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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르타트] 아무르타트 - ch4. 가장 빨리 죽는 새 (16) (1) 2015/04/16 PM 11:24


*








눈부신 햇살에 못 이겨 눈을 떴다. 아직 초점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흐릿한 눈으로 창밖을 보니 가을의 태양이 선명하게 나뭇잎을 핥고 있었다. 이미 해가 중천에 떠오른 모양이다.



리타는 흐릿한 눈을 비비려고 손을 들었다. 하지만 손은 그녀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겨우 손목 정도만 움직이고 팔은 살짝 떨리기만 했다. 리타는 의아하게 손을 보다가 간밤에 있었던 일을 기억해냈다. 안 움직이는 게 당연하다.



“일어났나요, 리타?”



이루릴이 멍하게 있는 리타에게 상냥하게 말을 걸었다. 리타는 멍하게 자신의 손을 바라보다가 고개만 돌려 인사했다.



“좋은 아침이에요, 이루릴.”



“지금은 낯이에요.”



“알아요.”



이루릴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으나 리타는 그녀에게 해답을 들려주지 못했다. 새하얀 덩어리가 그녀의 얼굴로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리타아아!”



“카피?”



“걱정했다 에요!”



카피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큰 눈으로 리타를 향해 걱정과 안도, 원망이 섞인 시선을 보냈다. 머리라도 매만져 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리타는 가벼운 미소를 섞어 말로 행동을 대신했다.



“미안해요. 걱정을 끼쳐드렸네요.”



카피는 웜링의 모습으로 리타의 얼굴에 딱 달라붙어서 그녀의 볼에다 자기 얼굴을 비볐다.



“다시는 혼자서 위험한 짓 하지 말라 에요!”



“네. 그럴게요.”



“어디 갈 때는 꼭 말하고 다니고, 늦은 시간에 혼자 돌아다니지도 말고, 위험할 거 같으면 남 걱정하지 말고 도망치라 에요. 그것도 안 할 거면 아애 밖을 나가지 말라 에요!”



“하하, 조심할게요.”



“아, 정말! 밤에 리타가 안 돌아와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냐 해요? 모두들 잠도 못자고 계속 찾아다녔다 해요. 카피도 너무너무 걱정돼서 그대로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에요.”



“정말 미안해요.”



리타는 그녀의 의지를 따르는 유일한 신체를 움직이는 걸로 최대한의 감사와 사과를 표했다. 카피는 덤덤하게 대답하는 리타의 모습에 화가 나는지 고개를 돌리고 토라져버렸다. 리타는 어쩐지 카피가 어머니와 겹쳐 보였다. 항상 잔소리를 달고 다니던 어머니였지만 모두 그녀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만약 어머니가 지금 여기 계셨더라면 카피가 한 말보다 수십 배의 말을 쏟아냈을 것이다. 내용은 비슷하지만 양이 다르다. 어찌되었건 카피에게서 익숙한 어머니의 모습을 느끼며 리타는 흐뭇하게 웃었다.



카피는 그녀의 지정석인 리타의 가슴으로 내려가서 등을 돌리고 앉았다. 새하얗고 조그만 뒷모습이 마치 인형 같이 보인다. 그러다 문득 느껴지는 시선에 리타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이루릴이 그녀의 옆에서 사슴 같은 눈망울로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다. 리타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가 고운 미소를 지었다.



“기분은 어떤가요?”



“나쁘진 않아요. 그런데 아직 몸이 안 움직이네요.”



“의사의 말로는 완전히 회복되려면 내일 정도가 되어야 한다고 해요. 조금 지나면 불편해도 간단하게 움직이는 정도는 가능할 거예요.”



“의사가 왔다갔나요?”



“리타가 잠든 사이에 진료하고 갔어요. 리타가 정신을 잃자 샌슨이 바로 의사를 데려왔어요.”



“기절했었나보군요.”



리타는 명확하지 않은 기억을 되짚었다. 후치의 품에 안겨서 길드를 벗어난 것 까지는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기억이 없는 걸 보면 그대로 기절한 모양이다.



