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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르타트] 아무르타트 - ch3. 뿌리깊은 나무 (4) (0) 2014/12/30 PM 10:41









남자들이 말을 잃은 채 입만 벙끗거릴 때, 이루릴은 별일 아니라는 것처럼 말을 걸었다.



“저는 이루릴 세레니얼입니다. 코스모스와 폭풍의 프리스티스인가요?”



리타를 안은 채 꽃밭에서 빙글빙글 돌던 트롤은 그제서야 이루릴을 돌아보았다.



트롤은 리타를 얌전히 내려놓으며 인사를 받았다. 그는 큼직한 송곳니를 드러냈다. 단순한 미소였지만 헬턴트 남자들에겐 사냥감을 앞에 두고 입맛을 다시는 것처럼 보였다.



“실례했습니다. 에델린이라고 합니다. 말하신 대로 에델브로이의 말씀을 따르고 있습니다.”



인사를 받은 이루릴은 남은 일행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왜 인사를 하지 않느냐고 묻는 듯한 시선을 던졌지만, 당사자들은 멀거니 입만 벌리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 벌어지는 상황을 전혀 납득하지 못했다.



“아니…… 그, 에, 그러니까, 좀, 아니, 그렇지만……”



후치는 당황해서 이상한 소리만 늘어놓았다. 샌슨과 칼은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진 않았지만 표정을 보니 그와 비슷한 상태 같았다. 이루릴은 고개를 갸웃하며 그들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으, 어지러워. 린. 저기 당신에 비해선 아담하지만 사실은 오거와 형제를 맺은 것 같은 친구가 샌슨, 머리에 새집을 지어놓고 그 안에는 여자 생각만 가득한 소년이 후치, 말끔한 중년처럼 생겨서 뱃속에 능구렁이를 백 마리쯤 키울 법한 사람이 칼이에요.”



에델린은 씨익 웃으며(여기서 남자들은 다시 한 번 소름이 돋았다.) 제법 점잖게 인사했다.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바람 속에 흩날리는 코스모스를.”



그나마 그들 중 가장 이성의 끈이 굵은 칼이 더듬거리며 대꾸했다.



“컥, 포, 폭풍을 잠재우는 꽃잎의 영광을, 에, 영광을. 그러니까……”



칼을 필두로 샌슨과 후치는 전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리타는 분위기를 풀어볼 요량으로 재밌게 한 소개였지만 효과가 없었음에 아쉬워했다. 그녀는 아직도 에델린에게 안겨서 돌려졌던 여파를 느끼며 그들의 소개에 말을 더했다.



“셋 중 하나가 제 신랑감이에요. 누굴 거 같아요?”



“오, 그래요?”



평소라면 리타의 말에 발끈하거나 농담으로 받아쳤을 남자들은 그러지 못했다. 에델린의 흥미어린 눈이 세 남자를 찬찬히 훑어보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누가누가 맛있을까?’같은 느낌을 주었다.



“리타랑 비슷한 연령대라면 이 분 아닌가요?”



“물레방앗간 처녀가 들으면 슬퍼할 말이로군요. 뭐, 분위기를 쇄신할 농담이었지만 별로 효과는 없네요. 그만들 정신 차리지 그러세요?”



“그, 리, 리타.”



“난 리리타가 아니라 리타야.”



“그건 아는데…… 이게, 뭐, 아니, 어째서?”



샌슨의 더듬거리는 말에 리타는 무슨 말을 하는 거냐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칼과 후치는 그의 심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경계와 혼란으로 범벅된 시선을 받으며 에델린은 침착하게 대응했다.



“많이 놀라셨군요.”



칼은 쭈뼛거리며 겨우 말했다.



“다, 당신은 트롤 아닙니까?”



“보시다시피.”



“저, 그, 그런데 어떻게 에델브로이의 프리스티스가 되었습니까?”



에델린은 평온했다. 하지만 리타는 그러지 못했다.



“실례로군요, 칼. 신앙이 있으니, 후우, 프리스티스가 되는 게 당연하지요. 속마음이 뻔히 보이는데 돌려 말하는 건, 후…… 대화의 예의가 아니에요.”



“아, 예, 지당하신 말씀입니다만……”



칼은 상황의 희소성을 외치고 싶었다. 사람은 트롤을 마주치면 놀란다. 말하는 트롤을 마주치면 경악한다. 그런데 프리스티스인 트롤을 마주친다면? 이 상황에서 이성을 유지하고 예의를 지키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다행이 그에겐 그의 가르침을 사사받은 썩 훌륭한 제자가 하나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후치 네드발. 방년 17세 헬턴트 소년이다.



