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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르타트] 아무르타트 - ch3. 뿌리깊은 나무 (17) (1) 2015/02/04 AM 01:38


일행은 긴장의 끈을 바짝 당기며 몸을 세웠다. 그의 말대로 동굴 멀찍한 곳에서 붉은 빛이 일렁이는 게 보였다. 불빛은 가로로 길쭉하게 번개처럼 비추었다. 동굴의 휘어진 길 사이의 틈으로 얼핏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터커가 이루릴에 윌오위스프를 없애달라고 낮게 말했다. 이루릴이 그것을 없애자 순식간에 바로 옆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워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자 옆 사람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감각이 예민해졌다.



그런 가운데 칼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들이 우리 일행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가정하고 있다면, 아마 저곳에 나가는 순간을 노릴 겁니다. 인원수가 적다면 기습을 시도하겠지요.”



“단단히 경계해야겠군요.”



샌슨의 대답에 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 곳에 어떤 함정이 있을 수도 있고, 갑자기 불이 꺼져버릴 수도 있습니다. 혹은 뒤에서 덮쳐들지도 모르지요. 어떤 예상외의 사태가 일어나더라도 혼란에 빠지지 않고 냉정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알겠어요, 칼.”



“마음을 다잡고 조금씩 전진합시다.”



칼의 말이 끝나자 사람들은 각자의 무기를 꽉 잡았다. 그리고 동굴 틈 사이로 살짝 비치는 불빛을 이정표 삼아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동굴 벽을 손으로 짚으면서 발로 조심스레 앞을 더듬어 움직였다.



동굴의 길은 S자로 굽어 있었다. 그들이 있는 곳으로부터 조금 더 걸어가자 불빛이 비치는 장소가 드러났다.



꽤 넓은 공간에는 몇 개의 양초가 켜져 있었다. 한켠에는 취사도구를 비롯해 물통과 책상 등 여러 집기가 보였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50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그들은 어두운 동굴 속에서 겁에 질릴 법도 하건만, 전혀 겁먹지 않아 보였다. 오히려 어딘가 넋이라도 나간 것처럼 얼빠진 표정으로 가만히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샌슨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했어!”



“조용히 해.”



리타가 조그마한 목소리로 샌슨에게 주의를 주었다. 샌슨은 아차 싶어서 입을 닫았지만, 불타오를 것처럼 빛나는 눈동자는 아이들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세심하게 안쪽을 살피던 펠레일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방금 전까지 사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급하게 움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군요.”



“알람을 듣고 대비한 것일까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 사이에 동굴 밖으로 빠져나가진 못했을 터이니, 이 안에 숨어있다고 생각하는 게 좋겠지요.”



일행은 모두 입을 굳게 다물며 표정을 굳혔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진짜로 적이 어딘가에 숨어서 그들을 노리고 있다는 걸 실감하자 온 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제일 앞장 서 있던 터커가 뒤를 향해서 조심스럽게 나가자고 지시했다. 양초의 붉고 노란 빛만이 어슴푸레 비치는 동굴 안에서 일행은 그의 작은 동작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터커가 한 발짝 움직였다. 그 바로 뒤에 있던 샌슨과 크라일이 따라서 발을 떼었고, 잇따라 칼, 이루릴, 사만다, 펠레일이 걸었다. 제일 후미에 있던 후치도 그들을 따라 움직였다. 하지만 리타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와 함께 있던 카피가 그녀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리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동굴을 노려보던 리타는 카피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도 가죠.”



“알았다 해요.”



리타는 곧장 후치의 뒤를 따랐다. 카피는 그들 일행이 걸어온 길을 리타가 바라본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함이 생겼다. 하지만 일행이 은밀하게 움직이니 의문은 잠시 묻어두기로 했다.



후미에 있던 리타와 카피까지 동굴의 넓은 공간에 들어섰다. 터커와 크라일은 무기를 앞세워 누가 봐도 경계하는 것을 알 법한 포즈였다. 그것을 지적해줄 펠레일이나 사만다도 마찬가지로 로드와 스태프를 꽉 잡고 긴장해 있었다.



일행은 잔뜩 긴장한 상태로 공간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주 조심스럽게 한 발씩 전진하던 일행은 거의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까워져 갔다. 그때까지 아무런 움직임도 없자 일행은 의아하게 생각했다. 몸에 힘이 풀리는 그들을 보며 터커가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아무도 없는데?”



