개?”



“그렇다네. 질병은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는 것을 상징한다던데. 머리 한쪽이 잠들어도 다른 머리는 깨어 있다더군.”



리타가 칼의 설명을 보충했다.



“무지개의 솔로처와 데스나이트의 전설이 있는 곳이지. 제대로 관찰하지 못했지만 한쪽이 잘 때 다른 쪽은 깨어 있다는 말은 사실이야.”



“이파실 시도 가 본거에요?”



“어비스의 미궁에 가는 길에 들렀어.”



별거 아니라는 투의 대답에 샌슨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후치는 얼마 전에 보았던 발러가 사는 곳이 어비스의 미궁이라는 것을 기억해내고 비슷한 표정이 되었다.



칼은 눈을 내리깔며 고민에 빠져있었다. 이루릴도 비슷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기에 샌슨은 진중하게 말했다.



“저, 그럼 저 도시에서 게덴이 뭔 일을 벌이고 있다는 말입니까?”



“그의 프리스트일 가능성이 높겠지. 아니면 그의 권능이 깃든 어떠한 물건이 잘못 저 마르에 전해졌을 가능성도 있고.”



“그건 아닐 겁니다.”



“스마인타그 양?”



칼이 의아한 표정을 보며 리타는 고통을 억지로 무시한 채 말했다.



“뱀파이어는 아무리 헬카네스의 하위신이라고 하여도 그 신의 프리스트가 될 수 없어요. 오로지 혼돈만이 있기에, 헬카네스의 종자가 될지언정 그 하위의 종자가 될 순 없죠.”



“혼돈만으로는 혼돈일 수 없다는 말이오?”



“비슷합니다. 흔히 말하는 빛과 어둠의 상관관계에 빗대더라도 설명 가능한 것이지요.”



“하지만 그것은…… 아니,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군요. 계속 말씀하십시오.”



샌슨은 멍한 표정의 후치를 보며 동질감을 느꼈다. 칼잡이들을 놔둔 채 리타는 손을 들어 도시를 가리켰다. 일행의 시선이 동시에 돌아갔다.



“프리스트가 아닌 자가 게덴의 까마귀들과 함께 하고 있어요. 물론 까마귀나 박쥐 같이 혼돈에 가까운 생물들은 뱀파이어를 따를 순 있죠. 하지만 저는 그것보다는 프리스트가 아닌 뱀파이어가 게덴의 힘을 역사한다는 쪽에 더 가능성을 두겠어요.”



“뱀파이어만의 문제가 아니란 소립니까?”



리타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이 존재할 겁니다. 그러니 우연으로 게덴의 힘을 간직한 물건이 도시에 들어왔을 리는 없겠죠. 뱀파이어는 그 일행과 어떤 목적이 있어서 이 영지에 게덴의 세이크리드 랜드로 만들었을 겁니다.”



후치는 먹구름이 가득한 도시를 주시하며 말했다.



“누군가의 소행이라고요?”



“사람 수준의 지성이 있다고 하지만 피를 빠는 목적성 외에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길 싫어하는 종족이 뱀파이어지. 하지만 그 뱀파이어는 우리를 유혹하지 않았어. 오히려 추방시켰지. 왜? 뭐 하러 굳이 찾아온 먹이를 놓아 주었을까?”



칼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이내 눈을 번쩍 뜨며 입을 벌렸다.



“세상에…… 이지(理智)를 가진 뱀파이어라니!”



“특이한 뱀파이어죠? 흡혈이 아닌 다른 목적을 가지고 누군가와 함께 행동한다니 말이에요. 그 괴이함 때문에 아까 그녀의 정체를 확인하려 하였어요. 하지만 물러나길 잘했군요.”



샌슨이 힘겨워하는 그녀를 걱정스레 보았다.



“그건 어째서야?”



“헬카네스의 힘이 충만한 곳에서, 먹구름이 꼈다 하더라도 밤이 아닌 낮에 돌아다닐 수 있는 힘을 가진 뱀파이어와 싸운다는 건 무모한 짓이지. 물론 우리에겐 이루릴이 있으니까 완전히 지진 않겠지만, 지금 내 상태로는 짐만 될 뿐이라서.”



“많이 아파?”



“계속 현기증이 나. 어지러워.”



리타는 숨김없이 그녀의 상태를 말했다. 샌슨은 서슴없이 리타의 이마에 손을 대 보았다. 특별히 열은 느껴지지 않았다.



“단순히 감기는 아닌 것 같군.”



리타는 그러함에도 차가운 샌슨의 손이 좋은지 눈을 감으며 말했다.



“생리할 시기는 아닌데.”



“콜록!”



“커흠!”



헬턴트 남성 삼인방은 각기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볼을 붉히며 딴청을 피웠고, 리타와 이루릴은 갑자기 왜 그러냐는 듯 쳐다보았다.



그때 이루릴이 갑자기 리타의 손을 잡았다. 리타가 돌아보니 이루릴은 무엇인가 떠오른 듯 불안한 표정이었다.



“리타, 언제부터 현기증이 일었죠?”



“그 여자를 보았을 때부터 머리가 아파오더군요.”



“그건 칼라일 영지에 들어섰을 때부터인가요?”



이루릴의 말에 리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본 칼은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이루릴은 정도는 다르지만 비슷한 계통의 얼굴이 되었다.



그들의 표정을 보고 리타는 어떤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그렇군요. 저 곳은 게덴의 세이크리드 랜드니까요.”



“이런……”



칼은 절망어린 표정이 되어 바닥에 힘없이 퍼질러 앉았다. 이루릴은 붙잡은 리타의 손을 꽉 쥐면서 곤란한 얼굴을 하였다. 무엇인가 나쁜 일이라도 벌어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침중한 표정을 짓는 그들을 보며 후치가 참지 못하고 질문했다.



“왜 그러죠? 게덴의 세이크리드 랜드가 리타가 아픈 거랑 무슨 상관있나요?”



칼이 나지막하게 대답해주었다.



“여보게, 네드발 군. 게덴은 까마귀와 질병의 신이지 않는가? 그 신의 힘이 펼쳐진 땅이라면 어떤 힘이 깃들겠는가? 까마귀는 이미 경험했으니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것이라면 무엇이 남지?”



“…… 질병이네요.”



“맙소사.”



샌슨의 놀람이 일행의 심정을 대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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맙소사. 세미소사.

......

무리수인거 압니다. 네. 죄송합니다.

그럼, 좋은 밤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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