“그, 그렇지만 트롤이잖아요? 리타가 어떻게 아는지부터 물어보고 싶지만, 그보다도 우린 트롤 프리스티스는 듣도 보도 못했어요. 에, 우리 태도가 그, 실례라는 건 알겠어요. 하지만 우리가 얼마나 놀랐는지도 짐작해 보라고요!”



“놀랐겠네.”



“아주 많이많이!”



“후우…… 응, 아주 많이많이 놀란걸 알았으니, 이제 정신 차리고 예의도 차리렴.”



“아! 으으.”



후치는 가슴을 두드리고 싶었지만 참아냈다. 그런다고 답답함이 해소되지는 않는다. 그는 대신 리타의 말대로 진정하기로 했다. 어쨌든 트롤과 조우해서 느닷없이 목숨을 건 전투가 벌어질 상황은 아닌 것 같으니까.



에델린은 당황하는 이들에게 익숙한지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침착하게 그들에게 말했다.



“많이 놀라셨을 겁니다. 저도 여러분들이 왜 놀라는지 알고 있습니다. 사람 잡아먹는 몬스터가 프리스티스라니, 어울리지 않아서 이상하게 생각하시겠지요? 그런 태도들이 저를 슬프게 합니다만, 그 이유가 저에게 있으니 따질 처지가 아니지요. 그러니 리타, 너무 이분들을 닦달하지 마세요.”



리타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남자들을 향한 불만어린 시선은 치우지 않았다. 그녀는 친구가 이런 대우를 받는다는 게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불쾌했다.



그사이 침착해진 칼이 대답했다.



“미안하오. 말씀대로 처음 겪는 일이라 실례를 범했소이다. 무슨 사연이라도 있습니까?”



에델린은 대답하는 대신 칼라일 영지를 바라보았다. 지도를 보기 어려울 정도로 어둡게 하늘을 뒤덮었던 먹구름이 어느새 많이 엷어져 있었다. 그녀는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그때 에델린의 옆에 서 있던 리타가 갑자기 주저앉았다.



“어?”



그녀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를 이상하게 쳐다보면서 일어서려고 하였지만,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리타! 어디 아픈 건가요?”



에델린이 재빨리 쓰러진 리타를 보기위해 몸을 숙였다. 트롤의 거대한 체구가 리타를 덮치기라도 할 것처럼 웅크려졌다.



“괜찮아?”



일행은 리타가 쓰러지자 놀라 그녀의 주변에 몰려들었다. 샌슨이 걱정어린 표정이 되어서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그는 순간 따뜻하게 데워진 우유병을 만지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의 몸이라기엔 그녀는 너무 뜨거웠다.



리타는 인상을 쓰며 숨을 힘겹게 내쉬었다. 후치가 재빨리 에델린에게 말했다.



“저 곳에 잠시 들어갔었어요. 그때, 뭔가 질병에 걸린 것 같아요!”



“그런! 증상은 어떤가요?”



리타는 단순히 어지럽다고 했을 뿐이다. 정도가 심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일행도 바로 치료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쓰러지다니 그들도 당황스러웠다. 병에 대한 지식이 있는 칼도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증상을 보면, 후우, 빈혈인 거 같은데, 단순히 그 정도가 아니라면, 후우, 뇌에 종양이 생긴 걸지도. 조금 추워요…… 오한인가?”



리타가 숨을 헐떡이며 대답했다. 몸이 이렇게 뜨거운 빈혈은 듣지도 못했다. 두통에 발열이 심하고 한기가 들었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 게덴에 의한 완전히 다른 질병이 동시에 발생한 것일 수도 있다.



에델린은 급히 그녀의 몸을 붙잡으면서 말했다.



“알겠으니 그만 말해요.”



에델린은 리타의 상체만한 손으로 그녀의 가녀린(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몸을 꽃밭에 편하게 눕혔다. 후치가 다급하게 말했다.



“에델린! 성직자시니까 리타를 치료할 수 있지 않아요?”



“네, 병이 무엇이냐에 따라 다르지만 신성력으로 치료할 순 있어요.”



“그럼 부탁드릴게요. 방금 우리가 무례하게 굴었던 거 미안해요.”



후치의 간곡한 어조에 에델린은 안심시키듯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세요.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어요. 그리고 리타는 저에게 있어서도 소중한 친구니 이대로 놔두진 않아요.”