“그건 아니에요.”



이루릴의 말이었다. 그리고 후치가 그녀에게 이유를 되물어 보기도 전에 그녀가 말한 이유가 밝혀졌다. 삽시간에 동굴에 있던 불빛들이 모두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안 보여! 꺄악! 어딜 만져!”



“크, 크레틴 양! 죄송합니다.”



새된 사만다의 비명소리와 다급한 펠레일의 사과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일행은 잠깐 긴장을 푼 순간에 불빛이 모두 사라지자 당황하고 말았다. 후치도 바스타드의 손잡이를 꽉 잡으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허둥지둥 둘러보았다.



“젠장! 아무것도 안 보여!”



누군가의 욕 소리가 들리고 곧 이어서 청아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루릴의 중얼거림이었다.



그녀는 가슴에 손을 모아 허공으로 띄웠다. 그녀의 손 안에서는 환하게 빛나는 빛의 공이 존재했다. 빛의 정령이다.



“윌오위스프!”



순식간에 주위가 밝아졌다. 윌오위스프의 빛은 양초들 이상으로 강렬해서 그들이 있는 공간을 모두 비추었다.



“앞!”



샌슨이 다급하게 외쳤다.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를 남자 한명이 그들을 향해 그물을 던지고 있었다. 상당히 큰 그물은 매우 능숙한 모양새로 그들을 모두 덮칠 것처럼 펼쳐졌다.



그물은 매우 질겨 보였다. 샌슨과 크라일, 터커는 각자의 무기로 베어버리려고 했지만 결코 쉽게 베어질 것 같지 않았다. 그때 리타의 목소리가 그들의 뒤에서 들렸다.



“카피!”



화아아악!



카피가 대답대신 내놓은 것은 브레스였다. 그녀의 빙결 브레스가 그물을 향해 뻗어 나갔다. 그것은 펼쳐진 그물을 허공에서 그대로 얼려버렸다.



“으랴압!”



앞 선에 있던 전사들은 허공에서 얼어버린 채 다가오는 그물을 내리쳤다. 마치 거미줄쳐럼 펼쳐졌던 그물은 그들의 공격에 순식간에 깨져 버렸다.



터커는 핼버드를 휘두른 자세 그대로 앞을 노려보았다.



“이 자식!”



그물을 던진 남자였다. 그는 한번을 보더라도 결코 잊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한 눈매를 가지고 있었다. 터커의 저돌적인 외침과 공격에도 그는 날렵하게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손안에서 전혀 달갑지 않은 선물을 던졌다.



챙!



터커는 황급히 핼버드를 휘둘러 날아오는 것을 쳐냈다. 워낙 빨라서 보지 못했지만 금속음이 들린 걸로 봐서는 던지는 날붙이인 것 같았다. 터커는 이를 빠드득 갈면서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터커! 진정해!”



크라일이 그런 터커의 뒷모습을 보면서 외쳤다. 하지만 터커는 목소리가 채 닿기도 전에 남자를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크라일도 그에게 가세하기 위해 뛰어 들었고 일행은 둘로 나뉘게 되었다.



그 순간 무엇인가가 재빠르게 날아왔다.



“크윽!”



펠레일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는 팔을 잡고 쓰러졌다. 그가 부여잡은 손 사이로 붉은 액체가 흘러나온다.



그가 잡고 있던 팔에는 짧은 나무가 박혀 있었다. 석궁의 화살격인 퀴렐이었다. 사만다가 놀라서 그의 곁에 주저앉았다. 칼은 재빨리 활을 꺼내들었으나, 어두운 동굴에서 활을 쓰기는 적당하지 않았다. 그는 활을 내려두고 사만다를 돕기 위해 펠레일의 옆에 앉았다.



한편 후치는 쿼렐이 날아온 방향을 노려보았다. 그 곳에는 동굴의 암석들 사이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석궁을다른 사람에게 겨누고 있었다.



“누가 쏘게 둘 줄 알고!”



후치가 바스타드를 들고서 달려들었다. 하지만 동굴에서 길쭉한 무기는 쓰기 불편한 법이다. 일부러 넓게 만들어둔 공간이라지만, 남자가 있는 곳은 자연 그대로의 동굴이었다. 후치의 바스타드는 석순에 걸렸다. 순간 남자의 얼굴에 비릿한 웃음이 떠오르며 석궁의 끝이 후치를 향했다.



