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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대로는 울긋불긋한 색채의 향연을 펼쳤다. 물들어버린 낙엽이 하나씩 바람에 차분히 날리고 바닥에 소복이 쌓여갔다. 거세지 않은 바람은 가볍게 낙엽을 날려 보내고, 아스화리탈의 힘찬 발걸음은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했다.
리타는 천천히 흩어지는 머릿결을 한 손으로 정돈하며 멀찍이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닿을 것처럼 가까워 보이는 성벽이 눈에 띈다. 실제로는 감각으로 느끼는 것보다 더 먼 거리에 있을 터였다. 아직 가야할 길이 남았다.
하얗고 자그마한 물체가 리타의 옆에서 날개 짓을 쳤다. 웜링의 모습을 한 그녀는 심심한지 연신 리타의 주위를 돌아다니거나 아스화리탈의 머리위에 앉는 등,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카피는 금세 익숙해진 가을의 정취에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하며 아스화리탈의 머리에 앉아 나직한 하품을 내뱉었다. 작은 입이 벌어지며 공기가 얼어붙어 새하얗게 서리가 이는 것이 제법 눈길을 끈다.
리타는 습관처럼 짓는 미소도 없이 가볍고 힘주지 않은 얼굴이었다. 지금은 아무도 그녀를 볼 사람이 없다. 그렇기에 편안하게 무표정으로 있을 수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그녀는 평소에도 자주 짓는 자신의 무표정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어렵게 만들었는지 깨닫지 못했다.
사람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갈구한다. 그리고 동시에 어색하고 어려워한다.
무표정은 해맑은 미소에 당황하고, 텅 비었던 가슴은 가득 채우는 순수한 호의에 어쩔 줄 모른다. 흐릿했던 기억은 새로운 추억으로 화했고, 숨 막힐 듯했던 이질감은 그 원인을 찾았다.
율리아나 할슈타일은 죽었다.
나이젤 아스화리탈도 죽었다.
페이 아스화리탈도 마찬가지다.
이제 남은 것은 리타 스마인타그 뿐이다.
“흐흥.”
절로 나온 콧소리는 그녀 스스로를 놀라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카피를 깜짝 놀라게 만들어, 그녀가 재빨리 몸을 돌리는 바람에 아스화리탈까지 놀라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카피가 큰 눈을 깜박거리며 리타를 쳐다보았다. 아스화리탈의 걸음 속도는 느려졌고, 리타는 볼을 긁적였다.
누구나 흔히 할 수 있는 일이 있다지만, 가끔 그런 행동들이 괴리감을 가져다주는 존재도 있는 법이다. 즐겁고 활기차게 콧소리를 흥얼거리는 행동은 흔하지만, 이제까지 이십 몇 년을 차가운 이미지로 살아온 아가씨에겐 어울리지 않았다.
“리타?”
“왜요?”
“방금 웃은거다 해요?”
“사전적인 의미에서 보자면 그러한 행위에 포함되긴 하네요.”
“응?”
“네?”
카피의 고개가 옆으로 기울었고, 리타의 얼굴은 조금 붉어졌다.
그녀가 생각해 봐도 방금 지었던 콧소리는 그녀와 전혀 어울리는 게 아니었다. 보통의 처녀들이라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런데 생각해보면 자기는 보통의 처녀들이 아닌가? 굳이 못할 게 뭐가 있을까? 이렇게 당황해야 할 이유가 없다.
리타는 자신은 모르고 남들은 모두가 다 아는 특기인 뻔뻔해지기를 사용했다. 그녀는 여상스런 얼굴로 말했다.
“조금 기분 좋은 생각을 했어요.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요?”
“물론이다 해요.”
“……”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카피를 보며 리타의 입이 다물어 졌다.
카피는 리타가 부끄러워하는 캇셀프라임을 보았을 때 지었던 표정과 비슷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리타는 조금 더 뻔뻔해지는 게 어떨까 고민하다가 가까이 다가오는 인기척을 느끼고 주의를 돌렸다. 북쪽에서 온 것으로 짐작되는 상인 일행들이 대로를 지나고 있었다.
리타는 태연하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나저나 상인들이 많이 보이네요. 옷차림을 보면 이 곳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에요.”