리타는 계속 거칠게 숨을 내쉬며 고통에 겨워했다. 에델린은 두 손을 리타의 가슴 앞에 모으고 눈을 감았다. 그러자 그녀의 손에 새하얀 빛의 무리가 생기더니 차츰 리타의 몸을 감쌌다. 빛은 바라보아도 눈부시지 않을 정도로 은은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스며들 듯이 리타의 몸에 닿으며 사라졌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리타는 한결 안색이 나아졌다. 에델린은 그것을 보고 손을 거두었다. 꽤 집중했었는지 그녀의 거친 피부위로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땀이 흘렀다. 그녀는 팔로 이마를 닦으며 숨을 돌렸다. 후치가 그녀를 간절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괜찮아진 건가요?”



“조치는 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군요. 병마의 기운이 특별히 느껴지지 않아요.”



“그러면?”



“희귀한 병이거나 별것 아닌 것 일수도 있겠지요. 원인을 파악할 수 없어서 신체를 회복시켰는데, 그쪽으로는 잘 된 것 같습니다. 회복이 잘 먹히는 걸 보면 걱정할 수준은 아니겠군요. 바로 원래처럼 움직이는 건 힘들겠지만 충분히 쉰다면 금방 회복할 수 있어요.”



“하아, 다행입니다.”



“고마워요, 에델린.”



후치의 감사에 에델린은 미소로 화답했다. 후치는 식겁했지만 최대한 드러내지 않기 위해 애썼다. 리타를 치료해 주었는데도 계속 같은 태도라면 도리가 아닌 것 같았다.



샌슨은 숨을 새근새근 내쉬는 리타를 보며 말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냥 현기증만 있는 정도였는데 갑자기 왜 이렇게 악화 된 거지?”



칼이 힘없이 대답했다.



“그게 게덴의 세이크랜드 랜드의 무서움일세. 아무리 차근차근 증상이 나타나는 병이라 하더라도, 세이크리드 랜드에서는 자연적인 발병이 아니기 때문에 그 과정은 순식간에 이루어지네. 알고 있음에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군. 그랬다면 좀 더 대처를 서둘렀을 텐데.”



후치가 의아한 듯 물었다.



“세이크리드 랜드에서 나왔으면 병이 약화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게 아닐세.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세이크리드 랜드라는 건……”



칼의 말을 이루릴이 끊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조금 후에 하도록 하죠. 에델린이 리타를 치료하는 바람에 구름이 대부분 흩어졌어요.”



“구름이?”



과연 그녀의 말대로 칼라일 영지의 구름은 대부분 흩어져 있었다. 그 사이로 내리쬐는 태양빛은 선명한 붉은 색을 띄고 있었다. 에델린도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해가 지는군요. 지금이라면 구름으로 햇빛을 막지 않아도 됩니다.”



“린이 햇빛을 막고 있었던 건가요?”



“태양은 헬카네스의 힘. 햇빛이 닿지 않게 하려고 했는데, 쉽지 않더군요. 낮에는 저 구름들 위로 엄청난 태양열이 쏟아져 내렸어요.”



“그랬군요. 고생했어요, 린.”



리타는 누운 상태로 희미하게 웃었고 에델린도 마주 웃었다. 이루릴은 고개를 끄덕이며 하늘을 보았다.



“누군가 햇빛을 가리기 위해 구름을 보내고 있으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절 찾아오셨던 거군요. 저 영지에 들어가셨다고 하셨지요?”



“조금 전 초입까지 들어갔다가 다시 돌아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게덴의 세이크리드 랜드인 것 같은데요. 맞습니까?”



에델린은 미소를 지었다.



“역시 유피넬의 어린 자식답군요. 예, 그렇습니다.”



후치는 칼라일 영지를 바라보았다. 옅어진 구름 사이로 내리쬐는 붉은색의 광선들은 퍽 멋있었다. 하지만 그 실체는 세이크리드 랜드, 하나의 법칙만이 미쳐 날뛰는 곳이다.



에델린은 굽혔던 몸을 일으켰다. 그녀가 일어서자 일행들을 모두 가릴 정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에델린은 말했다.



“여러분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해도 될까요?”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후치는 소름이 돋는 걸 참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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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델린은 사실 트롤중에서도 미녀에 속한다는 설정을 집어넣을까 고민해 봤습니다만,

다 미녀로 나오는 DR에서 굳이 트롤까지 미녀로 해줄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패스.

그랬다면 소제목을 이렇게 바꿨겠지요.

'내 트롤친구가 이렇게 귀여울리가 없어.'

그럼, 좋은 밤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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