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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르타트] 아무르타트 - ch3. 뿌리깊은 나무 (19) (1) 2015/02/08 AM 12:31


“흥!”



뱀파이어는 얼어있는 부분을 내버려둔 채 나머지 부분을 안개로 화해 밖으로 나갔다. 어설프게 달려 있는 발이 안개에 끌려간다. 리타는 그녀를 쫓아 밖으로 뛰쳐나갔다. 펠레일이 만들어 놓은 라이트 마법이 닿지 않는 곳이어서 어두웠지만, 그녀는 동굴 안이 훤히 보이기라도 하는지 전혀 속도를 줄이지 않고 뛰었다.



동굴이 흔들리면서 돌가루가 부스스 떨어져 내린다. 일행은 어둠 속으로 사라진 뱀파이어와 리타를 보다가 재빨리 안으로 되돌아갔다. 포로까지 구하는 데 관해선 의견의 다툼이 일었지만, 아이들을 구한다는 데는 반대하는 이 없었다.



천장이 흔들리면서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루릴은 재빨리 마법을 사용해 바위기둥을 솟아오르게 만들어 무너지는 동굴을 받쳤다. 귀를 찢을 듯한 굉음이 울리고 엄청난 먼지가 쏟아졌다.



리타는 동굴 안에서 들려온 큰 소리에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녀는 어느덧 동굴 밖까지 나와 있었다. 뱀파이어는 더 이상 도망칠 생각이 없었는지 그곳에서 리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밝은 곳으로 나와 눈이 부시는 그녀에게 매직미사일을 안겨 주기까지 하였다.



카피가 얼음의 방벽을 만들어 매직미사일을 상쇄시켰다. 리타는 깨져서 흩날리는 얼음 조각들 사이로 날카롭게 뱀파이어를 노려보았다. 카피에 의해 봉쇄당했던 다리는 어느새 정상적으로 돌아와 있었다. 뱀파이어는 동굴 입구를 가리키며 웃었다.



“오호홋. 네 친구들은 저 곳에서 무덤을 같이 쓰게 되었군! 너 혼자만 살려고 열심히 도망쳐 나오다니, 눈물나는 우정이야.”



리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그건 네 생각이지.”



“뭐라고?”



“그들은 결코 쉽게 죽을만한 사람들이 아니거든. 내가 폭파를 늦추어 놓지 않았더라도 어떻게든 탈출했을 사람들이야.”



리타의 목소리에는 믿음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정말로 동료들의 안위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동굴 안에서 굉음이 들리고 무너지는 중에도 뒤돌아보지 않을 수 있었다. 지금 그녀에게는 눈앞에 서 있는 뱀파이어가 더 중요하다.



뱀파이어는 담담한 리타의 태도에 놀리듯이 말했다.



“그건 너만의 바람이겠지. 저런 곳에서도 살아날 거라고 믿는 건 믿음이 아니라 헛된 기대일 뿐이야!”



“헛될지 아닐지는 보면 알겠지.”



꼭 남일 말하듯 하며 리타는 다시 롱소드를 부여잡았다. 뱀파이어는 흔들림 없는 그녀의 태도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손을 앞으로 뻗어 캐스팅에 들어갔다.



하지만 리타는 그녀가 절대 쉽게 마법을 쓰도록 여유를 주지 않았다. 뻗은 왼손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나타난 매직미사일이 뱀파이어에게 날아들었다. 뱀파이어는 캐스팅을 멈추며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캬악!”



뱀파이어는 그녀의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자 신경질이 났다. 그 모든 원인은 바로 앞에 있는 검은 여자에게서 비롯되었다.



그녀가 하던 실험부터 시작해서 본거지까지 찾아내었다. 만일을 대비해 설치해둔 폭탄을 터트리는 일도 방해했다. 그렇다고 화풀이를 제대로 할 수도 없었다. 한낱 먹잇감에 불과한 인간이건만 제대로 제압하기 힘들다.



가까이 붙으면 검으로 상대한다. 단번에 우위를 점하기는커녕 오히려 몇 번 맞붙으면서 밀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고 거리를 벌리면 캐스팅도 없이 매직미사일이 날아온다. 안개화를 쓰면 웜링처럼 생긴 것이 얼려버려서 마음대로 피할 수도 없다. 상대하려면 큰 마법을 써야할 것 같은데, 그런 틈을 주지 않는다. 손을 뻗으면 바로 날아오는 매직미사일은 상당히 위협적이다.