그러나 미소 짓는 것은 후치도 마찬가지였다.



“합!”



후치는 짧게 기합을 넣으며 석순 채 바스타드를 휘둘렀다. 바스타드는 석순을 점토처럼 가르며 남자의 몸을 향해 날아들었다. 남자의 표정이 급변하며 황급히 몸을 뒤로 피했다.



“놓칠 줄 알고!”



이번에는 휘두르는 게 아니라 랜스를 찌르듯이 바스타드를 가로로 들어 남자를 향해 쭉 뻗었다. 남자는 다급하게 손을 휘둘렀다.



“끄악!”



남자의 손에 들린 단도가 튕겨나갔다. 어마무시한 후치의 힘을 미처 알지 못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는 손바닥이 찢어져 피를 흘렸다. 하지만 패닉에 빠지지 않고 재빨리 거리를 벌리며 뒤로 물러섰다. 후치는 아직 사람과의 전투에 익숙하지 않았기에 그가 태세를 정비할 틈을 주고 말았다.



“Goitz kantu ober”



“우리나라 말로 말해!”



“괴물 같은 놈.”



“들을 필요 없었군.”



남자는 능숙하게 바이서스어를 말했고, 후치도 능숙하게 바이서스어로 대답했다. 후치는 바스타드를 곧추 세우며 그를 위협해 들어갔다. 남자는 재장전한 석궁을 한 손으로 들며 반대손으로 다시 대거를 잡았다.



남자가 OPG를 낀 후치에게 당황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사이, 다른 쪽에서도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터커과 크라일은 먼저 그물을 던진 남자를 사이에 두고 몰아붙이고 있었다. 하지만 남자는 그들에게 쉽게 연격을 허용치 않으면서 몸을 잘 빼내고 있었다.



그리고 후치와 다른 사람들이 전투를 벌일 동안 다친 펠레일의 근처로 다른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손등에서 뻗어 나온 것처럼 생긴 칼날을 무기로 삼고 있었다. 마치 날카로운 손톱 같은 무기였다. 그는 샌슨이 상대했다.



“괴상한 무기로군!”



샌슨은 그의 무기를 보면서 말했다. 그러는 그의 몸에는 실선이 몇 줄기 그어져 있었다. 깊은 상처는 아니었지만, 샌슨정도 되는 전사의 몸에 상처를 남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샌슨은 다친 펠레일과 그를 치료하는 이들을 등 뒤로 두고 남자와 대치했다. 칼은 펠레일의 입에 옷을 물리며 화살을 뽑아냈고, 사만다가 그런 그에게 신성력을 쏟고 있었다. 이루릴은 그들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공격을 하지 않도록 경계했다.



샌슨은 그를 향해 롱소드를 휘둘렀다. 하지만 남자는 마치 뱀이 움직이는 것처럼 그의 검격 안으로 파고들었다. 샌슨이 황급히 몸을 앞으로 붙이며 간격을 좁혔다. 그의 대처가 좋았는지 이번에도 얕게 베인 상처만 남기고 그는 물러섰다. 샌슨은 상처가 난다는 사실에 화가 나면서도,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그의 패턴에 당황해했다. 그때 그의 곁으로 누군가 다가섰다.



“샌슨, 여긴 나에게 맡기고 넌 후치를 도와.”



“리타?”



“저 무기는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제대로 상대할 수 없어.”



“넌?”



“익숙해.”



짧은 대답에 샌슨은 잠시 그를 노려보다가 조심스럽게 물러났다. 그리고 석궁과 단도의 연계에 고전하고 있는 후치 쪽으로 재빨리 다가갔다. 후치가 상대하던 남자는 어느새 후치의 경험이 짧은 것을 알았는지, 점점 능숙하게 그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리타는 평소 그녀가 쓰던 롱소드 대신 대거를 들고 있었다.



“클로를 사용하는 걸 보니 트리그로스 가문이군요.”



“Phowh?”



“비밀입니다.”



경악한 남자를 향해서 리타가 쇄도했다. 그녀는 몸을 몹시 낮춰서 달려갔다. 남자는 몸을 활처럼 구부리며 리타를 수직으로 내리찍었다.



리타는 그 공격을 몸을 뒤틀어 피해내며 대거를 찔렀다. 대거는 남자의 반대손에서 날아오던 클로의 날 사이에 박히며 밑으로 쳐 내렸다. 그것으로 순식간에 남자의 왼손이 그녀에게 사로잡혔다.



