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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르타트] 아무르타트 - ch5. 복수의 검은 손길 (16) (4) 2015/07/05 AM 12:23


*








나이젤은 소파에 편안하게 기대 앉아 있었다. 그의 긴 다리가 소파 아래로 쭈욱 뻗어있었다. 한 손에는 책을 들고 심취한 얼굴로 탐독하는 중이었다.



나는 그의 바지를 붙잡았다. 그러자 그가 나긋나긋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내게 손을 뻗어 자기 무릎에 앉혔다. 평소처럼 편안하고 안락한 자리다.



“심심한가요?”



“우웅.”



“그렇군요.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요.”



그는 읽던 책을 덮어 옆의 탁자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무릎 위에 앉아서 꼼지락대는 내 머리를 빗겨주기 시작했다. 크고 긴 손가락이 기분 좋게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이거 재미써요?”



“네. 제법 재미있는 이야기에요.”



“왜 재미써요?”



그가 내 머리를 만지고 있는 걸 무시하고서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올려다보았다. 내 눈이 그를 지그시 바라보자 그는 선선한 웃음을 머금었다.



“하하. 아직 공주님이 이해하긴 어려울 거예요.”



“우웅.”



볼에 바람을 빵빵하게 불어넣었다. 나름대로의 반항이었지만 그가 보기에는 마냥 귀엽게만 보였나보다. 그가 내 볼을 한 손으로 만지며 말했다.



“사람과 용의 이야기에요.”



“용이 머에요?”



“여기서는 드래곤이라고 부르는 존재죠. 조금 다른 부분은 있지만 단순히 번역만 한다면 그렇게 볼 수 있어요. 설화의 전승이 오랜 세월을 거쳐 지역적으로 각기 특색을 띄기 시작하면서 언어와 문화에 따라 다양한 모양으로 변모한 것이죠.”



어려운 말에 나는 입을 헤 벌리고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는 입으로 호를 그렸다.



“그냥 드래곤이라고 할게요.”



“네에.”



그는 내 머리에 다시 손을 대며 머리를 다듬었다. 눈도 내 뒷머리를 향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입은 계속해서 나에게 이야기를 해줬다.



“드래곤은 인간보다 훨씬 오래 살아요.”



“얼마나요?”



“페이만큼.”



“?”



나는 눈을 크게 뜨며 그를 향해 다시 고개를 돌렸다. 홱 돌아가는 머리를 놓지 않으려 애쓰며 그는 이야기를 이었다.



“아무튼 이 책에서는 오래 사는 드래곤이 자기의 인간 친구가 죽자 슬퍼해요. 그리고 빨리 죽는 인간의 생을 탓하며 더 이상 인간과 친구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죠. 하지만 사랑이 너무 크기에 드래곤은 결국 그 인간 친구의 자식을 다시 사랑하게 되요.”



“웅?”



“새로 사랑하게 된 친구의 자식도 금방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거부할 수 없었어요.”



“왜요?”



“사랑하는 것은 닮기 마련이니까요.”



이해가 잘 안 갔다. 나는 다시 묻기 전에 먼저 열심히 생각해보기로 했다. 아빠가 말하는 건 원래부터 이해하기 힘든 것들이 많았다. 물어도 제대로 대답해주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거다. 습관이 그렇게 들었는걸.



“후후.”



나이젤은 기분 좋게 웃으며 내 머리에서 손을 뗐다. 머리가 깔끔하게 정리된 모양이다. 그가 기분 좋게 웃는 건 대부분은 그런 사소한 일들에서 나온다.



그는 뒤에서 나를 안았다.



“나는 용도 사랑스럽고 인간도 사랑스러워요. 그들의 멍청함과 아둔함은 언제 봐도 재밌거든요. 하지만 조금 질릴 것 같아요. 그러니 페이는 나를 재밌게 해줘야 해요.”



나이젤의 검은 눈동자를 가리듯 눈이 반달 모양으로 휘어졌다.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








쿠당탕!



“너도 후치처럼 개성 넘치는 기상법을 창조하기로 한 거냐?”



“으윽. 샌슨?”