“아……”



리타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난생 처음 남자의 품에 공주님처럼 안겨보았다는 경험이 뒤늦게 실감나면서 당장 침대 밑으로라도 기어들어가고 싶을 정도의 부끄러움을 함께 데려왔다. 거기다 그 품에 안긴 상태로 기절해 버리다니.



이루릴이 검은 머리를 흘리며 리타에게로 몸을 가까이 가져왔다. 그녀의 가녀린 손이 리타의 얼굴에 닿았다.



“어디 아픈가요? 열이 있는 것 같네요.”



그러자 카피가 고개를 홱 돌렸다. 그녀는 걱정스레 리타를 보았다.



“아직 아프다 에요? 어디가 안 좋다 해요? 카피가 또 의사 데려올까 해요?”



“아, 아뇨. 이건 다른……”



“다른?”



리타는 머리에서 증기가 올라오지 않을까 생각이 될 정도로 달아오른 얼굴을 어떻게든 숨기고 싶었다. 하지만 무릎 사이에 파묻고 싶어도 다리가 안 움직이고, 베개에 감추려고 해도 몸을 뒤집을 수가 없다. 진퇴양난에 빠진 그녀는 고스란히 민낯을 이루릴과 카피에게 노출시켰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픈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네. 알겠어요.”



“괜히 걱정시키지 말라 에요. 진짜 아픈 거면 숨기지 말고 말하라 에요.”



“진짜 아프진 않으니까 걱정 안 해도 괜찮아요.”



이루릴은 깔끔하게 리타의 말을 수긍했다. 사람이라면 궁금증을 느끼거나 되물어 보겠지만 그녀는 엘프다. 리타는 그랑엘베르에게 엘프의 가치관을 이렇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마음속으로 경배했다.



그리고 가치관보다는 걱정이 앞서 캐묻지 않는 카피도 고맙다. 위대한 드래곤 캇셀프라임도 경배해야겠다.



실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루릴이 불쑥 말했다.



“리타, 씻지 않겠어요?”



“냄새나나요?”



“네.”



리타는 그랑엘베르에 대한 경배는 취소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살펴보려다 포기하고서 투덜거리듯 말했다.



“어제부터 씻지 못한데다 땀도 많이 흘렸고, 이것저것 몸이 더러워질 일이 많았으니까 당연한 거예요.”



변명은 했지만 이루릴의 엘프 특유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말해서 무엇 하나 싶어진다. 그들은 사실 그대로를 보고 말하는 종족이기에 비웃음이나 비난은 담겨 있지 않다. 그래도 사람의, 그것도 여자의 입장에서는 냄새난다는 말에 부끄럽지 않을 수 없다.



“씻으러 가시겠어요? 움직이기 힘들다면 제가 도와드릴게요.”



“아직 몸에 힘이 안 들어가네요. 밑으로 내려가는 것도 힘들 텐데 씻으려면 더 힘들 거예요.”



“그러면 수건에 물을 적셔서 닦아야겠군요.”



“네?”



“카피도 도와주시겠어요?”



“알았다 해요.”



리타의 멍한 반문을 무시하고 이루릴은 그녀에게 다가와 이불을 걷었다. 리타의 가슴 위에 있던 카피는 옆으로 날아가 인간의 모습으로 폴리모프했다. 그리고는 이루릴을 도와 당황해하고 있는 리타를 일으켰다.



“저기, 여러분? 조금 씻지 않더라도 전 괜찮은데……”



이루릴이 냉정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저희가 힘들어요.”



“네……”



본인들이 참기 힘들다는데 별 수 있겠는가? 리타는 입을 다물며 얌전히 그녀들에게 몸을 맡겼다. 애초부터 힘을 쓸 수 없는 처지라 저항하는 게 불가능했지만 말이다. 힘을 쓸 수 있었다면 두 여성에게 몸을 맡길 필요도 없다.