하지만 남자에겐 오른손의 클로가 남아 있었고, 리타의 왼손에는 아무 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남자는 놀란 얼굴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오른손을 반사적으로 휘둘렀다. 리타는 제압한 왼손을 발로 밟으며 남자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Thowh!”



남자의 경악한 목소리가 목 뒤로 들렸다. 리타는 남자에게 끌어안긴 것처럼 몸을 가까이 붙였다. 그리고 그대로 힘줘서 밀었다. 남자는 공격하느라 기이하게 틀린 자세 때문에 리타의 힘에 균형을 잃고 말았다.



“외간 여자를 안은 기분이 어떻죠?”



남자는 대답하지 못했으나 그의 얼굴을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리타에게 떠밀린 그는 마치 끌어안는 모양새로 리타와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그는 이게 무슨 수치심도 없는 여자냐면서 쏘아붙이고 싶다는 표정이 가득했고, 리타는 그러함에도 말을 걸지 못하는 자이펀 인을 향해 평소처럼 차갑게 가라앉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리타는 당황해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남자의 몸 위에서 재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어느새 그녀의 다리는 남자의 양 팔을 밟고 있었고 대거는 남자의 목에 닿아 있었다.



그때 후치의 기합소리가 들렸다.



“일자무식!”



단순무식하지만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힘이 담긴 공격이다. 그는 석순이 전혀 거치지 않는 다는 것처럼 마구 잘라버리며 공격했다. 계속 휘둘러지는 후치의 바스타드에 남자는 벽에 몰라고 말았다. 그리고 그 틈새를 놓치지 않고 샌슨이 남자의 손에서 대거를 쳐냈다. 그가 들고 있던 석궁은 이미 파괴되어 있었다.



두 남자가 제압 되자 남은 사람은 한 사람이었다. 크라일과 터커가 둘이 상대하면서도 궁지로 몰아넣지 못한 남자는 차가운 표정으로 실내를 둘러보았다. 정확히는 리타에게 깔린 남자와 후치가 바스타드를 겨누고 있는 남자들이었다.



그들과 남자는 눈이 마주쳤고, 그 순간 그들은 뭔가 의견을 통했다. 터커와 크라일의 공격에 여러 물품이 있는 곳까지 물러섰던 남자는 뒤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이상한 색으로 물든 유리병이 들려 있었다. 남자의 싸늘한 표정에 날카로운 비수 같은 웃음이 번졌다.



“위험해!”



칼은 남자가 든 병을 보더니 대번에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남자가 든 병의 정체를 아는 모양이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짐작하는 사람은 한 사람 더 있었다. 칼에게 기대어 있던 펠레일도 비슷한 표정이 되었다.



“막아요! 저 병을 던지게 놔둬선 안돼!”



“뭣?”



“독가스입니다!”



터커와 크라일이 놀라 남자에게 달려들었지만, 남자가 병을 던지는 것까진 막지 못했다. 그가 던진 병은 여러 사람의 고개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어째서 눈빛으로는 물건을 파괴할 수 없는지 따위의 생각이 떠오를 정도로 강렬하게 쳐다보았다. 그가 던진 병은 포물선을 그리며 공동의 가운데 떨어졌다.



쨍그랑



산산조각이 나버린 병 조각들 사이로 짙은 녹색의 무엇인가가 확 퍼져 나왔다. 안개나 구름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그것은 삽시간에 퍼져 나왔다.



아연 질색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던 일행의 사이로 차가운 미풍이 느껴졌다. 머리를 살랑일 정도로 불어오는 바람은 공동의 중심에서 소용돌이를 이뤘다. 바람은 퍼져나가는 녹색의 가스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옭아매며 점점 중앙으로 모여 들었다.



모여든 녹색의 가스는 원래 병 안에 있던 것만큼 작아졌고 그것의 주위로 새하얗게 서리가 일기 시작했다. 그것은 금방 얼음으로 뒤덮였고 이내 완연한 얼음의 공이 되어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앞에는 새하얀 드래곤 모양의 작은 생물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카피!”



일행은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고, 남자는 매서운 눈매를 살짝 일그러트렸다. 터커와 크라일이 그를 향해 다가섰다.