“그럼 어디다 해요?”
다행이도 카피는 그녀의 말에 반응했다. 리타의 어깨가 살짝 낮아졌다. 그녀는 조금 편안해진 얼굴로 설명했다.
“음…… 아마도 헤게모니아에서 왔을 것 같네요.”
“헤게모니아?”
헤게모니아에 대한 지식은 남아있지 않은 모양이다. 기억의 팔 할이 사라졌다고 했으니 그럴 수도 있을 거다. 그런데 드래곤의 그 수많은 기억 중에서 남은 이 할이 과연 평범한 인간의 온전한 기억보다도 적을 수 있을까?
리타는 생각을 꺼버리듯 눈을 감았다가 뜨며 말했다.
“바이서스 북쪽에 있는 나라에요. 평원과 고원이 많아 목축업이 발달했고, 바다를 끼고 있어서 해양업도 왕성한 나라지요. 하지만 척박한 땅 때문에 곡물의 재배는 바이서스만큼 원활하진 않아요. 또한 지리적인 이유로 해서 매우 추운 기후를 가지고 있죠. 그리고 우리가 목적지로 하고 있는 북해에 당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땅이고요.”
“아하. 역시 리타는 똑똑하다 에요."
“천만에요.”
카피는 고개를 조악거리며 그녀들을 스쳐지나가는 상인들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확실히 익숙하게 봐온 복색들과는 달랐다. 거기다 뭔가 생김새도 이질적이다. 큰 차이는 없지만 자세히 본다면 바이서스인들 사이에서 구분해 낼 수 있을 정도다.
카피의 관심이 상인들에게 돌아간 것에 미소 지으며 리타는 말을 이었다.
“헤게모니아는 바이서스와 다른 점이 많은 나라에요. 이 나라에는 없는 문화가 많이 있죠. 그 중에서 특이한 걸 꼽으라고 한다면 저는 ‘무녀’라고 답하겠어요.”
“무녀가 뭐다 해요?”
리타는 설명하려다 일반적인 의미의 무녀와 헤게모니아의 무녀는 다르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그녀는 잠깐 생각을 거치며 말을 다듬고 나서 입을 열었다.
“마법사와 비슷한 이들이에요. 그들 보다는 더 주술적인 의미를 강하게 가지고 있지요. 그녀들은 문신으로 주술을 사용해요. 타이번의 몸에 새겨진 문신이 바로 헤게모니아 무녀의 문신이에요.”
“아하.”
카피는 알겠다는 열심히 눈을 빛내며 들었다. 리타는 완전히 흥미를 돌리는데 성공한 자신을 속으로 칭찬하며 말을 이었다.
“헤게모니아의 무녀들에게는 아주 특별한 특징이 하나 있어요.”
“뭐가 있다 해요?”
“미래를 봐요.”
리타의 짧은 말에 카피는 큰 눈을 깜박거렸다. 작은 머리를 옆으로 갸우뚱하며 그녀는 리타를 올려다보았다. 말은 짧았으나 그것이 가지는 의미는 짧지 않았다.
“예언자다 에요?”
리타는 턱에 손을 가져다대며 대답했다.
“음…… 그렇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녀들은 물그릇 등을 이용해 미래를 보는 퓨쳐워킹이라는 것을 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 미래는 반드시 벌어지는 일이라고 하더군요.”
“어? 미리 알면 피할 수 있는 거 아니다 해요?”
“미리 알아도 피할 수 없도록 고정되어 있는 것이 미래라는 것이겠죠. 최소한 그녀들에겐 말이에요.”
“그러면 자기가 죽는 장면을 본다면 그대로 죽어야 한다 해요? 만약 물에 빠져 죽는 것을 보았다면, 물 근처에 안 가면 되는 것 아니냐 에요.”
“그래도 물에 빠져 죽겠죠.”
카피가 눈을 깜박거렸다. 리타는 계속 말했다.
“목욕을 하다가 재수가 없어 기절하는 바람에 익사할 수도 있어요. 빨래를 하러 가다가 강에 빠질 수도 있고요. 아애 물을 멀리 한다면 갑자기 비가 내려 홍수가 나는 바람에 익사해 버릴 수도 있죠.”