리타의 체구는 꽤 컸기에 여성들인 그녀들이 다루기는 조금 버거워 보였다. 그렇다고 남자들을 불러서 도와달라고 할 수도 없었기에 그들은 애써서 리타를 앉히는데 성공했다. 간신히 앉힌 리타가 다시 쓰러지지 않도록 카피가 단단히 붙잡자 이루릴이 본격적으로 리타의 옷을 벗겼다.



어떻게 된 건지 방에는 이미 물이 담긴 대야와 적신 수건이 비치되어 있었다. 사실은 리타가 쓰러진 사이에 진료하러 온 의사가 얼굴을 닦아주라고 일러둔 것이었지만 리타가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이루릴은 능숙하게 수건에서 물을 짜내어 리타의 하얀 몸을 닦았다.



리타는 어쩐지 아기가 된 기분을 느꼈다.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그래도 몸을 닦아내니 한결 산뜻해졌다. 여자 두 명이 같이 몸을 닦아주니 금방 끝났다. 이루릴은 다시 리타에게 옷을 입혀주며 물었다.



“배고프지 않나요?”



“음…… 조금 허기시네요. 그러고 보니 어제 저녁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군요.”



“방으로 식사 가져다 드릴까요?”



리타는 다시 누운 상태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몸을 닦아준 것만 해도 감사한데 그렇게까지 신경 써 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의사 선생님 말로는 조금 더 쉬면 간단하게 움직이는 건 가능하다고 하니 나중에 내려가서 먹을게요.”



“그럼 그렇게 해요.”



이루릴은 다시 권하지 않고 순순히 리타의 말에 따랐다. 리타는 눈을 깜박여 감사를 표하고서는 다시 침대에 파묻혔다. 카피가 침대 옆에 걸터앉아서 리타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 리타는 섬세한 손길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끼며 카피를 올려다보았다.



십대 중반의 인간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다지만 그 정체는 드래곤의 분신이다. 단순히 분신이라고만 할 수도 없다. 드래곤이라기에 그녀는 너무 인간적인 면들을 많이 보였다. 방금도 그녀에게서 어머니를 느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캇셀프라임은…… 과연 디트리히와 레어로의 안내만을 위해서 그녀를 남겼을까?



리타는 눈을 감았다. 힘도 없는데 골치 아픈 생각까지 할 필요는 없다. 일단 지금은 좀 더 쉬어두자. 자신이 나아야 일행의 발목을 그나마 덜 잡을 테니까.








*








조금 휴식을 취하니 과연 어느 정도 몸을 움직이는 것이 가능해졌다. 마법이나 저주가 아닌 순수한 약물만으로 근육을 이완시킨 것이기에 의사의 처방과 약만으로 회복할 수 있었다. 정신을 차린 리타는 이루릴과 카피의 부축을 받아 식당으로 내려갔다. 식당에는 마침 일행이 나와 있었다. 샌슨이 내려오는 리타를 보고 반색했다.



“오, 일어났냐? 몸은 좀 괜찮아졌고?”



“적당히. 아직 혼자서는 움직이기 힘들어.”



“그렇게 보인다. 뭐 하러 내려왔어?”



“배고파.”



“그냥 우리한테 시키면 알아서 방까지 갖다 줄 텐데. 힘들게 내려올 필요 없이.”



“그게 싫어서 내려온 거다.”



리타의 말에 샌슨은 알겠다며 수긍했다. 원래부터 리타는 남들에게 폐를 끼치는 걸 싫어했으니 당연하다. 샌슨도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에게 더 말하지 않았다. 리타는 홀을 둘러보며 물었다.



“칼은?”



“시청에 가셨어. 길드 문제를 확실히 처리해야겠다고 하더라. 아침부터 가 계셨으니까 곧 올걸.”



“그래? 나 때문에 고생이 많구나.”



“고생은 우리도 했지.”



“고마워.”



리타는 샌슨과 그 옆에 앉아있는 후치에게 바로 고개를 숙이며 감사했다. 리타가 행동에 가식이 없고 직접적이라는 것을 알지만, 놀리는 말에 바로 감사를 받으니 머쓱해진다. 샌슨은 머리를 긁적이며 그녀의 감사를 받아넘겼다.