“아직까지도 나를 힘들게 하나……”



뱀파이어는 짐짓 힘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리타는 그녀의 말이 자신을 향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왼손의 반지를 의식했다.



“이 반지가 가지고 싶어?”



“흥. 주기라도 할 건가?”



“그럴리가.”



“그러면서 왜 물어보지?”



“뱀파이어 같지 않은 뱀파이어가 사람의 물건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가 뭘까 싶거든.”



뱀파이어는 인상을 구겼다. 그녀는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면서 위협하듯 으르렁 거렸다. 치렁치렁한 그녀의 검은 머리가 바람을 만나 휘날렸다.



하지만 경계심은 잠깐이었다. 뱀파이어는 몸에서 힘을 빼버렸다. 그녀는 아득한 시선을 하며 옷을 부여잡았다. 자세히 보니 그녀가 입은 검은 로브와 비슷한 색을 한 가방을 메고 있었다. 그녀는 가방의 끈을 부여잡은 것이다. 어울리지 않게 색 바랜 브로치가 끈에 달려있다.



사납고 광기어린 기세가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뱀파이어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녀는 검은 빛에 가까운 입술을 열었다.



“너…… 그 반지를 직접 만든 사람이 줬다고 했나?”



“그랬지.”



리타는 순순히 긍정했다. 카피가 잔뜩 경계한 눈초리로 뱀파이어를 주시하고 있었지만, 리타의 태도는 꽤 긴장이 풀려 있었다.



뱀파이어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가 낮게 말했다.



“그 사람은 사람이었나?”



“글쎄.”



“너! 똑바로 대답해!”



성의 없는 대답에 뱀파이어는 화를 냈다. 하지만 리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단순히 사람으로 보긴 힘든 사람이었어.”



오랜만에 떠올리지만, 음험한 미소를 짓고 있을 장님 마법사의 모습에 리타는 기분이 나빠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이미지는 없는 마법사다. 반지를 준 것은 고맙지만, 그에게서는 세상을 거부하는 느낌이 너무도 강하게 풍긴다. 그녀는 그런 느낌을 좋아할 수가 없었다.



뱀파이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다 이내 손톱을 깨물기 시작하더니 눈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없어.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어. 아니, 하지만……”



리타를 향하고 있지 않은 두 눈이 흔들렸다.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있는 느낌이 들었다. 리타는 검을 들지 않은 손을 허리에 얹히며 그녀를 가만히 주시했다.



뱀파이어는 뭐라고 계속 중얼거렸다. 그러다 갑자기 고개를 치켜들면서 리타를 바라보았다.



“그 사람은 어디 있지?”



“왜?”



“대답이나 해!”



리타는 왼손을 들어 뱀파이어에게 향했다. 뱀파이어가 몸을 움찔하며 경계하는 태세를 취했다.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 사람에게 해를 끼칠지도 모르는데, 내가 알려줘야 할 이유가 있나?”



뱀파이어의 얼굴은 황당하단 표정으로 바뀌었다.



“내가 그를 해한다고?”



“뱀파이어가 인간…… 에게 도움을 주진 않겠지.”



그녀는 잠깐 멈칫했다. 그러다 비웃는 게 아닌, 진심으로 웃겨서 그런다는 듯 배가 찢어져라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핫! 내가 그에게? 그에게 해를 입힌다고? 하! 웃기지도 않는 소릴!”



리타는 무표정하게 그녀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리타의 생각은 뱀파이어의 말 보다는 그녀가 보이는 행동에 맞춰져 있었다. 뱀파이어는 전혀 뱀파이어답지 않은 감정을 보인다.



인간과 행동을 하는 데다 본능에 따라 마구잡이로 인간을 먹지도 않는다. 거기다 사람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 사람의 손에서 자라난 트롤도 그렇고, 사람을 증오하면서도 사람 같은 뱀파이어까지, 이 곳에서 만나는 다른 종족들은 그녀보다 인간에 가까운 것 같다. 오직 이루릴만이 다르다는 느낌을 가져다준다.



“왜 그러지?”



“네 년이 웃긴 소릴 하니까. 하! 정말 어이가 없군. 너는 그 물건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것 같네.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



리타는 침묵으로 대답했다. 뱀파이어는 비웃음을 짓더니 손을 모았다. 캐스팅을 위한 자세였다. 리타는 이미 향하고 있던 왼손에 마나를 모았다. 그리고 지체 없이 매직미사일을 만들어 발사했다. 하지만 그 순간 뱀파이어의 모습이 사라지고 말았다.



