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침묵이 길어졌다
리타는 지그시 바라보는 시선들을 피해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건장한 두 남자가 양쪽에서 그녀를 포위하듯 바라보자 더 이상 피할 길이 없었다.
“……”
“……”
샌슨과 후치의 무언의 압박에 리타는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 뭔지 모르겠지만 내가 잘못했어.”
“…… 뭔지도 모른다는 게 더 이상하단 거 알아요?”
후치가 어이없어서 헛웃음을 지었다. 샌슨도 막상 말은 꺼내지 않았지만 표정을 보니 후치와 비슷한 심정인 것 같다.
리타는 머리를 긁적였다. 단정하게 묶어둔 머리가 이리저리 흔들거렸다.
“잘 모르겠는데?”
“…… 하아.”
후치는 차마 얼굴을 못 들겠다는 듯이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샌슨도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고, 칼은 쓴웃음을 지었다.
“국왕전하도 그런 식의 거절은 처음 당해보셨을 겁니다.”
닐시언에 대해서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칼 마저도 그에게 동정어린 감정을 표했다. 후치와 샌슨이 보이는 창백한 표정과는 다른 의미지만, 그들 세 남자의 공통적인 감정은 당황이었다. 벙 쪄버린 그들의 국왕을 떠올리자 다시 한번 그 순간의 감정이 되살아났다.
후치가 다소 흥분해서 말했다.
“세상에 한 나라의 국왕이 관심을 보이는데 리타처럼 반응할 여자는 아무도 없을 걸요?”
“그런가? 이루릴도 나랑 비슷할 것 같은데.”
“…… 엘프는 뺍시다.”
확실히 이루릴이라면 그 상황에서 어떤 대답을 내놓을지는 모르지만, 인간의 상식범주 안에서 대답하진 않을 것 같다. 엘프도 신분이 나뉜다고 하지만 그들은 기본적으로 조화롭기에 인간의 신분과는 다른 느낌일 것이다. 그런 조화의 산물이 인간의 신분에 구애받진 않을 테니까.
그래. 이루릴은 엘프다. 엘프니까 그럴 수 있다. 그런데 리타는 뭐란 말인가?
후치가 리타를 다그쳤다.
“도대체, 어떻게, 국왕 전하한테 ‘제 타입이 아닙니다.’라고 말할 수 있죠? 그렇게 부은 간은 어느 가게에서 파는 건가요?”
리타는 볼을 긁적였다. 핼쑥해진 얼굴로 씩씩거리는 후치가 제법 귀여워 보이긴 했지만, 샌슨의 한숨소리와 칼의 억누른 웃음소리가 이어지자 조금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으응…… 하지만 그렇다고 ‘어머, 좋아요.’ 이러면서 애교를 부릴 순 없잖아?”
리타는 한껏 높인 목소리로 교태를 섞어서 연기했다. 차라리 저렇게라도 할 것이지. 후치는 인상을 찌푸리며 손가락으로 이마를 짚었다.
“끄응. 그렇게까지는 안 하더라도 좀 더 정상적인 대응 방법이 있을 거 아니에요? 충분히 예의도 차리고 상대방이 덜 무안하게 거절하는 방법 말이에요.”
“상대방을 가장 잘 배려하는 건, 여지를 남기지 않는 거야.”
“……”
연애는 맹하면서 그런 건 또 어디서 들은 걸까? 후치와 샌슨은 고개를 저었다.
처음 질문에 단순히 ‘없다.’고 대답한 리타에게 닐시언은 성에 머물러 줄 것을 제의했다. 엄밀히 말하면 리타가 아니라 일행 모두에게 제의한 것이다. 그러나 리타를 그렇게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물어본다면 바보가 아닌 이상 목적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후치가 보기에 리타는 바보다.
리타는 일행이 있다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러면 일행도 모두 궁성으로 불러들여 같이 지내면 되지 않겠냐고 닐시언이 묻자, 이미 여관비를 치렀으며 궁성을 불편해하는 일행 때문에 불가하다고 대답했다.