리타는 아픈 머리를 만지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 상황이 파악이 안 된다. 한심하게 그녀를 보고 있던 샌슨이 혀를 찼다.



“쯧쯧. 정신 차려. 어제 얼마나 마셨던 거야?”



“평소만큼.”



“또 죽어라 마셨군.”



샌슨은 주변에 어지러이 널브러진 와인 병의 잔해를 보며 어젯밤의 참상을 짐작했다.



리타와 네리아는 여자들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남자들 방에서 계속 마셨다. 피곤해진 그녀들은 아무 침대에나 기어가서 잠들었다. 바닥에서 자는 건 미용에 나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쓰러지기 직전의 정신력으로도 겨우 침대를 찾은 것이다.



리타는 운차이가 썼던 빈 침대에 있었다. 그녀는 굴러 떨어진 침대를 보며 그것을 깨달았다. 다행히 다른 남자들 침대에 파고들진 않은 모양이다. 피곤한 와중에 카피도 챙겼는지 카피도 침대 위에 똬리를 틀고 누워 있었다.



아니, 잠깐. 그 전에 길시언이 오지 않았던가? 길시언이 같은 방에 머물렀다면 운차이의 침대는 길시언이 썼을 텐데.



“길시언은?”



불안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본 리타의 눈에 길시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샌슨이 핀잔을 주듯 대답했다.



“세수하러 갔어.”



“혹시 내가 실수한 건 아니겠지?”



“뭔 실수?”



“같은 침대에서 잤다거나.”



“…… 제발 어디 가서 부끄러움이라는 감정 좀 구비해오면 안 되냐?”



“노력해볼게.”



한숨을 쉬며 샌슨은 고개를 저었다.



“길시언은 그냥 바닥에서 잤어. 나중에 침대에서 자려고 했는데 네가 차지하고 있는 바람에 그냥 바닥에서 계속 잤다더라. 나중에 보면 사과라도 해.”



“응……”



“세상에. 국왕의 형을 바닥에서 재우는 여자라니. 그것도 국왕의 구애를 받은 여자가.”



“…… 반성하고 있거든?”



샌슨은 놀린다는 목적으로 말한 게 아니라 진심으로 어이없어서 말한 것이다. 리타가 눈을 흘겼지만 샌슨은 깔끔하게 무시했다. 부스스한 머리를 정리하며 리타는 몸을 일으켰다. 그런 리타의 눈에 또 보이지 않는 한 사람이 있었다.



“어라? 네리아는?”



“여기.”



샌슨은 바로 옆의 침대를 가리켰다. 후치가 누워있는 침대였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뭔가 이상했다. 후치의 덩치는 저렇게 크지 않다.



“…… 설마?”



“그냥 누나가 동생 데리고 자는 거지, 뭐. 내비 둬. 나중에 재미난 구경이나 하게.”



“샌슨, 너 보면 은근히 짓궂단 말이야.”



“너만 할까.”



리타의 시선이 후치가 잠든 침대에 잠시 머물렀다가 떨어졌다. 샌슨 말대로 동생 같은 아이를 데리고 그냥 같이 잠든 것뿐일 거다. 아마도.



그러다 리타는 샌슨의 모습을 똑바로 보았다. 그는 하드레더를 걸치지 않은 가벼운 셔츠 차림이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검집을 씌운 검을 손에 들고 있었다.



“왠 검이야?”



“아침 운동 좀 하려고.”



“운동?”



“좋은 대무 상대를 만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



샌슨은 문 밖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무도 없었지만 리타는 그 손가락이 길시언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아차렸다. 샌슨의 말대로 그와 엇비슷한 실력을 가진 상대를 만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샌슨 스스로는 잘 모르고 있지만, 리타가 세상을 돌면서 느끼기에 샌슨 정도의 실력자는 정말로 흔하지 않았다. 그녀가 직접 겪어 본 사람들 중에선 고작해야 신차이 정도만이 떠올랐다.