“뒤다 해요!”



카피의 다급한 목소리에 리타는 뒤를 확인하는 대신 바로 몸을 앞으로 피했다. 등 뒤로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리타는 공격을 피한 다음에서야 몸을 돌렸다. 뱀파이어가 레이피어를 든 채 아쉽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방금 전의 분위기는 어디론가 날려버리고 다시 원래의 귀기어린 분위기를 풍긴다.



“블링크를 파악하다니, 네 년도 평범한 인간은 아니군.”



“평범하진 않고 아주 아름다운 처녀지.”



“……”



싸늘한 뱀파이어의 시선을 가볍게 무시하며 리타는 자세를 바로잡았다. 캐스팅은 눈속임이었다. 뱀파이어는 리타의 매직미사일처럼 아무런 준비 없이 블링크를 사용해냈다.



“블링크를 사용하게 해주는 아티팩트가 있나?”



“네 년만 그런 사기적인 물건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한 건 아니겠지?”



리타는 그에 대한 대답대신 그녀의 말에서 눈치 챈 사실을 말했다.



“말하는 걸 봐서는 나에게 반지를 준 사람에게 받은 거 같은데?”



“신경 꺼!”



“정답이군.”



뱀파이어는 대답대신 행동으로 답했다. 큰 마법을 위한 캐스팅은 포기했는지 블링크를 이용해 다시 어디론가 사라졌다. 카피가 마나의 흐름을 느끼고 재빨리 그 쪽으로 얼음의 창을 날렸다. 뱀파이어는 그것도 예측했는지 다시 한 번 블링크를 사용해서 리타의 뒤를 잡았다.



챙!



리타는 유려하게 검을 휘둘러 뒤를 공격했다. 그녀도 어렴풋이 뱀파이어가 마법을 사용하는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레이피어와 롱소드가 허공에서 부딪치며 맑은 금속음을 뿜었다.



레이피어는 본디 찌르기 용으로 제작된 무기다. 힘이 약한 여성들이 에스톡과 더불어 애용하곤 한다. 얇은 검신은 큰 힘을 낼 순 없지만 빈틈을 송곳처럼 공격할 수 있다.



뱀파이어의 레이피어는 은빛 섬광을 남기며 리타를 사정없이 찔러 들어왔다. 리타는 상대적으로 무거운 롱소드를 들고서도 적절히 레이피어의 찌르기를 쳐냈다. 레이피어의 얇은 검신은 충격에 휘어지면서 기이한 각도로 공격해 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 마저도 순간적인 반응으로 피해냈다.



몇 번의 움직임 동안 리타는 허리 아래를 노출했고 뱀파이어가 놓치지 않고 그 곳을 찔러 들어갔다. 하지만 그 곳은 리타가 일부러 노출한 허점이었다. 리타는 아슬아슬하게 레이피어의 날을 피하며 자세가 앞으로 기울어진 뱀파이어의 등을 노렸다.



바람을 가르며 내려쳐진 리타의 롱소드는 허공을 갈랐다. 뱀파이어도 그녀가 일부러 허점을 보였다는 사실을 눈치챘던 모양이다. 그녀는 블링크를 사용해 공격범위에서 벗어났다.



“어디?”



리타는 근처에서 뱀파이어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자 주변을 재빠르게 두리번거렸다. 그녀의 틈을 노려서 공격해 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그때, 카피가 사라진 뱀파이어를 찾아냈다.



“리타! 저 쪽이다 해요!”



“늦었어!”



뱀파이어는 리타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나타났다. 그녀의 손은 가슴 앞에 모여서 불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블링크를 하면서부터 그것을 노린 모양이다. 리타의 표정이 한층 더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녀의 왼손이 빠르게 뱀파이어를 향했다. 그와 동시에 뱀파이어도 캐스팅을 끝냈다.



“매직미사일.”



“파이어 볼!”



빛의 화살과 작은 불덩어리가 동시에 두 여자에게서 발사되었다. 그것들은 서로를 향해서 맹렬한 기세로 날아갔다. 허공에서 부딪치지 않고 스치듯 지나치며 상대에게 당도하기 직전이었다.



“프로텍트 프롬 매직미사일!”



“카피!”