닐시언은 다른 일행에게 도움의 시선을 보냈으나, 칼은 아직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리타의 말을 거들어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하기야 처음에는 하찮은 일로 귀찮게 하는 상소꾼 취급이나 하더니, 전쟁을 끝내는 계획을 말해주자 극빈대접을 하려는데 누가 좋게 볼까?
그래도 닐시언은 포기하지 않고 리타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그러나 리타의 반응은 싸늘하고 단호했다. 리타의 원래 성격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일부러 차갑게 대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고, 실제로 닐시언은 그렇게 느꼈다. 그는 꽤 자신감을 상실한 상태로 리타에게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아무리 어린 후치라도 그 질문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숙맥인 샌슨이나 독신인 칼조차도 안다. 그건 남자가 가장 해서는 안 되는 말 중에 하나다.
그리고 나온 대답이 바로 저것이다. ‘제 타입이 아닙니다.’
“큭큭……”
멍한 얼굴로 굳어버린 닐시언의 모습이 다시 한번 떠올라 칼은 숨을 죽이며 웃었다. 이곳이 왕성만 아니었다면 하늘이 떠나가라 웃어버렸을 텐데 아쉽다.
하지만 샌슨과 후치는 멀리 떠나갔던 교수대의 밧줄이 다시 목에 걸리는 기분을 맛봐야했다. 닐시언의 얼굴이 창백해지면 창백해질수록 그들의 목에 걸린 밧줄이 한층 더 강하게 옥죄는 것 같았다.
다행히 닐시언은 일행에게 사형을 명하진 않았다. 그는 비 맞은 강아지처럼 늘어졌지만, 금방 정신을 회복하고 일행에게 비밀을 엄수하라고 당부했다. 괜히 국왕의 자리에 있는 건 아닌 모양이다. 칼은 그에게 알겠다고 대답하며 물었다.
“저, 그런데 아무르타트가 요구한 몸값은……”
“하하…… 걱정 마십시오. 보석으로 준비하라고 했지요? 보석을 갑자기 모으기는 힘들지만, 준비되는 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때가 되면 꼭 다시 왕성에 들러주십시오.”
마지막 말은 꽤나 간곡했지만 칼은 그저 성은이 망극하다며 고개만 숙일 뿐이었다. 리타가 바이서스 임펠에서 일만 해결하고 떠날 거라는 걸 안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때도 과연 지금처럼 간곡하게 말할 수 있을까?
닐시언의 아쉬운 시선을 뒤로하고 일행은 서재를 벗어났다. 칼은 내심 기쁜지 풀어진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나로서는 전쟁에서 확실한 승기를 잡을 수 있는 전략을 말씀드린 것보다, 아무르타트에게 줄 몸값을 쉽게 마련하게 된 것이 훨씬 기쁘다네.”
후치와 샌슨도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닐시언은 처음 아무르타트의 일을 고해바쳤을 때 ‘당신들의 일’이라고 했었다. 그렇다면 전쟁은 ‘국왕의 일’이다. 전쟁에서 이기는 것 보다는 아무르타트에게 잡힌 가족의 몸값을 무사히 마련했다는 게 더 기쁠 수밖에 없다.
그 기쁨에 더해서 한 나라의 국왕을 처량하게 만든 여인 덕분에 한층 더 기분이 나아졌다. 칼이 싱긋 웃으며 리타에게 물었다.
“스마인타그양께선 평소에 이상적인 남성관을 가지고 계셨습니까?”
“그러게요. 국왕 전하라면 솔직히 누구라도 고심할 법한데. 생기기도 잘 생기셨고.”
칼과 후치의 시선에 리타는 고개를 가벼이 가로저었다.
“사실 그런 거 없어요.”
“그러면?”
리타는 무표정한 얼굴로 덤덤하게 대답했다.