리타는 샌슨과 그 손에 들린 검을 잠시 바라보더니 후치가 잠든 침대로 다가갔다. 샌슨은 가만히 그녀가 뭘 하나 싶어 지켜보았다. 리타의 볼일은 후치가 아니라 그의 바스타드소드에 있었다. 그녀는 바스타드소드를 챙겨들었다.



“그건 뭐하게?”



“나도 아침 운동이나 하게.”



“뭐?”



리타가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쓸어 넘겼다. 그리고 입에 물었던 끈을 들어서 머리를 깔끔하게 묶었다. 그녀의 검은 머리가 말 꼬리처럼 틀려 올라갔다.



“정신도 차릴 겸, 가볍게 몸 풀고 씻은 다음에 떠날 준비를 해야지.”



“뭐, 마음대로 해라. 그리고 여기서 옷 정리하지 마.”



“응? 아아, 응.”



머리를 묶은 후에 자연스럽게 흐트러진 셔츠의 단추를 다시 채우며 팬츠 안으로 집어넣던 리타가 멋쩍게 대답했다. 샌슨은 심드렁하게 말하고선 방 밖으로 나갔다. 리타 같은 미녀가 속살을 은밀히 노출하는 장면을 보였음에도 그 반응은 시큰둥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당사자인 리타도 멋쩍어 할 뿐이었다. 둘 사이에서 얼굴을 붉힌다거나 부끄러워하는 일은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길시언이 금방 돌아왔고 그들은 여관의 뒤뜰로 나갔다. 내려가는 동안 리타가 길시언에게 사과했다.



“바닥에서 재워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변태로서 당연한…… 야! 아침부터 이럴래? 제발 좀 가만히 있어라! 흠흠, 기사로서 당연한 일을 한 것뿐입니다.”



“예전에 같이 다니던 시절에는……”



“아악! 그 때는 남장을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 이야긴 그만 합시다.”



“아무리 제가 남장을 했다지만 남성의 그런 모습을 보고서는 쉽게 잊기 힘들군요.”



“리타 양……”



길시언은 아침부터 프림과 리타 때문에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샌슨은 도대체 길시언이 리타와 같이 다니는 동안 무슨 몰골을 했었을까 궁금했지만, 길시언이 너무 불쌍해 보여서 굳이 물어보진 않았다.



뒷마당에 도착한 이들은 가볍게 몸을 풀었다. 샌슨이 팔을 쭈욱 잡아 당기며 리타에게 말했다.



“근데 너 바스타드소드로는 검술 펼치기 힘들지 않겠냐?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만들어준 검만 썼었잖아?”



리타의 애검은 헬턴트 대장장이인 조이스 씨가 만들어준 얇은 롱소드였다. 그녀는 과거에 경비대에게 검술을 배우던 시절부터 그 검만을 사용했었다. 익숙해진 무기를 버리고 다른 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검술을 펼치는데 꽤 큰 지장이 있다.



리타는 바스타드소드를 양손으로 들었다가 한손으로 들었다가 해보았다. 확실히 무게감이나 균형이 다르다. 하지만 그녀의 검은 이미 사라졌다.



“실전도 아니고 그냥 연습이니 괜찮겠지. 어차피 새로 검을 구해야 하니까, 또 거기에 익숙해져야지. 그리고 잠시였지만 이거 써보기도 했었고.”



“그땐 OPG끼고 했잖아.”



“나 정도 되면 OPG는 큰 문제가 아니거든.”



“어련하시겠어.”



리타는 한 손으로 바스타드소드를 휘둘러보다 고개를 젓고는 양손으로 잡았다. 양손으로도 잡을 수 있게 손잡이가 긴 바스타드소드다 보니 그 편이 훨씬 편했다.



샌슨의 검은 손잡이가 짧은 롱소드였다. 양손으로 잡으려면 잡을 수는 있지만, 바스타드와는 달리 한손용으로 개발되어서 불편함이 따랐다. 그리고 길시언의 프림 블레이드는 검의 모양만으로 봐서는 바스타드소드에 가까웠다.



“그럼 넌 바스타드에 우선 익숙해지도록 연습해봐. 먼저 길시언이랑 나랑 대무할 테니까.”