“피하려고 해서 피해지는 게 아니란 거다 해요?”
“미래는 보는 것으로 인해 확정되니까요.”
“보기 전까지는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본다면 무엇이 일어날지 알기 때문에, 그로 인해서 고정되어 버린다는 거다 에요?”
“똑똑하네요.”
리타는 살짝 눈을 감았다. 검은 머리의 키 큰 남자가 웃으면서 말했었다.
“아버지가 그런 말을 했었죠. 무슨 고양이의 법칙이라고 하면서요. 그 때는 무슨 말인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헤게모니아의 무녀들을 말하던 게 아닌가 싶어요.”
“헤에.”
그러고 보면 할슈타일 후작이 나이젤의 이야기를 할 때, 그가 캇셀프라임을 만난 적이 있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카피는 그를 기억할까? 지금 한 말이 만약 나이젤에게서 들은 이야기라면……
리타의 입이 조금 벌어졌다. 그러나 이내 닫혔다. 그녀는 머리를 살짝 흔들었다. 살랑거리는 머리 사이로 카피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이 세상은 신이나 그 이상의 무엇이 짜놓은 틀대로 흘러가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우리들은 모두 그 위의 연기자들일 뿐이고.”
“우움…… 잘 모르겠다 해요.”
“사실 저도 잘 몰라요.”
리타는 생긋 웃으면서 말을 몰았다. 카피는 헤게모니아 무녀의 퓨처워킹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궁금한 게 있으면 절대로 다물어지는 법이 없던 그녀의 작은 입은 굳게 닫혔다. 고정된 미래라는 것에 대해서 몰두한 카피를 보며 리타는 내심 안심했다.
황금빛으로 물든 대지를 걸어 나가다보니 어느덧 성벽에 다다랐다. 목적지인 도시까지는 아직 남았지만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터라 오늘은 이곳에 머물러야 할 터였다. 사실 처음부터 그럴 계획이긴 했다. 이곳의 럼주는 제법 맛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쟁의 여파가 적은 노스 그레이드답게 검문은 간단했다. 신분을 증명할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검문은 끝났다. 그게 할슈타일 가문의 것이라는 사실도 검문이 짧아지는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리타는 몇 년 전에 들렀던 기억을 되살리며 골목을 돌아다녔다. 리타는 스스로가 남들보다 낫다고 할 수 있는 것을 몇 가지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외모나 몸매 같은 당연한 것들을 제쳐두고서 그녀는 기억력을 꼽는다. 그녀는 절대로 잊지 않으니까 말이다.
리타는 계속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는 거리를 보며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문제는 그때 헤맸었기 때문에 지금도 헤매야 한다는 거지만……”
길치와 기억력은 완전한 상관관계를 가지진 못하는 모양이다.
리타는 옅은 한숨을 내쉬며 복잡한 골목을 이리저리 헤쳐 나가다가 마침내 익숙한 건물을 발견했다. 딱히 간판도 없이 넘칠 것처럼 술이 든 술잔만이 그려진 곳이었다. 으슥한 곳에 있기 때문에 외지인들은 좀체 찾기가 힘들다.
이곳은 길시언이 가르쳐 주었다. 지난번에 같이 북부대로를 내려올 때 길시언이 알려준 곳이다. 어디까지나 길시언 개인의 기억력에 의존해서 위치를 설명해 주었기에, 그 이야기만으로 리타가 찾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랐다. 그래도 간신히 찾아내어 마침내 럼주를 마셨을 때는 그녀치고는 꽤 드물게 행복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손발을 다 써가며 횡설수설 설명해주던 길시언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져서 리타의 입꼬리는 조금 올라갔다.
바로 들어가려던 리타는 한 가지 문제점을 깨닫고 멈춰 섰다.
“아……”
이 주점은 너무 작아서 말을 메어둘 곳이 마땅치 않다. 그렇다고 아스화리탈을 밖에 방치해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카피한테 봐달라고 할까?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염치없지.
“숙소부터 먼저 구해야겠네요.”
리타는 어렵게 찾아온 곳을 앞두고 다시 돌아서야 한다는 사실에 조금 쳐진 목소리를 냈다. 카피는 갸르르 거리며 리타에게 얼굴을 비볐다. 리타는 마치 고양이처럼 행동하는 그녀의 모습에 어이없어하면서 피식 웃음을 지었다.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리타가 옮길 무렵이었다.