“어머니가 찌질한 남자는 사귀지 말라고 하셨거든요.”
“……”
세 남자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입은 꾹 닫은 채 눈은 닫는 것을 잊은 것처럼 크게 떴다. 평소에도 특이하단 생각을 자주 해왔긴 했지만, 정말로 이번만큼 그 생각이 강하게 든 적이 없었다. 과연 제대로 들은 게 맞을까 귀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리타는 태연하게 그들에게 왜 그러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마치 자기는 아무런 잘못이 없고 당연한 일을 했다는 듯.
앞서 웃음 지었던 칼조차 이번엔 웃지 못했다.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침묵을 지켰다. 이젠 따질 힘도 없다. 평소라면 뭐라고 핀잔이라도 줬을 후치조차 포기했다는 듯이 허탈한 표정이었다.
일행은 얼마 지나지 않아 대신들에게 국왕의 얼차려(?)를 전하고 온 리핏 트왈리전의 안내를 받아 복도를 걸었다. 궁내부장은 어떤 특별한 명을 받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일행을 흘깃거렸다. 하지만 국왕의 손님에 대한 예의상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이쪽입니다.”
일행이 안내를 받아 간 곳은 궁 밖이 아니었다. 집무실 비슷해 보이는 공간으로 벽면 가득 뚫린 창문에서 쏟아지는 햇살이 밝은 방이었다. 퍽 고풍스러워 보이는 장식물이 있고 한쪽 면에는 책상과 책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창문 앞에서는 한 남자가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그는 일행이 들어오자 몸을 돌렸다. 익숙한 얼굴이다. 바로 그들을 응접실까지 안내한 사람이었으니까.
“어서 오십시오. 알현은 잘 마치셨는지요?”
칼은 멀뚱히 조나단 아프나이델을 바라보다 대답했다.
“유익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만……”
“그랬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전하께서는 제가 책임지고 여러분을 호위하라고 하시더군요. 상당히 당황했습니다.”
“예?”
“일단 여기 앉으시죠.”
조나단 아프나이델은 테이블의 의자를 가리켰다. 일행이 테이블에 빙 둘러앉자 그는 간단히 적을 것을 준비하고 질문하기 시작했다.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현재 머무는 여관은 어디십니까? 얼마나 체류하실 예정이십니까?”
“아, 걱정 마시오. 그 여관 주변을 경계하기 위해서입니다.”
“궁성 경비대원을 파견하겠습니다.”
“귀하들에게 국왕의 가호가 함께한다는 것을 보여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칼의 눈꼬리가 살짝 치켜 올라갔다.
“헬턴트 영지에서 이 영광스러운 성도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이미 국왕 전하의 가호 덕분이었습니다. 전하의 가호가 항상 함께하는데 구태여 다시 그런 것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의미만 간추려 내자면, 이제까지 그딴 도움 없이도 잘 해왔다. 정도가 된다. 그 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 조나단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젠 여러분은 궁성 임펠리아를 방문한 인물입니다. 궁성은, 간단히 보자면 하나의 장소일 뿐입니다만 하나의 장소로만 볼 수 없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샌슨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다 후치의 눈초리를 받고선 슬그머니 손을 내렸다. 조나단은 계속 말했다.
“그리고 꼭 언짢게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그저 여러분들이 바이서스 임펠을 구경하시고 싶다거나 명사들의 저택이라도 방문하고 싶다면, 저희들이 그 편의를 돌봐드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궁성 수비 대원을 시종으로 쓰기라도 하라는 말씀입니까?”
“얼마든지 그렇게 하십시오.”
조나단이 시원스레 대답하자 오히려 칼이 놀랐다. 궁성 수비 대원들이 누구인가? 국왕의 경호원이나 마찬가지인 사람들이다. 그런 이들을 시종으로 부리라는 말을 하는 거다.
칼이 뭐라고 말하려는 찰나에 노크소리가 들렸다. 조나단이 문을 향해 근엄한 목소리를 냈다.