샌슨과 길시언은 마당 한 가운데 서서 서로를 향해 검을 뽑아들었다. 언뜻 보기에는 결투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목검이 아닌 진검을 들이대는 것은 그만큼 위험한 행동이다. 하지만 검을 몸처럼 다루는 그들에게는 상대방을 다치지 않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고 실제로 그런 실력이 있었다.



길시언과 샌슨이 서로의 틈을 보다가 격돌했다. 샌슨은 롱소드를 양손으로 붙잡았고 길시언은 프림 블레이드를 한 손으로 들고 다른 손에는 방패를 잡았다. 검의 쥐는 방식이 서로 바뀐 느낌이다. 리타는 바스타드를 양손으로 이리저리 휘둘러보며 그들을 구경했다.



아침 햇살을 받아 프림 블레이드와 은도금 롱소드가 찬란하게 빛났다.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와 거친 사내들의 기합소리가 바이서스 임펠의 아침을 울렸다.



그들이 대무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하나 둘 구경꾼들이 생겨났다. 여관 종업원들이 일을 하다 정신을 놓고 구경하는가 하면, 길을 오가던 사람들이 대무에 시선을 빼앗겨 아애 뒤뜰에 서서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럴 만도 하다. 상당한 실력자인 두 사람이 펼치는 검술은 쉽게 보기 힘들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실력자들이 진검으로 아슬아슬하게 펼치는 대결은 실제 결투가 아니란 걸 알고 있음에도 긴장감에 손에 땀이 날 정도로 흥미진진했으니까.



“흐음.”



리타는 어느새 검을 멈추고선 그들의 대무를 구경했다. 두 사람이 서로의 기술을 읽으며 한 수 앞을 내다보고 움직였다. 속도에서 앞서는 샌슨이 방패를 든 길시언을 약간 우세하게 몰고 있었다.



하지만 리타는 샌슨의 움직임을 확실히 읽었다. 그녀는 곧 뚱한 얼굴이 되었다.



“둘이 너무 힘 빼는 거 아닌가요?”



그녀의 목소리에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딱 멈춰 섰다. 서로의 급소를 한치 앞에 둔 상태였다. 사람들은 귀신같이 멈춘 그들의 묘기에 저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샌슨이 박수소리에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리타를 보았다.



“바스타드는 좀 다루겠냐?”



“어느 정도는.”



“어느 정도로는 안 될 텐데.”



“길시언도 방패 들고 있잖아? 이대 일이면 할 만하지 않겠어?”



그녀의 말에 샌슨이 움찔했다. 길시언이 리타의 말에 샌슨을 빤히 바라보았다. 샌슨이 뭐라고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리타가 이어 말했다.



“괜히 봐주면서 하지 말고 너도 전력을 다해봐.”



“전력을 다한 게 아니었소?”



길시언의 물음에 샌슨은 당황만 하고 대답하지 못했다. 길시언은 샌슨의 반응으로 그가 봐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허무한 웃음이 나왔다.



“허허. 아무리 방패를 들고 있었다지만, 그게 봐준 실력이라니.”



리타가 바스타드를 들고 그들에게로 다가오며 말했다.



“샌슨은 아마도 프림블레이드를 전력으로 사용하는 길시언이나 매직미사일을 같이 사용하는 저와 붙어야 비슷할 겁니다.”



그 말은 바꿔 말하자면 샌슨은 순수한 검 실력만으로 마법의 힘을 빌리는 그들과 맞먹는다는 뜻이다. 길시언의 눈이 놀람으로 커졌다.



“정말입니까?”



“솔직히 그래도 장담할 수 없을 걸요?”



순진한 전사, 샌슨 퍼시발은 거짓으로 부정하지도 못하고 괜히 미안해하기만 했다. 길시언은 허허 웃으며 방패를 내려다보았다. 아무리 그렇다지만 기사로서 이대 일의 대무는 자존심이 상한다.



샌슨이 우물쭈물하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황급히 입을 열었다.



“어, 그럼 리타랑 길시언이 한판 붙으시는 게 어떻습니까? 저, 저는 이미 충분히 몸을 움직인 거 같습니다. 벌써부터 배가 고프네요.”