후치는 잠깐 정신을 팔고 있는 사이에 몸을 내빼려던 남자의 눈앞에 바스타드를 박아 넣었다. 동굴 벽에 거의 자루까지 박혀 버린 바스타드의 모습에 남자는 몸을 굳혔다. 샌슨이 그에게 다가가 능숙한 솜씨로 제압했다.



리타는 애초부터 병에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불가항력으로 얌전해진 남자를 내버려두고 일어났다. 턱이 완전히 돌아가 버린 남자는 눈을 뒤집고 기절해 있었다.



두 남자가 제압되자, 모든 시선이 마지막 남은 남자에게로 모였다. 그는 공동의 막다른 공간에 몰려서 그 시선들을 모조리 마주했다. 그 많은 적의의 시선 속에서도 남자는 위협을 느끼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의 표정은 일행과 마주했던 처음과 전혀 변함이 없었다.



남자는 안 그래도 날카로운 눈을 한층 더 날카롭게 만들어 일행의 시선에 맞섰다. 마치 잘 벼린 칼날을 보는 것처럼 서늘함마저 느껴지는 눈매다. 그의 눈은 차갑다는 표현을 넘어서 얼어버릴 것 같은 냉기가 서렸다. 그의 눈이 윌오위스프의 빛마저 빨아들일 것처럼 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눈 감아요!”



리타가 일행에게 외쳤다. 하지만 그에 바로 반응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미 일행은 남자에게 시선을 속박당해 있었다. 남자는 동물이 으르렁거리는 것처럼 사납게 이를 드러내며 일행을 바라보았다.



후치는 마치 맹수 앞에 아무 것도 없이 방치당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몸은 사시나무 떨리듯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식은땀은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 정도로 흘러내리고, 몸은 그의 통제권을 거부하듯 손가락하나 제대로 놀리지 못했다. 맹수가 날카로운 이빨을 그의 목에 들이대고 물어뜯으려고 하고 있는데도, 너무나 압도적인 공포에 몸은 굳어버려 말을 들을 줄 모른다.



이대로 있다가는 분명히 죽을 것이다. 어떤 수를 쓰더라도 저 시선에 물어뜯기고 말 것이다. 도망쳐야 한다. 이대로 여기 있다간 죽는다. 움직여라. 움직여야 한다. 두 다리로 당장이라도 박차고 나가야 살 수 있다. 움직이자. 제발. 제발 움직여라.



일행은 움직일 줄을 몰랐다. 아니, 움직임은 있었다. 후치와 사만다는 몸을 슬금슬금 뒤로 빼고 있었다. 전사들은 이를 악물고 있었지만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 리타는 남자를 정면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남자의 눈에 담긴 기세가 한층 더 강렬해졌다. 리타는 눈을 통해 그녀의 뇌에 침범해오는 흉악한 기운을 마주했다. 그녀의 눈도 차갑게 얼어가기 시작했다.



리타와 남자는 서로를 노려보았다. 남자는 이빨을 부서져라 깨물며 소리쳤다.



“Peka!"



그러나 리타는 전혀 동요치 않았다. 그녀의 검은 눈동자는 조용했으나 난폭한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쳤다.



남자는 의아함을 느끼지도 못했다. 느낄 여력이 그에겐 없었다. 그는 광할한 사막 한 가운데 홀로 서 있었다. 홀로 서 있다는 것은 엄밀히 말해 틀렸다. 열사의 대지에 엄청난 그늘을 만드는 무엇인가가 있다. 검고 거대하면서도 압도적이고 거부할 수 없는 무엇. 그것이 만들어낸 그림자처럼 온통 어둠이 가득한 그곳에서 검은 두 눈만이 그를 응시한다. 감히 쳐다보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금제를 당한 것 마냥, 그러나 눈을 돌리는 무례를 범하지 못하도록 옭아매는 눈. 상반된 감정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두 눈은 말하고 있었다.



죽어라.



“허억!”



리타의 눈이 감겼다. 남자는 숨을 집어 삼키며 벽에 기대어 섰다. 그의 온 몸에는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검을 잡고 있던 손은 제대로 가눌 수도 없을 정도로 떨렸다.



일행은 어느 사이 남자의 주박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겪은 것에 당황해 하면서도, 비슷한 상황임을 온 몸으로 입증하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 한 가운데서 리타는 남자에게 말했다.



“살기가 이미 적을 꿰뚫으니, 손에 쥔 것이 검이든 활이든 똑같다. 제 살기는 당신을 꿰뚫었군요.”