“들어와.”
문이 열리며 플레이트 메일을 멋지게 차려입은 병사가 들어왔다. 그는 조나단 아프나이델에게 절도 있게 경례했다. 상당히 멋들어진 동작에 샌슨은 그만 주눅이 들어버렸다.
“제 4분대. 출동 준비를 마치고 대기중입니다.”
“느려터진 놈들! 얼마나 걸린 거야!”
“시정하겠습니다.”
“밖에 있나?”
“예, 그렇습니다.”
“흠. 여러분, 일어나시지요.”
조나단은 일행에게 손짓하며 창가로 다가가 테라스로 나갔다. 벽면이 전부 창으로 된 곳은 열면 바로 테라스가 나오도록 되어 있는 구조였다. 일행이 그를 따라 베란다로 나가자 밖에 도열한 병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4열 횡대로 늘어선 40명의 병사들이 바닥에 금을 그어놓고 선 것처럼 똑바르게 맞춰 서 있었다. 경례를 한 병사와 똑같이 모두 풀 플레이트 메일을 입고 있었는데 가슴팍에는 붉은 독수리 문양이 들어가 있었다. 바이서스를 상징하는 문양이다. 손에는 번쩍거리는 핼버드를 역시나 줄에 맞춘 것처럼 정확한 각도로 비껴들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당하고 주눅들어버릴 만큼 멋있고 눈이 부신 광경이었다.
조나단은 꽤나 자랑스러워하는 듯이 푸근하게 말했다.
“여러분을 모실 궁성 수비 대원입니다.”
“……”
샌슨이 놀라 예의도 잊고 입을 쩌억 벌렸다. 칼은 당황했고 후치는 오히려 끔찍하단 표정을 지었다. 저렇게 삐까번쩍한 이들이 수발을 든다? 차라리 자기가 저들 중 한 명의 수발을 드는 게 훨씬 어울릴 것 같다.
리타는 흔치 않게 미간을 좁혔다. 햇살을 반사하는 궁성 수비 대원의 위용 때문은 아니다.
“역시 내 타입은 아니었어.”
그녀의 말이 시발점이라도 된 것처럼 갑자기 칼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입을 꽉 다물었다. 어찌나 강하게 입을 다물었는지 입술이 하얗게 바뀔 정도였다.
조나단은 칼의 표정을 보더니 무엇인가 잘못 되었나 싶어 당황했다. 병사들을 살펴보았지만 그들에겐 어떤 문제도 없었다. 다시 칼을 돌아보자 칼이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를 냈다.
“죄송합니다만 저들을 데려가진 않겠습니다.”
“예?”
얼빠진 조나단에게 칼이 냉기가 풀풀 날리며 말했다.
“전하께 이렇게 전해 주십시오. 촌부께 내려주신 하해와 같은 성총을 감당할 수 없으니 부디 거두어달라고 말입니다. 그럼, 이만 저희들은 물러가겠습니다.”
“아, 저……”
칼은 그대로 고개를 숙이더니 문 쪽으로 걸어가 버렸다. 후치와 샌슨은 어쩔 줄 몰라 허둥대다가 후다닥 칼을 따라 나갔다. 리타는 병사들을 보고 고개를 젓더니 몸을 돌렸다. 그리고 북해의 바람처럼 서늘하고 옅은 미소를 조나단에게 지어준 다음 방을 나갔다.
방을 나간 칼은 무턱대고 걸었다. 후치와 샌슨은 당황했지만 칼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아니, 말을 걸 수 없었다. 칼의 표정은 한 마디라도 말을 걸었다간 혀를 뽑아버릴 것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그들은 평생 이토록 화가 난 칼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칼라일 영지의 실험 보고서를 보았을 때조차도 이렇게 화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화가 나도 사람에게 없던 능력이 갑자기 생기진 않는다. 칼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나가는 길이 어디야!”
샌슨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쪽입니다.”