매직미사일은 뱀파이어의 앞에 생성된 희뿌연 막을 때리며 사라졌다. 파이어볼은 갑자기 생성된 얼음벽에 부딪치며 맹렬하게 폭발을 일으켰다. 얼음벽은 엄청난 열기를 마주해 수증기를 피워올리고, 파괴력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해 깨지며 사방으로 파편이 튀었다.



리타는 튀어나온 파편에 얼굴이 베여 피가 살짝 흘러내렸다. 위 클래스의 마법에다 제대로 캐스팅이 된 파이어 볼이기에 위력은 상당했다. 하지만 카피의 빙벽 덕분에 피해를 반감 시킬 수 있었다.



“죽어라!”



피어오르는 수증기 사이로 아련하게 뱀파이어가 보인다. 그녀는 일격으로 끝낼 생각이 없었는지 다시 캐스팅에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처럼 쉽게 시간을 줄 생각이 없다.



리타는 매직미사일을 연이어 쏘았다. 여러 번 사용하다 보니 매직미사일의 발사횟수나 위력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활용도 가능하다.



뱀파이어는 캐스팅을 미처 다 끝내지 못하고 블링크를 사용해서 피해냈다. 이번에는 전보다 더 떨어진 곳에서 나타났다. 거리를 멀리 떨어트린다면 조준하긴 힘들지만 그만큼 대처할 시간을 벌 수 있다. 그리고 캐스팅을 완성할 여유도 확보한다.



그러나 블링크를 사용해서 새 장소에 나타나자마자 뱀파이어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녀가 나타날 것을 어떻게 짐작했는지 싸늘한 눈이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그것은 맹렬한 살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녀와 행동을 같이 하는 전사들 중 살기를 다루는 이가 있다지만, 이토록 강렬한 살기는 접해본 적이 없었다. 뱀파이어는 마치 그녀가 아무런 힘도 없는 어린 생물이 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런 힘도 없고 아무런 무기도 없이 발가벗겨진 상태로 사나운 맹수의 앞에 내팽개쳐져 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캐스팅은 당연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녀로서는 당장에 그녀를 압박하는 살기에 지배당하지 않는 것이 고작이다.



“캬아아악!”



괴성을 지르며 뱀파이어는 안개 화를 시도했다. 거리가 떨어져 있으니 빙결 브레스가 닿지 못한다. 하지만 그 순간 리타는 손에 든 것을 강하게 던졌다.



그것은 은빛의 섬광을 남기며 허공을 갈랐다. 뱀파이어는 빛나는 그 물체가 검이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검사가 전투 중에 검을 던지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명예고 나발이고 그런건 둘째치더라도 검을 잃은 다음에는 싸울 수 없다. 그런 행동을 한 것이다.



마치 화살처럼 쏘아진 롱소드는 삽시간에 뱀파이어의 앞에 당도했다. 그녀는 다급하게 안개화했다. 하지만 그녀의 몸은 안개로 화했지만 다른 것들은 미처 안개로 바뀌지 못했다.



검은 뱀파이어가 메고 있던 가방을 잘라버렸다. 가방끈이 끊어지며 가방이 허공으로 날렸다.



“안돼!”



뱀파이어는 다급하게 가방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안개화한 몸은 미처 실체화하지 못하고 가방을 놓치고 말았다. 몸을 안개상태에서 원래대로 되돌리며 저만치 떨어진 가방을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리타는 그런 시간을 줄 의향이 없는 게 분명했다. 그녀는 검을 던진 직후에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뱀파이어가 가방이 몸에서 떨어지는 순간 다급한 표정을 했었다. 리타는 가방이 그녀에게 있어 몹시 중요한 물건이 들어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리타가 뱀파이어를 향해 달려들고, 뱀파이어가 가방을 향해 뛰어가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서로에게 닿기 직전, 엄청난 소리가 그들의 귀를 때렸다.



콰앙!



동굴에서 난 소리였다. 붕괴되며 입구가 막혀버린 동굴이다. 그 소리는 동굴의 입구가 아닌 벼랑에서 들렸다. 하지만 두 여자는 소리에 반응하지 않고 서로의 목적을 향해 움직였다.



뱀파이어는 가방을 잡으려다 그보다 떨어진 곳에서 반짝이는 것을 문득 발견했다. 가방 끈에 붙어있던 브로치다. 롱소드가 가방 끈을 완전히 끊어버리면서 브로치가 다른 곳으로 날아간 모양이다.