이루릴과 카피에게 부축 받은 리타는 천천히 테이블 의자에 앉았다. 혼자서 걷는 건 무리지만 앉아서 식사를 하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레너즈가 가져다 준 스프를 볼에 바르고 나니 그것도 힘들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샌슨이 테이블에 턱을 괸 채 히죽거렸다.



“애냐? 다 흘리게. 내가 떠먹여 줄까?”



리타는 그를 살짝 흘겨보았다. 그녀는 볼에 묻은 스프를 닦아냈다. 그러다 이내 미소로 표정을 바꾸며 상냥한 어조로 말했다.



“응. 부탁해.”



“뭐, 뭣?”



샌슨이 당황하며 몸을 뒤로 뺐다. 리타는 그녀가 지을 수 있는 최대한 귀여운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윽하면서도 초롱초롱한 시선과 함께 새빨간 입술 사이로 튀어나와 입 근처에 묻은 스프를 핥았다. 그리고 꿀이라도 바른 것처럼 달콤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부탁해요.”



샌슨의 얼굴이 귀신을 본 것처럼 푸르죽죽해졌다. 그건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후치가 손질하던 바스타드를 손에서 떨어트려 실수로 발을 이등분 낼 뻔 한 일과 맞물려 꽤나 효과적인 위력을 선보였다.



“그, 그딴 표정 짓지 마!”



“으악! 내 발!”



리타는 기겁하는 그들을 보며 만족한 표정이 되었다.



“쿡쿡. 그러게 누가 놀리래?”



샌슨은 아직도 벌렁거리는 심장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야. 그렇다고 그런 괴상한 짓거리를 하다니. 수명이 십 년은 줄었을 거다.”



“흔치 않은 경험을 하게 해줬으니 감사를 하진 못할망정, 그런 식으로 매도해? 또 해줄까?”



“으악! 미안, 미안하다. 이렇게 사과할 테니 제발 그러지 마.”



샌슨은 두 손을 모으며 간곡히 부탁했고 리타는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너의 죄를 사하노라.’



그러고 나서 오른쪽 발이 더 이상 같이 살기 싫다며 가출하려던 것을 겨우 말렸다면서 투덜거리는 후치에게 말했다.



“너도 뭘 이런 걸로 그렇게 놀라? 나름대로 귀엽게 해본 거였는데.”



“…… 그게 귀여운 거였어요?”



“응. 아니었어?”



“난 샌슨을 보고 ‘저 녀석은 너무 근육이 많으니 질기겠군.’ 같은 생각을 하는 줄 알았는데요.”



“어…… 그거 잡아먹을 것 같다는 말의 우회적 표현이지?”



“역시 제미니보단 똑똑하네요.”



“욕이니?”



“칭찬일까요?”



“제미니에게 고향에 돌아가는 즉시 방탕 용사 후치 네드발 사가를 들려줘야겠어.”



“몹시 귀여웠습니다! 너무 귀여워서 놀란 거예요! 누가 리타보고 귀엽지 않다고 한 사람 있으면 당장 데려와 봐요. 내가 다리몽둥이를 바로 부러트려버릴 테니까.”



뜨악해서 외치는 후치를 보고 리타는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후치에게는 절대 그냥 웃는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뱀이 앞에서 혀를 날름거리는 상황에 놓인 생쥐마냥 식은땀이 흐른다. 후치의 굳은 모습에 리타는 못 참겠는지 입을 가리고 웃었다.



“푸흡. 농담이야.”



“쳇. 알아요.”



리타는 눈으로 옆 테이블에 앉아 있는 운차이를 가리켰다.



“운차이처럼 조금 과묵해져 봐. 여자는 그런 남자를 좋아해.”



“저 정도면 조금이 아닌데요? 그리고 인기가 좋아봐야 여자들한테 말도 못 걸잖아요.”