샌슨의 안내를 받아 칼과 일행은 복도를 성큼성큼 걸었다. 샌슨의 안내대로 가자 금방 정문을 찾을 수 있었다. 지나가는 동안 마주친 궁내부원들이나 시녀들이 놀랐지만, 그들을 신경 쓸 정도로 여유로운 상태는 아니었다.
거침 없이 걸어가던 칼은 정원으로 나오자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화를 진정시키는 것이다. 다른 일행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칼을 지켜보았다. 칼은 한참이나 심호흡을 하더니 나직하게 한마디 내뱉었다.
“빌어먹을 놈……”
“…… 누구 말입니까?”
“닐시언이라는 놈 말고 누가 있겠어!”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일행은 모두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후치는 그야말로 펄쩍 뛸 정도로 놀라며 칼의 입을 바라보았다. 조심해야 할 것은 리타의 입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보다는 훨씬 위험해 보이는 입이 저기 있었다.
샌슨이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 멀리 놔두고 온 궁성 수비 대원들이 보이긴 했지만 다행히도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다. 샌슨은 안도하며 하얗게 질린 얼굴로 칼을 바라보았다.
“카, 칼. 저, 무슨 일로 화가 나신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화를 좀 가라앉히시고……”
“가라앉히시고? 대거라도 입에 물고 닐시언을 찾아갈까?”
“칼! 제발. 왜 이러세요?”
후치가 더는 참지 못하고 칼을 말렸다. 칼은 도무지 성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이 씩씩거리는 숨을 내뱉었다.
그런 와중에 리타가 한마디 했다.
“충분히 화날 만 하지. 남자가 그 정도로 찌질하면 범죄야.”
“리타!”
후치는 거의 울 듯한 표정으로 두 남여를 바라보았다. 걸어 다니는 폭탄이나 다름없는 둘을 보자니 정말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샌슨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아서 안절부절 못했다.
그러나 후치의 마음을 모르는지 칼은 이를 사납게 드러내며 웃었다.
“제기랄 놈. 대가리는 여물어서 형의 자리를 꿰찰 정도는 되겠지. 하지만 더러운 근성은 어찌할 수 없었군. 젠장, 루트리에노 대왕의 핏줄에 저렇게 비열한 자손이 나왔다는 것이 불가사의하군.”
“카, 카아아아알!”
“아무도 안 듣잖아!”
버럭 외친 칼의 말에 이어 나지막한 음성이 화답했다.
“내가 듣는데요.”
정원수 뒤에서 한 아가씨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리타를 제외한 일행은 모두 바짝 얼어붙었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아가씨는 상당히 재미난 복장이었다. 잿빛 머리에는 수건을 두르고 가슴까지 올라오는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손에는 전정가위를 들고 있으며 작업복의 커다란 주머니에는 여러 손질 도구가 가득 들어 있었다.
그리고 키가 몹시 컸다. 이루릴보다 더 컸다. 거의 리타와 비슷할 정도로 컸다. 후치로서는 분하지만 그보다도 컸다.
그녀는 큰 키와 가냘픈 몸매가 어울려 한층 더 키가 크다는 느낌을 준다. 이루릴처럼 완벽한 비율로 짜여진 몸매가 아니라 평범한 축에 속하는 몸매라 크다는 느낌이 확 든다. 그래봐야 리타만큼 압도적인 느낌은 주지 않지만.
후치가 정원사인가 생각하고 있는데 칼이 당황하며 질문했다.
“누구십니까?”
그 아가씨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데미 바이서스. 원래는 데밀레노스 바이서스지만 데미라고 불러요. 데미 전하는 이상하죠?”
이 나라의 유일한 공주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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꺾다리 공주님 등장입니다.
사실 제가 닐시언에게 신랄한게 마치 절 보는 것 같아서...
사람이 좀 찌질할 수도 있지! 나쁜 리타 같으니.
그럼, 좋은 밤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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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다혈질 성향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라 좋아하는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