콰앙!
주점으로부터 등을 돌린 리타의 등 뒤로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왕 소리가 들릴 거라면 건물을 보고 있을 때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면 다시 뒤돌아 볼 필요가 없으니까 말이다.
소리의 주인은 나이가 마흔은 넘어 보이는 중년 사내였다. 그는 사람이란 본디 땅에서부터 나온 존재라고 외치듯이 땅과 한 몸이 되어 있었다.
“끄응.”
힘겨운 소리를 내며 중년 사내는 쓰러진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 바로 앞에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리타를 발견했다. 리타는 가볍게 말했다.
“등장이 너무 전형적이군요. 3점 드리겠어요.”
중년 사내는 너무 감동적이라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단 표정을 지었다. 리타는 사내를 당혹케 한 것으로도 모자라 무표정하게 바라보기만 했다. 사내의 당황은 더 커졌으나, 이어 들린 목소리에 수그러들었다.
“어딜 도망가려고!”
“히익!”
으르렁거리듯이 말하는 또 다른 사내가 주점의 문에서 튀어 나왔다. 그는 리타는 아랑곳하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와 중년 사내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내 돈 내놔. 이 영감탱아!”
“이봐, 이보라고. 제발 놓고 말하지, 놓고 말해! 말로 하자고!”
“말은 무슨 말! 돈이나 얼렁 내놔!”
“켁, 켁! 지, 진정하게나. 누가 자네 돈을 떼먹기라도 한다던가. 그러니까 제발 좀 놓고 말하세!”
말로만 봐서는 어떤 상황인지 짐작하기 힘들었다. 멱살을 잡은 사내는 서른 정도로 보이는 남자였다. 그는 열 살은 더 먹은 중년 사내의 멱살을 잡는 무례를 범하고 있었지만, 대화로 보건데 그럴만한 이유는 있어 보인다.
카피가 고개를 빼곰 내밀었다.
“뭘까 에요?”
“그러게요. 뭘까요?”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며 리타와 카피는 상황을 지켜보았다.
사람들은 자신이 판단하기 힘든 상황에서는 흔히 쉬운 선택을 하곤 한다. 대게 그 판단은 평범한 것이며 순탄하게 상황을 넘길 수 있다. 리타는 그런 사람들의 판단을 신용하기로 하며, 한발 물러서서 상황을 잠자코 구경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는 아스화리탈의 고삐를 당겨 뒤로 물러났다.
주점의 열린 문으로 몇몇 사람이 더 나왔다. 그들은 리타와 같은 판단을 한 사람들이었다. 다만 좀 더 생동감 넘치는 구경을 위하여 가까이 다가왔다는 것이 차이점일 뿐이다.
리타는 그 무리들 중에서 한 사람에게 시선이 갔다. 다른 남자들 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 보이는 남자였다. 키만 보자면 샌슨과 엇비슷해 보였다. 다만 몸은 샌슨처럼 우락부락하지 않은데다 키가 있는 탓에 멀대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리타와 마찬가지로 무표정한 얼굴로 눈앞에 벌어지는 촌극을 지켜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누굴 응원한다거나 야유를 보내지는 않았다. 하지만 딱히 나서지도 않는 것을 보아서는 멱살을 잡은 쪽 사내의 일행 같아 보였다.
30대의 익숙한 인상의 남자가 중년 남성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댔다.
“돈도 없는 양반이 어떻게 돈을 안 떼먹어? 누굴 바보로 아나. 그래, 자, 한 번 말해 보시지. 어떻게 갚을 건데? 그 좋아하시는 말로 한 번 해결해 보자고.”
“어, 어음! 어음을 쓰지! 어음을 써 주겠어!”
그 순간 가만히 서 있던 멀대같은 남자가 즉각 움직였다. 그는 롱소드를 허벅지쯤에 늘어트리며 구경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무표정했던 게 거짓말인 것처럼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어라? 아아니, 뽀오쓰! 이게 또대체 무쓴 일입니까!”