“흠.”



“저……”



“알겠습니다. 나중에 꼭 방패를 놓고 겨뤄 봅시다.”



“하하, 예.”



샌슨이 머쓱하게 웃으며 안쪽으로 이동했고, 그의 빈자리에는 대신 리타가 바스타드를 들고 자리했다. 하지만 이내 바스타드를 내리며 샌슨을 보았다.



“샌슨. 그럴 거면 그 롱소드 좀 빌려줘. 그리면 길시언이 방패를 놓아도 해볼만 할 거 같은데.”



“아, 그럴래?”



샌슨이 냉큼 대답하며 그의 롱소드를 리타에게 건넸다. 그러자 길시언도 그에게 방패를 내밀었다.



“그러면 이것도 좀 맡아주시겠소?”



“물론이죠.”



바스타드와 방패를 받아든 샌슨은 뒤뜰 안쪽으로 물러났다. 그 곳에는 어느새 나온 후치가 자리하고 있었다. 샌슨은 후치의 곁에 서며 말을 걸었다.



“일어났네?”



“밖이 이렇게 시끄러운데 어떻게 자겠어?”



“별 일 없었냐?”



“무슨…… 아, 당연히 아무 일도 없었지! 순진하고 청초한 소년을 놀리는 게 그리 재밌어?”



샌슨은 킥킥거리며 방패와 검을 앞에 놔두고서 리타와 길시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구경꾼들은 갑자기 거구의 전사가 물러나자 아쉬워했지만, 그 자리를 길쭉하고 늘씬한 미녀가 대신 채우자 다시 눈을 빛냈다. 조금 전과는 다른 관심이 생겨났다. 날카로워 보이는 미녀가 과연 제대로 검을 쓸 수 있을까?



어느새 구경꾼들이 꽤 늘어나 있었다. 치기가 넘치는 젊은이들부터 해서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나 한창 꽃다운 나이의 처녀도 있었다. 우유를 흘렸는지 당황하는 처녀의 모습이 주변에 웃음꽃을 피웠다. 그리고 그들의 뒤로 마차 한대가 서 있었는데, 그 안에서는 한 젊은이가 멍하게 뒤뜰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시겠습니까?”



길시언이 선수를 양보했다. 그는 과거의 여행에서 리타의 실력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그가 전력을 다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상대다. 리타가 사양하지 않고 곧장 검을 휘둘렀다.



그녀의 검술은 일격 보다는 연격에 중심을 두고 있다. 흐름을 가져가며 끊임없이 공격을 이어간다. 그리고 베기보다는 찌르기를 위주로 구사한다. 힘이 상대적으로 약한 여성이기에 취한 검술이다. 그리고 그것은 베기 위주의 길시언과 반대를 이루었다.



방패를 버리고 양손으로 검을 잡은 길시언의 공격은 묵직한데다가 속도까지 있었다. 하지만 속도에서는 리타가 한 수 위였다. 그녀는 종으로 휘둘리는 검의 옆면을 비스듬히 쳐내며 길시언의 어깨 밑을 노리고 찔러 들어갔다. 길시언은 몸을 돌리며 팔꿈치로 리타의 복부를 가격하려고 했다. 리타의 검이 경로를 바꾸며 그의 팔꿈치를 가로막듯이 변했고 그 틈으로 길시언의 검이 다리를 노리고 떨어졌다.



리타는 그것을 발을 들어 피함과 동시에 롱소드로 길시언의 가슴팍을 찌르려고 했고, 길시언은 발이 피할 것을 예상하고 무릎 위로 검을 올렸다.



둘의 검이 서로의 몸에 닿기 바로 직전에 딱 멈추었다.



“녹슬지 않으셨군요.”



“그쪽이야 말로 대단합니다.”



첫 합은 동수였다. 둘은 싱긋 웃으면서 뒤로 물러났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금방 서로에게 검을 날렸다.