“음, 하긴 그건 문제네.”



“그렇죠?”



시시덕거리는 소리를 다 듣고 있던 운차이는 어이없다는 듯 날카롭게 그들을 노려보았다.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매몰찬 시선만 보내는 그의 다리는 샌슨에게 묶여 있는 상태였다. 리타는 길드에서 운차이가 검을 들고 풀려있었던 것을 기억해냈다.



“다시 묶었네?”



그러자 샌슨이 피식 웃으면서 운차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말도 마라. 어제 네가 기절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정신 팔린 틈에 도망치려고 하더라. 이루릴이 아니었다면 우린 꼼짝없이 저 녀석을 놓쳐버렸을 거야.”



“제가 지켜보겠다고 했으니까요.”



“그렇더라도 감사합니다, 이루릴. 어쨌든 이루릴 덕에 다시 잡아올 수 있었지. 사람이 좀 믿으려니까 그 사이에 배신을 하다니.”



샌슨이 운차이를 노려보자 그는 짧게 혀를 차면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지나가는 투로 한 마디 했다.



“나는 저 여자를 구하는 데 협력하겠다고만 말했지, 도망치지 않겠다고 한 적은 없다.”



“그리고 우리도 놔 준다는 말은 한 적이 없지.”



“……”



운차이는 이딴 멍청한 놈들에게서 도망치지 못했다는 사실이 못 견디게 부끄러운 모양이다. 그는 이를 악물며 그를 자극하는 샌슨을 무시했다. 후치는 샌슨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는데 리타가 운차이에게 말을 걸었다.



“도와줘서 고마워요, 운차이.”



운차이는 리타를 힐끗 보더니 다시 시선을 외면하며 말했다.



“도망갈 틈을 만들려고 했을 뿐이다.”



“어쨌든 도와준 셈이지요. 고마워요.”



“…… 말이 안 통하는 여자군. 좋을 대로 생각해라.”



운차이는 아애 고개를 돌려버렸고 샌슨과 후치는 오묘한 표정으로 운차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투덜거리지만 그가 리타를 구하기 위해 열심히 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가장 잘 안다. 운차이는 리타를 구출하기 전까지 도망칠 기회가 수없이 있었음에도 도망치지 않고 리타를 찾는데 주력했었다. 그래놓고서는 틈을 만들려고 했다니.



후치는 과연 저런 식으로 자신이 한 일을 티내지 않게 티내는 방식이 과연 여자에게 인기가 있을까 고민했다.



리타의 식사가 끝나고 그녀는 몸을 좀더 원활하게 제어하기 위해 계속 몸을 움직였다. 샌슨이 어린 동생이 걸음마 연습하는 걸 보는 것 같다고 놀리긴 했지만 물레방앗간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부터 입을 다물었다. 그러는 사이 칼이 돌아왔다.



“이런, 몸은 괜찮으십니까? 약에 중독 당했다고 들었는데.”



“오셨군요, 칼. 보시다시피 몸은 괜찮습니다. 다행히도 절 사겠다는 사람이 바로 나타나는 바람에 힘만 못 쓰도록 당했을 뿐이에요.”



“하하. 그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아무런 일도 당하지 않으셨으니 천만 다행입니다.”



리타는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대꾸했다.



“아무런 일이요? 그건 어떤 일을 말하는 건가요?”



“여성에게 있어서 수치스럽고 치욕적인 일이지요.”



“어떤 게 수치스럽고 치욕스러운 걸까요?”



칼은 리타의 짓궂은 의도를 눈치 채고 허허 웃었다. 그녀는 이상하게도 친분이 있는 몇몇 사람이 당황하는 것을 즐긴다. 그래도 마을에 있을 때보다는 낫다. 그때는 정말 진담인지 헷갈릴 정도로 농담을 했었다.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정도는 심해졌을지언정 농담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으니 한결 당황스러움이 덜하다.



리타가 바로 걷도록 손을 맞잡아주고 있던 후치가 리타를 나무랐다.