꽤 과장된 목소리를 내며 그는 드잡이를 벌이고 있는 사내들에게로 다가갔다. 사내들의 고개가 동시에 그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리타는 그들의 표정을 본 후 낮게 중얼거렸다.
“틀렸군.”
그의 등장에 표정이 환해진 것은 중년 사내였고, 얼굴에 경계심이 서린 것은 30대 사내였다. 30대 사내의 일행이라 예상했었는데 보기 좋게 틀렸다.
보스라 불린 남자가 한참 어린 사내에게 멱살을 잡힌 상황에서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던 사내는, 갑자기 그 보스를 지켜야겠다는 것처럼 나서고 있었다.
멱살을 잡고 있던 사내는 나타난 이가 검을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주춤거렸다. 그는 최대한 당황을 숨기며 눈을 가늘게 떴다.
“당신은 뭐요?”
키 큰 사내는 물음에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중년 사내를 쳐다보았고 중년 사내는 다급한 표정을 지었다. 시선은 질문이고 표정은 대답이었다.
대게 이런 상황에서 다짜고짜 욕을 하는 녀석은 무기를 휘두를 배짱도 없는 어중이떠중이다. 하지만 이렇게 날카롭게 반응하는 놈은 적어도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놈이다.
보이지 않는 한숨을 남몰래 내쉬며 키 큰 사내는 롱소드의 손잡이를 잡았다.
“네가 잡고 있는 사람의 부하다. 우리 보스에게서 당장 손을 떼지? 감히 보스의 멱살을 잡아?”
30대 사내는 키 큰 남자의 흉흉한 기세에 살짝 움찔했지만 곧장 손을 놓진 않았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검을 뽑을 기세인 키 큰 사내의 모습에 천천히 손을 풀었다.
그는 손을 펼치며 말했다.
“자, 봐. 놨지? 그러니까 그 무서운 물건에서 손 좀 떼지, 그래?”
“뭐? 언제 봤다고 반말질에 명령질이야. 우리 보스 멱살을 잡아 놓고 그냥 넘어갈 생각이었냐?”
“어, 어? 이, 이봐. 노름빚을 떼먹으려고 했던 건 네 보스라고? 난 당연하게 내 권리인 금전수취권을 행사하려고 했을 뿐이라고. 애초에 네 보스가 돈을 바로 줬으면 이럴 일이 없었잖아.”
리타는 그들의 대화를 듣다가 뭔가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30대 사내야 아는 사실이지만 다른 이들도 말투가 어눌하고 약간씩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 키 큰 사내가 처음 과장되게 말했을 때는 일부러 그런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말하는 걸 들어보니 원래 그런 모양이다.
깨닫고 보니 복색도 특이하다. 30대 남자는 평범했지만, 키 큰 남자와 중년 사내는 이 도시에 오는 동안 몇 번 보았던 옷차림이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것 같다.
키 큰 사내는 롱소드에서 손을 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는 계속 과장된 표정을 지으면서 30대 사내를 위협했다.
“헛소리 지껄이지 마. 네가 뭐라던 보스의 멱살을 잡은 건 사실이지. 그 죗값을 치러야겠어.”
키 큰 사내는 롱소드의 손잡이를 잡아 당겼다.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임에도 번쩍거리는 물체가 그 모습을 조금씩 드러냈다. 그러자 보스라 불린 남자는 재빨리 키 큰 남자에게 달라붙어서 그가 검을 뽑지 못하도록 말렸다.
“지, 진정해. 참아야 돼. 참으라구. 이제까지 잘 참았잖아! 칼 뽑지 마, 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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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담한 몸매의 활발한 얀데레 아가씨가 자기 이름으로 싸울 수 있는 사람이라고 칭한 남자의 등장입니다.
ch5에서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얼굴들이 계속 등장하는군요.
그리고 익숙한 주인공도 낯설게 느껴질 만큼 타자의 연재 속도도 느리지요!
8월도 이제 절반 가까이 흘러가는데, 해야 할 게 너무 많이 남았습니다.
계획 대로라면 이번 달 안에만 거의 3권 분량을 써내야 하네요. 흑흑.
그럼 또 언제 다음 편을 올리지 기약을 두지 않으며 타자는 이만 물러갑니다.
그럼, 좋은 밤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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