“……”



남자는 여자만 아니라면 수백 수천 마디라도 쏟아내고 말거라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리타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면서도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직면하고 있었다.



리타의 무감정한 눈이 그의 얼굴을 훑었다. 그녀는 어딘가 아득한 어조로 말했다.



“당신의 눈매는 저에게 스승을 떠올리게 하는군요. 하지만 그분의 가문이 닐림의 날개에 들어왔을 리는 없겠죠.”



순간 남자의 눈이 커졌다. 처음으로 제대로 드러낸 당혹의 감정이었다.



“무슨 말이냐, 여자?”



외간 여자와는 말하지 않는다는 풍습을 잊을 정도로, 그녀가 살기를 사용해서 그를 제압했을 때 이상으로 그는 놀라고 있었다. 그의 경악한 눈을 정면으로 받으며 리타는 대답했다.



“제 스승은 발탄 가의 인물입니다. 하지만 발탄 가는 적자를 제외하고선 몰락해버렸으니, 가문살해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상 발탄 가에서 닐림의 날개에 들어갈 리가 없겠죠. 그러면 라이브스 가문입니까?”



남자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동요를 숨길 수 없는 듯 눈동자는 잔잔하게 떨렸다. 그는 묻고 싶은 것이 많은 얼굴이었지만, 어느 것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리타의 질문에 대한 답도 마찬가지였다. 리타는 그를 재촉하지 않고 그저 그를 바라보기만 하였다.



그런 사이 칼은 살기의 영향에서 벗어나 정신을 차렸다. 그는 상황을 정리하고자 말했다.



“우선 남자들을 포박합시다. 쓸만한 밧줄이 있는지 찾아봐 주시겠습니까? 이 사람들을 모두 포박한 다음에 아이들에 대한 것이나 영지에 관한 것을 물어봐야겠지요.”



“예,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비록 의지가 많이 꺾인 것 같았지만 마지막으로 남은 남자는 여전히 제압되지 않은 상태였다. 터커와 크라일이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다가섰다. 남자는 이를 악물면서 그들에게 검을 들어올리려고 하였다.



그것을 보더니 터커가 비웃듯이 한 마디 했다.



“물개 새1끼들의 썩어 문드러질 항구에서는 그런 검법을 가르치나봐? 뭐냐? 수전증 검법이라도 되나?”



리타를 대할 때와 달리 남자는 터커의 도발에 싸늘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검을 들고 있음에도 전혀 물러설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여자 뒤에서 꽁무니만 드러내고 있던 개1새1끼가 잘도 짖어 대는군.”



“뭐라고?”



“이런, 나는 수전증이지만 너는 귀머거리인가? 내가 낫군.”



남자의 도발은 꽤 훌륭했다. 후치는 피식 웃고 말았고, 터커는 이를 빠드득 갈면서 바로 달려들었으니까 말이다.



“이 새1끼가아!”



“멈춰!”



사만다가 뒤늦게 외쳤지만 이미 터커는 핼버드를 휘두르는 중이었다. 남자는 잘 움직이지도 않는 몸으로 핼버드를 옆으로 흘렸다. 그리고 오히려 벽을 치며 반동을 이용해 터커에게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터커는 예상한 것인지 그에게 쉽게 품을 허용하지 않고 어깨로 받아쳤다.



“크윽.”



남자는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터커는 잔인하게 이를 드러내며 남자에게 한발 내딛었다. 그는 핼버드를 금방이라도 내려찍을 것처럼 들어 올렸다.



“유언은?”



남자가 싸늘하게 말했다.



“그건 뜻을 행하지 못한 병1신들이나 하는 거지.”



“좋군.”



터커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그 순간 남자의 손이 번개같이 움직였다. 그의 손에는 방금 전에 던졌던 날붙이가 어느새 들려있었다. 방심하고 있던 터커는 그것을 그대로 허용하고 말았다.



“크아아악!”



다리에 고스란히 박혀 있는 작고 날카로운 칼날들이 보였다. 비명을 지르는 터커에게 사만다가 달려들었다. 상처는 깊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터커는 이상할 정도로 고통스러워했다. 펠레일은 아직 아픔이 남아 있는 팔을 잡은 상태로 말했다.



“독을 썼군요.”