“칼 좀 그만 놀려요. 나이 지긋한 아저씨를 놀려봐야 허허 웃기밖에 안 한다고요.”



“그럼 그만큼 너를 놀릴까?”



“그건 안 되죠. 대신 샌슨을 제공할게요. 샌슨을 마음껏 놀리세요.”



“뭐? 이 녀석아. 가만히 있는 나는 왜 끌어들여? 이제까지 당하고 산 세월이 너보다 훨씬 길다.”



“음, 그럼 어쩔 수 없지. 미안해요, 칼. 구해주려고 해보았지만 상대가 너무 악랄했어요. 겸허하게 마음을 비우시면 한결 나을 거예요.”



“허허……”



난처하게 웃는 칼을 보고 후치가 눈을 찡긋했다. 칼은 얼굴을 굳히며 그의 시선을 깔끔하게 무시했다. 샌슨이 칼에게로 다가가 그의 짐들을 받았다.



“아, 고맙네, 퍼시발 군.”



“가신 일은 잘 처리되었습니까?”



칼은 조금 고단한지 뒷목을 매만지며 대답했다.



“이곳 시장님은 매우 정의로운 분이시더군. 내가 바람을 넣을 필요도 없었어.”



“그래요?”



“그렇다네, 네드발 군. 시장님께서는 안 그래도 기회를 벼르고 계셨다고 하셨네. 도둑 길드로 인해서 치안이 나빠지고 이라무스 시에 머무는 여행객들이 피해를 보고 민원을 넣는 일이 많았다는군.”



후치는 리타를 의자에 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 정도로 빨리 소문이 퍼지고 도둑이 오는 것만 봐도 짐작이 가는군요.”



“그동안은 단속을 해도 조직이 꼬리를 잘 드러내지 않은데다 시청 내부에 그들에게 정보를 주는 이들이 있어서 잡지 못하셨다더군. 그러던 찰나에 정보를 제공해주겠다는 우리들이 나타났으니 기회다 싶었겠지. 더군다나 국왕의 드래곤과 관련된 임무를 하는 사람들이니, 길드를 소탕하는데 반대여론이 형성되어도 밀고 나갈 명분이 생겼으니 말일세.”



“으흠, 역시 명분이란 게 중요하군요.”



“그렇지. 모든 일에는 명분이 있어야 행동을 수반하는 법일세. 그 행동이 정치에 연관된다면 더욱더 그러할 것이네.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데 명분을 제공해 준다면 대게의 사람들은 쉬이 움직이게 되지.”



칼의 말이 후치는 마음에 들지 않는지 탐탁치 않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더 질문하지 못했다. 칼이 그에게 반론할 시간을 주지 않은 채 말을 해버렸다.



“그것보다 자네들이 계속 말을 거는 바람에 아가씨를 밖에 세워두고 있게 되었군.”



“아가씨?”



칼은 여관의 입구를 향해 상냥한 목소리를 냈다.



“기다리게 만들어 죄송합니다. 이만 들어오시지요.”



일행이 입구를 쳐다보자 과연 사람의 인영이 조금 보였다. 그녀는 망설이는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조금씩 간을 보는 것처럼 일부분만을 보였다. 칼은 그녀를 재촉하지 않고 기다렸다.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는 걸까? 곧 그녀는 결심했는지 몸을 우뚝 세웠다. 그리고 여관의 문을 열면서 안으로 들어왔다. 선명한 붉은 색 머릿결이 아름답게 살랑거렸다.



일행은 그녀의 이름을 외치듯 불렀다.



“네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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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시간이 나서 오랜만에 쭈욱 적어봐야지 하고 자판을 두들겼습니다만

결과는 고작 6장...

흑흑, 역시 마감이 닥치지 않으면 집중이 안되나 봅니다.

하루에 최대로 적어본 분량이 40장이긴 한데, 도저히 그렇게는 안 되네요.

열장씩이라도 꾸준히 적고싶거늘 흑

그럼, 좋은 밤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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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탕 용사 후치 네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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