손간 뱀파이어의 얼굴에 갈등의 표정이 나타났다. 하지만 바로 앞까지 당도한 리타를 보면서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길게 생각할 틈도 없이 뱀파이어는 방향을 선회했다. 리타는 갑자기 물러나는 뱀파이어의 모습에 의아해 하면서 가방을 챙겼다.



뱀파이어는 몸을 날리며 브로치를 낚아챘다. 그녀의 잔인하게 빛나는 눈이 가방을 든 리타에게 향했다. 그리고 그녀의 뒤로 구멍이 뚫린 벼랑도 보았다.



“으아아아!”



비명을 지르며 구멍으로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잔뜩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몇 명의 건장한 남성들이 나오자 곧이어 어린 아이들이 쏟아져 나왔고, 마지막으로 엘프에게 부축된 연약해 보이는 남성이 나왔다.



그 장면을 본 뱀파이어의 표정은 안 좋은 감정은 전부다 포함한 것 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빌어먹을.”



손안에 든 브로치를 꽉 쥐면서 뱀파이어는 몸을 안개로 변화했다. 그녀가 계획했던 일들은 모두 실패했다. 거기다 가방까지 빼앗겨 버렸다. 아쉬운 일이지만 다른 남자들까지 나온 이상 여자를 제압할 기회도 사라졌다. 후퇴해야 한다.



리타는 그녀가 몸을 내빼려고 하는 것을 눈치 챘다. 리타가 다급하게 외쳤다.



“시오네!”



리타의 본능은 이대로 뱀파이어를 보내지 말아야 한다고 소리쳤다. 그녀 소중하게 여기던 가방은 획득했지만, 뱀파이어 자체를 놓쳐선 안 된다.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이대로 보낸다면 큰 일이 벌어질 것만 같다.



안개로 변하던 뱀파이어의 얼굴에 이채가 떠올랐다. 뱀파이어는 얼굴만 실체화 한 상태로 리타를 바라보았다.



“너, 어떻게 내 이름을 안 거지?”



“……”



리타가 입을 다물었다. 뱀파이어는 그녀를 노려보다가, 뒤에서 그녀들을 발견한 사람들을 보고 얼굴마저 마저 안개로 변화시켰다. 안개는 허공으로 삽시간에 흩어졌다.



카피는 안개가 사라진 자리를 노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리타가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리타?”



“……”



리타는 말이 없었다. 그녀는 큰 충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멍하게 서 있었다. 가방을 든 손은 힘없이 떨어져 내렸고, 그대로 땅에 못이 박힌 듯 우뚝 섰다.



리타는 뱀파이어를 시오네라고 불렀다. 그녀는 동굴이 붕괴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함정이 있다는 것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뱀파이어가 어느 곳을 건드릴지 알았다. 그리고 동굴이 붕괴되어도 사람들이 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라면 탈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건 희망이나 믿음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다. 그녀가 한 것은 그저 그럴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뿐이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슈도 그랬다. 그녀가 사라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좀비 떼의 공격도 알았다. 좀비 떼는 이루릴이 쓰러트릴 것이다. 그러니 슈를 찾는 데 전념해도 된다. 그래서 슈를 납치해간 코다슈를 잡을 수 있었다.



그녀가 쓰러졌다가 꿈에서 아버지를 만난 그 순간부터, 그녀는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것을 막연히 알고 있었다.



예언이라든가 미래가 보인 것이 아니다. 마치 이미 경험했던 일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리타의 눈이 불안하게 떨렸다. 카피가 걱정스레 불러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못했다. 그녀는 손을 들어올려 얼굴을 감쌌다. 얼굴에 닿은 손도 덜덜 떨리고 있다.



아주 쉽게 깨어지는 그릇처럼, 불안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가 손 틈 사이로 흘러나왔다.



“나…… 나는, 도대체……”



멍한 그녀의 눈에는 걱정에 찬 카피의 얼굴 대신, 환하게 웃음 짓는 검은 남자의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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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남자라서 nigel입니다. 단순한 작명...

많은 분들... 은 아니고, 소설을 보시는 분들 중에 몇 분이 우려하시던 항목인 리타 만능설에 대한 복선이 나왔습니다.

세세한 스토리 까지는 아니지만, 아무르타트 자체가 완결까지 메인스토리가 완벽히 짜여져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초반에는 이상하게 보이는 것들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것들은 하나둘 밝혀지는 재미를 위해 키핑해 두세요.

그럼, 좋은 밤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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