남자는 싸늘하게 웃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사만다는 땀을 흘리며 고통에 겨워하는 터커에게 재빨리 신성력을 쏟아 부었다. 그런 터커를 가리듯 크라일이 앞에 서며 남자와 대치했다.



크라일은 동료가 독에 당했단 사실에 분노를 드러냈다. 그는 더 없이 험악해진 표정으로 남자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남자는 리타를 대할 때를 제외하고선 변하지 않은 표정을 그대로 유지했다. 크라일의 섬뜩한 목소리가 남자에게 향했다.



“지금이라도 순순히 항복하면 그냥 죽이는 걸로 끝내주마.”



남자는 너라면 그러겠냐는 표정이 되었다. 물론 싸늘한 비웃음도 함께였다. 크라일은 비슷하게 표정을 지어주고선 왼손을 앞으로 내뻗었다. 오른손으로 일격을 내려치기 위한 준비자세다.



그때 찾아낸 밧줄로 나머지 두 남자들을 모두 포박한 후치와 샌슨이 다가왔다. 그들까지 가세하자 막다른 곳에 몰린 남자가 빠져나갈 곳은 없어 보였다. 그리고 그 남자들 사이로 여성 한 명이 끼어들었다.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리타였다.



“얌전히 투항하세요.”



남자는 시선을 돌려 남자들에게 말했다.



“싫다고 전해줘.”



“그렇다는 대요. 리타.”



돌아보는 후치에게 리타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녀는 잠깐 고개를 갸웃하더니 롱소드를 뽑아 들었다. 그녀는 그대로 몸을 돌리더니 포박당한 남자들에게로 걸어갔다. 날카롭게 빛나는 롱소드를 사람들의 시선이 뒤쫓았다.



그녀는 롱소드를 쓰러진 남자들의 몸 위에 세웠다. 그쯤 되자 리타를 아는 사람들의 불안함이 가증되었다.



“투항하지 않으면 동료들을 죽이겠습니다.”



그녀의 말은 평소와 다름없었기에, 그만큼 싸늘했다.



터커 일행은 경악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이들을 구하러 왔다지만, 인질을 잡고 협박하는 모양새를 연출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루릴도 다소 놀란 표정이었다. 칼은 어이없다는 시선으로, 샌슨과 후치는 저지르고 말았다는 표정이다.



그리고 남자는…… 변함이 없었다.



“이곳에 온 순간부터 각오한 일이다. …… 라고 전해줘.”



그의 눈은 단호했기에 리타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람의 거짓말을 잘 판별하지 못하는 그녀라지만 남자가 허세를 부리는 것 같진 않았다. 그녀는 잠깐 고민하는 듯 하더니 이내 남자에게 말했다.



“코다슈 씨를 만났습니다.”



남자의 눈이 꿈틀했다. 리타는 검을 치우지 않은 상태로 말을 이었다.



“그는 본디 코다슈의 불을 계승할 인물이었습니다. 먼발치에서 보았지만 그의 얼굴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 인물이 이 곳에 있습니다. 당신이 라이브스 가문이라면 모르겠으나, 발탄 가문이라면 그와 연관이 있겠지요. 그리고 여기 있는 트리그로스와 팔자익 가문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



“가문의 일은 대게 엮이는 법이며, 율법을 중시하는 자이펀이라면 같은 소속으로 묶어둘 수도 있겠지요. 다시 물어보겠습니다.”



남자의 눈이 리타의 눈을 향했다. 그의 고향에서만 전승되는 기술을 사용하는 여자다. 그의 동료를 제압할 정도로 실력이 있고 뛰어난 안목을 갖추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것은 모조리 무시해도 될 정도로, 그녀는 중대한 무엇인가를 알고 있었다.



불빛을 받은 리타의 검은 눈이 살짝 움직였다. 그녀의 진한 입술 사이로 조용하고 날카로운 말이 흘러나왔다.



“당신은 발탄 가문 최후의 적자, 운차이 발탄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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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쓴다고 또 8장 정도 들고와버렸습니다.

사실 4장 정도에서 끊어서 자정이 지나기 전에 올리려다가, 괜히 끊어가는 타이밍 때문에 흐름 끊길거 같아서 쭉 써버렸네요.

목요일에는 정시에 올릴 수 있게 되길 희망하면서 물러갑니다.

그럼, 좋은 밤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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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몬스터    친구신청

막 자려다가 확인하고 봤네요 ㅎㅎ 꿀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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