리타와 길시언의 대결은 샌슨과 길시언이 펼치는 것과 달리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앞선 대결도 한손과 양손이라는 차이가 있었지만, 이번 대결은 둘의 검술이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에 보는 입장에서는 신선한 재미가 있었다.



재빠르고 교묘하게 찌르는 리타의 검과 강력한 힘으로 베어버리는 길시언의 검은 서로의 장단점을 드러내며 어울렸다. 그들은 거의 비슷한 솜씨로 주거니 받거니 검을 나누었다.



길시언의 품속으로 파고든 리타가 롱소드를 그의 다리에 바짝 붙였다. 검의 옆면으로 대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다리에 깊숙한 상처가 났으리라.



리타가 살짝 질린 표정을 짓고 있는 길시언에게 말했다.



“길시언은 갑옷을 너무 믿고 있어서 품을 쉽게 허용해요. 검격이 닿지 않는 위치에 저처럼 작은 사람이 파고든다면 대처하기 힘들 겁니다.”



길시언은 작다는 말을 지적하지 않고 대답했다.



“아, 아무리 그래도 그 상황에서 팔을 타고 안겨올 줄은 몰랐습니다. 어떤 사람도 이런 식으로 공격을 한 적은 없었는데.”



“그렇게 생각하다가 당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죠.”



길시언은 남자라면 다 그럴 거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다시 검을 휘두르기 위해 거리를 벌렸다. 그때였다.



“아아아악!”



하이톤의 비명소리가 그들의 귀를 강타했다. 여관 안에서 들린 목소리는 곧이어 다시 나왔다.



“나가! 나가라고! 멀쩡하게 생겨서!”



샌슨이 후치를 돌아봤다.



“네리아지?”



“네리아인데.”



그 즉시 둘은 여관 안으로 뛰쳐 들어갔고, 길시언이 그 뒤를 다급하게 따라 들어가려고 했으나 리타가 그를 잡았다.



“리타 양?”



“장비나 챙겨요.”



“황야의 레이디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아봐야 되지 않습니까?”



리타는 느긋하게 바닥에 떨어진 바스타드와 방패를 주웠다. 그리고 얼떨떨해 하는 길시언에게 방패를 내밀었다.



“네리아가 후치 침대에 자고 있었어요.”



“예?”



“칼이 후치인줄 알고 깨우려고 이불을 들췄겠죠. 네리아는 남자 방인지도 모르고 비명을 지르는 걸 테고.”



“……”



“방패나 들어요.”



길시언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일단 방패를 받아들었다. 리타는 확실하다는 투로 말했지만 길시언은 다급한 비명에 마음이 조급했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여관 안에서 조금 전보다는 작지만 큰 소리가 울렸다.



“나 세 개 던졌어요! 세 대만 때려요!”



“커허험! 흠, 흐흐흠!”



리타가 보란 듯이 미소 지으며 길시언을 쳐다보았다.



“맞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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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헉. 이번주는 주 3회 연재 충실히 지켰다.

요즘 새삼스레 댓글들이 달려서 힘이 납니다. 그래서 궁상을 요즘은 안 떨죠.

할슈타일과 리타의 대화로 머리가 아프신 분들을 위한 가벼운 편입니다.

그래봐야 다음편이면 또 돈슨 휴리첼 군이 등장하겠지만요. 에휴.

그럼, 좋은 밤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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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몬스터    친구신청

이번주에 여행갔다와서 세편을 몰아봤는데 역시 재미있네요 ㅎㅎ
더운 날씨인데 힘내서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Defiance    친구신청

여행 잘 다녀오셨나요? 저는 여행아닌 여행중입니다. ㅋㅋ

파츄리    친구신청

돈슨의 역습이 곧 나오겠군요 ㅋ
샌슨의 실력은 역시 dr에서는 최강클래스라 ㅋ 아이템빨도 안 먹히는 소드마스터... 오거 지능은 밸런스패치라고 해야겠지요 ㅎ

Defiance    친구신청

검술로만 보면 거의 작중 최강으로 묘사되니까요.
운차이나 그란도 탑급으로 나오지만 샌슨은 살기나 OPG없이도 다 씹어먹어버리는 위엄을 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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